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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셨습니까? 오늘 24번째죠? 48대원 중에 供具如意願공구여의원이라고 하는 법문이 베풀어져 있습니다. 공구여의원이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냐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보살들이 그리고 모든 부처님들에게 공양을 드리고, 공덕을 세우려 할 때 그들이 바라는바, 모든 공양하는 물건들을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하는 이런 48대원 중에 24번째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내용이 뭐냐 하면 갖추어져 있다. 공구라고 하는 말은 갖추어져 있다라는 뜻이거든요. 이 말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은 이유가 뭐냐 그러면 자기가 부족하다라고 자꾸 느끼는 거에요. 그리고 자기가 갖는 열등이 자기를 더 많이 지배를 하는 거에요.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공구함이 있다. 그랬어요. 공구라는 것은 이미 갖추어져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이 자기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법문이 이루어진 거거든요. 여기서 보시면 공구하다 라고 하는 것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거에요. 얼굴 들어 저 좀 보세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때, 늘 부족하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건 중생심이고,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고 불설아미타경을 공부하시고 나면은 자기 안에 본질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부처님의 진리가 구족 돼 있다는 것을 확인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겪지 않아도 지혜로운 자는 아~ 내 삶이 충만한 거구나 하고 라고 이해할 수 있는 거에요. 깨우쳐지게 됩니다. 반야지혜라고 이렇게 사용하시는 것은 반야라고 하는 말은 이게 지혜로움이라는 뜻이죠. 그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 굳이 반야지혜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반야라고 하는 말은 밝음을 얘기하는 거에요. 이 사바세계가 다 깜깜한 일로 뒤집혀져도 그래도 불자는 불교를 신행하고, 불교를 배우고, 불교를 실천하는 그런 불자님들은 이 세상이 다 무너지는 일이 있어도 어두워지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고걸 가르쳐주는 것이 석가세존께서 반야지혜라고 하는 말을 가르쳐주기 시작해요.
그 반야라고 하는 말의 내용은 밝아지는 거에요. 이쁘게 보는 거에요. 사랑스럽게 느끼는 거에요. 그리고 대 긍정의 세계를 갖는 거에요. 그리고 대 조화를 갖는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우리한테 반야지혜가 나한테 생생하게 살아있으려면은 지혜를 실천해야 되잖아요. 그런 의미 구조로 바꿔놓은 것이 반야심경에서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이렇게 표현했잖아요. 반야바라밀 이러거든요. 반야라고 하는 말은 지혜라는 말인데, 지혜를 실천한다. 이런 뜻입니다. 바라밀이라고 하는 말은 진행한다. 실천한다. 행하고 있다. 이런 뜻이거든요. 무엇 무엇을 행하고 있다. 이런 뜻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그 반야를, 반야를 실천하는 거에요. 반야라고 하는 말의 의미구조를 어디서 찾아볼 수가 있느냐 그러면 마하라는 말에 찾아볼 수가 있거든요. 마하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크다는 뜻이고, 깊다라는 뜻이고, 넓다라는 뜻이고, 한량없다라는 뜻입니다. 그게 우리한테 있다는 뜻이죠. 우리한테 반야지혜가 있다라고 하는 말은 결국 나는 가난한 그런 한계성을 가지는 것을 보다 넓게 가지는 것. 구속돼 있는 것. 인과 관계에 가슴 아픈 일. 이런 것도 해소가 되고 풀어지는 과정을 일러서 마하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배우게 되고, 반야라고 하는 말을 이해하고 배우게 되죠. 그래서 그거를 실천으로 옮기는 겁니다. 바라밀은 행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석가세존께서 마하반야바라밀 바라밀 이래 하시잖아요. 이건 뭔가 해야 된다는 거에요. 누가 해야 돼요? 본인이 아주 크든 작든 자기가 헌 것은 자기가 받아들이는 거에요. 그런데 그 얘기를 석가세존이 일러주셨어요. 뭐라고요? 반야라는 것이 있다. 우리한테는 지혜가 있다. 이때 지혜는 방편 지혜도 있고, 근본 지혜도 있고, 또 그렇죠. 그죠. 일반지혜도 있고, 여러 단계를 말씀드려놓은 것이 있습니다. 비춰본다는 거, 관조 관조반야, 이런 것도 있으시잖아요. 그죠? 전부 반야심경 안에 그렇게 그런 것이 들어있어요. 그런데 불구하고 이 반야지혜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우리한테. 같은 말이에요.
그런데 자세히 그 앞에 들여다보면 마하라고 하는 말이 있거든요. 마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정말 넓다. 깊다. 한량없다. 그다음에 뭐죠? 무한하다. 그런 말로 연결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요거를 잠깐만 보고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뭐냐 하면 供공_ 같은 뜻이거든요. 이바지한다 그랬죠. 공덕이다 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이게 뭐냐 하면, 그냥 이게 뭐? 具구_갖추어져 있어요. 供공덕이 具갖추어져 있어. 너무 쉽다. 이걸 보고 뭐라고 말씀드렸죠? 공덕이 갖추어져 있다. 갖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이거를 어떻게 한다고요? 그죠? 여의한다. 이와 같이 갖추어져 있다. 이런 뜻이거든요.
이것은 뭐죠? 이와 같다라는 뜻이거든요? 무엇 무엇과 같다. 무엇과 같다. 이런 뜻이잖아요. 그랬을 때 갖추어져 있다는 거에요 뭐가 갖추어졌다라고 보는 거에요. 그런데 세상에요. 눈을 저 좀 보세요. 아무것도 세상에 갖추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오늘 눈을 뜨셔야 돼요. 마음의 눈을 뜨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갖추어진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요? 이와 같이 구족 돼 있다고 말하는 사람한테는 구족돼 있는 거에요. 아니, 이렇게 뭐죠? 이렇게 보는 데로, 말하는 데로, 그렇죠. 그죠. 느끼는 데로, 이게 느낌이라 그러잖아요. 느낌대로. 봐요. 이게 뭐죠? 사랑스럽게를 들여다보면 사랑스럽게 갖추어져 오는 거에요.
팔짝팔짝 뛰어야 돼. 진짜 눈을 뜨고 보셔야 돼요. 너무 쉬운 부처님 가르침이 너무 많이 겹쳐져 있고 겹쳐져 있거든요. 그러면 보세요. 그죠. 사람이 왜 가난하게 살을 까요? 왜 불행하게 살을 까요? 왜 허덕일까요? 왜 싸워서 가슴이 아플까요? 이건요. 이와 같이 보지 못하는 거에요. 이와 같이 보지 못하고, 엉뚱하게 보는 거에요. 엉뚱하게. 그래서 이걸 들여다보시면, 뭐라고 표현하시느냐 하면은, 이와 같이 보면, 이와 같이. 공덕이 자기에게 있으려면은 요걸 지금 들여다보는 사람이 누구예요? 나거든요. 아주 쉬운 법칙이 불경 안에 있어요. 我見아견이라 그래요. 아견. 내가 들여다보는 데로 뭐가 있어요? 공구가 갖추어져요. 공덕이 갖추어져 온다는 뜻입니다. 정돈되시죠. 그죠?
내가 뭐죠? 말하는 대로, 내가 뭐죠? 생각하는 대로, 이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보고 내가 말하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렇죠. 그죠. 내가 뭘 해요? 그죠? 행위하는 대로. 우리가 행위한다. 그러잖아요. 움직이는 대로. 요게 다른 말로 바라밀이라 그래요. 이게 이 말은 다른 말로 뭐라고 그러냐 하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이것은 마하라고 말 할 수 있죠. 너무 쉽죠. 이렇게 같은 말이거든요. 요걸 좀 보시면은 묘한 게 있어요. 같은 (薏의 자)에, 이게 (뜻 意의) 자가 붙어있거든요. 이거를 보고 우리가 말하는 물금 의라고 말하기도 하고 억이라고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자전을 깊이깊이 들여다보면은 이 내용이 이 薏의 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내용이 뭔가 하면은 이것은 蓮연이라고 표현돼요. 연. 연꽃이라는 뜻입니다. 요 薏의는 보통 意의 자는 (풀 艹초) 자가 붙으면 물금 금이나 물금 의로 표현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의로 표현이 됐어요. 의로 됐는데 이게 뭐냐 그러면요. 蓮實연실이라고 번역하고 이렇게 말해요. 연꽃의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요 薏의 자는. 그래서 그 연실의 진실은 뭐에요? 꽃도 진실이고 대도 진실이고 뿌리도 진실이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정말로 진실은 뭐에요? 그 씨앗이죠. 우리가 사랑하는 몽뚱아리 껍데기는요. 이게 뭔 뜻이냐 그러면요.
이 몸뚱아리의 껍데기는 이게 연꽃일 수도 있고, 대 일 수도 있고, 뿌리가 될 수도 있죠. 그죠. 그러나 정말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영혼이죠. 영으로 존재하는 것이죠. 그리고 연꽃의 핵심은 뭐냐 그러면 그 씨앗이에요. 씨앗. 이거를 蓮子연자라고 말해요. 이거를 우리는 願원이라고 하는 불교 중의 48대원을 여기다 붙였습니다. 원을 붙였을 때는 원을 붙일 때는 어떻게 해요? 연꽃처럼 한다는 거에요. 연꽃의 진실처럼 하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런데, 요 薏의라고 하는 말뜻이 연실이라는 뜻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연꽃 같은 진실이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그 핵심의 언어는 뭐라 그러냐 하면 씨앗이라고 표현해요. 씨앗. 子자. 蓮子연자라고 표현해요.
이 끄트머리는 어디에 있냐 그러면은, 요 끄트머리는 근본적으로 어디에 와 있느냐 하면, 내가 여기서 지금 말하는 내가 곧 씨앗이잖아요. 생활의 모든 것의 씨앗이죠. 그죠. 저 좀 보세요. 우리가 선을 추구하고 정직을 추구하고, 신용을 추구하잖아요. 그래야 사실은 더 편하잖아요. 싸움은 줄이고 비난은 줄이고, 욕심은 끊어가려고 애를 쓰고, 사랑스러운 것은 더 키우고, 편안한 것은 더 온전하게 끌어가고요. 그렇죠. 그죠. 이렇게 우리가 사는 거에요. 48대원이 지금 24번 네 번째 공부하는 내용에 내가 씨앗이 있는 줄을 알면 돼요. 뭐가요? 그죠? 내 안에 뭐가 있느냐 그러면, 불성이라고 있는 뭐죠?
믿는 마음이 그거를 보고 신심이라 그러잖아요. 신심이 믿는 마음이 마음으로 깨우침을 가지게 되면은 곧 나는 뭐와 같아요? 불성의 씨앗과 같아서 세상에 아무리 아무리 해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 세상이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괴롭혀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지금 마음의 불성이 있다라고 하는 것을 믿는 거에요. 그렇게 보는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거에요. 그렇게 뭐죠? 생각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 자체가 나는 커져가는 거에요. 그게 마하의 세계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를 할 때 제일 먼저 초대 말 제목이 마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죠.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을 마하라고 표현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갖추어져 있는 사람한테는 두려움이 없고, 갖추어지는 사람한테는 뭐죠? 무서움이 없어져요. 힘들고 억울한 것도 이 사람한테는 거기서 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뭐가 필요하냐 하면 신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붙이면 이거를 보고 좀 바꾸어서 얘기하면, 오직 이것을 뭐죠? 아미타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거 전부 아미타불이에요. 나의 생명은 오직 아미타불이라는 뜻입니다. 붙일 수 있습니다. 이게 뭐죠? 나의 뭐죠? 생명은 아미타불이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다시 이 세상에 석가세존께서 불설아미타경을 설하실 때 아미타부처님을 칭찬하고 공경하고 예경하고 경전으로 이렇게 설법하셨을 때 이 얘기는 결코 무엇이냐 하면 내가 자기가 씨앗이 있는 줄 알면 돼요. 뭐라고요?
불성의 씨앗이 있는 줄을 믿고. 그렇게 믿고 내가 들여다보는 것은 다 구족적인 것을 봐야 돼요. 갖추어져 있는 것을 봐야 돼요. 그런 이 얘기를 거꾸로 얘기하면, 아까 말씀드렸죠. 긍정의 세계로 봐야 돼요. 이게 뭐라고요? 그죠? 인정할 줄 알아야 돼요. 그리고 뭐죠? 신뢰를 좀 가지셔야 돼.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뭐가 있어야 되냐 하면, 신용이 있으셔야 됩니다. 신용이 있으셔야 돼. 우리가 불설아미타경을 아까 읽어봤잖아요. 뭐냐 하면 부처님께 모든 부처님께 모든 보살님과 모든 이웃들과 모든 생명에게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쌓을 때 그들의 바라는 모든 공양하는 물건들이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면 그건 불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얘기거든요. 어두운가 보다. 그런데 불자는요. 괴로운 일이 오면 그거를 오히려 공덕의 터가 되는구나. 아이~ 감사합니다. 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사랑의 표정이 애정이 너무나 깊으셔서 너무나 많이 나를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러면은요. 이렇게 자기를 하나 바꾸어 나가기 시작하면은 밖은, 세상은 아무도 안 바뀝니다. 오직 바꿀 수 있는 건 자기가 자기 자신밖에 없어요.
어떤 요건이나 어떤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어도, 그거를 다~ 우리가 이런 말로 당해보고 경험하고 난 다음에 바꾸려고 하지 말고, 미리 지혜 공덕을 바꾸시면 아까 말했죠? 반야 지혜라는 것을 지금 배우시는 거거든요. 이렇게 하게 되면은 나쁜 것들은 없어져 갑니다. 좋은 것이 편안하게 오게 돼 있습니다. 그게 부처님의 진리 법칙이에요. 그러면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정리할 게 뭐냐 하면 오늘 24번이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랬어요. 두려움이 없으리라 이랬고. 그렇죠. 그죠. 모자람이 없으리라 이랬거든요. 내가 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공양이 이루어진다는 거에요.
저 불전 앞에 쌀 한 되를 올리는 일도 하고자 하는 원을 세우면은 언제든지 먹을 게 생긴다는 거에요. 공양을 같이 하고 공양을 모시는 것은 정성이에요. 가난한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은 자기가 복을 짓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거거든요. 가난할수록 더 복을 지으셔야 돼. 그렇다고 해서 집 기둥 석가래 팔아가지고 하라는 거는 절대 아니거든요. 자기가 벌어들이는 것에 합당하게끔. 응음. 어렵지 않게끔 하는 것이 공양이고 보시지. 요건요 지혜롭게 사셔야 돼.
그래서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얘기가 뭐냐 하면요. 우리가 이미 공덕 속에 갖추어져 있는 줄을 알아야 되는데, 이것이 이 공덕이 석가세존께서 지금 설법해 주신, 2500년 전에 설법해주신 내용이 그 얘기거든요. 자기가 깨우쳐 나서 보니까 나한테는 이미 크든 작든 간에 이미 그 사람이 가지는 분상 안에서는 다 구족한 만큼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걸 설명해 주시는 거에요. 그런데 내 안에 이런 공덕이 불성공덕이 깃들어져 있다 라고 하는 사람은 그 공덕이 뭐가 있어요? 씨앗이 남죠. 사람이 평생 살면 아무것도 안 남을 줄 알잖아요. 그 씨가 꼭 남습니다. 평생 살아서요. 평생 살고 난 다음에 그 씨가 영글어져서 다른 씨앗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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