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자부심은 자기 예찬이다. [낭독73회]

Buddhastudy 2024. 2. 8. 20:21

 

 

오늘 함께할 책은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수준을 넘어서]입니다.

 

저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인간 정신의 진화에 대한 전문가로서

1952년부터 정신과 의사로 일해 왔습니다.

제가 1995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첫 저서인 [의식혁명]이라는 책을 접한 때는

20여년쯤 전의 일인데요.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영성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 한 번쯤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책들 중 하나입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의식 지도를 제시했는데요.

의식 수준 200을 인간의 부정성과 긍정성이 갈라지는 기준점으로 보았습니다.

 

오늘 읽어드릴 내용은 자부심에 관한 부분인데요.

자부심은 우리가 흔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부분이죠.

하지만 의식 지도에 의하면

자부심은 의식 수준 175로 측정되구요.

부정성에 속하는 의식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자부심으로 인해 인간은 더 쉽게 상처받고

이로 인해 자신과 타인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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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수준에 도달할 때

보다 긍정적으로 느끼는데,

이 수준에서의 자존감 상승은

그보다 낮은 의식 수준에서 경험되는 모든 고통에 대한 진통제이다.

 

자부심은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절망을 벗어나 상승한 엄청난 도약이다.

자부심은 그 자체로는 일반적으로 좋은 평판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장려되지만,

의식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임계 수준 200 이하에 잔류하리만큼 부정적이다.

자부심은 그보다 낮은 수준과 대비될 때만 좋게 느껴진다.

 

자부심에는 멸망이 따르기 때문에 방어적이고 상처받기 쉬운데,

그 이유는 자부심이 외적인 조건에 의존하므로

그것 없이는 보다 낮은 수준으로 갑작스레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팽창된 에고는 공격 받기 쉽다.

자부심은 발판에서 떨어져 수치심으로 곤두박질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약한데,

이것은 자부심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불을 지르는 위협이다.

자부심은 분열과 파벌주의를 낳고, 값비싼 귀결을 부른다.

 

인간은 습관적으로 자부심을 위해 죽었고

군대는 자부심을 위해 여전히 정기적으로 서로를 학살한다.

종교 전쟁, 정치 테러, 정치적 열광

그리고 중동과 중부 유럽의 무시무시한 역사는

모두 자부심과 증오의 값이며

그 비용은 전 사회가 치른다.

 

의식 수준이 상승할수록, 경험되는 행복의 현존 또한 상승한다.

분노 수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12퍼센트가 삶에 행복을 느끼지만,

자부심의 수준에서 그 비율은 22퍼센트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자부심은 분노 및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보호와 방어를 필요로 하는

내재적 취약성으로 인해 여전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자부심은 성취에 대한 일시적 자기 보상이다.

그러므로 착한 행동에 대한 부모의 인정과 보상을 통해

어린 시절에 학습되는 정상적 반응이다.

 

오류가 일어나는 것은 에고가,

보상받는 것이 행동 자체가 아닌 라고 추정할 때이다.

자부심은 종종 사회적 이미지에 의존하며,

또한 소유물, 명성, 호칭, 부 등에 의존한다.

사회적 지위 및 성공의 증표에는

거주지, 집의 크기, 자동차, 부의 부속물은 물론이고

언어와 옷차림에서부터 누구를 알고 있나에 이르는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

 

자부심은 자기 예찬이다.

이것은 남들은 비교적 열등하거나

유용성, 지위, 가치가 덜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보다 성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허식의 투명성을 재빨리 간파하는데,

이들은 자부심을 곤혹스러운 것이자 사회적으로 해로운 속성으로 간주한다.

 

특별함으로서의 이기적 자부심은

타인들과 일반 사회에서 분개를 유발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정으로 성공한 이들은 받아들여지는데,

왜냐하면 성숙한 성공에는 우월성의 분위기 대신

겸손함과 감사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자부심은 눈에 잘 띄는 것은 물론

그 취약성으로 인해 방어적이다.

자부심의 그늘은

시기, 경쟁심, 질투이자

이러한 것들의 귀결인 증오, 악의, 앙심이다.

 

자부심의 허약함은

그 자기애적 핵심에서 비롯되는데,

자부심의 자기애적 핵심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은연중에 자신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며 위협으로 본다.

 

그래서 허영심은

결국 무시나 비교에 대한 예민함을 낳고

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편집증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으로 지도자 증오증후군이나

성공에 대한 증오로 표현된다.

이 자기애의 그늘은 학급의 우등생들을 시기하고 적대시하며,

결국에는 동급생들의 높은 성취를 비웃기에 이르는 아이들에게서 표현된다.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자기 중요성의 귀결은,

내적 의심 및 완전함과 완벽함의 결핍을 상쇄하기 위한

끊임없는 지지와 보강의 필요성이다.

 

완전함과 완벽함은 온전성의 요구를 충족시킨 귀결이다.

자부심은 예민하고, 경쟁적이고, 위협감을 느끼며

사회적 지위나 타인에게 쏠리는 시선에 대해 적대적 질투심에 불타게 된다.

 

원시적이고 자부심 강한 에고는 탐욕스러우며,

그것의 훤히 들여다보이는 약점은

결국 교만의 귀결을 끌어당긴다.

 

에고는 타고난 구조로 인해

원천적으로 진실과 거짓을 식별하지 못하고

지각과 실상을 혼동한다.

그래서 에고는 자신이 가진 한계의 희생양이다.

 

자부심의 내재적 근원은 에고의 자기애적 에너지다.

에고는 부정됨으로써 수축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따라서 끊임없이 칭찬은 물론 인정과 동의를 통한 강화를 구한다.

 

현명한 사람은

보란 듯이 과시하는 것을 피하는데

그것은 과시는 감탄이 아닌

시기와 질투를 끌어당기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부심은 부서지기 쉬우며

따라서 자부심의 방어는

종종 편집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강하고 극단적이다.

 

팽창되어 있는 것은 수축하기 쉽고,

수축은 급속히 수치심을 유발한다.

그래서 에고는 겸손함과 굴욕을 맞먹는 것으로 잘못 해석한다.

반면에 실상에서 겸손함은

굴욕이나 취약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이다.

 

자부심은 불필요한 짐이자 허약한 버팀목이며,

수축되기 쉬울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공격을 유발하고 끌어당기기조차 한다.

 

존재하는 전부는

그것의 창조 및 창조 자체의 근원으로 말미암아 원천적으로 동등하다.

자기 가치를 증명하거나 주장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자기 가치를 잃는 것이다.

 

자부심이라는 버팀목을 내던지고

불멸의 근원에 속해 있는 자신의 내적 실상을 겸허히 수용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독립적 실상으로서 자기 존재의 내적 핵심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누구로서의 자기에 대한 그 모든 정의를 놓아 버리고

스스로를 무엇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부심에 대한 해독제는

중요성, 정당성, 되갚음, 비난에 탐닉하는 것 대신

겸손함과 온전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취에 대한 모든 영예는

에고가 아닌 내면의 신성의 현존으로서 신에게 돌려지며,

따라서 성취는 취약한 자부심이 아닌 감사와 기쁨을 낳는다.

 

영적 자부심의 저변에 있는 오류는

에고의 통치권에 있는 추정과 주장인데,

에고는 스스로를 실행 및 행위 결과들의 저자이자 작인으로 본다.

 

알아달라는 에고의 요구는

전구가 빛에 대해 공로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전구가 가진 힘의 근원은

전기 자체의 비개인적인 에너지에서 유래한다.

 

영적으로 지혜로운 이들은

아첨, 호칭, 세속적 성공, 겉치레, , 세속적 권력,

다른 환상의 유혹들을 통한 에고 팽창에의 유혹을 거부한다.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채널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