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교권과 학생 인권에 대한 논쟁,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2023.8.16.)

Buddhastudy 2023. 11. 15. 20:18

 

 

최근 한 달 사이에

서울에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이어

유명 웹툰 작가와 교육청 사무관인 학부모의 갑질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교육계를 둘러싼 문제로 인해 한국 사회가 떠들썩합니다.

저는 제가 속한 교사 커뮤니티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여러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문제의 본질과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정쟁으로까지 번져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추락한 교권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학생 인권조례를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삼아서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장애 학생에 대한 공격과 차별을 조장하는 여론도 보입니다.

특수교사와 같은 전문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대안 마련과

무분별한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장치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해결하려면

교사인 저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잘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계가 우리가 살 수 없는 세계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우리가 살만한 세상입니다.

살만한 세상이지만 우리가 원하는 이상향은 아닙니다.

 

 

부모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님은 나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에 대해서 불만이 생기는 이유는

부모님이 내가 원하는 만큼 안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과 비교해 보면

부모님은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길 가는 사람은 안 미워하면서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모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비교해 보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에요.

내가 원하는 만큼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그가 없어지면 아쉽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개개인이 원하는 만큼 좋은 세상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못 살 세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만한 세상이에요.

그것처럼 오늘날 우리나라가 교육 문제로 인해 논란이 많다고 하더라도

한국 교육이 모두 망가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선생님들은 괜찮은 편에 속하고,

한국 학생들도 아직 괜찮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 학부모들의 자녀 교육열은 다른 나라의 학부모들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교육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아직도 선생님 중 일부는 학생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 때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폭력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자녀를 하나만 낳아 기르는 가정이 많아서

학생 중 일부는 늘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회성이 매우 부족한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현상을 두고

요즘 초등학교 교실은 동물원 수준이다하고 빗대어 비판하기도 합니다.

학부모들은 어떨까요?

예전에는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너무 높아 치맛바람이라는 폐해를 가져왔는데,

이제는 대부분이 자녀를 1명만 낳아서 왕자처럼 또는 공주처럼 키워서

그 폐해가 더욱더 커지고 있습니다.

학부모의 아이에 관한 관심이 교육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지나친 간섭으로 이어져 교육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으나

교육이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괜찮은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분야를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코로나 비상시국 당시 한국의 의사와 간호사만큼 헌신적이었던 의료진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의사와 간호사 개개인 모두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요.

돈을 밝히는 사람, 과잉 진료하는 사람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점도 있지만

모든 것이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국가 간의 이익 추구, 대립, 갈등,

분쟁으로 인한 무력 충돌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된 후에는 비교적 협력 관계를 잘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글로벌화’, ‘세계화이런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시 신냉전이라는 말이 사용될 만큼

세계가 분열되고 있습니다.

경쟁이 지나쳐 적대 감정으로 번져서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까지 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도 분단 이후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지만,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정상회담도 하고 교류도 하다가

다시 삐걱거리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남북이 전쟁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은 여야가 서로 싸우면서도 협력해 왔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야합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좋게 말하면 협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거의 적대적인 관계로 변해버렸습니다.

국민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만 무조건 잘했다고 하는 식으로 분열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적대적으로 분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첫째,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한 것을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자기가 선호하는 영상만 계속 보게 되어

편향된 사고가 강화된 것도 원인입니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사회학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보면 사회적 분열이 강화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결과 어떤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으면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안전 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 하는 주제로

여야와 시민들이 토론해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쟁이 정부의 잘못이다, 아니다 하는 식으로

정쟁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유사한 대형 사고가 일어나도

어떻게 안전 조치를 취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고

정쟁의 대상으로만 삼습니다.

 

이번에도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으로 교사가 사망한 사건이 생겼으면

이런 희생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대책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 세계의 모습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사실 그대로 보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보다는

남을 탓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경향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부부가 자꾸 상대를 탓하게 되니까 이혼율이 높아지는 겁니다.

 

지금은 남을 탓하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먼저 자각해야 합니다.

 

교사 사회 안에도 단순히 선생님들의 권익을 위한 조직만 있는 게 아니라

진보적인 조직이 있고 보수적인 조직이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현재 상황임을 인정하되 그렇다고 너무 자괴감을 느끼거나 힘들어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현재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다고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대로 내버려 두고 나도 같이 세상을 따라가면 될까요?

그건 아닙니다. 우리는 늘 문제가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게 인간의 삶이에요.

 

최근 교육계의 문제도

재발하지 않도록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잘 안 되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학교의 기능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학생의 학습권이 존중받는 곳이 학교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관은

학교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가르치는 곳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이 말을 안 들으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민주적인 교육관이 보편화되면서

자기 자녀라도 때리면 안 되고

선생님이라도 학생을 때리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쪽으로 관점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아동학대라는 용어도 보편화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학생들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관점은

최근에 일어난 교사 사망 사건과는 관계없이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학생 중에는

약간 정신적인 질환이 있거나

사회성이 부족해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도 보호해야 하지만

그 학생으로 인해서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된다면

그것 역시 막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다수 학생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것 또한

선생님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사람이 보살피도록 하든지,

선생님이 그런 학생을 발견해서 알리면

학교에서는 그런 학생들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따로 마련해 주든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상담사가 학부모와 의논하든지,

의사와 의논하든지 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는 교사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교장, 교감, 교직원, 교육청 공무원들이

교사의 이런 애로점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혹시 이 문제가 말썽이 되어서

자신의 개인적인 출세에 문제가 되지 않을지 염려하기가 쉽다는 겁니다.

그 결과 교사는 그 사이에서 고뇌가 생기게 되고

최근에는 교사가 자살하게 되는 일까지 생겨난 것입니다.

 

교권 회복을 주장하면서

아이들을 때려 가면서라도 교육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학생은 학생대로 보호해 줘야 하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학생을 가르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보호해 줘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관계가 아닙니다.

최근에 벌어진 일들은

학부모가 과다하게 학교 교육에 개입해서 생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교육 현장에 과다하게 개입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 줘야 합니다.

 

그 역할을 교장 선생님처럼

학교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임직원들이 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사 개개인이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느냐 보수적인 생각을 가졌느냐 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서로 협력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번에 모처럼 교육단체들이

이념적 차이를 넘어서 교권 보호를 위해서 함께 집회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교권 보호라는 것이

마치 학생 인권을 훼손하면서까지 교권 보호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간다면

이것은 다시 권위주의 시대의 학교로 돌아가는 형국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앞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문제는

우리가 많은 토론을 해나가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할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나는 그저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지

페스탈로치와 같은 선생님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선생님 역할을 오래 못 합니다.

 

요즘 같은 교육환경에서 페스탈로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공부를 너무 하고 싶은데 가난해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을 도와줄 때는

페스탈로치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자라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페스탈로치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적절하게 해 나간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학생들의 인생을 너무 책임지려 하면 감당이 안 됩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지치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