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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미국 역사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9. 15. 19:10

 

 

 

1. 소개

미국으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United States of America, 미합중국입니다.

북아메리카대륙과 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연방제 국가로

수도는 워싱턴 D.C(Washinton D.C)입니다.

 

성조기라 불리는 미국의 국기는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1년 뒤인 1777614, 정식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성조기의 적색 및 흰색의 13개 줄은 독립선언 당시의 13주를 상징하고

50개의 별은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포함한 현재 주의 숫자를 상징합니다.

 

1777년 처음 제정할 당시에는

13개의 주를 나타내는 13개의 별과 13개의 줄이었는데

그 이후 주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줄의 수는 그대로 두고

좌측 상단의 별의 개수만 추가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총 26차례 수정되었으며

1960년 하와이가 50번째 주로 승격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북쪽으로는 캐나다와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으로는 태평양, 동쪽으로는 대서양에 접해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카리브해가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총 983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국가입니다.

 

미국은 2019년 기준으로 약 33천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도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입니다.

 

미국의 1년 총 GDP2018년 기준 약 205천억달러

이는 세계 1위로

2위인 중국과 비교해도 약 7조원가량 차이가 납니다.

 

미국의 인종구성은 백인이 약 60%, 히스패닉이 18%,

아프리카계 흑인이 12%, 아시아계 미국인이 6% 정도이며

그 외 태평양원주민 등으로 구성됩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연방 차원의 공용어를 지정하지는 않고 있으나

사실상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어 외에도 히스페닉계 주민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그밖에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종교는 개신교가 50%, 로마가톨릭이 25%이며

그 외에 모르몬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이 소수 있습니다.

 

 

2. 역사

처음으로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인류는 약 2만년전인 빙하기 시절

베링 해협을 통해 북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건너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북아메리카의 동남부에 정착한 원주민 집단은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으며

선진화된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49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왕실의 지원을 받고 항해를 시작해

카리브해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151342, 스페인의 정복자였던 후안 폰세 데 레온(Juan Ponce De Leon)

라 플로리다(La Florida)라고 부른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는데

이것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를 시작으로 아메리카대륙에는

스페인의 정착지들이 들어섰고, 프랑스의 진출도 잇따랐습니다.

 

15세기말, 뒤늦게 탐험대를 파견한 영국은

1607년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최초로 식민지를 건설하였습니다.

 

그 이후 1620년 종교적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메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달한 청교도들이

플리머스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연달아 메릴랜드, 뉴잉글랜드 지역에 청교도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고

50000명의 죄수들 역시 영국령 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송되었습니다.

 

이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해온 대다수의 인구는

잉글랜드의 청교도, 프랑스와 스위스의 위그노, 아프리카계 흑인노예들이었습니다.

 

1674년 영국-네덜란드 전쟁 이후

현재의 뉴욕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는

자신들의 식민지를 영국에 할양하였고,

영국은 1733년까지 북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에 13개의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3. 역사

영국과 북미 식민지는 프랑스-인디언 전쟁(French-Indian War)에서

프랑스에 맞서 단결하여 승리를 거두는 등

사이가 처음부터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7년전쟁으로 인해 겪은 경제적인 타격을 보충하기 위해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에 대한 높은 인지세를 부과했고

식민지인들의 서부로의 확장을 금지했습니다.

 

당시 영국 의회에 대표를 보낼 수 없는 상황에 불만을 품어오던 식민지 주민들은

이러한 상황을 그들의 자치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결국 1773, 갈등은 보스턴 차 사건으로 분수령을 맞았고

2년 뒤 메사추세츠 렉싱턴에서 영국군과 식민지인들 사이에 처음으로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마침내 독립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독립전쟁은

왕당파라 불리던 식민지인구의 1/3 가량이 여전히 영국편에 있었기 때문에

독립주의자들에게는 매우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독립주의자들은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전보를 울려 나갔고,

1778년 프랑스가 미국에 가담하면서 점차 지구전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영국은 우수한 병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본국으로부터 한정된 지원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장기전을 피하기 위해 남부를 집중 공략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프랑스 군대와 함께 신속하게 요크타운에 집결하여 영국군을 포위했고,

영국군은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17811017일 항복했습니다.

 

긴 전쟁을 치르면서 양쪽 모두 지친 상황에서

유럽에서는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 네덜란드가 영국에 등을 돌린 상황이었고

영국 내에서도 반전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결국 영국 왕이었던 조지 3세는

1783년 파리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787년 필라델피아 대표회의에서 미국헌법이 제정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이 당선되었습니다.

 

미국은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 에스파냐, 멕시코 등으로부터

영토를 획득하여 대국으로 발전했습니다.

1803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헐값에 구입했고

1848년에는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해 그 당시 멕시코 북부지역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1867년 러시아제국과 협상하여 알래스카를 구입했고

1898년에는 하와이 공화국을 합병하여 100년에 걸쳐 영토를 넓히게 됩니다.

 

특히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인디언이라 불리는 북미 원주민과의 전쟁이 계속되었던 탓에

원주민들은 거의 멸망하였고

일부 살아남은 후손들은 보호구역에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4. 역사

미국의 북부와 남부는 식민지 시대부터 종교와 경제를 달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남부는 여전히 보수적인 전통을 고수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흑인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면화재배농장이 많았습니다.

 

1808년 이후 노예수입이 전면 금지되었음에도

남부에서는 여전히 노예매매가 성행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북부와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1850년 멕시코에서 얻은 새로운 영토에 대한 노예제 존속 여부를 두고 폭력사태로 번졌습니다.

이 당시 노예제 반대입장을 보였던 공화당 후보인 에이브라함 링컨이

1860년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남부의 7개의 노예주는 분리독립을 선언, 남부연합을 결성했습니다.

 

후에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의 4개주가 남부연합에 추가로 가담했고

남북내전이 터지게 됩니다.

1863년 치러진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북부의 군대가 남부 연합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4년에 걸친 남북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1865년 미국헌법은 아프리카 노예 400만명을 해방시켜주었으며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연방정부의 권력이 크게 강화되는 한편

남부 연합은 다시 연방으로 복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습니다.

 

미국의 영토는 계속해서 팽창했고

유럽 국가들로부터의 이민도 끊임없이 이어져 인구도 증가했습니다.

 

내연기관을 바탕으로 한 2차 산업혁명을 이루었고

토머스 에디슨과 같은 발명가들의 활약으로

날이 갈수록 미국은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한편 1914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결국 1917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베르사유 평화회의에서 큰 이득을 얻어내지 못한 탓에

윌슨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락하였고

1920년대 미국은 공화당의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이미 그 당시 미국은 1차 황금기인

이른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제규모는 유럽 전체를 추월했고

1차 대전 이후부터는 전 세계의 중심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낙관주의와 미국 내에서의 소비의 한계 등과 같은 여러 요인들이 겹치면서

192910, ‘검은 목요일사건으로 기억되는

뉴욕주식시장의 주가폭락을 계기로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주식 대폭락으로

예금은 고갈되고, 노동자의 30% 가까이가 직장을 잃었습니다.

이 여파는 순식간에 서구권 전체에 퍼져나가 세계 대공황으로 발전했습니다.

 

1932년 당선된 프랭클린 D.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 위기에 맞서 수정자본주의인 뉴딜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정부가 시장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독점기업을 통제하였고

활발하게 공공사업을 벌였으며,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193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조금씩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섰고

그 시기에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5. 역사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초기에 미국은 중립을 유지하다

19399월에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1941년부터 연합국에 물자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연합국에 대한 원조를 아끼지 않았으며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은 세계대전에 결정적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전쟁 중 미국은 연합국의 군수물자 공급을 담당하게 되었고

민간기업은 전쟁을 위한 산업을 활발하게 벌이면서 급속하게 경제가 팽창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대승리로 끝이 났으나

이때 유럽 열강들은 전쟁의 피해로 초토화가 되었고

반면 피해가 거의 없었던 미국이 세계의 맹주로 급부상합니다.

 

1945년 미국은 50개의 연합국 대표들을

샌프란시스코에 모아 UN헌장에 서명하게 함으로써

명실상부 국제정치, 국제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국가로

소련은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국가로 세계가 양분되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한반도 등에서 대리전을 통하여

끊임없이 세력다툼을 벌이는 한편,

우주개발분야에서도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는 흑인 인권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습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흑인 인권운동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하면서 일어난

반전운동과 더불어 크게 성장했습니다.

 

반항과 저항의 1960년대를 보낸 미국은

1970년대 들어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하게 되었고,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의 영향으로 냉전시대가 화해의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은 냉전시대에 소련에 대한 경계에 사용하던 막대한 에너지를

전 세계로 확장시켜 영향력을 넓혀갔으며

빌 클린턴 대통령 시기에 현대 미국 역사상 최장기간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미국의 패권주의는

2001911,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건물의 큰 폭발사고로 이어졌고,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 프라임 사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2008년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