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멜리수스의 주장: 변화하려면 대상이 변화 전후에 동일해야 하지만, 변화는 대상의 속성을 바꾸므로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00:49].
- 제논의 역설: 운동의 불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02:22].
-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론: 공간과 시간은 무한히 나눌 수 있으며, 시간의 순간은 지속 시간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을 반박합니다 [05:45].
- 베르그송의 관점: 시간은 공간처럼 나눌 수 없고 멈출 수 없으며, 연속적인 흐름이라고 주장합니다 [08:42].
비디오는 멜리수스와 제논의 주장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의 논리를 검토하면 변화, 정체성, 시간, 운동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결론짓습니다 [10:46].
서양 철학에서 “만물은 변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오래된 논란이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변한다”라고 주장을 했고
파르메니데스는 “만물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을 했죠.
그런데 파르메니데스에게는 2명의 제자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한 사람은 멜리서스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제논입니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스승인 파르메니데스의 주장
즉 “만물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만물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는지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멜리서스의 논증
먼저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멜리서스의 논증을 보겠습니다.
1) 어떤 사물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변화하기 이전의 사물과 변화한 이후의 사물이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이 주장은 당연하죠.
어떤 두 개의 것이 동일한 것이 아니면
그것을 변화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어린이 마이클 잭슨이 어른 마이클 잭슨으로 변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어린이 마이클 잭슨과 어른 마이클 잭슨이
동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어린이 마이클 잭슨이 어른 타이슨으로 변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마이클 잭슨과 타이슨이 동일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변화는 변화하기 이전의 사물과
변화한 이후의 사물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변화는 어떤 사물의 속성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데요.
어린이 마이클 잭슨은 어린이 속성을 가지고 있고
어른 마이클 잭슨은 어른 속성을 가지고 있죠.
두 개의 속성이 달라요.
그런데 속성이 다르면 그것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죠.
자 보세요.
이 공하고 이 공은 달라요.
왜냐하면 하나는 파란색 속성을 가지고 있고
하나는 빨간색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즉 가지고 있는 속성이 다르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3) 따라서 변화는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정리하자면
변화는 동일성을 전제로 하는데
변화하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제논의 패러독스
이번엔 제논의 방식을 봅시다.
제논은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4개의 패러독스를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패러독스입니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달리기를 한다고 합시다.
아킬레우스의 달리기 속도는
거북이 속도의 10배가 빠르기 때문에
거북이는 아킬레우스의 100m 앞에서 출발한다고 합시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던 자리인 100미터 앞으로 가면
거북이는 이미 10미터 앞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킬레우스가 10m를 가면
거북이는 이미 1m 앞에 가 있겠죠.
그리고 다시 아킬레우스가 1m를 가면
거북이는 0.1m 앞에 가 있습니다.
즉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던 자리까지 가면
언제나 거북이는 더 앞에 나가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둘째 이분법의 패러독스입니다.
우사인 볼트가 여기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달린다고 합시다.
비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기 2분의 1 지점인 c 지점을 통과해야 하죠.
그리고 다시 여기에서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2분의 1 지점인 d 지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여기에서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2분의 1 지점인 e 지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무한한 지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사인 볼트는 결승점에 점점 가까이 갈 수 있지만
결코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셋째 나르는 화살 패러독스입니다.
화살이 날아가는 한 순간을 포착해 봅시다.
이 순간에 화살은 멈춰 있죠.
다음 순간을 볼까요?
다음 순간에도 화살은 멈춰 있어요.
모든 순간마다 화살은 멈춰 있어요.
그런데 화살이 날아가는 시간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이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화살은 멈춰 있다고 봐야 해요.
왜냐하면 시간은
화살이 멈춰 있는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넷째 기차역 패러덕스입니다.
2번 기차는 정지해 있고, 1번 기차는 오른쪽으로, 3번 기차는 왼쪽으로
똑같은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시다.
기차들이 일직선이 되는 순간을 봅시다.
처음 상태와 비교해서 보면
1번 기차와 2번 기차는 1량의 공간 차이가 있었고,
1번 기차와 3번 기차는 2량의 공간 차이가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일직선상에 있게 된 걸 보면
한 량이 움직인 시간과 두 량이 움직인 시간이 같다고 봐야 합니다.
즉 어떤 시간과 그 시간에 두 배가 되는 시간이 같다는 겁니다.
그러면 제논의 결론은 뭐냐?
그것은 운동이 가능하다라고 보면
이러한 모순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운동이 불가능하다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착각이라는 겁니다.
감각 재료가 주는 경험은 착각이라는 거죠.
따라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성의 눈으로 꿰뚫어 보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운동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제논의 결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론
제논의 패러독스가
사실은 진짜 페러독스가 아니라고 하는 여러 가지 해법이 있는데요.
수학적 해법도 있고, 물리학적 해법, 그리고 철학적 해법도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철학적 해법이죠.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해법을 봅시다.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아킬레스와 거북이 패러독스와 이분법의 패러독스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이에 계속해서 근접하지만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고,
우사인 볼트는 계속해서 결승점에 근접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킬레우스의 속도와 거북이의 속도가
2배 차이가 난다고 하면 그
것은 바로 이분법의 패러독스와 같은 패러독스가 됩니다.
보세요.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는 지점까지 가는 것 하고
우사인 볼트가 목적지의 중간 지점으로 계속해서 가는 것하고 같습니다.
이러한 반복이 계속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우사인 볼트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두 패러독스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자, 이 두 패러독스의 요지는 이겁니다.
1) 아킬레우스와 우사인 볼트가 지나가는 공간은 무한히 분할될 수 있다.
2) 그런데 이러한 공간을 지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유한하다.
3) 유한한 시간에 무한한 공간을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2번을 공격합니다.
공간을 무한하게 분할할 수 있다면
시간도 무한히 분할할 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나가야 될 공간이 무한하게 짧아진다면
그러한 공간을 지나가는 데 필요한 시간도
무한하게 짧아질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페러독스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이번엔 나르는 화살 패러독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법을 봅시다.
불경에 찰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략 75분의 1초를, 1 찰나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찰나가 길까요? 순간이 길까요?
정답은 이 둘을 비교할 수 없다, 입니다.
왜냐하면 찰나는 시간적 길이를 가지지만
순간은 시간적 길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순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우사인 볼트가 뛰어가고 있다고 합시다.
지금 이 순간 멈춰 보죠.
이때 지금 이 순간의 시간적 길이는 얼마죠? 1초인가요?
0.001초인가요?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에 길이는 없어요.
지금 이 순간은 과거와 미래의 경계일 뿐입니다.
경계에는 길이가 없어요.
그것은 마치 영토의 경계를 나누는 선에
두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개념적으로 보면 두께는 없어요.
마찬가지로 순간도 시간적 길이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순간을 아무리 합쳐도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순간들이 되질 않죠.
그런데 제논은 시간을 쪼개서 순간으로 만들고
한순간에 정지해 있는 것을 보여주면서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베르그송의 반론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의 반론은 조금 더 포괄적인데요.
그는 시간이라는 것은 공간과 달리
더하거나 빼거나 나누거나 정지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
그냥 지속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는 지점까지 간 순간을 정지시킬 수 없으며
우사인 볼트가 절반을 지나는 순간을 정지시킬 수 없으며
나르는 화살을 정지시킬 수 없으며 기차를 정지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패러독스가 생긴다는 겁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볼까요?
이 음을 잘라서 한번 들어보죠.
그러면 원래 음은 다 사라져 버리고 없애요.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시간을 나누면
그것은 더 이상 똑같은 시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 그런데 왜 우리는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것은 시간을 공간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기차의 패러독스를 보면 명백하게 나타나는데요.
잘 보세요.
여기에서 제논은 공간적 길이가 2배라고 해서
2개의 공간을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도 2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차역 역설이야말로 제논의 패러독스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변화와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멜리서스의 논쟁과 제논의 패러덕스를 보았습니다.
멜리서스는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연역적 방법으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제논은 페러독스를 이용한 귀류법을 통해서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귀류법이란
어떤 가정을 전제하고
그러한 전제로부터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전제가 틀렸다는 결론에 도출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제논의 방식은
어떤 것이 운동한다고 했을 때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멜리서스의 논증이나 제논의 패러독스는
조금 황당해 보이죠.
그렇다고 해서 “이건 그냥 말장난이야” 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나름대로 좀 그럴듯해 보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이들은 어찌 되었든
비교적 논리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구성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이들의 논리적 주장 중에 어느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를 따져 들어가다 보면
뭔가 새로운 생각들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멜리사스의 논쟁을 검토하면서
변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동일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요.
제논의 패러덕스를 검토해 보면서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운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철학적으로 아주 풍부한 논의를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만 마치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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