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245회 깨달음과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요

Buddhastudy 2013. 1. 16. 04:45

출처 YouTube

 

죽는 거야 뭐 알고 싶어요? 조금 있으면 죽을 건데. 저절로 알아질 건데, 그건 죽어보면 알 거니까 미리 물어볼 거 뭐 있어요? . 그런 거를 망상이라 그래요. 서울 가는 차를 타고 가면서 자꾸 서울에 대해서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거는 어떻게 보면 좋은 면도 있지마는, 버스에서 내리면 서울 저절로 다 눈에 보여요. 그래서 그거 궁금해할 필요 없어요. 죽음이라는 거는 본인이 알다시피 살아있는 거에 대해서 본인이 알죠? 그런데 살아있는 삶을 본인이 제대로 아는가? 이거요. 제대로 알면 이렇게 괴로울 일이 없죠.

 

그러니까 내가 여기 있을 때는 여기를 제대로 알고, 저기 가면 저기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한데, 여기 있으면서 여기에는 무지하고 저기에만 관심 있고. 저기 가서는 저기에 깨어있지 못하고 여기에만 관심 있다. 하면 이거는 어리석은 자라 그래요. 그러니까 살아있으면서 죽음을 연구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삶을 만끽하는 게 좋다. 그것을 일러 깨달음이라 그래요. 살아있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 죽어가지고는 또 산거를 생각한다면 이걸 뭐라 하냐? 무지라 그래.

 

그러니까 본인이 지금 살아있을 때 삶에 깨어있지 못한 상태가 무지거든요. 이 무지에서 깨어나는 것을 깨달음이라 그래요. 그러면 지금 삶이 기뻐지고 삶이 보람 있어지는 거요. 지금이. 그러면 오늘 좋으면 내일도 좋고, 이생이 좋으면 저생도 좋은 거요. 저생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요. 이생을 만족스럽게 살면.

 

. 왜 그래요? 살아있다는 거 즐거운 일 아니에요? . 그런데 바람이 다 될 수가 있어요? 없어요? 또 바림이 다 되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아요? 한번 보세요. 사람들이 다 오래 살고 싶죠?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오래 살고 싶은 바람이 다 이루어져서, 다 오백 살 천 살까지 산다. 그러면, 이 세상이 좋아지겠어요? 나빠지겠어요? 옛날에는 환갑만 넘으면 죽어도 좋았죠. 그런데 지금은 다 80도 부족해서 90을 살라 그러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면 다 100살까지 살면 다른 사람은 100살도 부족해서 또 120살 살라 그러겠죠? 그리되면 500살 가도 부족하고 1,000살 가도 부족하거든요? 그건 과욕이 아니에요. 지금 60넘어 살려고 하는 거는 과욕이에요. 옛날 사람들 생각에 비하면. 지금 벌써 거사님 나이 되면 더 산다는 건 과욕이에요. 그런데 본인이 과욕이라고 생각 안 하잖아요. ? 나보다 더 오래 사는 사람이 많이 있으니까. 500살 살아도 과욕이 안 돼요. 700살 사는 사람이 있으면. 1,000살 살아도 과욕이 아니오. 1200살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기 때문에 이게 끝이 없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사람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꼭 좋은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아들 서울대학교 보내고 싶겠어요? 안 보내고 싶겠어요? 보내고 싶겠죠? 그래서 원하는 거 다 이루어져서 다 서울대학교 갔다. 일 년에 30만 명 되는 고등학생이 다 서울대학교 갔다. 이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없어요? 될 수도 없고, 된다고 해도 좋은 것도 아니죠.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또 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여기 중요한 거는 그게 안 되니까 세상이 요만큼이라도 굴러가지. 사람이 원하는 게 다 되어버리면 세상은 하루아침에 망해버려요. 그럼 북한의 우리 김정일 위원장도 오래 살고 싶겠어요? 안 살고 싶겠어요? 자기 아들, 여러분도 다 그렇고, 자기 재산 자기 아들한테 물려주고 싶어요? 안 물려 주고 싶어요? 물려주고 싶죠. 그러면 그 사람도 자기 권력을 자기 아들한테 물려주고 싶은데 왜 욕을 해요?

 

여기 재벌들도 다 자기 아들한테 물려줘요? 안 물려줘요? 물려주죠. 그건 왜 욕 안 해요? 왜 저기 교회도 얘기 들어 보면 큰 대형 교회 아들한테 물려준다는 얘기 들어보셨죠. 왜 그건 또 욕을 안 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또 더 욕을 해요. 그러니 이런 것이 우리가 생각할 때 바람직하다. ‘~ 저렇게 권력을 물려주니 참 보기 좋구나.’ 이런 생각 안 드시죠? 그러면 사실은 재산을 자식한테 물려주는 건 좋은 게 아니에요. 권력이 지게 아니듯이 내가 살면서 모은 재산이 내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식공부만 시키고는 나머지는 사회로 환원해야 되요.

 

재벌들이 저렇게 돈을 많이 번 거는 자기가 잘해서 그래요? 정부정책이 몇몇 특정한 회사를 키워서 그렇죠. 그런데 제게 아니잖아. 그런데 그걸 왜 제 자식한테 물려줘요? 그것도 또 세금포탈까지 해가면서. 그게 잘못된 거 아니오.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을 보면서 북한만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잘못된 게 너무 많다. 나부터도 잘못되고 있다. 이런 자각을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여기서 보면 저거 과욕 같지마는 그 사람이 볼 땐 과욕이요? 과욕 아니오? 과욕이 아니오. 그 사람 볼 땐. 그 사람은 나라가 이래야 유지된다든지. 뭘 이유가 있을 거요.

 

우리가 마치 자식에게 재물을 물려주는 게 너무너무 당연하듯이 자기 자식한테 재물 물려주는 게 과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요? 없잖아. 그죠? 그래서 이런 욕심은 우리가 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고 좋은 게 아니고,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질 수도 없다. 이 말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있지마는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진다고 괴로울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거요. 왜 안 이루어지는 게 좋을지 나쁠지 모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게 좋은지 안 이루어지는 게 좋은지.

 

그러니까 안 이루어진다고 괴로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거요. 그러면 인생을 늘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원하는 건 있고, 그것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안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진다고 특별히 좋을 것도 없고, 안 이루어진다고 특별히 나쁠 것도 없다. 이걸 알면 이루어지면 이루어지는 데로, 안 이루어지면 안 이루어지는 데로, 받아들이면 되거든요. 그것이 어느 게 더 좋은지를 우리는 알 수가 없고. 그래서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돼요. 그러면 인생은 항상 가볍게 살아갈 수가 있죠.

 

이런 거를 이치를 아는 걸 뭐라고 한다? 깨달음이라고 그런다. 이런 걸 모르기 때문에 지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 인생도 괴롭게 산다. 이 인생이 괴로우니까 자꾸 죽은 뒤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거요. 그때는 안 괴롭게 살 수가 없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지금 할 필요가 없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 좋으면 내일도 좋고, 이생이 좋으면 내생도 좋다.

 

그러니까 내생에 극락이 있으면 나 빼고 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 이렇게 자신이 있어야 되고, 지옥이 있다면 있든지 말든지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 이렇게 이 생을 사는 인생에 자신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이생에 사는 인생에 자신이 없으니까, 지옥 간다 하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 생기고, 천당 간다 하니까 어떻게든 돈을 좀 뇌물을 좀 고해가지고 가볼까 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게 이생에서 잘못 살고 있는 인생의 반영이란 말이오.

 

그러니 죽음이라는 건 뭐, 숨 끊어지면 죽는 거 아니에요? 그죠? 그걸 모르는 건 아니잖아요. 죽은 뒤에 어디 가나? 지금 이 생각 하는 거 아니에요?, 그죠?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죽은 뒤에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죽은 뒤의 얘기는 증명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어떤 사기를 쳐도 다 대부분 밝혀지는데, 이 죽은 뒷 얘기하는 거는 아무리 사기를 쳐도 안 밝혀져요.

 

태어나지 않는다. 이 말은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석하셔야 되요. 태어나지 않는 게 뭐가 좋아요? 태어나야 이렇게 재미있게 살지. 그럼 뭐 자기 죽어버리면 되지. 아라한 되면 뭐해요? 태어나지 않는 게 왜 좋아요? 나 같으면 태어나는 게 좋겠어요. 그래도 이 사람들 다 살고 싶지, 죽고 싶은 사람 별로 없는데요. 태어나서 더 살고, 또 늙으면 또 태어나서 또 살고, 나무도, 저 하찮은 나무도 어때요?

 

잎이 떨어지면 또 새싹 트고, 또 잎이 떨어지면 또 새싹 트고, 나무가 죽으면 열매가 떨어져 새싹 트고, 하찮은 나무도 그러는데, 사람이 뭐 그보다 나아야 안 되겠어요? 꼭 사람으로 태어나면 뭐해요? 풀로 태어나면 어때요? 그러니까 그런 게 일종의 종교적 쇠뇌에 속하는 거요. 죽으면 천국 가야 된다. 자꾸 이런 얘기 하면 천국 안갈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고, 그러죠? 그러니까 아라한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이 말은 아라한은 깨닫게 되면 완전히 깨닫게 되면 번뇌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이해를 하셔야 돼.

 

번뇌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다. 죽고 사는 거 이런 거 논하는 거 자체가, 걱정이 있으니까 죽고 사는 얘기를 자꾸 하잖아요. 근심걱정이 없어져 버리면 죽고 살든. 죽는다 해도 아무런 마음의 미동의 두려움도 없는데, 그게 뭐 죽으면 어떻고? 살면 어떻겠어? 아무런 걱정이 그런 문제 없는데.

 

연세가 드시고 하니까 이생은 다 돼가고, 내생에 어떻게 좋은 일이나 있어볼까 해서 관심을 갖는 건 좋은데요, 항상 수행이라는 건 이런 거에요. 어느 정도로 현재에 깨어있어야 되느냐? 숨이 나올 때는 나오는 줄만 알고, 들어갈 때는 들어가는 줄만 안다. 찰나 찰나에 깨어 있어야 된다. 찰나 후도 생각할 필요 없고, 찰나 전 지나가 버린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나간 걸 자꾸 생각하면 괴로움이 생기고, 오지 않는 미래를 자꾸 생각하면 근심걱정이 생기는 거요. 항상 지금에 깨어있으면 괴로움도 없고, 근심걱정도 없다. 이 말이오.

 

지금에 깨어있는 자. 이게 수행자에요. 지금에 깨어있어야 되요. 그러니까 숨이 하나 싹 들어갈 때, 숨이 들어가야 살죠. 그죠? 지금 숨 들어가는 이 찰나에 내가 삶을 만끽해야 되고, 지금 숨 나오는 이 순간에 내가 만족해야 되요. 그 이외의 거를 생각하면 인생이 괴로워집니다. 여러분들 얼마 전에 칠레에서 광부가 69일이나 땅속에 있다가 나와서 그 사람들 기뻐하는 모습 보셨죠?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다고 기뻐하잖아. 그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사람보다 더 기뻐해야 되잖아. 아이 객관적으로 따지면. 안 그래요? 그 사람들 땅속에 갇혀있을 때도 여러분들 편안하게 살잖아. 그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 사람보다 더 기뻐해야 되는데. 왜 꼭 어려움을 겪어야 이 삶이 소중한지 알아요? 여러분 지금 건강한 것이 얼마나 복된 줄 모르는데 몸을 다치든지 병이 곧 선고 되서 곧 죽는다 했다가 살려주면 어때요? 굉장히 좋아하죠. 그래 한번 아프고 살아나는 게 좋아요? 처음부터 안 아픈 게 좋아요?

 

그러니 지금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행복이 엄청난 거요. 그런데 이거를 다 외면하고 털끝만 한 그걸 문제 삼아서 자기 인생을 자꾸 괴롭게 사는 거요. 우리 연세 드신 거사 분들이 몇 분 계시는데 아이고 살날도 며칠 안 남았다.’ ‘10년밖에 안 남았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마는 나보다 젊은 사람이 이 10년 안에 죽을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죠? 그러니 이 10년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긴 인생이오. 그러니까 자꾸 죽음을 생각하면 남은 10년도 괴롭게 살고. 지금에 깨어있으면 남은 10년을 어때요? 행복하게 산다. 이게 중요한 거요.

 

암에 걸려가지고 1년밖에 못 삽니다.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암에 걸려서 1년밖에 못 사는 게 괴로움이 아니고, 1년밖에 못 산다는 그 생각에 집착돼 있기 때문에 그 1년을 괴롭게 사는 거고. 1년 안에 멀쩡한 사람도 죽는 경우도 있어요? 없어요? 많이 있겠죠. 그 사람들은 왜 행복하게 사느냐? 그 사람들은 1년 죽는다는 생각 같은 거 안 하고 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1년이란 삶도 집착을 놓으면 1년을 행복하게 살고, 1년밖에 못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1년을 괴롭게 산다. 이 거요.

 

아이고, 1년 안에 죽는다.” 이런 사람이 병이 조금이라도 더 나을까? 다 놔버리고 1년을 마음을 기쁘게 사는 사람이 아이 1년이나 사네. ! 1년이나 살 수 있다니 정말 기쁘다. 옛날 같았으면 3일 안에 죽았을 텐데 요즘은 병원 시설도 좋고 약도 좋아서 1년이나 살 수 있다.” 이런 생각 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오래 살까? 그러니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 줄을 자각해야 된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가 가진 100의 복은 당연한 거로 접어놓고 부족한 거 하나 갖고 계속 지금 시비하고 있는 거요.

 

자꾸 그러면 100마저 없어져 버려요. 그러면 그때가 좋았다. 또 이런 얘기 하는 거요. 여러분들은 늘 그때그때는 괴로워죽겠다고 해놓고 지나놓고 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자꾸 이런 생각을 하잖아. 그러니까 항상 지금 주어진 이 상황이 얼마나 나에게 복된가? 이걸 자각한다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하는 일마다 다 즐겁게 잘된다. 잘 된다는 말은 다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잘된다는 말은 되든 안 되든 그거 별로 중요한 거 아니다. 게으르다는 게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서 다만 할 뿐이지. 되고 안 되고는, 안되면 다시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에 문명이 발달해온 것은 인간이 실패하기 때문에 발달이 옵니까? 성공하기 때문에 발달이 옵니까? 실패하기 때문에 발당해 온 거요. 만약에 나무 막대기 갖고 동물을 잡을 수 있었다면 인간이 창이나 활이나 칼 같은 거 만들겠어요? 안 만들겠어요? 안 만들겠죠.

 

안되니까 연구해서 또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만들고 이런 거 아니에요. 이 모든 문명의 발달은 실패 때문에 생긴 거요. 그런데 실패했을 때 하느님한테 빌어서 문명이 발달했겠어요? 아니에요. 다 그것을 연구해서 극복해서 발달해 온 거요. 그래서 실패는 좋은 거요. 실패하기 때문에 우리는 연구를 하고 더 발달 된 더 개선된 안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