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아직도 내게
출가를 권하지만
출가해 수행자가 되면
내게 오는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할 텐데.
마흔, 나는 이제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그 모두를
사랑할 자신은 없어서
편협한 사랑이 용서되는
시인으로 남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두 언니가 차례로 출가 수행자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불연이 깊은 김선우 시인은 출가란 내게 오는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군요. 돌아오는 토요일, 3월 8일은 부처님 출가재일입니다. 진정한 출가란 인연이 끊는 것이 아니라 맺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그러한 인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매 순간순간 출가해야 합니다. 마음의 벽을 넘어서 말이죠. 3월이 시작되었네요. 활기차게 출가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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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풍이 슬슬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보리 익어가고 밀밭도 익어가고 이제 모든 것들이 풍성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그런 신호탄이 아니겠습니까? 3월을 여러분이 그렇게 풍성하게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토요일이 부처님 출가재일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실 출가재일이라고 어느 날을 딱 정해서 만이 출가는 아닌 거죠. 부처님의 팔상성도 중에서도 유성출가상, 유성출가상이라는 상을 보면, 그 그림이나 또 내지는 그런 부조조각 작품을 볼 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는 부처님이 사랑하는 애마, 애마의 칸타카, 마부인 찬타카, 둘을 데리고 궁을 탁 벽을 넘어가시잖아요.
그 장면을 보면 가슴 뭉클해지고, 화~ 참 인생이라는 것이 담을 넘고 벽을 넘어서, 어떤 새로운 곳으로 뛰어넘어 간다는 거, 뭔지 모르게 사람한테 굉장한 영감을 주잖아요. 살면서 우린 한 번씩 그렇게 담을 넘고 벽을 넘고 한 번씩 넘어가야 하는데, 그 넘어가지를 못하고 그냥 제자리걸음할 때도 참 많지요? 저는 싯다르타의 그 출가를 떠올리게 되면 연어가 연상이 됩니다. 계곡에 있던 그 연어가 부화를 하게 되면, 밑물에서 태어나서 그 밑물에서 부화해서 강 줄기를 따라서 저 멀리 거대한 바다로 가잖아요. 바다에서 일생을 살고,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가 성장하죠.
그리고는 가야할 때가 되었을 적에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옵니다. 그냥 갈 때는 흘러 흘러서 갔는데, 바다로. 바다에서 다시 계곡으로 건너와야 할 때는 돌아오는 길에 예상하지 못했던 강의 이런 뭐죠? 땜 공사를 해 놓은 경우도 있잖아요. 그럼 땜이 뭐 수심이 한 10미터, 30미터, 이렇게 높은 콘크리트 벽을 쳐놓으면, 그 벽을 뛰어넘어야 되는 거거든요. 아, 여러분도 아마 TV로 보셨을 거예요. 특히 미국에서는 미국 안에서도 시애틀이 바로 연어의 고장입니다. 이 연어의 고장이라서 1년에 한 번씩 연어가 돌아오는 대 축제를 열던데, 저의 사형스님이 거기 시애틀에 계시면서 가보게 되었을 적에 그때 그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감명 깊에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곳마다 팻말을 세워 놓았어요. 연어가 돌아오는 때이니까 우리가 이 곳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 이런 팻말들이 계곡마다 쓰여져 있는 것도 봤는데요, 그 연어가 돌아올 적에 한 번에 팍 뛰어서 그 10미터 30미터가 넘는 시멘콘크리트를 만든 그런 댐을 뛰어넘는 다는 거는 거의 죽음에 이를 확률이 높죠. 한 번에 이게 장대높이뛰기 하듯이 올림픽 선수가 뛰어오르듯이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잖아요. 뛰어오르다가 그냥 내동댕이쳐지고, 떨어질 때는 이게 머리 쪽이 먼저 부딪치니까 피투성이가 됩니다. 정말로. 그거 뭐, 가슴 쓰라려서 봐 줄 수가 없죠. 그렇게 내동댕이쳐지면서 피가 나고, 온 몸에 상처가 생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그런데도 거기를 끝까지 뛰어오르잖아요.
아, 참 그걸 보고 있으면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다가 거의 반 이상이 죽는다고 봐야지요? 그런데도 끝까지 그 고향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집념. 이건 어쩌면 우리 불가에서 수행자들이 수행하는 일념정진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오매일여, 일념정진. 그 화두를 탁 잡듯이. 그 화두 잡는 마음으로 정진 아니고서는 이 연어가 본 고향으로 돌아올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오는 동안 보면 먹지도 않아요. 그리고 잠도 안자요. 진짜 용맹정진이에요. 연어가 돌아오는 길은 거의 용맹정진입니다. 먹지도 않죠, 잠도 안자죠. 그냥 반복반복반복해서 그 계곡을 찾아서 옵니다. 본고향으로 찾아올 때까지 연어에게 주어진 그 운명이라고 하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야 하죠.
그런 사투 끝에 도착한 자기의 본래고향에 와서는 산란을 하죠? 알을 낳고, 그 곳에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벽을 넘고 담을 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바로 싯달타 태자가 유성출가를 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한번 뛰어넘어 보다가 철푸덕, 내동댕이쳐지면, 그냥 쉽게 거기서 좌절하고 낙담을 합니다. “아, 나는 안 되는 것이구나. 내가 저 높은 장벽을 저 높은 장애를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겠어? 나는 안 되는 거야.”라고 생각을 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육도윤회를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팔상성도가운데 유성출가상은 바로 윤회를 끝내는 시발점이자, 바로 그것이 첫출발점이라고 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상기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늘 부처님의 출가재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연어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부처님의 출가하신 이후에 6년 수행하시던 고행상, 한번쯤은 다 떠오르실 겁니다. 6년 수행을 하시는 동안 눈은 10리나 들어간 듯이 움푹 패이고, 그리고 뱃가죽과 등가죽은 말라서 달라붙고, 그냥 갈비뼈가 다 드러나고 앙상한 그 모습으로 눈빛만, 별빛처럼 반짝거리는 그 부처님의 상호를 생각하면 저절로 무릎 꿇게 되고 두손 합장하게 되고, 그 앞에 정말 경배하게 되죠. 지금 BTN을 시청하고 계시는 여러분 한분 한분, 어떤 마음으로 매일 매 순간을 살아가고 계시는지요. 입적하신 법정스님께서는 세상에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들을 다 나누고 버렸는데 그 가운데 오랫동안 한 가지를 지내고 있는 게 있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지니고 있는 게 무엇이 엇을까? 스님의 출가일이 적혀있던 거울, 거울 뒷면에 몇 월 며칠에 내가 출가를 했노라. 아마 그걸 적으셨던 가봐요. 그 거울 하나를 소중히 간직했다고 합니다. 살면서 게으로고 나태한 생각이 일어날 때, 그 거울을 다시 들어보며 처음 출가했던 초발심을 떠올리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저 또한 처음 출가할 때의 초심을 떠올리게 되네요. 여러분, 여러분 한분 한분이 이 세상에 올 때 빈 몸으로 왔고, 빈손으로 왔습니다. 우리 모두 돌아갈 때 또한 빈 몸, 빈손으로 가게 될 겁니다. 살아가는 동안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가 그 높은 담을 뛰어넘어야 하는 연어처럼, 본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렇게 진안하고 고달프다 생각하면서.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용맹 정진하는 그런 나날이 되어서 우리 모두 함께 육도윤회에서 벗어나는 날이 있기를 그렇게 두 손 합장하고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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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러시아 말은요, 정말 울고 싶은 사람 딱 울기 좋은 그런 노래에요.^^ 그런데 이 러시아 말은 정말 인생을 한탄할 때, 참 삶이란 무엇이냐? 내가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이란 말이냐? 그리고 이 인생은 어디서 끝난단 말이냐? 뭔가 이런 막 누굴 붙들고 뭘 묻고 싶을 때 러시아 언어로 물으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거 같아요. 노래 부르는데, “주브주브주브” 이러고 부르는데^^ 무슨 말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러시아어를 잘 아시는 분은 이 말의 의미를 다 지금 해석하고 듣고 계시겠지요? 생명의 씨앗이라고 하는 말이 참 좋습니다. 우리 안에는 다 그렇게 생명의 씨앗이 움트고 있잖아요.
지나온 시간, 사실 2014년 한해가 새롭게 시작되자마자 우리에게 즐거운 소식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강원도 또, 이쪽 동해안 산간지역에는 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리만큼 폭설이 내려서 근심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지요? 피해액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 고통을 겪었어야 할 한분한분 그 주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거기다가 지난 달에는 대학신입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겠다고 갔던 우리의 아이들이 대학입학했다고 얼마나 즐겁고 행복해했을 터인데 그 아이들 앞에 난데없는 사건과 사고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오리엔테이션을 떠났던 곳에서 참변을 당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생각하니 제 가슴까지도 이렇게 미어집니다. 세상엔 이렇게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은 일들이 사건과 사고가 기다리고 있네요. 이 사바세계에는 사방이 위험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발 한 발짝만 내디디면,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만 살 수도 없는 일입니다. 참담한 심정을 부여잡고 한탄만 하면서 살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길이란 무엇일까? 그건 내 마음이 평화로워질 때, 비로소 세상에 안락을 얻을 수도 있는 일이겠지요?
바랑 속에서 오늘 책 한권을 꺼내봤습니다. 오늘은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시를 한편 소개할까 싶은데요,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20세기 초를 살았던 영국 시인입니다. 그가 가던 길 멈추어서 서서 한번 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잠시만 멈추어 봐라. 그리고 내 눈앞에 닥쳐온 그 모든 것들을 좀 더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아라. 하는 그런 시인데, 아름다워서 오늘 한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가던 길 멈춰 서서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돌아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 볼 틈도 없다면
수풀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 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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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노래이죠? 60년에 인도에 갔다가 성자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향한 이런 멋진 음악들을 많이 작곡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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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요, 어찌어찌 이야기 하다보니까 벌써 시간이 다 가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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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만나기를 희망하셨던 분들, 찾아오기 쉽고 편안한 곳으로 오시면 고맙겠습니다. 당신과 내 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경배 올리면서 이 시간 순서 접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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