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31회 획일화 된 삶

Buddhastudy 2013. 1. 30. 22:04

출처: BTN

  

그러니까 기성세대, 부모를 기성세대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기성세대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왜 그러냐 하면 자기도 이제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보면 부모의 성질이 있습니다. 부모라고 하는 모든 부모들이 갖는 거의 99% 공통된 성질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최우선적으로 안전을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게 부모의 특징이에요. 내 부모만 문제가 아니고 모든 부모는 자식의 안전을 중심으로 우선합니다. 자기 자식에게 모험하라.”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게 부모의 특징이에요.

 

어릴 때는 부모만큼 돌봐주는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부모만큼 자식인생에 장애 되는 사람이 없어요. 이게 부모의 특징이에요. 부모가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니고, 부모가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부모라는 것은 자식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보호본능을 갖고 있어요. 어릴 때는 목숨 걸고 보호해주니까 자식에게 어린 생명에게는 끔찍하게 세상에 부모보다 더 큰 은혜 입은 사람이 없는데. 컸는데도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보호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건 자식의 성장을 맞는 최대의 장애 요인이 부모가 됩니다. 이게 부모의 특징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부모를 원망해도 안 되고. 그래서 내가 부모를 원망하지 말라는 거요. 그건 부모의 특징이기 때문에. 부모가 고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보호받은 거에 대해서 부모에 늘 감사해야 되요. 그러고 나이 들어서는 자기 갈 길을 자기가 가면 돼요. ‘부모가 뭐이랬니? 저랬니?’ 그런 말 할 필요가 없어요. 부모가 말려서 출가를 못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고, ‘부모가 말려서 결혼을 못했다.’ 이런 말 하는 거는 자기 인생에 대한 무책임성이에요.

 

어차피 성인이 되면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갈 수밖에 없는 거요.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부모의 울타리 안에 돈을 얻어 쓰고 있으니까 부모하고 갈등이 생기는 거요. 부모한테 여러분이 돈을 안 얻어 쓰면 부모하고 갈등 생길 일이 뭐가 있어요. 가끔 찾아가서 인사하고 감사합니다.” 그러고 부모한테 아무 도움도 청하지 않고 가끔 부모님께 선물 사다 드리는데 부모가 걱정하는 거는 부모의 특징이고. 내 인생에 간섭받을 일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이중성을 갖고 있는 거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서 부모 간섭을 안 받겠다. 이건 굉장히 모순이오. 부모가 아니라도 누구한테든 여러분이 도움을 받으면 돈 주는 사람한테서 간섭을 받아요? 안 받아요? 받아요. 장학금을 받아도 그 규칙을 지켜야 되요. 은행에 융자를 받아도 그 규칙을 지켜야 되요. 스님한테 누가 도와 달라 해서 도와줘도 내가 도와줄 때는 네가 어떻게 할래?” 하고 물어보고 도와주기 때문에 그거 안 지키면 끊어버려요. 그러니까 그건 부모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건 주는 자에게는 반드시 조건이 있는 거에요. 이 세상에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부모에게 도움을 받을 때는 부모의 간섭을 정당하게 인정을 해 줘야 돼. 그런데 여러분들은 굉장히 내가 볼 때 무책임한 거요. 부모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부모의 권리. 도와준 사람의 권리를 인정을 안 할라 그래. 공짜로 먹겠다는 거요. 공짜로. 너는 돈만 내고 간섭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요. 세상에 그런 법은 없어. 그게 여러분들 당연히 간섭 받아야 되는 거요. 도움을 받으면. 그러니까 어린애라는 거요. 성인이 안 됐다는 거요.

 

성인이 되면 도움을 받으면 고맙다고 해야 되고 간섭을 받아야 된다. 이 말이오. 정당한 간섭을 받아야 된다. 그래야 그게 성인이지. 그런 데서 부처님 당시에도 이랬어요. 부처님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를 했어. 그래서 부처님이 됐어. 그래서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성인이 됐어. 그러고 부처님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설법했는데. 이렇게 고향에 와서 설법했는데. 많은 사람이 듣고 다 깨달음을 얻었어. 그런데 오직 깨달음을 못 얻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누굴까? 부처님 아버지요. 부처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런데 그 왕은 굉장히 사람으로부터 존중받는 사람인데 정반왕에게는 부처님이 없다. 누구만 있다? 아들만 있는 거요. 부처가 아니고 아들이에요. 아들이기 때문에 이게 스승이 아니기 때문에 깨칠 수가 없는 거요. 그래서 경전에 보면 항상 이래요. “부처님이 뭐 먹더냐?” 신하가 갔다 오면 부처님이 뭐 먹더냐?” “옷은 뭐 입었더냐?” “잠자리는 어떻더냐?” “뭘 가르치나?” 이렇게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항상 뭐 먹더냐? 뭐 입었더냐? 어떻게 지내 더나? 이것만 묻고.

 

석 가족 마을에 고향에 돌아왔을 때도 음식 차려놓고 옷 준비해놨어요. 법문 같은 건 하나도 준비 안 하고. 그러고 법문할 때도 자기는 관심이 없어요. 그거 자기 아들 옷 저거 저래 입어서 안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그런데 부처님이 옷도 남루하게 입고 제자들도 남루하게 있으니 왕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니 우리 훌륭한 아들 뒤에 저렇게 거지 같은 놈들이 저렇게 있어서 안 되겠다. 그래서 왕이 명령을 해가지고 얼굴 잘생긴 똑똑한 석 가족 청년을 출가를 강제로 시켜서 새 옷을 싹 입혀서 부처님 옆에 시봉시킵니다. ? 거지 같은 놈들 저거 옆에 있지 말라고.

 

이게 부모라는 거요. 아시겠어요? 이게 부모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부모는 자식이 어떤 게 올바르게 가고 안가고 이런 개념이 없어요. 그런데 이건 부모가 나빠서 그런 거 아니에요. 이럴 때 왜 그런 얘기 하느냐?” 싸우면 안 돼요. ‘, 부모의 마음이 저렇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 되요. 그런데 부모의 마음이 저러니까 내가 장가가서 애를 하나 놔 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는 그거는 부모에게 효자가 아니에요. 그건 독립. 스무 살이 넘으면 그건 부모인생은 부모인생이고 내 인생은 뭐다? 내 인생이에요.

 

부모가 그렇게 말하는 건 부모입장이고 내 갈 길은 내가 가는 거요. 그냥 내갈길 내가 가면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결혼 이렇게 해라.’ ‘취직해라.’ ‘뭘 해라.’ 하는 거를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걸 따라가도 안 되고 나쁘게 생각해도 안 된다. 만약에 그걸 따라간다면 부모 말을 들어서 따라가는 게 아니고 내가 선택을 하는 거요. 부모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해야 되요. 나중에 여러분이 엄마가 자꾸 결혼하라고 했지 않았냐?” “엄마가 취직하라고 그래서.” 이런 얘기 하면 안 돼요.

 

그건 자기 인생을 무책임하게 남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는 행위에 불과한 거다. 그러니까 내가 볼 때 그렇게 생활하기 어려우면 첫째 길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싶지마는 대학에 돈 낼 능력이 안되면 대학 공부를 못하잖아. 그죠? 그런데 왜 여러분들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쟤는 유학을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쟤는 대학을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안 갔어요.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안 가면 되지. 왜 대학을 꼭 가야 되요? 그 책임을 왜 남한테 자꾸 떠넘기려고 그래요? 돈이 없으면 대학을 안 가면 되지.

 

두 번째 그래도 가고 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든지. 그래도 가고 싶으면 아버지하고 타협해서 융자를 받든지. 은행에다 얘기해서 융자를 받든지 하며 되죠. 세 번째. 이런 제도가. 즉 학자금이 너무 비싼 제도가 불만이다. 하면 친구들하고 모아가지고 뭐 하면 된다? 반값 등록금 투쟁을 하면 되지. 그런데 여러분 반값등록금 투쟁 며칠 막 해달라고 해주다가 안 해주니까 다 포기해버려요. ? 자기가 돈 내는 거 아니고 아버지가 내니까.

 

나라를 잃었을 때는 독립운동을 해야지. 우리가 가난할 때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허리띠 졸라매고 건설을 해야지. 밥 먹고 살만한데 독재를 하니까 감옥 가면서 반독재투쟁을 해야지. 그러듯이 자기의 삶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노력하든지 집단적으로 노력하든지. 뭔가 노력을 해야 된다. 이 말이오. 누구도 대신해주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는 기본속성이 그렇다. 그러니까 부모를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리 부모가 내 인생 망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