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쉬운 선정법으로 말씀 드리는 게요. 지금 제가 또 한 번, 항상 강조를 하지만 오늘 또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하는 거 이제 잘 아시죠? 이제 익숙하신 분들은 익숙하실 텐데. 또 처음 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선정은요. 제가 그림 하나 그려놓을게요. 요 그림을 이해하시면서 한번 해보십시오. 작은 자아를 에고라고 하면 우리의 보다 큰 자아를 참나라고 할 수 있겠죠. 에고가 더럽다는 게 아니라. 에고가 참나에 비하면 에고는 시공의 세계의 작용을 하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좀 색을 칠해봤습니다. 참나는 시공이 없어요. 그런데 이 참나의 특징은 뭐냐? 에고는 오욕칠정을 다 느낍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비시와 어떤 희로애락에서 늘 움직이는 자아라면, 이 참나는 티베트 고승들이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텅 빈 각성. 우리나라 선사들이 얘기하죠. 空寂靈知공적영지. 공적_텅 비어있는. 각성_신령한 앎. 우리나라 선사들이 얘기하는 거나 티베트 불교가 얘기하는 게 같습니다. 우리가 티베트 림포체들이나 이런 달라이라마 고승들보다 못할게 없어요. 우리나라 스님들이요. 내 안에서 텅 비었다는 얘기는 잡념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잡념은 없는데 각성은 있다. 죽은 물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살아있어야 되요. 의식이 살아있는데 의식의 초점은 있는데 잡념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우리 참나입니다. 에고는 안 그렇겠죠. 에고는 둘 중에 하나에요.
텅 빔이 없이 시끄럽던가? 각성이 없이 잠을 잘 때는 시끄럽지 않으면 자고 있어요. 요게 우리 에고입니다. 잠을 자든가, 시끄럽든가 에요. 그렇죠? 그런데 텅 비어있으면서 고요히 정신은 살아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우리가 삼매에 들었을 때에요. 일상에서 겪으시는 일들입니다. 잠과 이런 시끄러운 생각 사이에 계실 때가 한 번씩 있으시죠? 신바람 날 때요. 뭔가 삼매에 들었다는 건요. 우리말로 하면 신바람 날 때입니다. 독서삼매. 책을 보다 삼매에 들 때는 나와 책만 있고 정신이 살아있고 이때 특징은요. 어느 때보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렇죠? 저 참나가 드러났기 때문에 그래요.
멋진 예술 작품이라든가 자연 환경을 봤을 때, 그때 저런 마음에 음악이나 이런 걸 들었을 때 저 마음상태에 도달합니다. 텅 빈 각성이 전면에 나오게 되요. 그러면 특징이 에고가 말을 잃습니다. 에고가 말을 잃어야. 에고가 시끄럽게 궁시렁대고 시끄럽게 시비를 따지고 있으면 고요한 마음이 들어가지를 못하겠죠. 그래서 그 시끄러운 에고를 잡아야 에고를 잡아야 참나가 나오고. 또 참나가 나오면 에고는 조용해집니다. 요게 같이 일어나요. 그래서 우리가 멋진 예술을 봤다든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땐 저게 일어나는 이유가 에고가 이견이 없거든요. 그렇죠? 내가 진짜하고 싶은 할 때는 불만이 없기 때문에 안에서 밝은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에고가 입을 다물게 하는 게 모든 선문답의 핵심입니다. 부처가 뭡니까? 생각해보세요. 저 에고가 와서 얘기하는 거죠. 에고로. 부처가 뭡니까? 왜 나는 공부가 안될까요? 나는 불성이 내 안에 없는 거 같아요. 얘기하는 사람한테 여러분은 뭐라고 해야 될까요? 텅 빈 각성을 알아차리게 하려면요. 그러니까 등짝을 치는 스님도 계시고. 짝! 방금 에고가 조용했죠? 짝! 존재는 하는데 아무 생각이 없는 요 상태. 잠깐씩 체험하게 시키려고 여기를 치기도 하고 여기를 치기도 하고, 2x2=4.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합니다. 그럼 멈춰요. 에고가. 2x2=4. 할 말 없으시죠? 어려운 화두라고 아는 것들이 대게 이런 겁니다.
이런 화두도 있어요. 주주스님한테요. 조주스님 스승이 남조스님인데. 남조스님이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조주스님한테 어떤 제자가 찾아가서 스님, 남조스님한테 배웠다면서요? 남조스님을 만났다면서요? 그러니까 뭐라고 하냐 하면요. 여기 “진주는 큰 무가 나지?” 그럼 요걸 우리나라 분들이 풀길이 없죠? 사실은. 요걸 틀었다고 하면 잘못됩니다. 오히려. ‘진주에 큰 무가 난다,’는 사실이 중국에서는 너무나 지당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 화두가 먹히는 겁니다. 우리말로 바꾸어줘야 되요. 우리나라 같으면 “경허스님이 뵈었다면서요?” 하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경호 스님이 뭐가 중요하냐는 거에요?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참나를 모르죠.
“너 안에 있는 참나를 바로 봐라.”라고 얘기해주기위해서 뭐라고 하냐 하면. ‘진주의 큰 무가 난다.’ 우리말로 하면 “제주에 귤 난다지?” 그러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예.” 할 말이 없죠. 할 말 없는 상태로 몰고 가기 위해서 쓰는 겁니다. “삼베 서 근이다.” 그렇죠? 이런 화두도 있어요. “부처가 뭡니까?” “삼이 서 근이다.” 옛날 승복이 삼베로 만드는데 세 근으로 만들어요. 요게 상식인 데서 통하는 화두입니다. “부처가 뭡니까?” “요거 세 근이지.” 예. 안 재어 봐도 세근이죠. 예. 그래. 보냈어요. 제자가 잘 이해가 안 된 거에요. 다른 스님을 찾아갔어요. 내가 그 스님한테 물었더니 이런 말을 해줍디다. 뭔 뜻인가요? 하니까. 그 스님이 그랬어요. “남방엔 대나무 북방엔 나무.” 그랬어요.
우리말로 제가 바꿔드릴게요. “제주엔 귤, 대구에는 사과.” 이랬어요. 또 이해가 안 된 거에요. 들을수록 이해가 안 되죠. 이 제자는. 같은 얘기가 계속 일어난다는 거 아시겠죠? 에고를 멈추게 하려고 하는 겁니다. 에고만 작용을 멈추면 우리 안에 있는 본래 텅 빈 각성이 드러나게 되어있어요. 제가 그걸 아주 쉽게 유도해드리려고 해요. 여러 선문답의 내용을 종합해서 가장 쉬운 법문으로 제가 말씀 드리는 게 성함 잊어버리시라는 겁니다. 성함만 잠시 잊어버리시면 저 에고에 해당되는 거는 조용해집니다. 이해되세요? 텅 빈 각성만 존재하실 겁니다. 한번 느껴보세요. 자~ 성함 모르시는 겁니다. 여기 어딘지도 모르고요. 제가 누군지도 몰라요. 성함만 잊어버리시면 이게 자연히 일어납니다.
제가 질문드릴 테니 각자한테 한 다고 생각하시고 실감나게 내려놓으세요. “성함 어떻게 되십니까?” “모르시죠?” “성함 어떻게 되십니까?” 자~ 이때 나의 존재는 있죠? 에고가 조용해졌으니까 더 잘 느껴지겠죠? 나의 존재가. 존재를 느껴보세요. “성함 어떻게 되십니까?” 제 얘기 다 듣고 있지만 느껴지시죠? 그 자리. 텅 비어있죠. 각성, 알아차리고 있죠? 여기 어려운 문자 쓰면 공적영지입니다. 공적한데 신령하게 뭔가 알고 있어요. 신령하게 귀하는 걸 아는 게 아니고 그냥 알아차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신령하다는 거에요. 우리가 잠을 자면은 죽어버리잖아요. 잠을 자면 알아차리는 놈도 잊어버리는데. 지금 알아차린 자리는 있잖아요. 그러니까 잠을 자면 공정하기만 하지 영지는 안 되죠.
지금 깨어서 잠을 자야 되요. 요게 깨어서 자는 겁니다. 정신 다 살려놓고 주무시는 거에요. 그럼 내 안에 있는 텅 빈 각성이 느껴지실 거에요. 본인한테 물어보세요. 이름 어떻게 되나? [모른다]고 하세요. 그리고 그 텅 빈 각성의 느낌을 느껴보세요. 제 얘기 들으면서도 하실 수 있죠? 일상에서도 하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생각감정오감이랑은 다른 차원의 존재에요. 보세요. 이 에고는요. 에고는 생각을 일으키고 감정을 일으키고 여러 가지 오감을 작용합니다. 요거랑 상관없이 요거는 같이 존재해요. 이게 나타나면 이게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내가 명상할 때는 참나가 있었는데 명상에서 나왔더니 참나가 안 느껴진다. 요건 그래도 말이 되요. 참나가 없어졌다. 말이 안 되죠. 지금 그 말 어디서 하고 있는데요?
자~ 재미있는 게요. 질적으로 바뀌는 연금술, 이게 영적인 연금술인데요. 우리가 생각감정오감만 갖고 있을 때는 내 마음이 대게 조잡하고 잡스럽습니다. 내 거 같지 않은데요. 그리고 오감의 대상인 이 세계도 나랑 전혀 관계없는 거 같아요. 저랑 여러분 관계없죠. 전혀. 에고의 세계에서는요. 왜냐? 에고의 세계는 이 몸뚱이까지만 나라고 여겨요. 그런데 보십시오. 에고에서 초점을 참나로 이동하시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한 번 보세요. 자~ 성함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하고 지금 둘인가요? 그 상태에서 보시면? 생각을 내려놓으시고 한번 보세요. 느껴보세요. 생각감정오감도 그렇게 잡스러운 게 아니죠. 내 내면이 텅 비면 요놈들도 질적으로 변합니다. 요게 영적인 연금술이에요.
요거 하날 썼더니 요 잡철들이 다 순금으로 변해요. 요 세계도요 잡스럽나요? ‘나’라는 이름을 잊고 보시면 요 세계, 그 자체가 내 마음의 나타나는 그냥 선명한 그림일 뿐이지. 그게 잡스럽다는 느낌이 안 드실 겁니다. 나랑 둘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거에요. 제 얘기 듣고 있는 그것도 오감이죠? 그게 잡스러운가요? 고요하지 않으십니까? 여기까지 가면 좀 상급입니다. 여기까지 느끼셔야 되요. 이해되십니까? 생각감정오감이 나랑 별개로 있는 거 같은데, 그게 깨어서 보면, 에고에서는 볼 때 이게 다 별개입니다. 그런데 참나에서 보면 다 그냥 한 덩어리에요. 우리가 꿈속에서, 꿈속에서 내 몸이 있고 세계가 있고 시끄럽죠.
그런데 깨고 나서 보면 기억해 보시면 어떻습니까? 다 한 덩어리죠. 꿈속에서 몸이나 꿈속의 세계나 다 한 세트에요. 분리가 안 돼요. 그 꿈속에서의 생각들, 나와서 보면은 그런 생각 안 하죠. 고게 딱 한 세트로 존재했다는 거를 밖에서 보면 보이는데 안에서는 안보여요. 꿈 안에 여러분이 들어가면 몸 따로 있고 세계 따로 있고 나 따로 있고 내 감정, 생각 복잡합니다. 그런데 한 단계 초월한 시각에서 보면 전체가 한 덩어리로 돌아가는 인과법. 연기법으로 하나로 돌아가고 있는 그냥 한 덩어리의 세계라는 걸 알 겁니다. 초연한 자세를 자꾸 가지셔야 되요. 에고는 그냥 난데요. 참나는 우주적인 나입니다. 우주적인 나로 존재하세요.
방법 쉽습니다. 이름만 내려놓으시면 되요. 이름을 제가 갖고 있으면 저는 작은 나인데요. 제 이름을 잠시 내려놓으며 큰 나로 초점이 이동합니다. 잘되세요? 성함, 성함, 성함만 잊어버리시면 됩니다. 성함 모르시죠? 존재하시죠? 고 느낌을. 그 느낌에 안착하시려고 하세요. 고 느낌을 안 잊어버리려고 하세요. 요것만 챙기시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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