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저것이 충만하니
이것도 충만하네
이 충만함은
저 충만함으로
투영된 것
이 충만함이
저 충만함 속으로
녹아들면
남는 것이라고는 오직
충만함 그 자체뿐
옴
평화, 평화,
그리고 평화.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저것이 충만하니 이것이 충만하다라고 하는 말속에는 평화라는 것은 나 혼자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겠죠? 마음과 마음을 기대면 서로 더욱더 평온해 지는 시간.
..
77년도에 제작된 프랑스 영화의 테마음악이죠? 빌리티스라고 하는 그 여성이 자기가 사랑하는 남성이 있는데,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선배여성도 그 남성을 같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 남성에게 양보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굉장히 순종적인 영화이죠? 요즘은 좀 안 먹힐 거예요. 자기가 좋아하는 남성, 여성이면 솔직하게 좀 표현하지 않나요? 77년도 영화니까 아무래도 자기 마음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더 사랑하는 여자가 있나? 싶으면 그 사람에게 양보를 하는 것. 영화에나 있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요즘도 현실에 있는 이야기인가요?
그런데 그런 거 같아요. 양보하고 나서 평생 후회하는 거 보다는, 그래도 한번 부딪혀보고, 표현해 보고 난 다음에 “난 너 별로야.” 라고 하면 그 때가서 마음 접어도 늦지 않지 않나요? 아, 3월 벌써 중순이 넘었습니다. 이렇게 고요한 음악으로 시작하면서 좀 봄날을 차분하게 띄어보고 있는데, 하루하루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사실 3월이라고 하는 이 계절이 학생들 입학시즌과 함께 바람도 조금 날카롭기도 하고요, 종잡지 못하는 때이기는 해요. 확실한 봄도 아니고, 봄 속에 겨울이 조금 묻어 있잖아요.
옷을 두껍게 입기도 그렇게, 얇게 입기도 그렇고. 우리 인간의 마음도 그렇죠? 이래야 될지, 저래야 될지, 정말 결정하기 어려운 때 있잖아요. 3월은 선택하기 쉽지 않은 그런 인간의 마음과 닮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경칩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개구들이 다 나왔는지 궁금해지기도 해요. 얼마 전에 인터넷을 통해서 보니까, 외국에서 집에서 키우는 애완개구리래요. 눈이 빨간색이 던에요. 애완개구리가 비가 오니까, 나뭇잎사귀 같은데 딱 숨었어요.
그런데 마치 사람이 우산을 쓰고 있는 거 같은 그런 형상을 하고 있더라고요.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친구 개구리까지 같이 우산을 받혀주는. 그런 모양을 보면서 실제 사람처럼, 우산을 받쳐주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 같은 형태를 보여서 참 재미있고 우스웠다.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개구리라고 해서 친구에게 나뭇잎사귀로 만든 우산을 받쳐 주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개구리가 인간보다 어떤 면에 훨씬 더 현명하고 지혜로울 수 있으니까요. 개구리 우화가 하나 떠오르는데요.
두 마리의 개구리가 서로 장난하고 놀다가, 큰 우유 통에 풍덩 빠진 거예요. 우유 통에 빠졌는데, 이게 워낙 통이 크니까, 개구리헤엄이라는 거 있죠? 개구리헤엄을 치면서 발버둥을 치는데, 하두 넓으니까 그 높이를 통과해서 넘어올 수가 없었던 거죠. 그 중에 한 개구리는, “아,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내가 이 우유 통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그냥 포기하고. 그런데 그 중에 다른 개구리 한 마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개구리헤엄을 친 거에요. 어떻게 되든지 한번 나가보자하고 말이죠.
그런데 아무튼 미리 포기한 개구리는 그냥 지풀에 죽은 거죠. 빠져나오지 못하고 포기하는 마음 때문에 그 자리에 풍덩 빠져죽고, 끝까지 헤엄을 치면서 개구리헤엄으로 빠져오려는 안간힘을 썼던 그 개구리는 점점점 힘이 빠지고 지쳐가기는 했지만, 뭔가 발밑에 와 닿는 느낌이 다른 거예요. 보니까, 계속 휘저어대니까, 우유가 점점 굳어가면서 버터가 되기 시작한 겁니다. 버터가 된 그 우유가 굳어지니까, 쉽게 폴짝 뛰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요. 우화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참, 강하게 와 닿죠.
개구리를 비유를 들어서 한 이야기만, 우리 삶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우리도 살다보면, 저 산을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거 같은, 그리고 도저히 저 고통의 벽을, 내 힘으로는 어쩌지 못할 거 같은, 그런 것과 직면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힘든 순간이 왔을 때 무조건 포기하기보다, 정말 그렇게 노를 젓다보면 헤엄을 치다보면, 우유가 버터가 되어서 딱딱하게 굳어서 뛰어나올 수 있는, 도망 갈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처럼, 우리도 인생살이 살면서 실제로 무엇이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오히려 내 삶을 더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고통이라고 하는 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데, 그 고통을 놓고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서 고통이 뛰어넘을 수 있는 하나의 경계가 되기도 하고, 아예 그냥 지레질겁해서 미리 빠져죽는 우유가 될 수도 있잖아요? 이번 봄에는 여러분들이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잘 되지 않는다는 절망감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 절망감으로 안 될 거야라고 하는 포기하는 마음보다, 그 경계를 다시 한 번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여러분 마음에서 솟구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3월은 새순들이 뾰족뾰족 올라오잖아요? 우리는 그 용기라고 하는 그 새순이 뾰족뾰족 올라와야 되는 때가 3월이 아닐까 싶어요.
긴긴 겨울을 지나가듯이 긴긴 험악한 고통들을 다 넘어서서, 뾰족뾰족, 여러분의 마음이 말랑말랑한 대지가 된다면 거기에 뾰족뾰족 용기가 얼굴을 내밀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면 어느 별의 큰 나무로도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부디 이 방송을 시청하고 계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어떤 환경과 어떤 처지에 놓여있더라도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
이니스프리의 섬을 저는 가본적은 없습니다만, 이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그냥 이렇게 섬을 상상할 수는 있어요. 여러분은 이 음악을 들으면서 이니스프리섬에 어떤 풍경이 떠오르시는지요? 아름다운 이니스프리섬의 물안개가 막 피어오르는 거 같고, 그리고 밤에 달이 떴어요. 그래서 강물이 호수가 있는데, 호수의 달빛이 떨어지는 순간, 은빛 물결이 찰랑찰랑찰랑찰랑. 저 혼자 소설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는 섬 주변을 달빛이 에워싸면서 야생화가 만발해있을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아주 멋진 노래입니다.
제가 요즘 계속 전국 또 강연을 다니면서 많은 시청자 여러분들을 만나 뵙고 있는데요, 독자도 만나고, 시청자, 불자. 만나 뵈면서 참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스님 목소리 듣고 방송 보면서 다시 삽니다. 이런 인사말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으시더군요. 죽고 싶었고,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방송 보면서 ‘아, 인생은 그렇게 살아서 되는 게 아니구나.’라고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고요. ‘방송 때문에 삽니다.’라고 하는 말씀을 듣게 될 때, 방송이라는 게 참 폐해도 많이 있지만, 인간에게 주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영향도 있지만,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건 사람에게 얼마나 살맛나게 하는 것인지를 또 느끼게 되구요.
방송을 제작하고 있는 모든 제작진들 한사람, 한사람 자기들은 모르겠지만, 이 브라운관을 통해서 저 바깥에서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얼마나 가슴절절하게 진지하게 이 방송을 보고 있는지를 거듭 생각 안할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고는 방송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됩니다. 대전에 갔을 때, 20대인지 30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청년이 한사람 제게 와서 굉장히 수줍음을 타는 청년이었어요. 자기가 희귀병에 걸려서 집에서만 산지가 6년이 되었다는 거예요.
집 밖에 외출을 잘 하지 않고, 부모님에게 그냥 기대어 사는데, 아마 라디오도 들었고, 또 TV를 통해서 제 방송을 보시는 모양이죠? 오직 방송을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생명을 연장하며 산다. 그런 말을 할 때 그 청년에게는 이 방송이 곧 자신과의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할 때, TV부처님 앞에 제가 합장하고 절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또 30년 만에 만난, 제 강원도반이 천안에 제가 강의한다니까 달려왔어요. 30년 전에 20대 때 함께 공부했었던 그 도반이, 본인이나 저나 이미 50의 중반을 넘어서 그때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그렇게 반가워 할 수 있다는 것, 아하, 벗이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 또 한 번 느꼈거든요.
천안에 있는 대용스님이라고 제 도반, 오랜만에 만나니까 저도 정말 좋더라고요. 여러분도 오랜만에 좋은 친구 만나면 행복해지시죠? 우리 스님들도 그래요. 좋은 도반을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그 위치, 그 자리에서 각자 기도하고 정진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확인하는 순간 또 한 번 환희심도 나고, 또 옷깃도 여미게 되고 그렇습니다.
책 읽어 드리는 시간을 정말 많이 좋아들 하시더군요. 이 시간에 제가 추천하는 책은 빼놓지 않고 읽는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세상에는 스승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을 통해 만날 수도 있지만, 이미 역사 속에서, 또 대단한 영웅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의 삶을 진실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한편의 글로 쓴, 책 하나하나가 곧 도서관일 뿐만 아니라, 저는 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서 좋은 글을 선택해 읽어드릴까 하는데, 무탄트란 호주의 원주민들이 문명인을 부르는 말이죠?
돌연변이라고 하는 뜻이라고 그래요. 돌연변이는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사람. 상실한 상태? 그걸 돌연변이라고 한답니다. 이 책을 쓴 저작인 말로모건은 미국인 의사인데, 자연 의학을 연구하기 우해서 호주 원주민들 틈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원주민들을 위한 일을 하게 되죠. 그런데 그 참사랑부족들에게 이 미국인 의사가 선택되어집니다. 그래서 같이 사막을 여행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책인데, 참 언제 읽어도 신선하고 새로운 이런 책들이 살아있는 활구가 아닌가 싶어요. 오늘 무탄트 메시지 한 줄 전해드릴게요
참 사람 부족인 오타는
자기 부족이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들이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들은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도 하지 않으며
조금이든 많이든 결코 남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숨길 것도 없었다.
따라서 그 들은 남이 자신의 속마음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가진 정보를 남에게 지꺼이 전해주었다.
인간은 본래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었다.
사람이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생각을 전달한다면
문자와 언어의 차이가
대화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사는 세상에는 불가능할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회사에서 공금을 횡령하고
세금을 속이고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는 그런 곳에선
서로의 마음을 읽게 내버려 둘리가 없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마음을 열어놓는 것을 결코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남에게 감추어야 할 거짓과
상처와 슬픔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어떤가.
나 자신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모두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남에게 수많은 상처를 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나도 이들 원주님처럼
내 속마음을 낱낱이 드러내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사람 부족은 목소리란
말을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말은
마음이나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통해 말을 하면
사소하고 불필요한 대화에 빠져들기 쉬우며
정신적인 대화로부터는 아득히 멀어진다.
목소리는
노래와 축제와 치료를 위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내게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으며,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설령 자신은 노래를 못 부른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기 안에 그 노래 부르는 사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참사람부족은
내가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다.
내 마음이나 머릿속에 아직도 감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정신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들과 화해해야만 했다.
참사람부족이 하는 것처럼
내 마음 속의 내용물을
낱낱이 다 드러낼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려면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용서해야만 했다.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지나간 일로부터 배워야만 했다.
내가 남을 받아들이고
남한테 진실해지고 남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먼저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한테 진실해지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참사람 부족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생략)
실제로 예전에 다큐를 본적이 있어요. 운동을 하다 그랬는지, 하여간 넘어져서 척추를 다치면서 완전히 온몸이 다 마비가 온 겁니다. 병원에서는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하고,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라고 진단을 내렸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의사의 진단과 전혀 상관없이, 그러니까 완전히 식물인간처럼 누워서 지내야 된다는 진단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서 뇌와 마음상태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거죠. “나는 어떻게 해든지 재활 할 수 있고, 나는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어.” 그 생각을 지우지 않았던 거 같아요.
6달 만에 그 사람은 원래 상태로 돌아왔고, 두발로 걸어서 병원 문을 나가는 걸 다큐로 찍어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건 사실 기적이라기보다, 우리 안에 내가 확신을 가지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의 뇌와 마음은 거기에 맞추어지는 거 같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어머니뿐만 아니라, 병상에 계시는 모든 분들, 자기마음에 있는 불성에게 모든 치료를 맡겨보십시오. 분명하게 확실하게 나을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을 심어주는 것으로서, 이번 한주, 기도로, 그런 마음으로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시간은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가는군요. 벌써 헤어질 시간입니다. 이번 주 발원문 생략하고요, 저는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당신과 내 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경배 올립니다.
'스님법문 > 정목스님_유나방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혜민스님 TV] 걱정이 많은 당신에게 (0) | 2019.06.03 |
---|---|
정목스님 나무아래앉아서 제29회 (0) | 2015.06.17 |
정목스님 나무아래앉아서 제27회 (0) | 2015.03.09 |
정목스님_나무아래 앉아서 제26회 (0) | 2015.02.15 |
정목스님_나무아래 앉아서 제25회 (0) | 201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