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명상은 앉는 것이다

Buddhastudy 2025. 6. 2. 19:41

 

현대인의 스트레스 관리와 자유로운 삶을 위한 명상 방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00:00]. 이 비디오는 명상의 역사적 뿌리부터 시작하여,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통한 명상 효과,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 명상의 기원 인도에서 명상이 시작된 배경은 더운 날씨로 인해 사람들이 시원한 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평온함을 느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01:37].
  • 몸과 마음의 명상 명상에서 '앉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몸을 앉히는 것을 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02:06]. 이는 몸과 마음이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식상위(身識相依)' 개념과 연결됩니다 [03:08].
  • 정좌 명상의 효과
    • 흥분 가라앉히기 (Calm Down) 마음의 동요와 신체적 흥분을 가라앉혀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05:09].
    • 미세한 진동과 평안함 (경안과 희락) 명상이 깊어지면 몸에서 미세한 진동을 느끼고, 몸이 가벼워지며 마음이 즐거워지는 경안(輕安)과 희락(喜樂)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06:27].
    • 번뇌의 정화 (사념 청정) 궁극적으로는 몸과 마음에 대한 모든 생각과 집착을 버리고, 진정한 자유와 해탈을 얻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07:11].
  • 스트레스 관리 명상은 현대인의 불안과 우울을 다스리고, 2차적인 스트레스(불필요한 고통)를 해소하여 스트레스 제로 상태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 [08:09].
  • 명상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음 명상은 몸을 통해 마음을 숙성시키는 계곡길과 같이 점진적인 방법과, 단숨에 깨달음에 이르는 능선길과 같이 즉각적인 방법이 있으며, 둘 다 효과적인 명상 방법론입니다 [09:14].

결론적으로, 명상은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진정한 자유와 해탈을 얻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10:05].

 

 

명상은 앉는 것이다.

그것은 몸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오래된 전통이자 논쟁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어느 쪽으로 시작해도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심식상의라서 몸과 마음은 서로 의지해 있기 때문에

한쪽은 좋은 기운은 반드시 다른 쪽을 돕게 되어있다.

길은 정해져 있다.

세속적인 내려 놓음과 평안, 몸과 마음의 평안과 기쁨

몸과 마음 어디에도 의지하는 청정함이 그것이다.

의지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를 얻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난다.

현대인들은 어디로부터 시작해도 좋다.

그 만큼의 효과가 반드시 있다.

 

 

오늘은 명상은 앉는 것이다

앉는 것이다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500년 전에도 인도는 더운 나라였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시원하고 서늘하고 그런 걸 좋아했겠죠.

 

돈이 없는 사람은 하루에 고된 노동을 마치고

해가 저물면

그때 당시에는 노동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그 인더스강 강가에 앉아서 지는 저녁노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면서 앉아서 쉬었겠죠.

근데 그럴 때는 어떻게 보면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 생각이 없이

잠시 편안함을 누렸을 겁니다.

이게 명상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옛날에도 돈 많은 사람 권력자는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숲을 소유하고 있었어요.

왕의 숲은 특별히 관리되면서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숲을 소유하고 있는 부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저녁이 아니고 한낮에 가장 더울 때도 숲속에서

숲속에는 산소가 많고, 산소는 기온을 떨어뜨리니까

서늘한 숲속에서 고요히 앉아서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고, 쾌적하게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때에도 그 사람이 느끼는 편안함과 쾌적함은

또한 명상의 하나의 모습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은 인도에서

적어도 더운 인도에서의 명상의 시작은

너무 더우니까 움직이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자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근데 우리가 명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항상 따라붙는 게 있죠.

명상을 만약에 앉아라, 좀 앉아라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두 가지 어떤 느낌이 같이 있는 거죠.

 

-하나는 몸이 앉는 거냐?

-아니면 마음이 앉는 거냐?

뭐가 앉는 거냐? 라고 하는 논쟁이

사실은 2500년 된 논쟁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인도의 요가 전통에서는

당연히 몸을 통해서 마음으로 가는 루트죠.

그래서 좌선 명상이 불교에도 남아 있고

굉장히 강한 하나의 전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주로 선불교 쪽에서

육조 혜능 대사 같은 경우는

정확하게 그 마음이 앉아야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 좌선이라고 했을 때

몸이 앉는 것이 좌선이 아니다. 마음이 앉아야 된다.”

즉 마음에 안팎으로 동요함이 없을 때가 진정으로 앉아 있는 상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두 개는 다 틀린 말도 아니고

물론 한쪽은 한쪽에 대해서 좀 다르게 보지만

어쨌든 저희들이 볼 때는

둘 다 말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좀 더 현실적인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취하면 되는 건데요.

그래서 그것을 좀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말이

신식상의라고 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몸과 마음은 떼어놓을 수 없고, 서로 의지하고 의존하고 있다.

 

불교에도 갈대묶음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있잖아.

갈 때를 서로 묶어 놔서

또는 갈 때는 서로 기대고 있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지

혼자서는 서 있을 수 없다.

뭐 이런

몸과 마음도 이렇게 독립되게 존재하기는 어렵고 서로 기대어 있다,

서로 의지하고 있다,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몸으로 가든 마음으로 가든

결국은 맘,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죠.

몸과 마음을 합친 하나의 글자 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결국 시작이 어디든 끝은 결국 몸과 마음의 편안함

궁극적으로는 몸은 바뀌어 가는 거니까 마음의 평온함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앉는다라고 했을 때

그 앉는 행위, 혹은 몸이 앉든 혹은 마음을 탁 내려놓든

앉는다, sit down이라고 했을 때 효과가 뭐냐?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라고 하죠.

이건 이거는 아주 확립된 견해입니다.

 

첫 번째 거는 들뜬 것이 가라앉는다.

이건 calm down이잖아요.

두 번째 것은 침체된 거, 우울기 같은 것이죠.

우울기 같은 것이 없어지고 생기가 돌아온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들뜨는 것은 불안이요.

가라앉는 것은 우울이잖아요.

현대인의 심리적인 표현으로 하면

심리적인 상태에 대한 표현으로 하면

결국 불안과 우울을 다스릴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앉아 있는다고 해서

죽은 고목처럼 절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좌명상, 혹은 앉아서 하는 명상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좀 구체성이 있는 건데

이 정좌명상, 몸이 앉아서 하는 명상에 좋은 점이

한 세 가지가 있잖아요.

 

첫 번째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캄다운

좀 흥분을 가라앉힌다

가라앉힌다는 것이죠, 다른 걸 다 떠나서.

숨도 헐떡거리는 것도 가라앉히고

피부나 세포나 모든 기관이 헐떡거리는 걸 좀 캄다운한다라고

모든 휴식 효과와 같은 겁니다.

그래서 이때 또 마음도 조금 편안하게 내려놓으니까

잠깐 욕심을 낸다든지, 화가 난다든지

이런 시끄러운 마음을 잠시 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죠, 그 자세가.

 

두 번째는 그것이 어느 정도 되면

그다음 단계가 오는데

그다음 단계는 저도 해보니까

이거를 몸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주 부분적이고 미세한 작은 진동 같은 느낌입니다.

단학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배꼽으로 쌀알 같은 간질간질한 뭐가 내려간다

이런 표현도 있고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백회를 또 수련하는 사람들은

머리 꼭대기가 간질간질하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현상이죠.

 

하지만 부분적이고 미세한 진동 같은 것들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좀 깊어지면

금방금방 그런 걸 느끼는데

보통 그런 거를 불교 쪽에서는 경안, 혹은 희락이라고 합니다.

경안은 몸이 가벼운 거고

희락은 마음이 즐겁고 편안한 것이죠.

그래서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즐거워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보통 이 명상을 해서 좀 맛을 본다, 효과를 본다라고 하는 것은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경지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그 느낌을 맛본다라고 말하는 것일 수 있겠습니다.

 

세 번째는 이것이 불교적인 지혜와 연결되려면

단순히 앉아서 하는 단전호흡이나 요가를 넘어서야 되는데

그 포인트는 결국은 사념청정이죠.

사념_ 내가 몸이 가뿐하다든가, 마음이 편안하다든가 하는 건 다 생각이잖아요.

사념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런 생각을 다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몸에 대한 편안함, 마음에 대한 편안함을

즐거움과 편안함을

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어디에도

몸에도 마음에도 의지하지 않는 상태

이 바로 의지하지 않는 상태가 자유잖아요.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캄다운의 상태, 그다음에 미세한 진동의 상태를

충분히 경안과 희락의 상태를 충분히 지나오면

사념청정에 이른다

뭐 이런 경로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의지하지 않음으로 해서

자유와 해탈을 얻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인들의 용어로 말하자면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근데 이것도 좀 잘 들어야 되는 게

스트레스 자체를 느끼지 못하면 죽은 생명체거든요.

생명체는 다 적절한 스트레스에 반응하면서

생명력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두 번째 화살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고통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2, 3차로

이렇게 해서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라고 하는

아까 이야기한 불안이나 우울의 심한 상태로 떨어지지 않는 것

이게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청정하다,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라고 하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배가 고픈데 스트레스를 안 느끼면 굶어 죽지 않겠습니까?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몸이 앉든, 마음이 앉든

즉 정좌명상을 하든 아니면 선불교나 이런 쪽을 하든

어떤 형태든지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 목적은 산을 오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몸이 앉는다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계곡으로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몸과 마음을 숙성시켜서

몸을 먼저 시작하지만

몸과 마음을 단계단계 숙성시켜 가면서 가는 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다음에 능선길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선불교죠.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 번에 단숨에 초월해서 여래지로 들어가는 것

 

거기서 이 계단

이런 것은 오히려

잘못하면 방해물이 되거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쪽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둘 다

이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행해왔고

각자의 효과를 얻은 방법론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

오늘은 명상이 뭐냐?

앉는 거다.

어떻게 앉느냐?

몸이 앉든지, 마음이 앉든지.

 

그러나 어떻게 시작하든지 간에

결국은 마음으로 귀결되고

마음이 완전히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음으로써

심지어는 마음 자체에도 의지하지 않음으로써

자유와 해탈을 얻고

현대적으로 얘기하면 스트레스가 제로가 된다.

그때 스트레스는 2, 두 번째 화살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명상은

불교적 체계 안에서

이고등락(離苦得樂,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다)의 목적지로 가는

좋은 하나의 탈것, 피지컬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