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마하라지 어록 (7)

Buddhastudy 2025. 5. 27. 19:42

 

마음의 작용과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에 대한 마하라지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 내면에서 비롯되는 변화: 생각과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므로 내면의 실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꾸준히 노력하면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00:02].
  •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 상대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을 결과로 낳을 수 없지만, 크림을 휘젓지 않으면 버터가 분리되지 않듯이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00:32].
  •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자기를 발견하려는 충동은 내면의 자아에서 비롯되며, 내적인 자아는 외적인 자아를 촉발하고 외적인 자아는 관심과 노력으로 반응하지만, 궁극적으로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는 없습니다 [00:49].
  • 의식의 본질: 의식의 빛은 창조주이자 피조물이며, 경험자와 경험, 육신과 육신에 깃드는 자입니다. 이 힘을 잘 보살피면 문제들이 끝날 것입니다 [01:09].
  • 본래의 자신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은 본래의 전체적인 자신을 두려워하며, 욕망, 두려움, 견해, 관념에 집착하는 유치함에서 벗어나 실재가 드러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01:43].
  • '내가 있다'의 중요성: '내가 있다'라는 말은 존재성을 가장 잘 나타내며,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02:15].
  • 이해력 부족의 원인: 기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이해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에 집중하면 비밀이 드러날 것입니다 [02:38].
  • 조급함의 문제: 조급하고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 달을 따 달라고 우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03:04].
  • 마음의 역할: 환을 만들어내는 것도 마음이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도 마음입니다. 말은 환을 악화시키거나 몰아낼 수 있습니다 [03:20].
  • 반복의 중요성: 같은 진리를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은 그것이 실재가 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03:37].
  • 직접적인 체험의 필요성: 사람들은 말을 듣는 것을 넘어 사실을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04:02].
  • '내가 있다'의 의미: '내가 있다'라는 말은 항존하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04:17].
  • 진리에 대한 이해 부족: 말 이면에 살아있는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진리에 접촉하면 말과 침묵의 완전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04:39].
  • 내면에 집중해야 함: 외부적인 것에 몰두하기 때문에 내면적인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며, 수행을 건너뛸 수 없습니다 [05:03].
  • 내면과 외부의 합일: 세계로부터 돌아서서 내면으로 들어가 내면적인 것과 외부적인 것이 합일되어야 조건 지워진 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05:20].
  • 실재와 의식: 밧줄이 뱀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밧줄이듯이, 실재가 존재하며 의식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05:38].
  • 관찰자의 중요성: 실재는 관찰자를 넘어서 있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순수하게 관찰하는 상태를 깨달아야 합니다. 조건들에 대한 자각이 조건 지워지지 않은 것으로 인도합니다 [05:57].
  • 관찰자 의식: 명료함과 초연함이 있을 때 관찰자 의식이 나타나며, 이는 맑고 고요한 물에 달이 비치거나 다이아몬드에서 햇빛이 반사되는 것과 같습니다 [06:31].
  • 의식과 관찰자의 관계: 관찰자가 없으면 의식은 무의식이 되어 그저 살아갈 뿐이며, 관찰자는 의식의 모든 상태 안에 잠재해 있습니다. 아는 자 없이는 어떤 앎도 있을 수 없고, 내면의 관찰자 없이는 어떤 아는 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안다는 것도 압니다 [07:05].

 

 

먼저 말로 하다가 마음 속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몰입되어 하게 되고

나중에는 행동으로 하게 됩니다.

 

그대 내면의 실재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버터를 얻기 위해 크림을 휘젓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올바르게 꾸준히 해 나가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결과가 나옵니다.

 

상대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을 결과로 낳지 못합니다.

그러나 크림을 휘저어 주지 않으면 버터가 분리되지 못하듯이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발견하려는 충동을 일으키는 것은 실재입니다.

내적인 자아는 외적인 자아를 촉발하고

외적인 자아는 관심과 노력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내적인 자아도 없고, 외적인 자아도 없습니다.

의식의 빛은

-창조주이면서 피조물이고

-경험자이면서 경험이며

-육신이면서 육신에 깃드는 자입니다.

 

이 모든 것을 투사하는 그 힘을 잘 보살피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문제들이 종식될 것입니다.

 

그대는 본래의 그대를 두려워합니다.

그대의 목적지는 전체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자신의 동일성을 잃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그대의 욕망과 두려움, 견해와 관념이라는

장난감들에 집착하는 유치함입니다.

그것을 모조리 포기하고

실재가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이러한 자기 드러냄은

내가 있다라는 말에서 가장 잘 표현됩니다.

다른 어떤 것도 내가 있다와 같은 존재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있다

그대가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알지 못하는 것은

기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그대가 이해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모르는 것을 오로지 염두에 두고 있을 수만 있으면

그것이 그 비밀을 그대에게 드러내 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천박하고 조급하여

바라보면서 기다릴 만큼 충분히 열의가 없다면

달을 따달라고 우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환을 만들어 내는 것도 마음이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도 마음입니다.

말은 환을 악화시킬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을 몰아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진리를 자꾸 되풀이해서 설명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실제가 되니까요.

 

어머니의 일은 아이를 낳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매일매일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아이를 양육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을 떠나서

사실을 직접 체험할 때까지는

말을 들어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해가

10억 개의 이슬방울에서 반사되듯이

무시간적인 것은 끝없이 되풀이됩니다.

 

제가 내가 있다’. ‘내가 있다는 말을 되풀이할 때

저는 항존하는 사실을 드러내고 또 드러낼 뿐입니다.

 

그대는 그 말 이면에 살아있는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하는 말에 실증을 냅니다.

그 이면의 진리에 접촉하십시오.

그러면 말과 침묵 둘 다의 완전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외부적인 것에 몰두하기 때문에

그대가 내면적인 것에 집중하지 못할 뿐

그 외에는 그대를 막는 것이 없습니다.

 

도리가 없지요.

그대가 수행을 건너뛸 수는 없으니까요.

세계로부터 돌아서서 내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면적인 것과 외부적인 것이 합일되어야

조건 지워진 것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밧줄을 밧줄로 보려면

하나의 밧줄이 존재하며

그것이 뱀으로 보인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실재가 존재하며

그것이 의식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실재는 관찰자를 넘어서 있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순수하게 관찰하는 상태를 깨달아야 합니다.

 

조건들에 대한 자각이

우리를 조건 지워지지 않은 것으로 데려다 줍니다.

 

조건 지워진 것을 조건 지워진 것으로 아는 것이

조건 지워지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관찰자는 실재가 아주 순수한 형태로 반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조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명료함과 초연함이 지배할 때 관찰자-의식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물이 맑고 고요할 때

달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다이아몬드에서 섬광으로 나타나는 햇빛과 같습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의식은 무의식이 되어 그저 살아갈 뿐입니다.

관찰자는 의식의 모든 상태 안에 잠재해 있습니다.

마치 빛이 모든 색채 안에 잠재하듯이 말입니다.

 

아는 자 없이는 어떤 앎도 있을 수 없고

그의 내면의 관찰자 없이는

어떤 아는 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대는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안다는 것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