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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패거리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짓밟고 독재정치를 계속 펼쳐나갔어. 전두환은 체육관에 지 꼬봉들 모아놓고 답정너 선거해서 99% 몰표 받고 대통령 되고 그랬지.
근데 우리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분만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전두환은 사람들의 불만을 누르기 위해서 별짓거리를 다했지.
대표적인 게 3S 정책!
스크린, 스포츠, 섹스
이 3가지 산업을 일부러 엄청나게 띄워주는 거야.
국민들이 영화보고, 스포츠 즐기고, 즐색하는 데에 정신이 팔리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거라는 계산 때문에 그랬지.
그래서 밤 12시 이후에 통행금지 걸고, 남자들 장발, 여자들 미니 치마 길이까지 단속하던 박정희 시대 때와는 달리 전두환 때는 적어도 노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막 풀어준 거야. 자, 그럼 우리나라가 진짜로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느냐? 당연히 아니지.
전두환은 자기에게 불만을 갖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감옥에 쳐 넣고 별짓거리를 다했어. ‘변호인’이 이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잖아.
이때의 대한민국은
전두환의 전두환에 의한 전두환을 위한 나라였지.
뭐 인권? 민주주의? 그게 뭔가요? 이렇게 뭐 처먹는 건가요?
참 암담한 시절이었어. 독재의 신물이 난 우리 국민들은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 그래서 1985년에 있었던 총선에서는 전두환이 그렇게나 방해공작을 폈는데도 야당이 엄청나게 선전을 해버려.
그러면서 동시에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개헌 얘기도 막 나오게 되지. 개헌이 뭐냐? 헌법을 바꾸자는 거야. 헌법은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법인 건 너네도 알지? 그래서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 대통령을 뽑는 방법, 대통령의 권한 등 대통령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도 있어.
지금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우리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뽑도록 정하고 있지. 근데 당시 헌법은 대통령 선거에 전두환 똘마니들 몇 명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었어. 일반 국민들은 선거에 참여할 수가 없었지.
이걸 간접적으로 선거를 한다고 해서 간선제라고 부르는데, 당시 우리 국민들의 요구는 대통령을 우리 국민들이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자는 거였어. 이게 대통령 직선제야. 그래서 6월 항쟁의 가장 핵심적인 슬로건이 호헌철폐, 독재타도야.
호헌이란 당시의 헌법을 유지한다는 뜻인데,
호헌철폐는 호헌을 철폐하라.
즉 헌법을 바꾸라는 요구인거지.
독재타도는 말 그대로 독재를 물리치자는 뜻이고.
그래서 쉽게 말하면 당시 우리 국민들의 요구는
헌법을 바꿔서 독재를 박살내자는 거였지.
그래서 1986년에는 인천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열렸거든. 근데 전두환은 역시 폭력으로 진압해버려. 그 과정에서 시발, 성고문까지 했다니까. 이 사건이 궁금하면 친구들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함 찾아봐. 내가 댓글에 내용 첨부해 줄게.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1987년이 되었어. 서울대 학생 박종철군이 1987년 1월 경찰에 체포되어 물고문을 당했거든. 운동권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불라고 경찰들이 막 지랄을 하다가 박종철군을 죽이고 말지.
그래서 경찰은 “아, x됐구나” 싶어서 당연히 사건을 은폐하려고 들었는데, 이 때 한 말이 뭔 줄 알아? 자기들이 책상을 탁! 치니까, 박종철군이 억! 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거요. 이 새끼들이 구fk를 쳐도 좀 성의 있게 쳐야지. 그게 말이야?
하지만 당일 시신의 부검을 명령한 검사부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까지 많은 이들의 용기 있는 노력으로 박종철의 죽음이 물고문에 의한 것이며 정권이 이를 은폐하고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이 막 들끓기 시작하지.
박종철의 죽음을 구심점으로 전국에서 시위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어. 그런 와중에 전두환이 '4.13호헌조치'라는 걸 발표해. 1987년 4월 13일에 지금의 헌법을 88년 올림픽 끝날 때까지 유지하겠다는 선언을 한 거야.
이 말인즉슨 “민주주의? X까! 내가 계속 해먹을 거야.” 이렇게 선언해 버린 거나 다름없어.
최규석 작가가 그린 만화 <100°c>가 6월 항쟁을 다룬 만화거든.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와.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이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이미 우리 국민들은 99.9999%까지 끓어오른 상태였고, 바로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였지.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서 야당과 시민사회는 당시 집권 여당, 즉 전두환 패거리가 모여 있는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식이 열리는 6월 10일을 D-day로 잡고 다 같이 시위를 하자고 계획을 짰어.
그런데 D-day 바로 전 날인 6월 9일에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고 말아. 이한열의 희생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분노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어. "호헌철폐 독재타도" 라는 구호에 "한열이를 살려내라." 라는 구호가 더해진 거야. 99도씨가 100도씨가 되는 순간이었어.
그리고 마침내 1987년 6월 10일! 분노한 사람들이 다같이 일어나면서 6월 항쟁이 시작됐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부다 거리로 뛰쳐나왔어. 학생, 일반시민 할 것 없이 모두 뒤섞여 시위군중이 되었지.
특히 6월 항쟁은 회사원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이 사람들은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며 항쟁의 상징이 되었지. 성직자들도 한 마음 한뜻이 되어서 시위군중을 성당에 품어주었고, 상인들은 음료수와 음식을 나눠주면서 항쟁에 참여했어.
못 막아 이건. 어떻게 막을 거야. 그래서 결국 전두환은 GG를 치고 말아. 6월 29일에 자기 베프 노태우를 내세워서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을 수 있게 헌법을 바꾸겠다고 선언을 하지.
이게 6.29선언이야. 이로써 우리 국민들은 꿈에도 그리던 민주주의를 드디어 제도적으로 쟁취하게 돼. 그리고 7월 9일 결국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을 끝으로 6월 항쟁은 마침표를 찍지.
1987년 6월 항쟁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기틀이 되었어. 물론 6월 항쟁 이후에도 진정한 민주주의 쉽게 찾아오지 않았어. 그해에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분열하면서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거든. 죽 쒀서 개줬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이미 분노한 국민들의 힘을 맛 본 노태우는 전두환처럼 막나간 정치는 할 수는 없었지.
6월 항쟁의 진정한 의의는 이제는 그 어떤 지도자도 우리 국민과 민주주의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그 역사적 근거를 만들었다는 거야. 그리고 작년에 촛불집회가 6월 항쟁의 정신을 또다시 증명했잖아.
참 이런 거 보면 우리 국민들 진짜 멋있어~ 자, 이제는 6월 항쟁이 어떤 사건인지 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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