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미얀마’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미얀마 연방공화국입니다.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반도와 인도 대륙 사이에 위치하며
수도는 네피도입니다.
미얀마의 국기는 2010년 10월,
국명을 미얀마연방에서 미얀마 연방공화국으로 바꾸면서 새롭게 변경하였습니다.
이전 국기는 파랑 직사각형 안에 6개의 별이 있는 국기였으나
새롭게 등장한 현재의 국기는 노랑, 초록, 빨강의 가로 3색기 바탕에
중앙에 하얀색 별이 새겨진 모양입니다.
노란색은 단결을, 초록색은 평화를 붉은색은 용기를 상징하며
중앙의 하얀색 별은 연방의 단일성을 상징합니다.
서쪽은 인도, 북동쪽은 중국, 동쪽은 태국, 라오스와 접하는
미얀마의 총 국토면적은
약 676,000 ㎢로 세계 38위이며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 중에서 가장 큽니다.
미얀마는 2019년 기준으로 약 5,4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26위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인구수와 비슷합니다.
미얀마의 1년 총 GDP는 2019년 기준 약 660억 달러
이는 세계 75위로
비슷한 GDP의 수준의 국가로는 불가리아, 벨라루스가 있습니다.
미얀마의 인구 구성은
버마족이 약 56%, 카렌족이 10%, 샨족이 6.5% 이며
그 외 기타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용어로는
미얀마어를 사용하나, 영어도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주민의 90% 가량이 불교를 믿고 있으며,
그 외에 소수의 주민이 이슬람교, 기독교, 힌두교 등을 믿습니다.
2. 역사
고대 미얀마의 남부 지역에는 몬족과 중부에 퓨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몬족은 인도로부터 농업기술과 불교, 힌두교를 전수 받아 도시국가를 형성하였는데
9세기 무렵 버마족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미얀마의 첫 번째 왕조인 버간 왕조를 세웁니다.
11세기 아노우라타 왕의 집권 시기에 전성기를 맞은 버간 왕조는
몬족의 거점이었던 남쪽지역과 샨 고원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1287년 몽골군의 침공을 맞아 멸망했고
미얀마는 여러 종족으로 나뉘어져 혼란한 시기를 겪게 됩니다.
16세기에 들어 싯따웅강 중류의 따웅우 지역에
버마족의 2차 통일왕조인 따웅우 왕조가 성립되는데요
특히 뛰어난 정복군주였던 버인나웅은
서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중국과의 경계지역까지 진출하였으며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까지 공략할 정도로 맹위를 떨쳤습니다.
하지만 잦은 전쟁과 내전으로 피폐해진 따웅우 왕조는
1752년 이곳으로 북상해온 몬족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이후 버마족은 다시 재집결하여
꼰바웅 왕조를 세워 몬족을 몰아내고 미얀마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1767년에는 아유타야와 청나라를 공격하는 등
전성기를 맞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군과 충돌이 생기면서
결국 1824년 1차 영국-버마전쟁이 터지게 됩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버마족과 영국의 충돌은 2차, 3차 전쟁까지 이어졌고
결국 미얀마는 영국령 인도제국의 일부로 병합되어 멸망하고 맙니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버마는
1942년 태평양 전쟁 중 잠시 동안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도 하였으나
전쟁 말기 영국이 다시 버마를 재탈환하였습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버마는
의원내각제 형태의 민주주의를 채택하였으나
중앙정부가 4개의 소수민족들의 자치권을 빼앗았고
정치적 지도자였던 아웅 산 장군이 암살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심각한 내전에 휩싸이게 됩니다.
1962년 네 윈(Ne Win) 장군 주도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미얀마의 민주정치는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고
1974년 네윈은 버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네 윈은 거의 26년간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군부통치를 펼쳤는데요.
버마식 사회주의란
불교와 정치의 일원화로, 소수민족과 소수종교를 억압했고
철저한 고립정책을 고수하며, 모든 산업을 국유화했습니다.
이러한 버마식 사회주의 경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일으켰습니다.
1988년 기존 정권이 무너지고 과도 군사정부가 성립되었으나
이렇게 성립된 미얀마의 군사정권 역시
민주화를 억압하고 독재정치를 펼쳤습니다.
2007년 승려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민주화시위가 일어났고
국제사회에서의 압박도 무시할 수 없었던 미얀마는
2010년 11월 7일, 민주적으로 이양하기 위한 총선이 실시되었고
국호도 미얀마 연방에서 미얀마 연방공화국으로 개정되었습니다.
3. 정치 & 경제
1948년 독립 후에 2010년 총선실시 이전까지
미얀마의 정치는 60년에 가까운 군부독재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UN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질타와
2007년 승려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샤프란 시위의 결과
군사정권은 해체되었고 미얀마는 신헌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얼마간 미얀마의 정치상황은 혼란스러웠으나
2011년 4월 테인 세인(Thein Sein)이
민선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정치 체제가 전면 개편되었습니다.
현재 미얀마의 정치는 대통령 중심제와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국회는 양원제로 상원에 해당하는 국민의회(Pyithu Hluttaw)와
하원에 해당하는 민족의회(Amyotha Hluttaw)로 나뉩니다.
주요 정당으로는 민주국민연맹(NLD), 통합단결발전당(USDP) 등이 있습니다.
미얀마는 1930~40년대까지만 해도
태국과 더불어 아시아 최대의 쌀 생산국이었으나
오랜 군부독재의 여파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왔기 때문에 수출이 매우 저조한 편입니다.
이 때문에 미얀마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동남아시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로
만성적인 물자 부족과 높은 실업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전체 경지면적 중 약 60%에서 쌀농사를 하고 있으며
총 수출에서 70%를 차지하는 것은 고무가공품입니다.
전 국토의 50%에 해당하는 삼림에서는
티크 등 재질이 단단한 목재자원이 풍부한 편으로
전 세계 티크 생산량의 2/3 가량이 미얀마에서 생산됩니다.
석유와 각종 지하자원도 풍부한 편이며
특히 미얀마의 보석 생산량이 많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루비의 90%가 미얀마에서 생산되며
스피넬, 비취,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의 생산량도 상당합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미얀마는 북서쪽으로는 방글라데시와 인도
북동쪽으로는 중국의 티베트자치구와 원난성
남동쪽으로는 라오스,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서쪽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남북으로 긴 마름모꼴을 이루고 있으며
지형적으로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으로
국토 중앙에 2,170km 길이의 이라와디 강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샨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동부 고원지대와
다수 종족인 버마족이 주로 거주하는 중부 평야지대
그리고 서북쪽의 산악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최북단에는 해발 5,881m의 만년설로 덮여있는
동남아 최고봉인 카까보라지 산이 있습니다.
국토가 남북으로 길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기후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지역은 열대 몬순기후로 1년 내내 기온이 높고
우기철인 여름에 강수량이 집중됩니다.
1989년 이전까지 ‘버마(Burma)’라는 국명을 사용했으나
이 호칭이 영국식민지 시대의 잔재라는 인식과
135개의 소수민족을 아우르지 못한다 하여,
현재의 미얀마(Myanmar)로 국호를 변경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미얀마와 버마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을 비롯해 여러 종교가 있으나
미얀마는 압도적으로 소승불교 신자가 많은 국가로
출생부터 사망까지 불교가 미얀마인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출생하면 부모들은 가장 먼저 사원을 찾아 아이의 이름을 정하고
특히 남자아이의 경우 성인이 되기 전까지 꼭 한 번은 단기 출가를 해야 하는 전통이 있기도 합니다.
불교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미얀마에서 불교를 존중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미얀마는 대부분의 지역이 여행유의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치안 상황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에게는
옛 수도인 양곤과 볼거리가 많은 만달레이,
고산지대에 자리 잡은 인레호수가 유명한 관광명소인데요.
특히 잘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로는
양곤의 크고 아름다운 황금탑인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나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만달레이의 우베인 다리를 들 수 있습니다.
5. 인물
미얀마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미얀마 독재정부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쳤던 아웅산 수 지 여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2010년, 가택연금에서 석방되어 정치활동을 재개하였으며
현재 미얀마의 민주국민동맹의 당수이자 국가고문 및 외무부 장관을 맡고 있습니다.
그녀는 1945년 미얀마 독립영웅이었던 아버지 아웅산과
복지부장관 등 고위직을 지낸 어머니 킨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그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를 독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국민적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적에 의해 암살당한 뒤
아웅산 수 지는 어머니와 함께 미얀마를 떠나 외국도피생활을 해야 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여 철학과 정치,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아웅산 수지는 1988년 미얀마로 귀국하였고
양곤에서 50여만 명의 민주화시위 군중이 모인 가운데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민주화 투사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아웅산 수 지 여사는 1989년 처음으로 가택연금 조치를 당했고
그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총선에서 압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1년 민주화 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그녀는 여전히 미얀마 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2010년 최종석방에 이르기까지, 휴지기를 포함하여
총 15년을 가택연금 상태로 갇혀 지내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으나
2012년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은
201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비록 남편과 자녀가 영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그녀는 국가자문역 겸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실권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족 학살을 방관했다는 전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동안 수상했던 각종 인권상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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