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국가
쿠웨이트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쿠웨이트는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사이에 있고
오른쪽은 페르시아만과 접해 있으며
그 길이는 195km에 이릅니다.
면적은 17,820㎢ 정도로
경상북도보다 적은 땅 크기를 가지고
인구는 4,268,000명 정도로
한국의 10%도 안 될 정도로
땅의 크기나 인구 규모에선 작은 나라라 볼
주목할 만한 부분은 독특한 인구 분포인데요.
첫 번째는 쿠웨이트인이 전체 인구의 절반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쿠웨이트 전 인구의 60%, 노동력의 80% 정도를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죠.
또 다른 특이점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해안 지역에 거주하고 있고
70% 이상인 3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쿠웨이트 시티를 비롯한 수도권에 모여 살고 있는 것이죠.
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우리에게 비교적 상당히 생소한 나라이니
우선 간단히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역사적 부분을 먼저 살펴볼까요?
조금 더 지도를 넓혀보면
쿠웨이트 지역은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문명
2개의 주요 문명과
아라비아 지역의 사이에 있다 볼 수 있습니다.
또 페르시아만이라는 바다를 끼고 있죠.
때문에 이곳은
고대부터 사람들 간의 교류가 많았고, 또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예로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쿠웨이트의 파일라카 섬에 정착을 하여
상업을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다 보니
이 섬에서 고대 동전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또 북동부 해안에선 세계 최초의 갈대배 중 하나가 발견되기도 했죠.
이 아라비아 반도는 기본적으로는
유목민들이 많이 거주한 지역이기에
과거 역사 속에서 대부분 이 지역은
독립된 국가로 있기보다는
부족 단위로 세력을 형성하거나
우리가 세계사 속에서 많이 들어보았던
알렉산더 제국, 파르티아 제국, 사산 왕조, 이슬람 제국, 오스만 제국 등
이 지역을 지배한 주요 세력에 속한 형태로 있어 왔죠.
그러다 보니 현대 쿠웨이트는
비교적 근대에 형성되었기에 시간을 조금 앞으로 당겨보죠.
1700년대 초 쿠웨이트는 바니칼리드 토우국에 속해 있다가
1752년 셰이크 토우국으로 독립을 했었는데요.
이 토우국을 영어로 하면 에미레이트입니다.
이슬람 세력에서 사용되는 종교, 정치적인 용어로
국가보다 작은 유럽의 공국과 비슷한 형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아랍 에미리트 공화국은
토국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나라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1700년대 쿠웨이트는
여전히 무역으로 크게 번영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만의 주요 항구 도시였던 쿠웨이트는
인도, 시리아, 이라크, 오만, 아라비아 지역 사이의 상품 운송을 위한
주요한 상업 중심지였죠.
그 결과로 쿠웨이트는
무역, 특히 바다를 접하고 있다 보니
해상 무역이 큰 호황을 누렸습니다.
또 아까 인류 최초의 배 중 하나의 발상지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쿠웨이트는 페르시아만 지역의 선박 건조의 중심지였기에
쿠웨이트 선박은 인도양 전역에서 유명했고
이 쿠웨이트 선박을 이용해 매년 평균적으로
아라비아 지역의 말, 800마리 정도가 인도로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정학적 경제적 중심지인 특성을 바탕으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그 때문에 아랍인, 페르시아인, 아프리카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들어와 섞여 살았고
종교적으로도 비교적 관용적이었기에
다양성이 높은 지역으로 유명했죠.
이렇게 번성하던 쿠웨이트 셰이크 토후국은
아무래도 주변 강대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1800년대 후반엔 사실상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던 중 1896년 무바라크는
그의 이복형 무함마드와 자라 알사바를 살해하고
쿠웨이트 왕위를 차지하죠.
피로 왕위를 차지하다 보니 정통성도 부족했고
자신이 죽인 이복형들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복수할 것을 두려워하였기에
오스만 제국의 ‘카이마캄’이라는
오스만 제국에서 사용하는 지방 주지사
혹은 지역 행정관을 뜻하는 직함을 부여해 달라고 요청했죠.
결국 직함을 부여받긴 했으나
형제 살해를 통해 왕이 되다 보니
그 과정이 길고 논쟁이 많았으며
결과적으로 무바라크와 오스만 사이의 긴장도와 불안은 점점 높아졌어.
이에 무바라크는
이번엔 영국의 보호를 호소하게 되고
1899년 영국 쿠웨이트 비밀 협정을 서명하며
쿠웨이트는 영국의 보호령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쿠웨이트는 영국을 제외한 다른 외국 세력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영국의 사전 동의 없이
외국 정부나 시민에게 판매, 임대, 양도 등을 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합의했죠.
대신 영국은 셰이크 국에 매년 재정적 지원을 하고
영국의 영토를 보호하기로 약속.
결과적으로 이 협정으로 인해
쿠웨이트 외교 정책에 대한 영국의 통제권이 생기게 되었지만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죠.
이런 가운데서도 계속 번영을 누려 왔었지만
1900년대에 들어서며
쿠웨이트 경제에도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우선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속한 연합군이 승리하고
오스만 제국이 속한 동맹국은 패배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오스만 제국의 힘과 영향력이 약해지고
권력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죠.
그에 따라 쿠웨이트와 사우디 세력 간의 국경을 두고 다툰
쿠웨이트- 네지드 전쟁이 1919년- 1920년 사이에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우디 국가의 네지드 하사 토우국이 승리를 하게 되고
1913년 영국 오스만 협약에 따라
쿠웨이트 남쪽의 마니파까지 확장되었던 쿠웨이트의 국경은
현재 국경의 형태로 다시 줄었고
사우디는 1923년~ 1937년까지 쿠웨이트에 대한 무역 봉쇄를 실시하였죠.
당시 무역의 중요성이 큰 쿠웨이트엔 큰 피해였죠.
이어서 1929년경부터 시작된 대공항도
쿠웨이트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죠.
또 당시 쿠웨이트의 진주 산업은
세계 진주 명품 시장을 주도하며
유럽 부유층들의 수요를 채워주는 주요 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불황을 맞다 보니
진주 같은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데다
1916년 일본에서 양식 진주 산업에 대한 특허까지 받게 되는데요.
일본은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진주는 없애버리며
품질관리를 해 나갔고
쿠웨이트 진주 산업은 더욱 붕괴되어 갔습니다.
이제 쿠웨이트는 돈이 없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석유였습니다.
1930년대 주변 지역에서 석유들이 발견되는 모습을 보고
당시 쿠웨이트의 아마드 국왕은
석유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영국을 끌어들여
영국어의 BP와 미국의 걸프 오일의 합작 회사인 쿠웨이트 오일 컴퍼니를 만들고
쿠웨이트 석유 개발을 추진하게 됐죠.
쿠웨이트는 75년간 석유 개발을 허용하는 대가로
일정한 금액을 받았고
석유 탐사를 시작한 지 3년 후인 1938년에 석유가 발견되며
쿠웨이트는 산유국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렇게 쿠웨이트는 세계에서 손꼽는 석유 생산국이 되며
다시 부국이 되고
현재는 1인당 GDP 4만 달러가 넘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국가가 되었죠.
그리고 1961년 6월 19일 쿠웨이트는
1899년에 맺었던 영국- 쿠웨이트 협약을 종료하고
쿠웨이트 독립을 보장하는 각서를 영국과 교환하며
완전히 쿠웨이트는 독립된 국가가 됩니다.
산유국이 되어 승승장구해 왔을 것도 같지만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바로 이라크의 침공과 걸프전인데요.
그 과정을 잠깐 설명드리죠.
우선 1979년 이란에서는 친미적이고 자유를 추구한
레제 샤 팔레비가 통치하던 중,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루홀라 호메이니가 지도자가 되며
반서구적 이슬람 신권정치가 이란에서 자리를 되죠.
그래서 이 혁명을 이슬람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1980년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며 전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국경 지역 강의 수로 사용권에 대한 영토 다툼,
이란의 석유에 대한 (이라크의)권리 행사와 같은 실리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또 다른 중요한 명분은
이란의 이슬람 신권 중심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이라크로 넘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었죠.
또 막 혁명이 일어나 어수선한 이란이었기에
이를 기회라고 생각한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의 판단도 있었어.
이 1980년대 이란 이라크 전쟁 간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경계했던 쿠웨이트는
이라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게 되죠.
하지만 1988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에서
이라크는 결국 한 치의 땅도 뺏지 못하고
양국의 큰 피해만이 남은 채 전쟁은 마무리되었는데요.
이라크에 남은 피해 중 하나는
쿠웨이트에게 진 막대한 빚이었죠.
당연히 빚을 갚아야 하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쿠웨이트가 이라크에 석유를 훔쳤다는 명분으로
1992년 쿠웨이트를 침략하게 되죠.
국가나 군사 규모에선
당연히 작은 소국인 쿠웨이트를 압도하는 이라크이기에
단 이틀 만에 쿠웨이트는 점령당하게 됩니다.
명분이 적은 침략에 가까운 전쟁이었고
쿠웨이트가 패배하게 되면
세계 석유질서에 영향을 주는 큰 사건이기
(안정적인) 유가와 석유 공급 안정성 확보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이해관계에 있던 미국과
그를 필두로 한 다국적 연합군이 개입하게 되고
결국 이라크는 처참하게 미국 중심의 연합국에 패하게 되며
쿠웨이트를 떠나가게 되죠.
이런 격동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넘기고 현재는 세계 7위의 석유 생산국이 되며
다시 예전과 같이 부국이 되고
또 세계 최고 수준의 통화
높은 인간 발달 지수가 나타내는 것처럼
국민 한 명 한 명이 잘 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자 이제 지리적인 부분을 좀 더 볼까요?
일단 평균 해발 고도는 108m이고
가장 높은 고도라 해도 고작 306m입니다.
산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겠죠.
또 보통 제가 기후를 구분한 지도를 보여드리곤 하는데
쿠웨이트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위성 지도만 보아도 충분히 나오는데
국토 전역이 사막성 기후입니다.
강우량은 연간 75에서 150밀리미터 정도이고
더운 여름엔 최고 온도가 적어도 40도 이상
때론 50도 이상으로도 올라가는, 덥고 건조한 국가라고 볼 수 있죠.
얼마나 더웠으면
실제 쿠웨이트의 독립 기념일은 6월인데
더위로 인해 이 독립 기념일을 2월로 바꾸었을 정도니
이 정도면 보통 더위는 아니라는 게 어느 정도 짐작이 가시죠?
다음으로 수자원을 보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의 합류점이
북쪽 이라크와의 국경 지역에 있어
강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내륙 내엔 지속적으로 흐르는 강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쿠웨이트는 식수나 담수의 주요 공급원을
강이 아니라 바닷물을 담수해서 얻고 있는데요.
실제로 쿠웨이트는 가정용 물 공급을 위해
담수화를 사용한 세계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고
여전히 여러 담수화 공장이 운영되고 있죠.
쿠웨이트도 여러 산업의 다각화를 하고 있는데요.
다만 석유 산업이 너무 강하다 보니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2019년 주요 수출 품목을 보시면
대부분 석유 관련 품목이고
항공기 및 우주선, 유기화학물질, 플라스틱, 철, 광물 등이 있죠.
또 사막이라고 농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식량 자급률은 채소 50%, 육류 40%, 과일 25% 정도로
농업 생산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죠.
사막이라서 농업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알자라 지역 쪽에 몇몇 농장들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자연적인 형태보다
보시는 것처럼 조금은 인공적인 형태이긴 하지만요.
아무래도 물과 경작 가능한 토지가 적다 보니
농업 확대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고
대신 수경 재배나 관리형 농장을 통해
여러 재배 실험을 하며 농업을 일구어 나가고 있죠.
또 2019년에 여행 및 관광, GDP 부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관광 산업도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습니다.
알 샤히드 공원, 알 함라 타워, 셰이크 자베르 알 아마드 문화센터, 알 살람 궁전 등
여러 관광지들이 있죠.
이렇게 역사, 지리, 기후, 인구 등에 대한 여러 부분들을 말씀드렸는데
이런 부분을 모두 종합하시면
수도인 쿠웨이트 시티를 중심으로
인구가 모이는 것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기본적으로 사막 지형인데 쿠웨이트 시티 쪽이 항구도시로
고대부터 주요한 해상 무역의 중심이었고
주요한 산업들도 진주 채취나 선박 건조 같은 바다를 끼고 하는 산업이었죠.
또 아무리 특정 지역에 기름이 난다고 해도
대규모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산업은 아니다 보니
내륙의 사막 지역은 비교적 개발되지 못 됐고
당연히 인구는 해안지역, 특히 주요 산업과 일자리의 기회
주거 지역이 조성된 수도 근처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인구적 특징은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60~ 70%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인데요.
대체 왜 그럴까요?
쿠웨이트는 산유국으로
국가는 부유하나 계속 국가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쿠웨이트의 인구는 적은 편이죠.
이 작은 국가의 고층 건물을 만들고
도로나 건물을 청소하고
가사나 정원, 관리, 식당 종업원 등
노동력이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을 것이고
그렇기에 쿠웨이트는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외국인들도 돈을 벌 수 있는 부자나라이니
큰 메리트를 느끼고 일하러 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외국인들이 많은 것이죠.
다만 외국인들이 부동산이나 사업을 소유하거나
귀화나 영주권 취득, 운전면허 취득 등
영구 거주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선
외국인들에게 거의 개방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또 교육, 관광, 보건, 인프라 이용 등
생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자국인과 외국인 간 차별적인 부분이 상당히 존재하죠.
역사를 보셔서 아시다시피
쿠웨이트는 여러 나라와 민족,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했던 지역이었는데
이제는 특히 산유국이 된 이후에는
쿠웨이트인들이 중심이 된
배타성이 다소 과거보다 강해진 나라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쿠웨이트에 있는 입장에선
외국인들과 똑같이 모든 것을 나누고 싶진 않겠죠.
다만 대부분의 나라처럼
소수가 아니라 절반 이상의 대다수의 인구가 외국인이다 보니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나 인권의 문제가
더욱 크게 다루어지는 것 같다.
오늘의 영상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독특한 인구 분포를 보이는
쿠웨이트를 이해하시는 데 도움 되셨으면 좋겠네요.
시청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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