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문화-1
미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스케일과 파급력을 자랑하는
문화 초강대국이자, 문화 콘텐츠 수출액 1위 국가입니다.
20세기부터 시작된 대중음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블루스와 재즈, 알앤비와 소울, 로큰롤과 힙합 같은 대중음악 장르가
모두 미국에서 태동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이클 잭슨, 비욘세와 같은 미국의 팝스타들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글로벌 스타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헐리우드와 미국드라마,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쇼 비즈니스는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영화와 드라마의 특징이라면
큰 시장 크기와 문화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로맨스, 액션, 코미디, 시대극, 애니메이션, 스릴러와 같은
수 많은 장르가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천문학적인 금액과 인력, 기술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시장 역시 크게 발달해있습니다.
뉴욕 맨해튼 남단에 자리한 브로드웨이는
전 세계 연극, 뮤지컬의 성지라 불리는 곳으로
타임스퀘어와 인근지역에 대형공연장과 극장 시설이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로 발전했습니다.
미국의 스포츠인프라는 전세계 최상급으로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다양한 스포츠 종목들 중에서도 미국을 대표하는 4대 스포츠가 있습니다.
2019년 기준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는 미식축구 NFL입니다.
체력소모가 많아 4대 스포츠 중에서는 가장 경기 수가 적지만
평균관중 수는 다른 종목들을 압도하는 평균 6~7만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단일종목 리그 최다시청자 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경기는
NFL의 양대 컨퍼런스 결승전인 슈퍼볼(Super Bowl)입니다.
미국에서는 “미식축구는 축제이며, 야구는 일상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야구가 대중화된 스포츠입니다.
미국의 메이저리그(MLB)는 전 세계 야구리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과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최근 들어 야구의 인기가 점점 시들해져가고 있긴 하나,
전 세계 야구선수들은 여전히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7. 문화-2
‘드림팀’이라는 단어는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90년대부터 세계 최고의 농구리그로 발돋움했고
인기와 규모 면에서 실내스포츠 중 NBA에 필적할 종목이 없을 정도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미식축구에 이어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장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4대 스포츠 중 마지막은 아이스하키 리그 (NHL)입니다.
이 종목은 계절을 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3대 스포츠에 비해 인기가 덜한 편이나
그럼에도 미네소타, 뉴욕, 보스턴에서 인기가 상당합니다.
미국은 국토가 광활하다 보니
각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명소들 역시 많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들을 살펴보면
동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 브리지,
중서부 시카고의 클라우드 게이트 등이 있습니다.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Liberty)은
1886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것으로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까지도 미국을 대표하는 여신상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총 길이 2,800m의 아름다운 주홍빛 다리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올린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예술품 외에도
애리조나 주에 있는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이나
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같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관광명소도 많습니다.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과 같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해산물 자원이 풍부하며
또한 세계 최대의 농업국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풍부한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출신이 다른 이민자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다양한 음식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미국의 음식문화는 20세기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패스트푸드의 확산과 이에 따른 외식문화로 큰 변화를 겪습니다.
실용적인 미국인들의 특성에 맞춘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테이크아웃 방식이 생겨났으며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햄버거와 핫도그, 피자 등입니다.
특히 미국인들의 소울푸드라 할 수 있는 햄버거는
독일의 햄버그 스테이크를 미국식으로 먹기 쉽게 만든 음식으로
빵 사이에 야채와 고기패티를 넣어 만듭니다.
또한 매년 11월 4째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을 맞아 차리는 추수감사절 정찬(Thanksgiving Dinner)은
칠면조요리와 호박파이 등을 준비하며 가족과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8. 인물- 빌 게이츠
윌리엄 헨리 빌 게이츠 3세 (William Henry Bill Gates III)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이자 컴퓨터 천재
세계 최고의 갑부 중 한명이자, 대표적인 기업인입니다.
빌 게이츠는 1955년 10월, 워싱턴 주 시애틀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교사였으며
외할아버지는 미국 국립은행의 부은행장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동기질을 타고 난 그는
엄청난 독서광에 수학적으로도 재능이 뛰어난데다
IQ는 160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는 13세에 상류층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입학하였고
그때부터 컴퓨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응용수학을 공부했던 빌 게이츠는
이미 전문학술지에 논문을 실을 정도로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고
1975년 폴 앨런과 함께 자본금 1500달러를 가지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후 대학교를 자퇴해버렸습니다.
몇 년 뒤, IBM사에서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IBM에 PC용 운영체제를 공급하기로 한 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때 빌 게이츠는 사상 최초로 대중화된 컴퓨터 운영체제인
MS-DOS를 개발하여 돈방석에 앉게 됩니다.
1981년부터 1995년 개발이 중단될 때까지
MS-DOS의 성공으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작은 프로그래밍 회사에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큰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고
1986년 회사가 주식에 상장되면서
빌 게이츠는 31살의 나이에 역사상 가장 어린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1995년 독자적인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 95를 개발하여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하였고
현재까지도 전 세계 운영체제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소프트웨어 시장의 초강자입니다.
컴퓨터 운영체제 뿐 아니라,
MS 오피스와 콘솔게임기인 엑스박스 등과 같은 여러 사업을 함께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2008년 6월, 공식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 은퇴를 선언했고
현재 최고 경영자는 인도 출신의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입니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거의 대부분 세계 갑부 순위 1위를 차지했던 빌 게이츠는
2017년 아마존 회장에 1위 자리를 잠시 내주었지만
2019년 현재 다시 1위를 탈환함으로써
여전히 세계적 갑부의 대명사임을 인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당시만 하더라도 독과점과 같은 안좋은 이미지,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의 불미스러운 일화 등으로 인해
‘실리콘밸리의 악마’ 등으로 묘사되기도 하였지만,
은퇴 후에는 파격적인 자선사업으로 그동안의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습니다.
그가 창업한 자선재단인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규모로, 단독으로 미국전체 자선재단의 약 40%를 웃도는 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부호들에게 기부에 동참할 것을 설득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자신이 사망했을 경우 전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증하기로 한 것이 공개되어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기도 했습니다.
8. 인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는 1990년대 헐리우드 꽃미남의 아이콘으로 시작해,
지금은 숱한 명연기와 걸작들을 남기며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환경운동가입니다.
1974년, 그는 이탈리아-독일계 혼혈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임신 중일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보는 도중에
처음으로 태동을 느꼈다 하여, 이름을 레오나르도라 지었다고 합니다.
그의 부모는 디카프리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했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로스엔젤레스 교외지역에서 성장했습니다.
4살 무렵부터 CF와 TV드라마 단역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시작한 디카프리오는
학창시절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본격적으로 연기에 뛰어들었습니다.
1991년 영화 ‘크리터스 3’에서 영화데뷔를 한 그는
1993년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조니 뎁의 동생이자 지적 장애를 가진 인물을 열연하면서
대중과 평론, 양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디카프리오는 만 18세의 나이에 시카고 영화비평가협회상
전미 영화비평가위원회상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대에 접어든 디카프리오는 외모의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청소년을 연기한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 이후
천재 시인 랭보역할로 열연한 ‘토탈 이클립스’를 거쳐
1996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전 세계적인 청춘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디카프리오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1년 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대작영화 ‘타이타닉’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은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1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으며
전 세계 1위 흥행기록을 달성하는 등 엄청난 기록을 쏟아냈고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인기스타가 되었습니다.
디카프리오는 청춘스타 이미지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였으며
‘갱스 오브 뉴욕’ ‘캐치 미 이프 유 캔’등을 통해
점점 더 연기파배우로 거듭났습니다.
‘에비에이터’ ‘셔터 아일랜드’ ‘인셉션’ ‘레버넌트’ 등
명작영화를 거치면서 활발한 배우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디카프리오는
과거 최고의 청춘스타에서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2016년, 영화 ‘레버넌트’로 디카프리오는 5번의 도전 끝에
88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동물보호, 환경관련단체에 지속적으로 기부를 해왔고
관련행사도 주최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디카프리오는 어릴 적부터 멸종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해양학자가 되었을 거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영화 ‘타이타닉’의 성공 직후
만 24세의 나이에 디카프리오 재단을 설립하였고
해양 보호를 위해 70억원을 기부한 적도 있습니다.
디카프리오는 2014년 UN 평화사절도 임명되었으며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등
배우 뿐 아니라 환경운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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