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적, 과학적, 철학적 회의주의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시작합니다 [00:30].
- 그리스 회의주의의 세 가지 주요 인물인 피론,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를 소개합니다 [01:13].
- 고르기아스의 저서 "비존재론에 대하여"에 나오는 그의 세 가지 유명한 명제를 설명합니다 [02:18].
- 그런 다음 비디오는 이러한 각 명제에 대한 고르기아스의 주장을 분석합니다 [03:01].
- 회의주의의 자기 모순적인 본질을 논의하며 결론을 내립니다 [09:50].
오늘은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을 했던
철학자이자 수사학자인 고르기아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고르기아스는 ‘극단적인 회의론자’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먼저
‘회의주의’가 뭔지
한번 큰 틀에서 먼저 정리를 하고
고르기아스의 그 유명한 세계의 명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회의주의’에 대해서 말할 때
다음 세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적 회의주의
-과학적 회의주의
-철학적 회의주의
-종교적 회의주의는
어떤 특정 신이나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을 말하는 거고,
-과학적 회의주의는
초능력, 심령술, 미신이나 수맥, 점, 굿 등과 같은
의사 과학과 같은 것을 믿지 않는 입장을 말하는 겁니다.
-철학적 회의주의는
종교적 회의주의나 과학적 회의주의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데요.
그것은 특정 종교나 특정 의사 과학을 믿지 않는다는 입장이 아니라
진리라는 것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입장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회의주의자로 세 사람을 꼽습니다.
피론,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이렇게 3인방인데요.
피론은
어떤 것이 확실한 진리인지는 알 수 없으니 진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하지 말자
즉 진리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자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입장을 피론주의라고 합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면서
절대적인 진리, 절대적인 도덕과 같은 것은 없으며
세상의 모든 진리와 모든 도덕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르기아스는
세상에 진리 따위는 없으며
설령 진리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의 입장이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죠.
프로타고라스는 모든 게 다 진리라고 했고
고르기아스는 진리는 없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결론은 비슷해졌어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진리라는 주장은
결국 어떤 절대적인 진리도 없다는 주장과 같아지기 때문이죠.
고르기아스는 자신의 대표적인 글인 <비존재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3개의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설령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셋째, 설령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전달할 수 없다.
첫 번째 주장은 존재론에 관한 주장이고
두 번째 주장은 인식론에 관한 주장이며
세 번째 주장은 언어에 관한 주장입니다.
따라서 이 세 명제는
철학의 많은 분과를 아우르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2500년 전 명제라고 해도, 그냥 막무가내로 주장한 것은 아니겠죠.
고르기아스는 나름 논증을 제시했었습니다.
이제 고르기아스가 이 명제들을 어떻게 증명했는지
하나하나 뜯어서 보겠습니다.
고르기아스의 첫 번째 명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주장은 세 단계를 거치는데요.
A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B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A와 B로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A.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증명해 보죠.
먼저 비존재가 존재한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그런데 비존재는 정의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죠.
따라서 비존재가 존재한다는 말은
비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모순이죠.
이러한 모순이 발생한 이유는
비존재가 존재한다고 가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론은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되죠.
이제 ‘B.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증명해 보죠.
1) 먼저 존재가 존재한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2) 그러면 이 존재는 영원히 존재를 해왔거나 아니면 중간에 존재하게 된 것이겠죠.
3) 영원히 존재했다고 한번 가정을 해봅시다.
4) 그런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시작이 없죠.
5) 시작이 없는 것은 또 제한이 없어요.
6) ‘제한이 없다’는 얘기는 ‘아무 데도 없다’는 얘기예요.
따라서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즉 3번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가정을 하니까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에 도달을 하게 된 거죠.
그럼 이번엔
8) 중간에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가정을 해보죠.
중간에 존재하게 됐으니까
9) 이것은 다른 무엇으로부터 존재하게 된 것이겠죠.
그러면 다른 그 무엇은 또 다른 무엇으로부터 존재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그 무엇은 또 다른 무엇으로부터 존재하게 된 것이겠죠.
이렇게 무한히 소급될 순 없겠죠.
그래서 어떤 것은
10)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다시 3번으로 왔어요.
3) 영원히 존재한다고 가정을 하게 된 거죠.
4) 따라서 영혼이 존재하는 것은 시작도 없고
5) 시작도 없는 것은 제한도 없으며
6) 제한이 없는 것은 아무 데도 없으며
7)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또다시 도달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B.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A.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B.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두 개의 전제로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겁니다.
/설령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이제 두 번째 명제,
“설령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명제를 증명해 보죠.
1) 먼저 우리는 불을 뿜은 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그 용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죠.
3) 따라서 생각과 존재하는 어떤 것은 무관합니다.
4) 그리고 존재하는 어떤 것은
생각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죠.
5) 그래서 우리는 존재하는 어떤 것을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을 하게 됩니다.
이 논쟁을 한마디로 말하면
존재와 생각은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만 보면 사실 이 주장은 상당히 부당하죠.
3번에서 4번으로 넘어갈 수 없어요.
즉 우리의 생각과 존재하는 어떤 것이 무관하다고 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고
존재하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무튼 고르기아스의 논증은 이렇습니다.
3번과 4번 사이에 고르기아스가 생각하는
어떤 중간 단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것만 보면 타당한 논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설령 어떤 것을 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이제 세 번째 명제
“설령 어떤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명제를 봅시다.
1) 우리는 로고스, 즉 언어를 통해서 무언가를 전달하죠.
2) 그런데 이때 전달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라, 사실 로고스입니다.
3) 그런데 로고스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4) 따라서 우리는 존재하는 어떠한 것을 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논증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과 언어는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뭔 말인가 싶어서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까 이런 설명이 나오더라고요.
“우리의 귀는 색을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데
어떻게 우리는 색깔에 대한 관념을 전달할 수 있는가?”
이제 이게 무슨 말인지 한번 설명을 해보죠.
누군가 “이 장미는 빨갛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는 이런 장미를 떠올리겠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런 장미, 어떤 사람은 이런 장미, 어떤 사람은 이런 장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한테는 이게 빨간색이지만
이 사람한테는 이게 빨간색이고
이 사람한테는 이게 빨간색이고
이 사람한테는 이게 빨간색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사람들은 서로 각각 다른 시각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보이는 이런 색깔을
평생 빨간색으로 알아봤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빨간색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짜 다른 사람이 빨간색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면
빨간색이라는 것은
사실 지시만 할 수 있는 것이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고서는
빨간색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빨간색이라는 관념은
개인의 경험일 뿐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것은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철학에서는 [감각질 문제]라고 하는데요.
이 감각질의 문제가
생각과 언어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는
고르기아스의 명제를 설명하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해서 설명을 해 보았습니다.
--정리합시다
오늘은 고르기아스의 회의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고르기아스의 결론은 이겁니다.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와 생각은 일치하지 않으므로
-진리가 존재한다고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생각과 언어는 일치하지 않으므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달되지 않는다.
결국 고르기아스는 진리에 대해서
3개의 장막을 쳐놓은 셈인데요.
그래서 고르기아스를 ‘극단적 회의론자’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회의주의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회의주의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회의주의에 따르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진리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의주의에 따르면
‘진리는 전달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진리는 전달될 수 없다’라고 하는 진리 그 자체를
전달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회의주의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르기아스의 회의주의에 대한 문헌에는
아주 여러 버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설명 방식도 굉장히 많이 있죠.
제가 그것을 일일이 다 설명드릴 수는 없고
오늘의 설명은
<위키피디아> 하고 <인터넷 철학백과사전>을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
오늘은 이만 마치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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