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사람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까요?
가장 좋은 것을 골라보면
극락, 열반, 해탈 등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것들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입니다.
영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물거품이니까요.
사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존재가 영속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윤회도 일어나고
DNA를 통한 자기복제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약방의 감초처럼 어떤 소원이든 예외 없이
영생이 개입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영원히 산다고 하면 어떨까요?
물론 극락처럼 살기 좋은 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열반과 영생을 세트로 해서 누리게 되면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요?
수행자를 비롯해서 모든 인간들은
열반과 영생의 조합을 최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만일 이런 세트 상품을 판다고 하면
주저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그래서 자고이래로
모든 종교 단체에서 이 상품을 팔아왔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은 꿈에서 깨어나질 않습니다.
평생 꿈속에서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늘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그 꿈이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그 꿈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어떨까요?
다른 예를 들어
같은 영화를 무한대로 매일매일 본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잠깐 쉴 때는
똑같은 진수성찬을 무한대로 반복해서 먹는 겁니다.
몇백 년 동안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 세월이 무한대로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좋은 것이 무한히 되풀이 된다면
어느 시점부터는 지루해지고
또 어느 시점부터는 그것이 괴로움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매우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옥처럼 느껴지게 되겠지요.
왜 좋은 것이 무한히 반복되면
좋은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창조의 원리가
변화와 생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극락에서 직업을 갖고
별의별 취미 활동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생활도 무한대라는 시간 앞에서는 단조로워지고
나중에는 분명 커다란 괴로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창조물엔 포맷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생(生)과 사(死)입니다.
생과 사 자체가
창조이며, 변화이며, 열반이란 얘기입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죽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께름칙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전혀 다른 현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영원히 살기 위해
참나를 꾸며내게 됩니다.
내 안에 영원히 사는 참나가 있고
그것을 발견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논리이지요.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세존은 그런 것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얘기는 단순히 참나 같은 게 없다는 정도를 넘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죽음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삶과 죽음이 나눌 수 없기에
영사(永死)와 영생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입니다.
당신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나요?
하지만 그것은 무명으로 프로그램된 중생들의 고질적인 특징입니다.
사실 영생을 갈망한다면
영사(永死) 역시 그만큼의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사 자체가 증발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인 것이지요.
소멸의 매력을 느낄 때
수행의 깊이는 그만큼 진일보하게 될 것입니다.
영생의 달콤함은
수행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종교의 덫에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영생을 얻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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