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25회 설일체지원 (20:41)

Buddhastudy 2012. 7. 22. 19:50

  방송 보기: 불교TV
 

~ ~ 부처님 법을 배우고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은 화장실 가는 것이나, 또 밥을 먹는 것처럼 마음의 양식에 공덕을 집어넣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하나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거든요. 그래서 사람 사람마다 조금씩은 좀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꾸준히 공부하시다 보면은 공덕에 힘이 좀 생깁니다. 오늘 이렇게 참석하시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들 내면 속에 부처님의 가피지묘력이 하나하나씩 공덕이 좀 쌓여갈 수 있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요게 이제 얼른 납득이 잘 안 되시면은 공부에 진전이 좀 느려지는 거죠.

 

그러나 자기를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감사행을 행하고 끊임없이 기도발원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해서 지혜공덕력이 우리 안에 내면 속에 꽉 들어찰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게 이제 부처님의 가호지묘력인 것입니다. 오늘은 25번째 說一切智願설일체지원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으음. ~ 이제 벌써 25번째를 공부하고 있고요. 그런데 사람한테는 중심적인 추가, 사람한테는 사람의 중심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디 있는가? 라고 살펴보니까 사람은 생각하는 거로 존재한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생각이 있으므로, 또는 의식이 있으므로. 그렇죠. 그죠. 그래서 사람의 존재성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몸이 있으므로 부터야 비로소 의식도 있습니다. 그래 되시죠? 그죠?

 

이것을 우리는 이걸 설이라고 말씀을 드리거든요. 이걸 말씀한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설한다. 말한다. 이거를 우리는 말씀이라고 그러고, 보통 일반적으로는 말한다 라고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이 말을 하는 것은 뭐가 있어야 되요? 입이 있어야 되겠죠? 그죠? 그리고 또 거기에 뭐가 있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이 가지는 각각에 일어나는 生覺생각이 있어야 되겠죠. 생각이 있죠. 사람의 입이 있고 생각이 있고, ~ 그다음에 뭐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몸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이거를 요런 말로 의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거꾸로 이렇게 설명하면은 불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이거를 , 구라고 말하고 그다음에 뭐죠? 의라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죠. 이렇게 볼 수가 있죠.

 

그래서 이거를 한마디로 쭉~ 정리를 해놓으면 신구의 삼업은 이렇게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몸과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과 또 우리가 말하는 감정, 이런 모든 거죠. 그죠. 그래서 이것을 감정과 기분하고 그다음에 뭐죠? 우리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느낌을 매일매일 갖고 있잖아요. 이런 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일러서 정서라고 표현합니다. 자기한테 이쁜게 있어야 세상이 이쁘게 보이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가 뒤집혀져 있으면, 자기감정에서 뒤틀려 있고, 자기 정신상태에서 바르지 않고, 자기 언어에서 바르지 않고, 자기 몸에서 바르지 않으면은 온갖 것이 삐딱한 계산으로서 나와 가지고 부딪쳐서 싸우느라 제정신 없이 살아요.

 

세상은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요. 강물이 한숨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처럼 이 사바세계 일은 전체로 흘러가고 있어요. 그런데 불행한 사람은 어둡게 보고 사는 거에요. 세상을. 깜깜하게 자기 삶에 대한 틀을, 자기 틀 안에 자기가 딱~ 갖추고 해결이 안 되는 거에요.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우리가 오늘 설명하는 게 뭐냐 하면, 부처님의 말씀은 전부 일체라 그랬어요.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자기 언어는, 누가 말을 해요? 하도 남편이 속을 뒤집혀서 악을 하는 것도 지가 악을 쓰지, 뭣 때문에라고 표현하지 말고 오직 자기표현의 자기양식을 갖고 있거든요. 하여튼 그렇다 그래요. 몰라도 그렇다. 그러고 진행을 해야 되요.

 

말하는 것은 누가 한다고요? 부처님 말씀을 빌려서 내가 한 구절을 일러도 내가 말하잖아요. 불자님들이 경전을 한 구절을 읽어도 자기 말을 통해서 읽는 거에요. 거듭거듭 부처님 말씀을 좋은 것으로, 자기 양식에, 어디다요? 몸에, 정신에게, 정서에게, 감정과 기분과 느낌에게 좋은 영양을 자꾸 집어넣게 하는 게 기도에요. 이게 수행이라고요. 되시죠. 그죠? ~ 안 돼도 막~ 됩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은 누가 말을 하느냐라고 잘 생각해보니까 입이 말 안 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입은 작용만 하고 있죠. 음식을 먹을 때 입에서 맛을 느끼는 것은 혀에서 느끼죠. 오미를 느낀다. 그러잖아요. 입에서 느끼고 촉감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받아들이는 거는 뭐에요? 대뇌에서 작용하는 맛을 느끼는 것은 _요놈이거든요. 생각, 의식이. 이걸 意識의식이라고 표현해요. 우리가 말하는 이걸 식이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이걸 의식이 느껴요. 그래서 몸으로 느낌이나 촉감도 역시 뭘 느껴요? 의식에서 느끼는 거에요. 그래서 이것이 한순간에 일어나서 자기가 표현해요. 뭐라고 표현해요? ~ 이건 맛있어라고 표현해요. 이건 써. 이건 불행해. 이건 행복해.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데 대다수의 사는 사람들이 자기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고,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 입이 있잖아요. 입이 주장하는 대로 다 그렇게 이루어져 간다는 거에요. 이 세상이.

 

오늘 25번째 가면 갈수록 이 48대원은 위대한 정점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고 있느냐 그러면 점점점점 이런 공부를 하시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텔레비전 보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게 좋아져요. 전에 언젠가 진전사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거든요. 진전사라고 종조사찰이에요. 양양에 있습니다. 설악산에서 좀 떨어져 있는데 진전사가 있어요. 한 번씩 참배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근을 짓게 돼요. 물론 어느 사찰이나 다 똑같지만, 이 법맥에 대한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있죠.

 

그런데 하물며 부처님의 말씀이 입으로 나와서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경전으로 만들어져서 후대에 아직 이것이 귀하고 귀한 보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판각하고 쓰고 옮기고 사서 해서 이 옮기고, 옮기고 구전하고 아직도 이게 남아있어서 저같이 이렇게 매주스님도 이걸 하잖아요. 그 세상에 봐요. 그죠. 저 같은 매주도 이걸 하잖아. 그런데 봐요. 그죠. 듣는 자, 듣는 자가 곧 말하는 자거든요. 이해하는 자 세상을 이기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법문 들으시는 것만으로도 업장은 소멸되고 삶에 대한 문헌은 열려오게 돼 있습니다. 이건 누가 얘기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다 그렇게 설명해 놓으신 거에요. 너무 쉽다. 으음.

 

부처님 법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너무나 쉬운 것 중의 하나에요. 그래서 누가 말을 하느냐? 이게 중요하잖아요. 말하는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하고 앉았느냐 하면은 끊임없이 안 좋은 걸 이야기해요. 입만 떼면 시비해요. 시비하고. 그다음에 뭐죠? 불만합니다. 또 뭐죠? 입만 열면은 뭐죠? 힘들다. 입만 열면은 입이 **까지 나와 가지고 해. 지 얘기는 그만두고 자꾸 남 얘기만 해. 언제든지 지가 헌것만 얘기를 하고 받은 것은 한마디도 생각을 안 하는 거에요. 놀라운 것이 있어요. 그러면 그렇게 계속 말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게 뭐죠? _아니다라고 스스로 나와요. 아니다. 뭐가 아니에요. 그죠? _다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그걸 보고 느끼는 것을 뭐라고 말하냐 하면 不幸感불행감이라고 그래요. 불행을 느끼는 거에요. 불행을. 깜깜한 불행을 계속 느끼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런데 반대로요. 입을 열면은 뭐든지 뭐라고 표현해요. 감사를 말하는 사람이 있어. 저처럼.^^ 저는 밥을 갖다 줘도 캄~사합니다. 이러고 밥 먹고요. 웬만하면 들어다 줍니다. 그러니까 좋아질 수밖에 없죠. 으음. 건봉사도 잘되고 있고요. 지장사도 잘되고 있고요. 저 보세요. 인물도 더 훤해져가잖아요. 입이 이게 이게 뭐냐 하면 사람이 가지는 것 중에 풍요를 가질 줄 알면 돼요. 그렇죠. 그죠.

 

그리고 뭐죠? 우리가 사는 것에서 뭘 얘기를 해야 돼요. 행복한 것을 얘기를 하셔야 돼요.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칭찬할 줄 알아야 되요. 뭘 해야 돼요? 예경할 줄 알아야 되요. 그게 뭐죠? 신뢰를 얘기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뭐죠? 다행한 것이 점점점점 모여서 생기는 것이 이게 幸福행복이에요. 그런데 이게 부처님이 성명하고 있는 게 오늘 25번째 說一切智願설일체지원이에요. 내가 말하는 것이 이 세상이 이걸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說一切智願설일체지원이에요. 이게 사람이 가지는 일체라고 말해요. 말하는 것은 설한다. 말하는 것이 곧 다 일체란 말이에요. 이 일체 안에 뭐가 들어와요?

 

복도 불러들이고, 불행도 불러들이고, 감사도 불러들이고, 사랑도 불러들이고, 다정한 것도 불러들이고 모든 것이 다 자기 입에서 불러들이는 데로. 그러면 내 입히고 자기 업하고 이런 게 분리돼 있냐?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업은 뭐에요? 업이. 업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습관이라고요. 계속 자기 습관이라고요. 과거 전세가 있든, 금세에 있든 상관없이 금생에 자꾸 반복적으로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게 우리 업이라고요. 그런데 업이. 이거 보세요. 이쪽에 이게 되면은 이쪽으로 올라오면은 같은 업인데. 이거를 선이라 그러고요. 이쪽에 계속 불행한 것을 악업이라 그러는 거에요. 뭐가 세상에 선업이 악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어도 당장 자기 말하는 입을 고치지 않으면.

 

그러니까 오죽하면 제가 법문하면서 늘상 말씀드리잖아요. 잠들기 전에 업장 좀 없애려면 자기가 지금까지 불행하고, 지금까지 가난하고, 지금까지 돈의 결핍 때문에 허덕이고, 지금까지 병고 속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이런 과정 안에서는 전부 여적지 자기가 그것을 불러들여서 자기의 끌어안고 그놈을 퍼덕이고 사는 거거든요. 이유 없이 그렇게 돼 있어요. 이걸 바꾸려면 입부터 바꾸는 거에요. 그 유명한 천수경에 제일 첫머리가 뭐에요? 정구업진언이에요. 오죽하면 정구업진언이냐고요. 입부터 고치자는 거에요.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사바하. 고치자. 고치자. 또 고치자. 거듭 고치자. 그래야 복 생기는 거에요. 그래야 복 생기고, 공덕 생기고, 위신력이 살아서 자기 삶의 공덕 속에서 살죠.

 

말하는 것이 내가 지금 말하는 한마디 그 자체가 일체를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꼭 그것부터 믿으셔야 되요. 일체 모든 것이 내게 나아지고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믿는 거에요. 이체를 믿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게 화엄경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거에요. 너무 아주 간략한 거에요. 그래서 이걸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고 제가 토를 붙였고. 번역문에 뭐라고 돼 있어요. 제가 부처가 될 적에. 43쪽에 맨 위에 25번째인데요. 說一切智願설일체지원이 거든요.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일체지혜를 연설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이게 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그냥 교설을 설하고 있고, 설하지 않는다. 요런 얘기가 아니고, 절 보셔야 돼. 자기 얘기하시면 안 돼. 지금.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뭣 때문에 말하는 거에요. 구업이 지어서 지금의 말하는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 알고요. 자기 생각, 자기 의식구조방식이라고 그랬죠. 그죠. 이 의식구조방식이 또는 자기의 몸뚱아리 행동거지가 거치르고 힘들고 이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이렇게 하는 행동 자체가 다 뭐라고 말해요? 한마디로 말하면 악구. 말을 악하는 거에요. 천수경에 보면 10가지 있죠. 이간하는 말 하지 말고, 옮기는 말하지 말고, 악한 말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독한 말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그것만 안 해도 우리는 부자가 돼요. 그것만 안 해도 넉넉해져요. 입만 벌리면 돌아서면 딴 얘기해. 그래서 만일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자기가 봐야 돼요. 그래서 자기에게 불행을 불러오는 말을 자기가 하고 있으면 이럴 때 오히려 딱~ 생각을 그치고 마음속으로 오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딱 다섯 번 부르고 돌아서면 풀어져요. 이건 그냥 원수 같은 사람하고도 인간적인 관계가 비뚤어졌어도 그 사람에 대해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해보세요. 대다수의 열사람 중 여덟 사람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미운 놈을 어떻게 감사하게 할 수 있습니까? 이게 답이에요.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은 자비심이잖아요. 아무리 악한 거고, 아무리 고약한 것도, 아무리 피해를 입혀도 오히려 그것을 잘되라고 축원하고 예경해 줄줄 아는 것이 그게 불자에요. 그런데 왜 그러냐 하면 왜 그렇게 해야 하면, 그 억울하게 피해를 입힌 그 사람에 대해서 악을 쓰고 앉아있는 동안 그 사람이 더 먼저 망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정말 복수를 하고 싶고 정말로 갖고 싶으면 자기가 잘돼야 돼.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악한 놈이라도, 피해를 입힌 분이라도 감사합니다.’ 해줘야 돼. 오히려 기도를 거꾸로 해주셔야 돼. 그러면 나한테서 평정이 생기고, 자비심이 생기고, 연민의 생각이 일어나고, 따뜻한 마음이 우리한테 일어나지잖아요. 그러면 말이 내가 좋아져요.

 

입을 딱 열면 감사합니다.’ 해야 돼요. 저는 눈을 딱 뜨면 아침에 열 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큰소리로 아침에 열 번. 그러고 나서 거울 보러 딱 가면 감사한 놈이 거기 있어. 그게 눈 딱 뜨고 나면서 이 인간. 이 인간 이러고 열 번 하고 가 보면은 흉측한 얼굴이 거기 있어. 희한한 일이 생겨요. 세상일이. 그런데 이게 뭐냐 그러면요, 그게 뭐라고 표현 하느냐 하면 일체지라는 거에요. 일체지 아시죠? 그죠? 한 번씩 한 번씩 늘 이게 거룩한 말씀만 해야 되는데, 여기 저 좀 보세요. 일체지가 나한테 이루어져요. 일체지라고하는 것이 모든 것이 다 일체 뭐죠? 일체 지혜로 돌아와요. 그렇죠. 그죠. 내가 말하는 것이 정말로 이해되고 지혜가 돼요.

 

사람, 저 좀 보세요. 미운 놈이 어디 멀리서 생겨요? 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 인과가 있는 데서, 인연이 있는 데서, 미운 사람 생기고, 사랑스러운 사람 생기고, 괴로운 일이 생기고, 인과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일이 생기지. 저쪽에 미국에 계시는 오씨 있잖아. 오바바씨.^^ 오바바씨하고 뭔 관계가 있어요. 그죠? 영향은 있어요. 공기력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공기력이라고 하는 말은 시간이 점점 단축 돼가는 세상이 되가지고 서로서로 영향을 주는 건 분명한 거에요. 그렇지만 속상한 일은 없잖아요. 그죠? 그 양반이 뭔 일이 있어도 그냥 텔레비전에서만 보지, 별로 가슴 아픈 일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바로 옆집 안에서 한일 생기면은 가슴이 무너져서 못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