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선공부

[릴라선공부] 우리 삶의 참 모습

Buddhastudy 2024. 5. 6. 20:25

 

 

공부는 이거예요.

이런 말을 어렵게 하니까

무슨 부처님의 세계, 희론적멸이니

이런 세계가 따로 있구나하면 안 되고

지금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보면

이 어려운 말들이 자기 현실이 되는 거예요.

그게 마음공부의 진정한 의미라는 거죠.

 

그래서 이거는

제가 이렇게 얘기를 드려서 여러분께 되지 않아요.

여러분이 이런 말을 들으면

아침에 어떤 일어나는 경험에서든, 뭐가 됐든

자기 스스로의 본성이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거를

문득 목격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걸 깨달아야지

우리가 진정으로 이것이 실제가 아닌

허망한 의식의 세계라는 거를 깨달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실질적인 자유를 얻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아주 단순한

우리 매일 아침마다 경험하는 거잖아요.

이게 꼭 잠에서 깨어날 때만이 아니에요.

근데 우리가 매일 그 경험을 하기 때문에

그런 순간에 문득문득 마음공부에 뜻이 있다면

이런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면

자기 경험을 목격하게 되죠, 관심이 가니까.

 

그래서 그냥 한순간도

그냥 공부 기회가 아닌 게 없어요.

그냥 무심결에 길을 가다가도

이거는 경험할 수가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가는데

누군가가 그때까지는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런 세계가 나한테 있지도 않은데

누군가가 불러.

딱 돌아보니까, 바로 한 걸음 뒤에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그 지인이

계속 나를 보고 있었어.

나를 따라오고 있었어.

그때까지는 내 세계에 없는 사람인데.

 

그때 어떤 그 순간의 경험이 어떤 거냐면

딱 돌아보면서

자기 눈앞에 있는 감각적인 인연, 그것도 감각적인 인연이에요.

우리가 만약에 돌아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도 존재하지 않거든요.

감각적인 인연의 과거를 동원시키는 거예요, 기억 정보를.

 

그래서 그 사람이 거기 있구나라는 세계를 창조하는데

더 구체화해서 창조하는 건

그 사람이 10분 전에도 거기 있었고, 20분 전에도 거기 있었고, 1시간 전에도 거기 있었어라고 자기 의식이 창조를 해요.

생각을

왜냐하면 또 대화하다가

너 나 알아?”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잖아.

어떻게 나인 줄 알아?”

“1시간 전부터 보고 있었어

이렇게 얘기하면

1시간 전부터 나를 보고 있는 그 세계가 창조되는 거예요.

 

만약에 그런 얘기 없었다면

방금 전에 그 사람을 만난, 그 세계만 있는 것이고.

 

너무 우리의 세계라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니에요.

기존에 우리가 학습했고, 갖고 있던 세계가 아닌 거예요.

우리가 알았던 세계가 아닌 거예요.

객관적인 세계가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의 현실은

지금의 감각적인 경험과 과거의 표현인 거예요.

살아온 역사의 표현인 거예요.

과거와 지금의 감각적인 경험의 표현인 거예요.

드러남인 거예요.

 

근데 그게 과거가 온 것도 아니고

눈앞에 객관적인 뭐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이게 드러난 감각적인 그 세계에다가

왜냐하면 눈앞에 드러나는 사물이나 이런 것들도

사람마다 감지하는 능력이나 기능이나 그거에 대한 정보나

이런 게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경험은 다 달라요.

근데 다 다른 경험이 실제 있는 것도 아닌 거예요.

현상은 똑같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그 똑같지 않은 세계가 일어나 있는 것도 아닌 거예요.

 

단지 순간순간순간순간

우리가 이 눈앞에 인연 따라...

그래서 인연이라고 하거든요.

객관적인 대상을 감지하고 그게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인연 따라 드러난 이 현상에 대해서

과거가 해석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살면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것도 아니야

새로운 세계를 사는 것도 아니고 과거를 사는 거죠.

그 패턴으로 이 상황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근데 우리가 그런 사실을 깨달으면

그런 식의 어떤 해석이나 정보를 믿지도 않죠.

그냥 인연으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고

지금 단지 이런 인연이 꿈처럼 펼쳐지고 있구나라고 보기 때문에

그거에 매이지 않고 보게 되는 거예요.

되게 새로운 시선으로.

 

근데 그 드러나는 거는

다 사람마다 다르고, 그 경험상도 다르지만

뭐가 같냐?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공을 경험하는 것은 똑같고

공이지만 끊임없이 실체 없는 것들이

다양한 면모로 드러나고 있는

이 새로움, 신선함은 누구나 똑같은 거예요.

실질적으로.

 

새로운 경험, 늘 살아있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

물론 그게 존재하는 게 아니지만

그것

텅 빈 살아있음이 늘 똑같은 거예요.

그것만 다 똑같습니다.

 

그게 우리의 본성이고

그게 본래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살아있는 색이 공인데

색이 정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야.

늘 살아있는 색이 공인 거예요.

늘 살아있는 현상이 공인 거예요.

늘 새롭게 펼쳐지는 이 현상이 공인 거예요.

 

여러분의 경험이 그렇다는 것이고

삶이 그렇다는 것이고

존재가 그렇다는 것이고

이 세계가 그렇다는 거예요.

 

이것이 공부하면 할수록

더 깊이 있게 세밀하게 보게 되는 실상이라는 거예요.

우리 삶의 참모습이라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존재 자체예요.

 

이게 모든 사람의 본성인 것이고

이게 어떤 개인에서부터

그 사람의 맺고 있는 관계나

아니면은 뭐 그 집단이나 나라나 사회나 국가나 우주나 다 똑같은 거야.

 

그래서 하나다.

모든 경험은 하나인데

하나라고 세울 만한 게 있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서.

 

근데 이게 항상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묘용

미묘한 작용으로서 하나다.

그게 지금 이것인 것이고.

 

그러니까 이게

*!

요것만 법을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이것만 법을 가리키는 게 아니고

이것만 법을 가리키는 게 아니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 법을 가리키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숨 쉬고, 밥 먹고, 물 마시고, 걸어가고

시장 보고, 은행 일 보고, 직장일 가고

요즘 밭에 나가서 일도 하시는 보살님도 계시고

귤 따는 일이 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