소승은 겨울 결제 동안
방안에 앉아 열심히
좌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큰 강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어느 날에나
부처의 뜻에
다가갈지 모르겠습니다.
속세의 인연을
다 할 수 없어서
어머니의 병환 간병을 위해
만부득이 잠시
산을 내려갈 생각입니다.
곁에 있는 도반들에게
미안한 마음 간절하지만
이 하찮은 중생은 끝내
연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서 잠시 산문을 나서야 하다라는 가슴 찐한 사연을 경봉스님께 벽안스님이 보낸 편지글입니다. 이 겨울, 동안거 결제기간 중에 지금도 어느 산중에선가 벽안스님과 같은 사연이 선방 뜨락에 쌓이고 있는 건 아닐 런지요. 백조는 죽을 때 단 한번 운다고 합니다. 깨달음의 순간에 단 한번 울리게 될 오도송을 위해 오늘도 수행정진하고 계시는 모든 스님들에게 합장으로 경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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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도 계절을 타거든요. 봄에 듣기에 알맞은 악기, 또 여름이나 가을에 들으면 알맞은 악기, 겨울이 될 때 이게 부는 목관악기 중에서 가장 따뜻하게 하는 악기가 방금 들으신 오보에라는 악기입니다. 이 오보에는 소리가 따뜻해서 질감자체가 뭔가 포근한 솜이불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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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가 9종이 넘는다고 그래요. 9종이 넘는 백조 중에 고니, 큰 고니, 흑 고니, 이 3종류는 우리나라에 서식을 하죠. 이게 저기 북쪽 캄차카반도에서 시베리아 러시아, 특히 툰드라지역이 먹 거리가 굉장히 풍성하답니다. 그쪽에서 먹이가 풍성한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추운 겨울이 되면 우리나라로 내려와서 동해안이나 남해안쪽에 서식을 하죠. 우포저수지? 그리고 주남저수지, 진도, 이런 곳에 백조들이 겨울동안에 한국에 와서 머물죠. 백조들이 겨울을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 땅에 와서 머무는 동안, 따뜻하게 지낸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지역에 살면서도 추워 추워 그러잖아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백조, 그 백조는 죽을 때 단 한번 운다고 하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모든 수행자들이 한평생 몸 바쳐서 열심히 수행정진해서 그 한순간의 깨달음을 얻을 때, 오도송이 한번 팍 터지는 거잖아요. 그 절묘한 찰나, 예. 그 순간을 위해서 또 한평생 몸 바쳐 정진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오늘 시작하는 인사말에서 제가 벽안스님의 편지글을 읽어드렸는데, 뒷부분에 이런 글도 있어요.
원래 중은 그리움이란
헛된 망상을
버려야만 하오나
병환에 깃든
어머님을 두고서는
밤마다 찾아오는
가슴에 미어짐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래요. 병든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내가 아무리 정진중이지만, 가서 병환을 좀 돌봐드려야 되겠다하는 그 마음, 아무리 중이 정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내 부모님 편찮으신 걸 나몰라 할 수가 없다는 이 절절한 사연이 또 가슴에 참, 이렇게 울림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죠? 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렵지만, 그러나 사실 부모님 만나기 또한 어렵습니다. 그렇게 만나기 어렵다는 부처님법도 부모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부모님의 인연을 맺어서 부처님의 법도 맺는 것이기에 부모님의 인연을 소홀하다. 생각할 수 없죠. 이 벽안스님의 편지글을 소개하다보니까 문득 오래전 도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도반을 따라서 지리산을 갔던 적이 있는데, 그 지리산 하동 쪽에 머무는 한 비구 스님이 있었어요. 선객 스님인데, 이 스님이 토굴을 가지고 머무는 동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8년간 모셨어요. 이제 형제 중에 자기가 막내라고 그래요. 다른 형제들은 다 시집 장가가서 사느라고 먹기 바쁘고, 살기 바쁘고, 이러니까 어머니를 내가 모셔야 겠다 해서 이 선객 스님이 토굴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8년 동안 치매에 걸린 어머니 시중드는 걸 봤어요.
우리 일행이 전부 갔는데, 거기에서 저녁을 얻어먹을 형편이 못돼요. 그래서 우리는 아랫마을에 내려가서 국수 한 그릇 먹고 와야겠다하면서 가면서 같이 혹시 가려나해서 이 스님을 찾으니까, 부엌에서 덩치가 큰 분이, 체구가 굉장히 큰데, 얼굴은 아주 선한 그런 선승입니다. 쌀을 박박 씻고 있는 거예요. 뭐 하냐 그러니까 어머니 저녁 공양 시간 맞춰 드려야 된다고 저녁 공양을 짓고 있는 거예요. 전 가슴이 짠하더라고요. 우리는 아랫마을에 가서 국수를 먹고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이미 한바탕 일이 벌어진 거예요. 옷장 이불장 다 꺼내서 옷장을 다 뒤집어 엎어놓은 거예요.
양말 옷이 마치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 팔려고 내놓은 것처럼 수북이 쌓아놓은 거예요. 다 벌려서. 이걸 매일 치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 스님이 어머니 앞에 앉아서 그 같이 놀아주더라고요. 그러다가 또 하나하나 차곡차곡 개켜서 또 옷장에 넣고, 반복하는 거예요. 또 끄집어내고, 또 개어서 넣고, 아들과 어머니가 그 일을 반복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그 스님이 이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어머니가 치매가 걸려서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다보니, 빨래를 빨고, 말리고, 개고, 이런 일을 다섯 형제를 키우는 동안 어머니는 이 일을 수도 없이 하셨겠구나. 이걸 얼마나 많이 반복 하셨겠는가?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서 함께 공양을 짓는 동안, 어머니는 다섯 자식을 키우기 위해 이 밥 짓는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하셨겠구나. 그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나더라.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렇죠. 그냥 내 입에 들어오는 밥 한 그릇 그냥 거저 들어오는 거를 생각하지만, 어머니의 수고로움이 없이는 우리 밥상에 밥 하나를 차려서 먹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요즘은 전기밥솥이 알아 해준다 하나, 그 또한 어머니의 정성이 아니고는 먹기가 어려운 거죠. 그 비구스님이 어머니 8년간 치매 걸린 어머니 봉양하면서 “어머니가 우리를 이렇게 키웠겠구나.”하는 걸 돌아보면 그 봉양하던, 모시던 그 모습이 눈에 떠오릅니다.
이 하고많은 사람 중에 부모님 인연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70억이 넘는 인구 중에 왜 하필 그 분이 나의 어머니이며 내 아버지이며, 그 사람이 왜 하필 나의 자식인가? 이 인연 또한 보통이 아닌 거죠? 우리 불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걸 비유할 때, 눈먼 거북이가 널빤지 만나는 거, 구멍 뚫린 널빤지 만나는 것과 같다는 맹귀우목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이건 마치 눈이 먼 거북이가, 바다를 헤엄치다가 백년에 한번 숨 들이쉬려고 목을 내밀었는데, 그때마침 널빤지에 구멍이 뚫려서 구멍 뚫린 그 널빤지 목을 턱 걸치고 한번 휴식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어렵다.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만, 어머니와 자식,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인연 또한 그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섬개투침이라는 말도 있죠? 이건 바늘 하나를 땅에 꽂아놓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겨자씨, 그 겨자씨 하나가 바늘에 탁 꽂히는 순간을 섬개투침이라 합니다. 이건 정말 뭐, 그 확률적으로 맞을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는 거죠. 그런 섬개투침도 만나기 어려운 것에 비유하듯이 부모님 만나는 것, 자식 만나는 것 또한 바로 그러한 섬개투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바로 여러분의 눈앞에 함께 하고 있는 부모 형제자매들, 그들 모두가 섬개투침, 땅에 꽂아놓은 바늘위에,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겨자씨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우리 이 한세상, 함께 정진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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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래 앉아서 이 시간은 제가 음악의 장르와 관계없이 월드뮤직들, 세계 각국의 음악들을 다양하게 소개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아마 다 알고 있는 음악이라도, 또 자주 듣던 음악이라도 누구와 어느 때, 어디서 함께 듣느냐에 따라서 또 음악의 맛과 느낌이 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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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Redpath는 아일랜드 출신인데요, 영국에서 영국 여왕으로부터 국민 훈장도 받고, 국민 가수로 알려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여성의 프로필을 한번 오래전에 본적이 있어요. 보다가 보니까 20대 초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비행기 표 하나만 달랑 끊어서 미국을 간 거예요. 맨주먹인거죠. 아무것도 없이 미국 땅에 떨어져서 그러다보니 돈을 벌어서 학교를 가야되니까 아르바이트를 한 거예요. 그런데 그 아르바이트 한 이력이 화려해요. 진짜 안 해본 게 없더라고요. 이 여성이. 그런데 그 많은 일 중에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게 무엇이냐 하면, 장의사 보조역할까지 했어요.
20대 초반에. 장의사 그 보조역할을 하면서 시신을 다루는 일까지 옆에서 해봤다. 그 사람의 그 아르바이트 프로필 중에 그 경력 중에, 제 눈길을 끄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일을 해서 공부까지 마치고,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약간의 금속성 목소리처럼 참, 특유의 매력이 있죠. 그 목소리를 버릴 수 없어서 누군가의 눈에 띄고, 발탁되어진 뒤에 가수로 등단을 하게 되어서 이렇게 아주 멋진 노래를 하고 있는 가수입니다.
바랑속의 책 한권, 오늘은 무슨 책을 또 읽어주려나? 귀 기울이고 계시죠?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신간서적,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 박영신 교수의 글인데요, 오늘은 그 아버지의 지게라는 걸 하나 골라봤어요. 지개. 요즘은 농사짓는 분들이라고 해도 지게에 뭘 물건을 짊어지고 가는 경우 보기가 참 드물죠. 지게 구경 못한지도 아마 오래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남성들이 농사지은, 볏 짚단이나 이런 거를 잔뜩 지게에 걸머지고 그리고 지팡이 하나 의지해서 몸을 꾸부정히 구부리고 가는 모습을 떠 올려 보세요.
아버지들이 등에 짊어지었을 그 수많은 짐들, 그 농사지은 그 수많은 짐들이 전부 가족의 생계와 가족의 교육과 가족의 삶을 책임졌던 그런 무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버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건, 그들 모두가 다 자기의 자식과 가정을 행복하게 지키고 싶어 하는 꿈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라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오늘은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아버지의 지게를 읽어드리겠습니다.
고생도 시간이 지나가면 아름다운 추억이다.
어린 나이에 땔감 한 짐 가득 지게를 지고
친구들이 노는 학교 앞을 지나며
학교 친구들이 볼까 땀이 비 오듯 마음이 쓰였던 그 아픈 추억도
맨주먹으로 대구의 피난을 와서 입고 온 바지 팔아
오징어 사서 어깨로 나르며 꿈에 그리던 지게를 사기까지.
그 피눈물 고통의 추억도 시간이 지나니 모두 아름답다.
아버지서는 작가를 알 수 없는 유화,
그림 한 점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태극기가 걸려있는 거실에 나란히 걸어두고 계셨다.
그림에는 한 남자가 무겁디무거운 지게에 한껏 짐을 지고
막대에 의지하여 지게 무게를 못이긴 듯
고개는 땅이 꺼지듯 내려다보며 힘겹게 걸어간다.
아버지께서는 그 그림을 보시면,
아버지의 지나온 고생을 느껴 감동하시고
나는 그 그림을 보면
피땀 흘린 아버지 인생을 느껴 감동한다.
아버지 마음이 내 마음에도 전달된 것인지
나도 그 그림만 모면 가슴이 뭉클해지다 못해 전율이 일어난다.
아버지께 그 그림을 내가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 갖고 가거라.”하셨다.
예술적 가치를 떠나서
아버지의 투혼이 느껴지기에 소중한 작품.
내 책상 앞, 벽 한 가운데다 단단히 붙여 놓았다.
출근하면 매일 책상 앞의 그림을 보며
아버지를 만나는 듯 인사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다시 고향에 갔다.
예전에 그림이 걸려있었던 벽을 보았다.
빈 벽일 줄 알았는데,
거기에는 손바닥만 한 흑백 사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내게 주신 큰 그림은 작은 사진형태로
그 자리에 여전히 붙어 있었다.
내가 그 그림을 갖고 싶다고 하니
내가 모르는 사이 큰 그림을 사진관에 가지고 가서
사진을 찍어놓으셨구나.
그때 아버지가 “그래. 갖고 가거라.”즉각 대답하셨는데,
그것은 그 그림이 소중하지 않아서도 아니요,
아버지 인생에 의미 없어서가 아니라,
소중한 딸에게 그 의미를 전하고 싶은 반가움에서였을까.
그 그림은 아버지께 고생의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내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았던 아버지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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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에 나그네라고 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시작이 되더라?
강나루 건너서 밀 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뭐 이렇게 시작이 되었던 같은데요, 불교 경전에는 인간의 삶, 우리의 인생살이 자체가 나그네다 해서 나그네에 비유를 하죠. 코끼리가 막~ 달려오는데, 막 한 사람이 도망을 가면서 우물에 몸을 숨기는 이 이야기. 그 이야기 자체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 자체가 나그네의 길이다. 이 나그네의 길은 곧 윤회를 상징하고, 그 윤회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비유가 있기도 합니다만, 정말 잠시 왔다가는 세상, 우리가 어떻게 살다보니 지구라고 하는 정거장에 잠시 머물렀고, 지구의 정거장 속에서도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또 그 역에 잠시 멈추고 있는 거죠.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그 역에서도 또 각자의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죠.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잠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느 역에 머무는 것처럼, 그렇게 한번 역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좀 더 재미있는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게 잘 안되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그래서 아등바등 더 싸우게 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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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한생을 사는 동안 제불보살님께서 언제나 우리 곁에 동행하실 겁니다. 내 마음의 성소 발원문 올리는 시간이네요.
<내 마음의 성소-발원문>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부터
금생과 전생에 윤회의 세계에서 헤매면서
인과응보의 법을 몰라 저는 많은 악업을 저지르기도 하고
남들에게 악업을 저지르도록 이끌기도 했습니다.
너무도 무지하여 남들이 지은 악업을 보고
저는 기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이것이 잘못임을 깨달았기에
모든 붓다들과 대보살들께 진심으로 고백하고 참회합니다.
공덕의 터전인 삼보와 저의 부모와 스승님들,
그 밖에 지혜로운 분들께
번뇌로 말미암아 제가 지은 모든 악업을 오늘 고백하고 참회합니다.
만일 제가 이 악업을 정화하기 전에 죽으면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오니
저희들의 안내자이신 부처님들과 대보살님들이시여
저희들을 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하소서.
우리들이 병을 앓든 건강하든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것
제가 어리석은 시절 지었던 모든 악업을 정화할 때까지
저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소서.
오늘 올린 발원문은 참회의 발원문입니다. 살다보면 정말 남들이 잘못하는 걸 보면서 잘했다고 박수를 치면서 그렇게 악업을 짓기도 하죠? 이번 한 주 참회하는 그런 한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당신과 내 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경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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