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1)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엄마처럼 보살피기' 저는 이해가 안가요.

Buddhastudy 2021. 5. 21. 20:35

 

 

저는 지금 불교대 모둠장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모둠장 모임에서 법사님께 사람을 챙기는 것에 대해 여쭤봤었어요.

법사님께서 엄마처럼 모둠원들을 챙기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잘 안 챙겨 주셨거든요.

옛날 부모님들은 헌신의 아이콘이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엄마나 제 주변 친구들 중에 엄마가 된 애들을 보면 그런 이미지랑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자기 거를 먼저 챙겨서 어떻게 모둠장 소임을 해야 하는 건지 막연하고 와닿지 않아요.

소임 설명을 해 주실 때 엄마같이 해라.’ 말고 보살처럼 해라.’ 하면 좀 더 와닿을 거 같아요.//

 

 

법사님은 고지식한가 봐, 옛날 사람인가 봐.

사람은 다, 나도 용어를 쓸 때,

나의 어떤 세계와 경험 속에서 용어를 쓴단 말이오.

왜냐하면 그 밖의 용어는 모르니까.

 

똑같은 용어라도 내가 쓰는 용어하고 다른 사람이 듣는 용어는 의미가 다를 수가 있어요.

가장 대표적으로 윤회라는 말이

인도 전통에서 쓰는 용어는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소가 되고 말이 되고 이게 윤회라면

부처님이 쓰신 똑같은 윤회라는 말이지만 이 윤회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두고, 마음이 즐거웠다가 괴로웠다, 즐거웠다 괴로웠다

고락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걸 뭐라고 한다?

윤회라고 하고

그러면 윤회에서 벗어났다. 해탈을 얻었다 하면

인도의 전통에서는 다시는 안 태어난다, 이런 의미란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궁금하잖아요.

안 태어나는 게 뭐가 좋나? 태어나는 게 좋지.”

이런 질문이 있단 말이오.

 

그런데 부처님이 말씀하신 해탈이라는 것은

이 괴로움이 즐거움이 되고, 즐거움이 괴로움이 되고 윤회하는 데서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해서 다시는 괴로움이 뭐다?

일어나지 않는 경지.

그건 좋잖아, 그지?

그게 해탈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도

인도 안에 있다 보니 인도식으로 내용이 변질되어 버렸다는 거요.

그러면 용어는 같은데 내용은 다르다. 이렇게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법사님이 쓰실 때 엄마는

좀 헌신적으로 보디사트바 같은, 보디사트바가 어떤 마음이냐? 할 때

엄마 같은 마음, 이렇게 표현한단 말이오.

 

그런데 질문자 엄마는 보디사트바 같은 거 아니다 보니까

도대체 엄마 같은 마음 갖고는

보살의 마음이 어떤 거냐 할 때, 그 보살의 마음이라는 게 안 다가와서

그걸 쉽게 설명한 게 뭐다?

엄마 같은 마음, 이러는데

 

엄마 같은 마음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어서 보살 같은 마음 하면

, 그게 엄마 마음이구나.” 이렇게 된다니까

이것도 세대차이다. 재밌다. 그것참 진짜 좋은 얘기 했다.

앞으로 엄마 같은 마음으로 해라.’ 이 말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그죠?

 

그러니까 사람을 챙긴다 하는 것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분하라가 아니라

나누기를 하거나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정토회가 자랑하는 정진 프로그램)를 해보면

, 저 사람은 이런 마음에 상처가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장점이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아픔이 있구나

이런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해가

요 사람 괜찮은 사람, 저 사람 나쁜 사람이렇게 분류하라는 게 아니에요.

이걸 이해하면 어떠냐?

저 사람의 마음의 상처가 있다할 때는 그 사람이 뭔가 픽픽해도

, 저 사람은 전에 보니까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저런 반응을 하구나

이렇게 이해한단 말이오.

 

그런 거를 그냥 얼굴만 보다가 나누기를 하면서 그 사람의 심리상태가 어떤지를 보면

내가 다음에 그 사람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행동만 보고 평가하지 않고

그런 행동, 그런 말이 나온 뿌리를 보면서

내가 기다려 줄 수도 있고, 또 내가 조언을 할 수도 있고

그냥 좀 화를 내고 그래도 그걸 따지지 않고 꼭 껴안아 줄 수도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파악해야 한다는 거요.

 

그 파악이 좋은 인간, 나쁜 인간, 이렇게 하기 위한 파악이 아니고

사실대로 그를 알아서 그를 대응하기 위해서 파악을 한다.

마음에 상처가 있다그래서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기복이 심하다. 그러니까 너는 안 된다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어떤 조직책임을 맡으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저건 눈밖에 나갔으니까 너는 팀장이 될 수 없다.’ 이런 참고가 아니라

그런 분은 어떤 조직체계를 맡으면 다른 사람하고 관계에서 자기 감정이 자꾸 왔다갔다하니까

다른 사람의 그것 때문에 힘든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저분은 재능이 있으면 재능기부를 하는 거는 괜찮지만

다른 타인을 관계하는 조직책임자로는 적당치가 않다.

이건 차별하곤 성격이 다릅니다.

적재적소에 쓰는 관점이지.

그런 거를 챙긴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그래서 물어본단 말이오.

저 청년이 아까 저기 문제를 제기했잖아,

그 청년 어때?” 라고 물어보면

그 청년은 이런 이런 착실한 면이 있는데, 마음에는 이런 상처가 있어서

이런 일을 하면 잘 할거고, 이런 일은 아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게 그 청년을 상담하거나

그 청년에게 어떤 일을 줄 때 참고가 되겠지.

그러면 요런 것을 파악하고 있으면 도움이 되는데

10명을 그동안 불교대학 관리를 했는데, 어떤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물어봤는데

몰라요.” 이렇게만 하면 안된단 말이오.

그러면 못 챙기고 있다는 얘기고

 

그런 거를 파악하고 있다는 건 뭐다?

사람을 챙기고 있다.

꼭 불교대학에 묶어놓은 것을 챙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파악하고 있으면 이 사람이 빠져도

오게 하든지, 안 오게 하든지 이런 것도 알아야

, 저 분은 좀 쉬게 해주는 게 낫겠다.

, 저 분은 전화를 꼭 해서 빨리 다잡아야 한다. 내버려 두면 저 사람은 나가니까 오히려 전화를 자주해서 지금 안 떨어지도록 도와야 하겠다.

, 저 사람은 지금 전화 자꾸 하면 오히려 반발이 생겨서 안 되니까,

저 사람은 조금 자기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좀 두고 기다려주는 게 좋겠다.”

이 대응도 알아야 대등을 할 거 아니오.

그럴 때 사람을 챙긴다. 이런 말을 쓰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