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어지면요, 사람이 요게 내 것인지 남의 건지 모릅니다. 불교에서 어리석음이라면 오온을 얘기하는데요, 오온이 뭐가 있죠? 여러분 잘 아시는 색, 수, 상, 행, 식. 하면 요게 지금 한 묶음입니다. 오온이 원래 한 덩어리잖아요. 오온을 나라고 여기는 게 어리석음이죠. 내가 몸뚱이가 같구요, 내 색은 몸뚱이입니다. 수는 느낌이에요. 상은요? 이런 저런 생각들이요. 행은요? 여러분의 의지, 의도들. 식은 식별입니다. 색은 어떤 물질이구요. 여러분 마음에서 오온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건요, 부처님이 일체는 오온일 뿐이라고 했어요. 오온이 여러분의 모든 존재 전부에요. 그렇죠?
여러분 몸뚱이, 세상, 색깔입니다. 거기에 대한 느낌 갖고 계시죠? 그 느낌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 하고 계시죠? 생각이라는 건요, 마음에, (생각 상)자는요, 한문은 법문 안에 다 있고요, 마음의 상을 떠올려 가지고 조작하는 행위입니다. 요거는 팬이네. 요게 상이에요. 요것은 팬이라는 상을 가지고 이미지랑 매치시키고 있죠? 상을 가지고 우리 마음속에 생각을 전개하는 게 다 상입니다. 행은요? 이런 그 상, 이전에 의도들이에요. 요러고 싶고, 저러고 싶고, 마음의 움직임들. 식은요? 내가 요게 팬인지 정확히 아는 게 식입니다. 제가 식별하는 거예요. 요건 팬, 요건 뭐. 정확히 상 이전의 내 마음에서 식별하는 겁니다. 상을 통해서 식별하는 거죠. 그래서 요 5개는요, 여러분이 지금 마음의 전부에요.
절 보고 계시죠? 제 색을 보죠. 보면서 뭔가 느낌 갖고 계시죠? 저건 이렇고 저렇고 상이 있으시죠? 생각이 있으시죠? 그래서 지금 이 강의를 들을지 말지 어떤 의지가 있으시죠? 거기에 통체적으로 여러분은 지금 식별하고 계세요. “이렇다. 저렇다.” 이 식별하고요, 우리가 의식하고 다릅니다. 이 식별은요, 분명히 대상을 가지고 있는 의식이기 때문에 저거는 연기법 안에 존재합니다. 일어나고 사라져요. 이 팬이 사라지면 그 식별도 사라져요. 이해되십니까? 지금 초기 불교하신 분들이요, 제가 안타까운 게 초기 불교 열심히 번역 잘해주시고 거기까지는 좋은데, 이 식을요, 의식 전반으로 번역해서 열반은 의식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가는 건 아주 오버입니다. 요건 의식 중에 아주 특별한 식이에요.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이에요.
대상을 우리가 알아차릴 때, 알아차림 자체가 아니라 “요놈은 뭐네,” 아는 게 식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색수상행식의 식이 의식 전체가 아니라고요. 의식 중의 일부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찾아야 되는 아라한인데, “식은. 식은 오온이고. 오온은 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열반이 의식이겠냐?” 라고 해버리면요, 열반은 뭘까요? 있지도 않은 열반을 찾게 됩니다. 지금 이런 얘기 진지하게 하십니다. 제 얘기가 아니에요. 의식은 열반이 아니라고 그러고, 열반은 실체가 아니라고 그러고, 열반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고. 열반은 우리 마음속에서 찾을 수 없는 거라고 그러고, 자꾸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고 어떻게 열반을 찾습니까? 열반을 못 찾는 법을 지금 이 사회에서요, 그대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부법들이.
첫째로요, 열반을 그런 식으론 죽어도 못 찾습니다. 그런 식의 열반은요, 우리 마음 밖에 있는 열반을 여러분 어떻게 찾아요? 그건 개념으로 밖에 없는 겁니다. 이해되십니까? 어느 남방불교에서두요, 어느 아라한이 열반을 갖다가 그냥 개념이라고 합니까? 그 아라한들은요, 남방의 성자들은요, 열반을 체험했다고 얘기를 해요. 자~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체험하실 수 있다는 얘긴요,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겁니다. 열반이. 마음 밖에 있는 건 여러분 체험하실 수가 없어요. 이해되십니까? 마음 밖에 있는 걸 체험 못해요. 이건 서양 철학의 제일 강령입니다. ‘동질의 것만이 동질의 걸 이해한다.’ 우리가 신을 이해한다는 얘기는요, 기독교에서요, 우리가 신을 이해, 신을 갖다 만날 수 있다는 얘기는 우리 안에 신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우리 안에 성령을 설정 안할 수가 없어요. 그게 없다면 우린 신을 만날 수가 없으니까요.
개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요? 인간은 신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영원히. 성령이 중간에서 매개해 주기 때문에 우리가 신의 사정을 알게 되는 거예요. 바오로가 성령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다고 얘기한 게, 우리 안에 성령이 있기 때문에 이게 가능해 지는 겁니다. 우리 안에 니르바나가 없다면 여러분은 찾지 마세요. 니르바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니르바나가요, 내 마음 밖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찾지 마세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음 안에 있는 거 밖에 못 봐요. 마음에 들어 온 오감, 색깔,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 생각. 의지. 식별. 마음에 들어온 생각. 요 물질도 객관적인 물질이 아닙니다. 제가 표상이라고 많이 번역해요. 요 색깔은요, 내 마음에 떠오른, 우리 뇌 속에 들어 온 색깔을 말하는 거지. 객관적인 색깔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음 안에 들어온 것만 알 수 있으니까요. 이해되십니까? 요 모든 게요, 오온이라고 하고, 그 오온이 나의 전부라고. 내가 느껴지는 요 색깔, 내 몸뚱이, 내 감정, 내 의식, 의식 중에서 요걸 인식하는 의식이요, 그게 나의 전부라고 살고 계시죠? 그래서 괴롭다는 겁니다. 부처님은 오온이 = 고라고 해요. 염처경 보세요. 염처경에요, “고통이 뭐냐?” 한참 얘기하시다가 “요약하면 오온이 고통이다.” 핵심만 말하면 오온이 고통이다. 여러분이 괴로운 이유는요, 여러분이 뭔가 대상을 인식할 수 있고, 거기에 느낄 수 있고, 생각 할 수 있고 의지를 품고, 여러분이 그 대상에 대해서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괴로워요. 괴로움이 저 오온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괴로움은 없습니다. 즉 여러분이 마음속에서 오온만 내려놓으시면요, 고 때의 마음 상태가 청정한 마음이고, 그게 니르바나입니다.
그게 다른 말로 알아차림이에요. 여러분이 알아차리시기만 하면 알아차림에는 고가 붙지 못해요. 치가 붙지를 못해요. 탐이 붙지를 못해요. 순수한 알아차림이요. 그런데 왜 우리가 호흡을 알아차리고 나는 괴로운가? 요게 동반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위빠사나를 하는데 나는 고에서 소멸이 안 된다고 하시면요, “호흡 알아차려야 되는데, 아~ 또 놓쳤네.” “아~ 나 다리 알아차려야 되는데 또 놓쳤네.” 지금 계속 오온이 일으키고 계신다는 거 아시겠습니까? 다리라는 색, 호흡이라는 색, 거기에 대해 놓쳐서 아쉽고, 잡아야 되는데 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그 의도를 품고 계시고, 내가 잘못했다고 또 느끼고, 판단하고, 계속 이걸 하고 있으니 언제 고에서 벗어납니까? 잠시라도 저게 떨어져서요, 알아차리시다보면요, 알아차림이 승해지면요, 여러분은 고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여러분 안에 알아차림과 식별이 같이 움직여요. 이렇게 얘기하면 편하겠죠. 호흡을 여러분 위빠사나에서요, 마음 챙김이 중요하다. 오늘 출입식념경은요, 호흡을 알아차려라했으면 알아차리실 때 이것만 가지고 알아차리시는 게 아니라, +알아차림이 하나 붙어요. 이 알아차림엔 고가 안 붙는데, 요 식에는 고가 붙습니다. 즉 여러분이 호흡을 알아차리고, 뭔가를 대상 하나 정해서 알아차릴 때는요, 고도 같이 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런데 왜 그렇게 하라고 할까요? 그걸 하는 중에 알아차림 힘이 점점 커지면, 요 5개를 버릴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내려놓고 순수한 알아차림으로 존재하시면 그 상태가 탐진치의 소멸 니르바나입니다. 이 상태가 우리 내면에서 떠나지 않게 되면 아라한이에요. 왜? 그분은 이제 앞으로 죽을 때까지 보호복을 입으신 게 되요. 현상계를 아무리 돌아다니더라도 오온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지 않을 자격증을 따신 겁니다.
운문 스님처럼 매일매일 좋은 날이라는 말을 하실 수 있어야 되요. 내가 해놓고, “아, 그게 말이 안 되네.”라고 하시면 가짜구요, 해 놓고 가끔 되네. 하면 여러분 수다원과에 도달하신 겁니다. 늘 되지. 라고 하시면 아라한과에요. 요 이상이 아무것도 없어요. 부처님 오로지 관심이 고통소멸전문가에요. 어떻게 하면 고통을 소멸시킬 건가만 연구하셨습니다. 요 얘기를 듣고 여러분이 당장 행복해지지 않으면 제가 잘못됐든가 여러분이 지금 잘 이해 못하시는 거예요.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라고요. 지금. 요 얘기 제가 정확히 전달 드릴게요. 원 육성으로요. 청정도론 보고 많이 고부하시는데요, 그것도 천년 뒤 거 입니다. 부처님 가시고. 고것도 보지마세요. 참고만 하시고요, 원 육성에서 되나? 안되나? 먼저 확인하시는 게 급합니다. 원 육성 듣고 다 되게 되어 있는데요.
제가 설명 드릴게요. 이거를 갖다 나라고 여기면 어리석음이 생기고 탐욕이 생깁니다. 오온은 다 뭔가 탐내고 있는 것들이에요. 대상이 필요하거든요. 알아차림은 대상이 없이도 알아차릴 수 있어요. 이해되십니까? 제가 아주 쉬운 거 권해 드리죠. 그래서 제가 제일 쉬운 게 이게 불가 선불교랑요, 다른 얘기가 하나도 아니에요.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겁니다. 원리를 아시면요, 선불교랑 지금 초기 불교에서 쓰는 위빠사나법이 똑같다는 걸 아실 수 있어야 되요. 선불교에서는요, 요 얘기를 “부처가 뭡니까?” 손가락 하나 딱 들어줍니다. “요거 지금 알아차리신 자리가 부처입니다.” “부처가 뭡니까?” “아무개야?” “예?” “예라고 알아차린 자리가 니르바나다.”라고 가르쳐줍니다. 선은요, 위빠사나법을요, 아주 생활 속에서 더 리얼하게 쓰는 겁니다. 두 개는 같은 원리에요.
위빠사나 해보신분은 아실 겁니다. 위빠사나 하시다가요, “호흡 알아차려야지.” 괴롭습니다. 이때까지 자꾸 놓쳐져요. 괴로워요. 지금 이 오온에서 못 떠났거든요. 계속 식별합니다. 또 알아차리고, 호흡이 뭔지 또 잡아야죠. 식별을 해야 호흡을 잡죠. 또 합니다. 또 합니다. 하다가 갑자기 평화가 옵니다. 알아차림이 확~ 드러나 버려요. 내면에서. 원래 존재하던 니르바나가 탐진치업 또는 순수한 마음이 우리 안에서 확~ 피어나버립니다. 그러면 그 상태가 니르바나인지 알아야 되는데, “호흡 잡아야 되는데” 다시 돌아옵니다. 또 팅겨버리면요, 다시 오온을 붙잡았기 때문에 다시 오온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해되십니까? 요게 계속 반복되어서 일어난다면요, 오늘 단호한 입장을 정하세요. 출입식념경을 통해 제가 보여드릴게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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