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이 불법을 떠받드는 제자에게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라”고 말하면
한편으론 놀라면서 다른 한편으론 어떤 심오한 뭔가가 숨어 있으리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래서인지 이 말은 크게 히트를 치며 오늘날까지 유행하고 있습니다.
붓다를 만나면 당연히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춰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붓다를 죽이라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익히 아시다시피 불법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나룻배가 강을 건너는 수단인 것처럼 불법 역시 수행의 도구에 불과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피상적인 의미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권위에 대한 모순’입니다.
이는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은 무조건 옳을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경계한 것입니다.
가령 달마대사나 원효대사가 말했으니까 정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권위에 대한 모순’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더 확대하면 붓다의 법문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싯다르타의 말이 진리가 되려면
먼저 싯다르타가 붓다인 것이 증명돼야 합니다.
그런데 그 증명을 주변의 다른 제자들이 하면 안 됩니다.
무조건 싯다르타를 평가하는 본인이 스스로 증명해야만 논리적 모순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붓다를 알아봐야 하는데
사실상 중생들은 그럴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장님이 눈을 뜬 사람을 알아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붓다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붓다를 만나봐야 붓다인 줄을 알 수 없으니까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붓다라고 칭송하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른 사람들도 중생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유로 붓다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권위에 대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당신의 이성이 마비된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붓다를 알아볼 눈도 없고
더군다나 붓다가 말했다는 불경의 진위도 가릴 수 없습니다.
눈을 뜬 사람이 아무리 세상의 모습을 얘기해도
장님의 입장에선 귀만 즐거웠지
그것의 진위를 알 수 없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라’는 말은 현실에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커다란 교훈을 하나 얻게 됩니다.
그것은 ‘아무도 믿지 말라’는 수행의 지침입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자기 자신의 합리적인 이성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의 말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 데카르트의 합리론이고
이것을 잣대로 주관과 객관을 통합한 것이 칸트의 인식론이고
의심을 활용해 논리적 추론을 끌어낸 것이 헤겔의 변증법입니다.
아무튼 수행의 첫발은
아무도 믿지 않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수행자들은 자신의 스승을 믿고
그 스승의 계보에 등장하는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석가세존을 철석같이 믿고요.
존경심 정도는 괜찮지만
그분들이 깨달았다고 믿는 순간
당신의 수행은 일종의 신앙처럼 변질되고 맙니다.
그래서 그런 수행에서 나오는 그런 체험들 역시
일종의 성령 체험과 같은 환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열반, 해탈, 절대, 탐나(불성) 같은 데서
진리적 자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컨대, 끝없는 의심을 통해 스승을 선별하고
제자가 된 이후엔 마땅히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되
진리(깨달음)에 있어서 만큼은 의심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라라는 명제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입니다.
중생이 가진 수행의 무기는 오직 의심하나 뿐입니다.
눈은 안 보여도 의심이라도 있기에
이곳저곳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심마저 놓는다면 어찌 수행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의심은 이성의 주된 동력입니다.
그래서 의심이 멈추면 이성의 엔진은 꺼집니다.
그러니 의심하고 또 의심하세요.
그래서 의심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면
앎만 남으면서 깨달음이 열리게 됩니다.
이때 그 앎이 진리적 자각(깨달음)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제1원인’인 것입니다.
당신은 단예소피아의 모든 영상을 의심으로 보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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