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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줌) 언어도 정부도 다른 벨기에 / 남북이 완전히 나누어진 이유

Buddhastudy 2024. 12. 18. 19:54

 

 

우리에게 초콜릿, 맥주, 와플, 축구 등으로 나름 친숙한 벨기에

여러분은 벨기에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사실 벨기에는 남북으로 나뉘어져 언어도 다르고

사실상 독립된 정부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동쪽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작은 지역도 있긴 하지만

크게 북쪽에 핀란데런 지역은 네덜란드어를

남쪽 왈롱 지역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간 브리셀은 수도로 모든 언어를 함께 사용하죠.

 

이게 지역별로 선호하는 언어가 나뉘어지는 정도가 아닙니다.

공식적으로 언어가 나뉘어져

공공 서비스나 공영방송, 공공 문서의 언어가

해당 지역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죠.

 

또한 경제적으로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요.

GDP 기준으로 보았을 때

11개의 주 중 상위 5개 주의

수도 브뤼셀을 비롯하여 모두 플란데런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뤽상부르의 GDP

1위 앤트워프와 12배가 넘게 차이가 나죠.

대체 왜 이렇게 구분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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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벨기에의 위치를 볼까요?

보시면 유럽의 전통적인 패권 국가인

영국, 프랑스, 독일에 둘러싸여 있음을 알 수 있죠.

그렇기에 1800년대 이전까지 이 지역은

벨기에라는 주체성이 따로 있었기보다는

대부분 주변 세력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었죠.

 

1800년대가 시작되자마자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되었고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1815년에 열린 빈 회의에서 벨기에의 건국은 시작되었습니다.

 

빈 회의에서 유럽의 승전국들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만났습니다.

 

벨기에는 강대국 사이에 있던 애매한 땅인데

패전국인 프랑스에 다시 줄 수도 없고

독일, 영국은 워낙 강대국이다 보니

비교적 약소국이었던 네덜란드에 속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빌럼 1세가 통치하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이 탄생했죠.

 

지도를 보면 당시 지역별 상황을 볼까요?

우선 벨기에의 북쪽 플란데런 지역은

남유럽, 서유럽, 동유럽과

바다를 이용하면 영국, 북유럽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무역을 위한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무척 발달했었죠.

 

가장 유명한 산업은 직물산업이었는데요.

이 지역은 인구 밀도가 높은 편이라

단순 농업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일자리가 필요했고

저지대인 이 지역의 특성을 살려

땅을 간척하고 그곳에 양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그 양털을 이용하여 천을 짰고

로마시대부터 이 지역의 천은 유럽에서 아주 유명했죠.

 

그러다 보니 겐트, 브뤼헤 등의 지역에

직공들이 모이고, 생산성을 더욱 높여 갔으며

플란데런 지역의 천에 대한 수요가 점차 높아지며 무역도 활발해졌고

현지의 수도인 브뤼셀도 상업 도시로 크게 발전했죠.

 

하지만 점차 영국, 스페인 등에서 자체적인 양모 산업이 발전하게 되며

섬유 직물 산업에 대한 플란데런의 독점이 깨지고

황금기는 저물어 갔죠.

 

반면 1800년대가 되며

남부의 왈롱 지방은 산업 혁명으로 인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1807년 왈롱 지역의 리에주에

영국인 윌리엄 코커릴은

산업기계와 철을 생산하는 회사를 짓게 되었고

이로써 영국을 제외하고서는

유럽 대륙에서 처음으로 산업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철강, 섬유, 철도 건설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산업화를 이어나갔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왈롱 지역에서 대규모 석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죠.

 

석탄 발생지를 중심으로 silon 산업단지가 형성되었고

직접 증기기관차와 철도 건설도 가능하다 보니

리에주, 몬스, 샤를루아 같은 지역에서 채굴한 지화 자원을

철도로 엔트워프까지 이동시켜

엔트워프 항구를 통해 수출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북쪽의 상공업이 쇠퇴하고

산업화로 남쪽의 중공업이 올라오며

남쪽이 더 잘살게 된 것입니다.

 

또한 당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전쟁에서는 패배했지만

여전히 프랑스의 엄청난 영향력이 유럽에 있었고

근접한 벨기에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당시 벨기에 지역을 주도한 것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하면서

세련된 프랑스 문화를 기반으로 하며

경제력도 우수한 왈롱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815년 네덜란드 연합왕국이라는

어찌 보면 억지로 합병된 인공 국가가 형성되었는데

벨기에 사람들은 네덜란드 왕국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얼마 안 가 독립을 하게 되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당연히 네덜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가 진행되었고

경제의 중심도 암스테르담항이 되었기에

벨기에 지역은 소외되었죠.

 

또 종교도

네덜란드는 개신교(기독교) 신자가

벨기에 지역은 가톨릭 신자의 비율이 높았으며

결정적으로 벨기에를 주도한 남쪽의 왈롱 지방이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 중이었는데

강제로 네덜란드어를 쓰라 하니 반발이 생긴 것이죠.

 

이런 과정 속에서 1830

프랑스의 7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벨기에인들은

같은 해 8스페인 지배에 대항한 나폴리 사람들의 반란을 다룬

오페라 포르치니의 벙어리 소녀의 공연 중

혁명을 일으켰으며

결국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죠.

 

벨기에는 입헌군주제를 중심으로 의회가 설립되었고

1831년 벨기에가 독립적인 국가가 되자

당시 주류이면서 소위 부르주아 엘리트층이 많았던 왈롱 지방 사람들은

새로운 벨기에에서

플란데런 사람들이 사용하던 네덜란드어를 없애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래서 벨기에의 공식 언어를 프랑스어라고 선언하고

행정, 사법제도, 심지어 플란데런의 초등학교 교육을 제외한 모든 교육을

프랑스어로 지정했죠.

당연히 정치인이나 행정 관료들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왈롱 지방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져 갔으며

플란데런 사람들은 소외되었죠.

 

왈롱 지역은 산업혁명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부흥했지만

플란데런 지역의 섬유 산업의 상당 부분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쪽에 뺏기고

대체로 농업 지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경제적 차이마저 너무 나다 보니

북쪽에 대한 차별적 정책이 상당 기간 이어졌고

변화는 50년이 더 지나서야 일어났습니다.

 

1898년이 되어서야

법적으로 네덜란드어도 벨기에어로 인정받을 수 있었죠.

경제적 차이도 나는데, 존중까지 받지 못하다 보니

지역 감정이 이 시기에 상당히 생겼겠죠.

 

근데 2차 세계대전 이후

남부와 북부 간 구도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당시 벨기에는 독일 점령국과 타협을 통해

벨기에 산업 기반 시설들을

주변국들에 비해 상당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주변 국가들이 산업 기반에 큰 피해를 입었기에

벨기에의 철강, 석탄, 섬유, 철도 산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벨기에 경제는 전후 빠르게 회복되어 갔죠.

 

하지만 1950년대 이후

남부 왈롱 지역의 석탄 매장량은 줄어갔고

산업 혁명 초기에 시작한 만큼 철강 산업 시설 노후화되어

비효율적이었던 반면

워낙 지역 경제가 많이 발전했던 터라 인건비는 높았죠.

 

또 전쟁 후 프랑스, 독일 등의 주변 국가들이

산업 재건에 집중하여

석탄, 철강 산업 장악력을 높여갔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 왈롱 지방의 석탄, 철강산업은 쇠퇴해 갔고

광산과 공장이 문을 닫기 시작 시작했습니다.

 

반면 과거부터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던 북부의 플란데런은

개방된 태도를 가지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여

전통적으로 강했던 섬유산업을 비롯한 경공업과

석유화학 산업이 발전하였습니다.

 

오랜 경제 침체를 겪었기에

남부 지역에 비해 인건비가 쌌던 것도

산업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었죠.

 

이런 변화에 힘입어

과거 브뤼헤 항구처럼 앤트워프 항구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가 되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고

북부 지역이 다시 전체적으로 발전해 갔죠.

 

이제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이죠.

1960년대 이후 필란데런과 왈롱 사이의 분열은 더 확대되고

결국 과거와 반대로

오히려 네덜란드어가 벨기에 지역을 장악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빠진

왈롱 지방의 제안을 시작으로

1963년 지역별로 공식 언어를 나눈 공식적인 자치제가 도입됩니다.

 

네덜란드어의 플란데런과

프랑스어의 왈롱 지역으로 나뉘게 되었고

일부 독일어 사용권이 있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왈롱 지역에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를 함께 사용하는

수도 브뤼셀까지 나뉘게 되죠.

남부와 북부의 이런 흐름은 다시 바뀌지 않고 현대까지 이어져 왔고

지금도 여전히 플란데런은

자동차, 식품, 철강, 다이아몬드, 석유 제품, 직물 등

굳건한 무역 시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수도 브뤼셀, 앤트워프, 겐트, 루벤으로 이어지는 플란데런 다이아몬드 지역이

지금도 벨기에에서 가장 강력한

대도시 네트워크 지역으로 손꼽힙니다.

 

남쪽 왈롱 경제는

유리, 석회, 항공 부품 생산 등 새로운 전문 분야를 다각화하며

경제를 회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벨기에 전체 수출품의 80% 이상이

플란데런에서 나오고

인구도 플란데런이 왈롱 지방보다 2배 정도 많습니다.

 

1인당 GDP는 북부의 경우 EU 평균의 약 120%

왈롱 지역은 약 86%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면 왈롱의 실업률은 약 9% 정도로

플란데런의 실업률보다 2배 이상 높죠.

 

이런 언어적, 문화적, 경제적 차이로

플란데런만의 자치 국가를 창설하자는

분리주의 움직임 나타나고 있는데요.

 

2019년 언론사 르 스아르와 RTL이 발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플란데런인 응답자의 37%

플란데런 지역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왈롱은 14%, 브뤼셀 주민은 17%만이 독립에 찬성했죠.

 

실제로 민족주의 정당인 신플람스 연맹

분리주의 정당인 블람스 벨랑 등이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상당한 규모의 지지 얻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테러

2016년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테러까지 연이어 터지며

반이민 정 정책에 대한 견해와 민족주의적 견해가 맞아떨어져

이후 활동이 더 활발해졌죠.

 

하지만 지정학적인 이유로 분단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벨기에는 건국 시

다른 패권 국가에 힘이 집중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영세 중립국으로 남는다는 조건으로

주변 국가들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는데요.

 

그런 지정학적인 위치의 기조가 현대까지 이어지고

여전히 위치적으로도 유럽의 중심이 있기에

유엔 본부, 나토 본부, 유럽의회 의사당 등이 설치되어 있어

사실상 유럽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립적 역할을 수행하는 유럽 내의 구도로

변화를 가져오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2021

국가 운영 방식에 대한 선호도 측정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3%가 현재 벨기에 연방 체제를

27% 정도만이 플란데런 독립을 선호하는 경향을 나타내었습니다.

 

현재 방식에 대한 선호가 높지만

여전히 분리주의에 대한 의견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벨기에는 소득, 삶의 질, 교육수준, 인간개발지수 등

대부분의 지지층에서 높은 수치를 보이는 선진국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면에는 이탈리아처럼 극심한 차이는 아니지만

남북 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

무엇보다 언어, 정부가 분리되어 운영된다는

아주 큰 특징을 가지고 있죠.

 

벨기에에는 왈롱인, 플란데런인, 브뤼셀인이 있고,

진정한 벨기에인은 왕뿐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독특한 형태를 띠는 벨기에와

유럽의 구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셨길 바랍니다.

시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