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

지식줌) 강인가… 국가인가? / 강이 나라가 된 국가

Buddhastudy 2025. 2. 6. 19:59

 

 

지난 영상에서 길쭉한 형태의 나라, 칠레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이번엔 아프리카에서 가장 길 길쭉한 나라에 대해 볼게요.

 

서아프리카 한편에 아주 작고 긴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이 나라는 서아프리카에 있는 감비아로

영토는 강 하나의 모양을 따라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강의 이름도 감비아강으로

감비아 국가의 어원 자체가 이 강에서 따온 것이죠.

면적도 고작 11,300정도로

우리나라 경기도보다 약간 큰 수준이고

인구도 264만 명 정도로

대구시 인구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죠.

 

그리고 또 특이한 건

세네갈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그냥 세네갈에 합쳐도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되실 수 있을

따로 독립되어 있다는 게 신기한 것이죠.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역사를 우선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9세기, 10세기경 아랍 상인들에 의해 기록되었는데요.

 

무슬림 신자인 상인들은

서아프리카 지역에 공동체를 세우고

사하라 횡단 무역로를 설립하여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 상아, 공산품 등을 수출입하는 거점으로 이 지역을 삼았죠.

 

이후 11~ 12세기 동안에는

고대 가나 왕국, 가오와 왕국 등을 거치고

14세기 초 정도가 되었을 땐 말리제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아랍어에 능통한 무슬림을 궁정에 임명하며 무슬림화 되어가 던중

이 지역에 처음 들어온 유럽의 세력은

대항해시대에 문을 연, 포르투갈인이었습니다.

 

1447년 바다를 통해 들어와 거점을 세우고

무역에 활용했지만

대규모의 정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죠.

이러던 중, 다른 세력이 또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바로 영국입니다.

 

1588년 포르투갈은 영국 상인들에게

감비아강에 대한 독점 무역권을 판매하게 됩니다.

그리고 1651~1661년 사이엔

감비아 지역에 있는 포트 야콥, 세인트 메리섬(반줄), 질리프리 요새 등을

당시 발트의 지역에 있었던 공국 중 하나인

쿠룰란트-세미갈리아 공국이 차지하고

식민지화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 지역을 10년 정도 통치했지만

1664년 공식적으로 이 지역들의 통제권이 영국에게 양도되죠.

영국은 무역을 중심으로 점차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고

1664년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도 1600년대부터 이 지역에 관심을 가졌는데요.

1659년엔 세인트루이스를

1677년엔 현재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옆에 있는 고레섬을 점령하게 되죠.

 

이를 보면 이제 감비아 지역은 영국이

북쪽의 세네갈 지역 쪽은 프랑스가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는

이 지역에 대한 패권을 놓고 투쟁을 하게 되는데

1756년에서 1763년 사이

유럽에서 발생한 7년 전쟁의 결과로,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7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패배한 프랑스와 파리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프랑스가 세네갈 지역을 영국에 완전히 할양하는 것을 포함했죠.

 

그리고 세네갈과 감비아 지역을 모두 확보한 영국은

1765년 세네감비아주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독립전쟁이 일어나게 되죠.

 

이때 프랑스는 미국 편에 서게 되었는데요.

결과적으로 미국이 승리하게 되며

이번엔 프랑스가 승전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783년 미국독립전쟁 종식을 위한

또 다른 파리조약이 있었는데

이때 포함된 것이

프랑스가 세네갈의 영토를 다시 얻는 것이어서

세인트루이스, 고레, 세네갈 강 지역 등이 프랑스에게 다시 돌아갔고

영국은 과거와 비슷하게 감비아 강 지역만을 소유하게 되었죠.

 

그런데 얼마 후, 유럽은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되는데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1803년부터 15년까지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망자 및 실종자만 600만 명 정도나 될 정도로

모든 유럽 국가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유럽 본토에 신경을 써야 하다 보니

이 감비아 지역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죠.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년 후인 1861423일 당시

감비아 지역에 있었던 콤보왕국의 왕으로부터

캄비아강 쪽에 반주를 임대하게 되고

영국은 이곳을 세인트 메리섬으로 명명하였습니다.

 

땅을 부분적으로 매립하고

, 병영, 상점, 공장, 요새 등을 세웠고 발전시켜 나갔죠.

당시 영국이 재건하고 있었던 이 세인트 메리 섬에

주변 서아프리카에 있는 상인들이 이주했고

수십 년 동안 많은 공장과 집이 지어졌죠.

무역상들이 대거 유입되며

이 성은 부가 늘어나고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1821년 정도가 되어서는

병원과 법원 등 추가적인 기반 시설들도 건설되었죠.

참고로 현재는 다시 반줄로 불리며 독립한 감비아의 수도로 있습니다.

 

1823년엔 또 다른 섬을 매입하여

메카시 섬이라 명명하였고, 이곳을 영국의 전초 기지로 사용했죠.

 

또 현재의 잔잔 부레 지역에 조지타운을 세워

해방된 노예들을 위한 정착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국은

감비아 지역에서 영토를 확장해 나갔고,

프랑스는 세네갈 및 서북 아프리카 지역을 확보했죠.

 

감비아 주변에 서아프리카 쪽의 식민지가

수많은 식민지로 유명한 영국이 아니라

대부분 프랑스령이라는 걸 보며 의아해 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영국은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여 이어지는 형태로 식민지를 확장해 나갔고

프랑스는 프랑스와 가까운 서북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확장해 나갔기에

이러한 형태가 되었다는 부분도 참고하시면 하네요.

 

지도를 보시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식민 지배를 받고 있죠.

실제로 감비아처럼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한

저개발 국가들이 많은 것이 현실인데요.

 

아프리카 대륙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 같은 역경을 극복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우리나라와 깊은 연이 있어

정부와 관련 기관뿐만 아니라

국내 사기업 중에도 이들의 홀로서기를 응원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나라도 있는데요.

이전 영상으로도 소개해 드렸던 에티오피아가 바로 그 나라입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 전쟁 시, 칵뉴대대를 파견하여

UN군 측에서 활약하며 한국을 크게 도왔죠.

3,158명의 에티오피아인들이 활약한 칵뉴 대대는

전쟁 동안 총 121명이 사망하였고

비단 칵뉴 대대뿐만 아니라

한국의 자유를 위해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죠.

 

그리고 이 같은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돕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 중에는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 전원의 안질환 수술을 전액 지원하며

기적의 한국인이라 불린 작은 기업도 있습니다.

 

오늘 영상에선 바로 그 착한 기업인 인프레쉬의 9

후원 모자 구축 캠페인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여러 장의 6.25 전쟁 사진을 공개한 이들은

인천 상륙 작전 당시

두려움에 떠는 동료들을 이끌고 앞장서

가장 먼저 방벽을 오르고

또 그런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수류탄을 막았던

발도메르 로페즈 중위와 같이

한국의 자유와 희망을 주기 위해 희생한

121,879명의(유해가 수습되지 못 한) 참전 전사자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뜻에서

‘Things to remember’라는 슬로건을 각인한 모자를 출시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지난 5, 직접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자신들의 수익금만으로

참전 용사 안질환 수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인프레쉬는

지금도 꾸준히 에티오피아와 같은 한국전 참전 용사를 돕고 있으며

최근 출시한 모자 굿즈 역시

이 후원활동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모자의 수익금은 에티오피아에서 진행했던 것과 같이

16개국의 참전 용사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되며

또한 다가올 9월엔 에티오피아에서 더 나아가

필리핀 참전용사의 의료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알렸는데요.

이처럼 다양한 참전용사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착한 기업

인프레쉬에서 판매하고 있는 여러 제품들 역시

남녀노소, 누구나 안전하고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식물유래 성분의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 인증까지 받은

저자극 제품들이라고 하니

앞서 소개된 사회적 활동뿐만 아니라

제품에도 더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네요.

저도 이번 후원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해 보았는데요.

소비와 나눔을 함께 실천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세상, 기업, 소비자의 선한 순환들이 많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이렇게 영국과 프랑스는

수많은 식민지를 아프리카에서 거닐던 중

1889년 영국과 프랑스 간의 협약을 통해

영국이 감비아 보호령과 프랑스의 세네갈 식민지 사이에 국경을 확정했는데요.

이때 감비아강에서

남과 북으로 10km 떨어진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야르브텐다(근방) 지역까지 설정했죠.

 

이렇게 강을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국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후에 지역 (감비아인)지도자들의 저항이나

영국 식민지 세력과 감비아인들의 크고 작은 충돌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점차 영국 식민지의 권위가 더 확고해졌죠.

 

이렇게 감비아 지역은 영국이

세네갈을 포함한 서북아프리카 지역은 프랑스가

확보한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이제 감비아가 독립하는 과정을 말씀드릴 텐데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식민지의 독립 전쟁이라 볼 수 있는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1446년부터 53년까지 일어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프랑스가 패배하게 되며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가 독립하는 쪽으로 가게 되죠.

 

이런 움직임이 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프랑스는

친프랑스 아프리카인 엘리트 집단을 양성하고, 지도자로 세우거나

이전과 다르게 아프리카에

보다 비용을 투자하고 개발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아프리카 전역에서 나타나는

자유에 대한 요구, 독립 움직임, 민족주의를 막을 순 없었죠.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1958년에 프랑스는

기니에 프랑스령으로 남으면서

자율권을 받을지

아니면 완전히 독립할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했습니다.

 

프랑스의 기대와는 달리

기니인들은 독립하는 것을 택했고

프랑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정부 지원을 중단하고 여러 재산들을 가져갔습니다.

가져갈 수 없는 건물, 기계, 가구 등

대부분의 자원들을 파괴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니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더 프랑스를 믿을 수 없게 된 다른 식민지 국가들은

모두 독립 움직임을 더욱 강화하며

거의 모든 프랑스 식민지가 곧바로 독립을 선언하게 되죠.

 

1960년에만 보시는 것처럼

수많은 국가들이 순차적으로 독립을 해 나갔습니다.

이때 감비아를 둘러싼 세네갈도 독립을 하게 된 것이죠.

 

반면 영국은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패배하고

아프리카의 식민세력 유지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쓰는데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고

식민지 정부 자체보다는

해당 지역의 자원에 관심이 많았기에

독립에 개방적이었죠.

 

그에 따라 아프리카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유지하며

식민지 국가들을 독립시켜 주게 되는데

이런 움직임에 일부러 감비아는 1965년에 독립하게 됩니다.

 

독립 초기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 원수로 남아 있었지만

1970년 국민투표를 통해

총리였던 다우다 자와라가 국가 원수로 임명됩니다.

 

이와 같은 흐름으로

이 독특한 영토의 형태로 감비아라는 국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옆, 세네갈과 감비아의 관계는 어떨까요?

아까 초대 국가원수라 했던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은

5번의 재선을 통해 장기 집권 중이었는데요.

그러던 중 1981, 감비아 사회주의 혁명당의 쿠데타 시도가 있게 됩니다.

이 쿠데타는 세네갈 군대가 개입을 하게 되어 진압을 하게 되죠.

 

이렇게 세네갈의 도움을 받으며 관계가 진전되다 보니

두 국가는 군대, 경제, 통화를 통합하기 위해

쿠데타 이듬해인 1892년에 세네감비아 연합을 형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통합이라는 게 쉽지는 않죠.

다른 식민지 역사를 겪었기도 하고

또 경제적인 부분에서 손실을 볼 수 있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네갈과 감비아 사이의 관세가 사라진다면

세네갈 남부 지역과 감비아 사이의 무역으로 이득을 보던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죠.

 

아무튼 감비아가 이 연합에서 7년 만에 탈퇴하며

연합은 금방 해체되었는데요.

그럼에도 세네갈과 감비아의 관계는 여전히 좋은 듯합니다.

 

세네갈은 프랑스어,

감비아는 영어로 공식 언어는 다르지만

그 외의 민족, 문화, 음식, 종교 등 비슷한 부분도 많죠.

 

또 근접해 있다 보니 세네갈인의 친척은 감비아에

감비아인의 친척이 세네갈에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비록 감비아의 영토나 인구가 적더라도

세네갈에 의한 무력 합병 같은 움직임이 쉽게 나타날 것 같진 않네요.

 

 

이번엔 이렇게 강을 둘러싼 나라는 뭘 먹고 사는지 볼까요?

이렇게 지도를 보시면

건조 지역이 많은 아프리카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지형 때문에

국토의 약 10%나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기후도 보시는 것처럼 (특히 동쪽으로 갈수록)

건조한 사막 기후 지역도 있지만

열대 기후인 지역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영토의 절반 이상이

목초지로 사용하기에 우수한 땅이라 볼 수 있고

상당 부분이 농업에 사용됩니다.

 

때문에 인구의 약 70에서 80%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고

GDP3분의 1, 국가 외환 수입의 70% 정도가 농업에서 나오죠.

 

이것은 2019년 감비아의 수출품을 나타낸 자료인데요.

주로 목재, 해산물, 땅콩 등을 주로 생산한다는 것도 아실 겁니다.

소규모 제조 활동 역시 땅콩, 생선, 동물, 가죽 등

1차 산업을 통해 나오는 물품들을 가공하는 형태라 볼 수 있죠.

 

또 다른 주요 산업은 관광업인데요.

국토를 타고 내륙에도 강이 흐를 뿐만 아니라

강 주변으로 상당한 규모의 맹그로브 숲, 열대우림, 멋진 국립공원이 형성되어 있고

다양한 생물, 특히 여러 조류군들이 있어

유럽의 조류 관찰자들이 많이 찾습니다.

 

그리고 메카시 섬에 해방된 노예들을 위한 지역을 만든 역사가 있다 보니

미국 등에 있는 흑인들이

조상들의 뿌리를 찾아 오는 경우도 있죠.

 

또 아프리카인이 뜨거운 태양은 당연하고 바다와 접하고 있으니

해변과 모래사장이 있으며

작은 나라지만 세계 최대의 스톤 서클 집중 지역

멋진 뷰를 제공하는 아치 22 제임스 섬 등

여러 볼거리들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저렴한 물가에다

영어 사용 국가이다 보니

특히 영국인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휴양지입니다.

실제 영국에서 가장 가까운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향도 있다 보니

식민지배국이었던 영국과의 관계도 매우 좋고

실제로 2018년엔 영연방 회원국에 가입하기도 했죠.

 

 

이렇게 농업과 관광업이 주가 되지만

이외에 또 다른 산업적 기반들은 약하다 보니

1인당 GDP 772달러 정도로 경제적 수준은 낮다 볼 수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 감비아와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셨으면 좋겠고

아주 뜻깊고

특별한 사람찾기 캠페인을 소개해 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