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 명상과 절을 한다고 괴로움이 없어지나요? (2023.10.07.)

Buddhastudy 2023. 12. 18. 19:59

 

 

수행에 대한 지식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토회에서 제공하는

일요명상, 불교대학, 즉문즉설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참석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명상과 절하는 수행에 대한 노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점점 꾸준히 하지 못하게 되면서

다른 종류의 걱정이 생겼습니다.

일상생활에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적용하여

순간순간의 집착과 습관에 깨어있고,

명상과 절하는 수행에 의존하는 것만으로 열반에 이를 수 있을까요?//

 

 

명상이나 108배는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 스스로 자각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각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 명상과 절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자각이 일어날 수는 있습니다.

꼭 어떤 방법 때문에 자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은 자각을 하는 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만약 초심자들이 30분 동안 명상을 하는 것과

30분 동안 절을 하는 것을 비교해 본다면

명상을 통해 자각에 이르는 사람이 약 20퍼센트이고

절을 통해 자각에 이르는 사람이 약 80퍼센트가 될 것 같아요.

절을 통해 자각에 이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을 하면 도움이 되는 이유는

첫째, 힘든 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기 싫은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을 하기 싫은 사람일수록 절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절하는 게 재미있고 즐겁다면

오히려 자각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좋고 싫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니르바나(열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좋고 싫음을 따라갑니다.

절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절을 하고

절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절을 안 합니다.

절을 하든 절을 안 하든 모두 좋고 싫음을 따르기 때문에

자각에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하고,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은

세상살이일 뿐이지 해탈로 가는 길은 아닙니다.

대다수는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합니다.

그래서 자유로움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기로 했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 일어나는 것

절하기 싫은데도 절을 하는 것

몸이 아파도 해보는 것

가야 하는 곳이라면 가기 싫어도 가보는 것

이렇게 싫어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점점 더 자유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많아진다고 해서

니르바나(열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에 대한 지식이든 지식은 지식일 뿐입니다.

 

지식은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괴롭거나 즐겁거나 하는 괴로움의 원인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한다고 해서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생각을 바르게 하면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에 상당한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바른 생각을 갖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야 괴로움이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