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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THATch] 나는 나를 아는가? - 발달라인 (1/2)

Buddhastudy 2025. 3. 6. 19:26

 

 

우리는 지속적으로 의식 수준,

즉 의식의 구조적 단계와 상태,

구조적 단계를 형성하는 발달 라인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영성지능의 내용이고

영적 진보의 방향과 동력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막연히 의식수준 몇백 점 정도의

발달라인은 이런 부분에 약하고,

그래서 아마 나는 이런 상황일 거야 하는 분석은

자신을 반성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앞서 말한 방향과 동력을 정립하고 채우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꽤 어려운 내용입니다.

 

영성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어서

나를 진단해 준다고 하죠.

만약 그렇다면 이 사람이 진단하는 나는

내가 아는 그런 사람일까요?

이 사람의 진단 결과를 나는 완전히 수용할 수 있을까요?

수용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 문제를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적으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 영적인 좌표를 정확하게 찍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단을 하든, 누군가 진단을 해주든

그것이 정확하려면

수없이 많은 나를 형성한 조건들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그게 일단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죠.

 

그렇다면 왜 이런 단계와 수준, 라인과 패턴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주 미세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대략적인 방향성을

이 좌표를 보면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수학의 여러 분야를 보면서

미분을 배우려면 극한의 개념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이걸 채우고, 저걸 배우고, 그걸 익히고 하는 식은 아니겠지만

완전히 구멍 난 곳을 찾아내고

아예 생각도 못했던 방향을 찾아내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켄 윌버가 한 말을 인용해 보죠.

통합적으로 발달을 한다는 것은

모든 영역의 지능이 뛰어나게 된다는

또는 모든 발달라인이 최고 단계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심리 특성도를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함으로써

보다 더 통합적인 자기 이미지를 갖고

미래의 발달을 계획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결국 큰 방향을 잡고 많이 비어 있는 부분을 찾아내면

그다음으로 부족하거나 없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쉬워집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큰 그림을 찾지 못하고

언저리만 맴돌기가 일쑤입니다.

 

엄청난 의지를 가진다고 해서

지혜롭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엄청나게 똑똑하다고 해도

찾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모습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때로는 목격하는 사람이 가슴 아파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알까요? 어떻게 할까요?

웃기는 이야기처럼 어렸을 적 소개팅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자신을 아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름, 가족, 학교, 취미, 특기, 취향

그리고 거기서 몇 발 더 나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차이가 없어집니다.

결국 남과 나를 비교하는 이 영역이 자기인 것이죠.

 

I AM THAT 채널에 들어와 이런 동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물론 조금 더 진도가 나가 있을 겁니다.

최소한으로는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수준 200을 넘지 않는 분이

이런 동영상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연히 잘못 들어와 볼 수 있을 거니까, 거의라고 해두죠.

 

이런 끌어들임의 에너지에 대한 측정 결과는

제 경험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더 해보죠.

내 이름 가족, 학력, 취미, 특기, 취향을 넘어서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규정이라는 작업이 힘들면

그냥 나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마도 쉽지 않을 겁니다.

나의 소유물에 가까운 성격이나 관심사를 빼면

우리는 나라는 것에 대해 아주 처절할 정도로 무지합니다.

 

그나마 나도 모르는 이유로

이런 동영상에 끌려서

뭔가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구독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드문드문 알겠다는 생각도 들고

기분을 잡치기도 하고

어쩌다 흥분에 사로잡히거나 감격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왜 우리 인간의 언어는

이런 쪽으로는 이렇게 부족하고 부실한 걸까요?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류의 구조적 수준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의식의 발달, 구조, 수준, 라인, 패턴 같은 용어들은

정말 최신의 심리학에서나 나온 이야기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예 들어본 적이 없던 용어들입니다.

 

우리 인류는 이제 겨우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셈입니다.

설명할 용어를 모르니

내가 나를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런 기본 개념을 그 용어라도 익혀두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은 너무 명확하죠.

그래서 좀 어려워 보여도 자꾸만 반복하는 것입니다.

즉 의식의 구조 수준, 발달 라인 같은 아주 기본적인 개념들입니다.

 

물론 구조와 수준도 그 설명이 쉽지는 않습니다.

의식 수준 400

이성과 합리를 익숙하게 인용할 수 있는 단계 이전까지는

이런 구분 자체가 흐리멍텅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하나의 흐름, 즉 파동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하나의 단계와 수준에서 자신의 좌표를 찍고 있고

여기에 달려 있는 발달라인이 이 흐름을 타고

서서히 진화해 나간다는 그림만 그려봐도

깨달음이 무엇이고, 진보가 무엇이며, 영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파동을 타고 발달라인이 진보해 나가면서

그 사람의 의식의 단계가 상승하며

그 상승의 메커니즘은 의식 상태가 반복적으로 명상 상태

즉 에고로부터 돌아서

순수한 자신의 의식을 자주 경험하고

그 체험을 통해 고집과 망상을 조금씩 놓는 것이다.

이 정도 이해만 있어도 많은 것을 아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드디어 발달 라인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예를 들어

용어 자체를 이해하고, 큰 그림도 이해하는 상황은 매우 빠를 수 있지만

그 사다리를 실제 기꺼이 올라가려는 내면의 마음가짐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발달의 지류인 발달라인에 조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높은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수준에서 살고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길을 가지 않으면서도

많은 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말을 늘어놓지만

자신의 무게 중심은 아주 낮은 단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안정되게 적응한 구조적 단계가 아닌 상황이라면

모든 것들은 그저 생각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좀 심각한 용어로 [존재의 항구적 특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존재의 변형이 일어나 그 수준 이하로 퇴보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

깨달음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자기는 낮은 수준에서의 동일시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비유적이 아니라

실제로 낮은 수준의 죽음을 겪는 일입니다.

 

또한 더 높고 넓은 자각의 파동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다음 상위 수준에서 부활해야만 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거듭남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이런 죽음이 가능하려면

그저 막연하게 낮은 내가 죽고

높은 나로 부활하겠다는 소망을 갖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해하고, 적용하고, 참아내고, 초월하는 원리는

내 의식의 진보나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같기 때문입니다.

 

그 첫 발자국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읽고, 듣고, 생각하고, 반복합니다.

이해를 못하면 시작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는 좀 약하게 말한 것입니다.

켄 윌버의 말을 들으면 좀 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통합적 이성 없이도 온갖 종류의 영성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조망을 고려하고

그것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한

범세계적 영성, 보살의 영성, 후인습 이후 영성

진정으로 초개인적인 영성을 갖출 수 없다.

당신이 이성과 비전- 논리의 심층 역량을 통합한 후

거기에서 나아가지 않는 한 말이다.”

 

구르지예프는

사람에게는 일단 3000개 정도의 내가 있다고 말합니다.

좀 많아 보이나요?

아마 3000개의 내가 있지만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많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꽤 많은 나라는 프로그램이 꽤 오랫동안 잠겨 있다가

엉뚱한 상황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3000개의 나를

일종의 심리적 패턴 양식으로 분류한 것이

바로 [발달 라인]이고

그래서 발달 라인을 탐구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3000개의 날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접근하기에 그나마 용이한 방법은 되는 것이죠.

 

발달 라인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심화 탐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수행에 적용할 수 있어야 영적 지식이 효용이 있는데

그러려면 아직 조금 더 진도를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