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16회 삼재

Buddhastudy 2013. 1. 9. 22:06

출처: BTN

 

316회 삼재

 

태어나기 전 얘기나 죽고 난 뒤의 얘기는 솔직하게 말하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그런 설만 있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이런 설만 있지. 그것은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먼저 이해하시는 게 필요해요.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이렇게 설명하고, 불교는 이렇게 설명하고, 힌두교는 이렇게 설명하고, 유교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도교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이렇게 여러 설이 있지. 그 가운에 어떤 것이 객관적으로 맞다라고 할 것은 없다.

 

그러니까 어떤 설을 우리가 공부할 필요는 있겠죠. 도교에서는 이걸 이래 본다. 이렇게는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게 맞느냐? 틀렸느냐?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왜 그럴까? 그거는 믿음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하고 보살님하고 둘이 길을 가다가 내가 오우~ 저기 귀신 봐라.” 그랬어. 보살님이 어디 있어요?” “저기 있잖아.” “거기 어이요?” “, 저기 막 가잖아.” “아이고 스님은 헛거 보고 그런다.” “, 저것도 안 보이나? 저기 있는데?” 그럼 둘이 누가 맞을까? 이건 증명할 수가 없어. 있는데 못 본 건지. 없는데 헛거를 본 건지 그건 증명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러면 10명 봤다. 그러고 1명은 못 봤다. 그러면 10명이 봤다는 게 맞을까? 아니에요. 만 명이 봤다. 그러고 1명이 못 봤다. 그래도 어느 게 맞는지 그건 검증할 수가 없어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이런 건 다수결로도 안 되고. 으음. 그러니까 불교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 기독교 믿는 사람 그렇게 말해요? 안 해요? 안 하잖아. 그러니까 그건 불교의 장례문화다. 이렇게 이해하면 돼요.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안 하잖아. 기독교에서는 죽은 시신이 뭐한다? 부활한다 해서 가끔 집에다 시신 놔 놓는 사람 봤어요? 안 봤어요? 봤지.

 

그건 기독교에서 그렇게 믿지, 불교는 또 그런 거 안 믿어요. 믿음의 차이에요. 어느 게 옳으냐가 아니라 뭐라고? 믿음이 서로 다르다.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치를 때 우리는 매장을 하죠. 인도에서는 뭐한다? 화장하죠. 서양에서는 동굴 같은데 넣어 놓잖아. 그죠? 매장하죠. 기본적으로. 그다음에 티베트 같은데 가면 조장을 해요. 조장이라는 거는 사람 몸을 잘라가지고 새가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있단 말이오. 어떤 데는 수장을 하잖아. 그죠? 그럼 어느 게 옳을까? 그건 다 틀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죽은 귀신은 지하에 있다 해서 매장을 하고, 죽은 귀신이 하늘나라에 가라고 조장을 하고. 죽은 귀신이 용궁에 가라고 뭐한다? 수장하고 이래요. 진짜 용궁에 가는지, 하늘나라에 가는지, 지하에 있는지, 그건 아무도 몰라. 옛날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왔어. 우리나라 귀신은 다리가 있어요? 없어요? 전설 따라 삼천리 볼 때 귀신 다리 있습디까? 없습디까? 없죠. 치마만 있죠. ~ 이러잖아. 그지? 중국 귀신은 다리가 몇 개예요. 중국 귀신 다리 한 개예요. 중국 귀신 통통 튀는 거 봤어요? 다리가 한 개이기 때문에 그래.

 

그러면 진짜 중국귀신 다리 한 개고 한국귀신 다리가 없을까? 아니에요. 한국 사람은 귀신에 대한 상상을 그렇게 해 왔고, 중국 사람은 상상을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귀신을 보면 다리 없는 귀신을 보게 되고, 중국 사람은 혹시 귀신을 보면 어떻게 한다? 통통 튀는 귀신을 보게 되는 거요. 그건 다 자기 마음에서 생긴 거요. 한국 사람은 천사를 그릴 때 다리 안 그리죠? 천사. 서양 사람은 천사 그릴 때 날개를 갖다 붙이죠. 한국 천사에 날개가 있어요? 없어. 서양 사람은 새처럼 날개를 갖다 붙여놓잖아. 그지? 이건 다 상상이 서로 다른 거요.

 

세상에는 세 가지 설이 있어. 그게 뭐냐? 인간의 운명은 신이 좌우한다. 알았습니까? 그다음에 인간의 운명은 그의 전생이 좌우한다. 세 번째 인간의 운명은 그가 태어나는 생년월일시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 세 가지 설이 있어. 그러니까 머리카락 하나 희게 하고 검게 하는 것도 사람이 할 수 없고 누가 한다? 창조주 신이 한다. 나고 죽고 하는 거 다 누가 한다? 신이 하는 거다. 그다음에 네가 잘되고 못되고 복 받고 못 받고 누구 만나고 하는 거 다 전생에 네가 지은 업의 결과다. 전생에서 결정이 된다.

 

그다음에 네가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되고 높은 사람이 되고 낮은 사람 되고 헤어지고 만나고 하는 건 다 뭐다? 네가 내어나는 연월일시. 네 가지. 사주라 그래. 이게 결정한다. 이런 학설이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세 가지를 다 부정하셨어. 왜 그러냐? 모든 게 다 신이 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을 죽여도 내 책임이 있나? 없나? 없지. 그건 누가 한 거니까? 신이 이미 그걸 하도록 정해놨으니까.

 

또 내가 어떤 사람을 죽여도 내 책임이 아니야. 전생에 나는 너를 죽이도록 어때요? 전생에 네가 나를 죽였기 때문에 내가 이생에 너를 죽이도록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건 내 책임 아니오. 이미 정해진 길이오. 또 내가 너를 죽여도 사주팔자로 보면 내가 너하고, 나는 죽이도록 돼 있고 너는 나한테 죽도록 사주팔자가 돼 있기 때문에 그건 내 문제가 아니오. 이거는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삶에 무책임성을 조성시킨다. 이건 이치적으로 맞지가 않다.

 

그러니까 복을 지으면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돼 있다. 복을 받고 싶으면 복을 지으면 되고, 벌을 받기 싫으면 죄를 안 지으면 되는 거다. 이거는 인과법칙은 딱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행동해야 되느냐? 지침을 딱 주는 거지만은 이런 운명론은 우리 삶에 무책임성을 조상시키는 거요. 모든 걸 다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거요. 하늘에 책임을 떠넘기든, 사주에 책임을 떠넘기든, 전생에 책임을 떠넘기든. 그래서 그것을 진리가 아니다.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

 

그러니까 그런 학문이 있다. 이 말이오. 태어나는 생년월일시를 이렇게 보면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거라고 하는 그렇게 보는 학문이 있어. 그런데 100% 맞느냐? 안 맞다. 이 말이야. 이해하시겠어요? 전생을 가지고 논하는 것도 100% 맞는 게 아니고 하느님이 했다는 것도 100% 맞는 게 아니에요. 법칙이라는 거는 100% 맞을 때 법칙이라 그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건 법칙이 아니야.

 

다시 말하면 돌멩이를 이렇게 놔놓으면 떨어진다. 모든 물체는 중력을 받는다. 이거는 법칙이야. 이건 예외가 있나? 없나? 없어. 이런 걸 법칙이라 그래. 오늘 우리가 얘기하는 거는 법칙을 얘기하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 질문한 그런 거는 그런 설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고,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고 싶으면 안 믿고. 그건 개인의 자유야. 그래서 헌법에 뭐라고 돼 있느냐? 믿음 신앙 종교 사상 이념은 뭐라고 돼 있다? 자유다. 그건 남에게 터치하지 마라. 강요도 하지 말고 비난도 하지 마라.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니까 본인이 뭘 믿든 그건 본인의 자유지만은 그건 믿음에 해당되기 때문에 분석해서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까 얘기했는데 사주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이름을 바꾸는 의미가 없잖아. 그런데 인간이 노력해서 자기 삶을 개척 안 하고 자꾸 이름 바꿔서 개척하려는 맞나? 그건 올바른 태도가 아니지. 그럼 성명 철학도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불리느냐에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암시를 주잖아. 그죠?

 

우리에게 내 이름을 악마라고 정하는 거보다는 천사라고 정하는 게 나을까? 안 나을까? 낫겠죠. 그러니까 내가 나쁜 생각을 자꾸 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좋은 생각을 자꾸 하면 좋은 사람이 되는 거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름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이름 찾으러 가는 사람이 여러분들 첫째 한번 보세요. 형편이 풀리는 사람이 이름 보러 갈까? 사업하다 안 되는 사람이 보러 갈까? 안 되는 사람이 보러 가겠죠. 첫째. 보러 가는 사람을 한번 생각해 봐.

 

두 번째는 이름 고치는 사람은 아무리 저쪽에서 좋게 고쳐서 찾아와도 찾아오면 고치라 그럴까? 아이고 좋다. 놔둬라. 그럴까? 고쳐야 밥을 먹고 살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필요한지 이해해야 되겠죠. 첫째 찾아가는 사람이 안 되니까 찾아갔으니까. 고치라 하는 말을 받아들이기 쉽죠. 내가 잘 되는데 찾아갔을 때 고치라 그러면 받아들일까? 안 받아들일까? 잘 되면 안 찾아간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래야 그 사람도 밥을 먹고 살지. 아픈 사람이 병원에 와야 의사가 먹고살 듯이. 안 되는 사람이 찾아와야 먹고 살 거 아니오.

 

또 물어보세요. 다 알았어요. . 이제 우리가 이런데 너무 빠져도 안 되지마는 반대로 이런 걸 보고 미신이다. 그건 나쁜 거다. 이렇게 너무 해도 안 됩니다. ? 사람은 뭐든지 뭐라고 그랬으니까? 자유니까. 그런 거 좋아 보이면 믿어도 되나? 안되나? 되요. 믿음은 자유니까. 그러니까 남의 믿음을 비난해도 안 된다. 아시겠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그런데 너무 빠져도 안 된다. 그러니까 그런 거 하고 싶을 때는 재미로 한번 해보는 거요. 아시겠어요?

 

재미로 가다가 그냥 재미로 보는 거는 괜찮지마는 거기에 의미부여를 자꾸 하게 되면 그건 요행을 바라기 때문에 그렇다. 요행을 바란다. 요즘 선거철이니까 국회의원 되겠다는 사람은 될까? 안될까? 대게 두려울까? 안 두려울까? 조마조마하겠죠? 그럴 때 보러 가기 쉬울까? 어려울까? 쉽겠지. 보러 갔는데 틀림없이 된다면 기분 좋을까? 안 좋을까? 좋겠지. 그런데 되긴 되겠는데 요게 걸려서 요게 문제인데? 요렇게 하면 돈 좀 쓸까? 안 쓸까? 쓰겠지. .

 

그래서 여러분들이 갔을 때 나쁘다.’ 이래요. 그건 나쁘다 하면 나쁜 걸로 끝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나쁜 거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면 비법이 있을까? 없을까? 비방이. 어떤 경우에도 비방이 있어요. 뭐가 좀 많이 들 뿐이다? 돈이 좀 많이 들 뿐이다. 하하하. 어디 가서 물어도 다 비방이 있어요. 돈이 들 뿐이다. 이거에요. 그런데 그 돈이 푼돈 정도면 재미로 해보면 되지마는. 그런데 이런 비방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다 사기꾼은 아니에요. ?

 

심리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거를 믿는 사람에게 마음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이 필요는 해요. 옛날부터 그래서 내려온 거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게 맞다 틀리다 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 스님이 그런 거 한다. 그러면 그걸 믿어서 할까?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할까?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단 말이오. 그걸 가지고 진리니 아니니 논쟁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안심하면 좋은 일이니까.

 

그래서 무조건 나쁘다.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세상사는 게 그래요. 그래서 세상사는 사람은 꼭 맞는 거 갖고만 살 수도 없고, 효율만 갖고 살 수도 없어. 항상 중이, 대중이 뜻을 모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대중의 뜻이라고 다 옳은 거는 아니에요. 때로는 틀릴 수도 있어요.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