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선공부

[릴라선공부] 도란 무엇인가?

Buddhastudy 2024. 7. 9. 18:42

 

 

도라는 것은

그냥 어떻게 보면

어떤 무위, 조작이 없는

어떤 생각이나 분별 망상에서 풀려난 그 어떤 자유를

이름하여 도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거를 우리가 우리 일상으로 돌려서

자기 자신의 어떤 삶으로 돌아왔을 때

그럼 과연 도가 뭐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뭐냐? 라고 봤을 때

우리 스스로 이걸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저절로, 저절로가 뭐냐?

나의 어떤 분별이나, 아니면 의도나 그런 것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우리가 손댈 수 없는 것이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것이고

그것은 사실은 우리가 공부를 통해서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절로 드러난 것은

내가 공부를 하건, 하지 않건, 저절로 있는 것이거든요.

근데 우리 주변에서 저절로인 게 뭔가를 한번 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그냥 이렇게 있으면

꽃이 이렇게 드러나는 게

사실은 이게 내 노력

나는 꽃을 봐야 되겠어

아니면은 꽃에 대해서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이런 식으로 드러난 게 아니거든요.

 

그냥 눈만 뜨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고

그냥 소리도 그냥 저절로 들리는 것이고

생각도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고

순간순간에 생각이나 어떤 경험에 따라서 감정도 저절로 일어나는 거거든요.

 

이거는 사실은 다 드러나 있는 사실이죠.

그래서 이거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꽃이 아름답게 피는 거나 이렇게 드러나는 거나

이 소리가 들리는 거나 아니면 춥고 더운 거나

몸이 어디가 아프고 아프지 않은 거, 불편하고 불편하지 않은 것

그다음에 감정적으로 괴롭거나 괴롭지 않은 거는

사실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해야 되겠어

아니면 이런 경험을 해야 되겠어해서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꽃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고통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근데 그 저절로는 사실

늘 저절로인 것이고, 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다 드러나 있어요.

진리라는 것은 다 드러나 있다, 이런 식으로도 표현을 하거든요.

도라는 것은.

 

근데 우리는 이런 식의 모양을 떠나서

도라는 게 따로 있다고 여겨서

그것을 붙잡으려 하고, 찾으려 하고

자꾸 어떤 수행이라는 형태

아니면 뭔가를 지어서, 자기가 원하는 그것을 얻으려는 그런 조작에 떨어지거든요.

 

근데 그게 도는 아니죠.

유위법이고 조작인 것이고

자연스러운 게 아닌 것이고

그거는 진리라고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그런 식으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건 얻을 수가 없는 것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럼 진리가 뭐냐? 그러면

그냥 꽃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고

지금 이렇게 소리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고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고

감정이 이렇게 출렁거리는 이것이거든요.

그래서 이거는 다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과 상관없이.

 

그러니까 진리는 다 100% 드러나 있다라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는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인 것이지

이거를 어떻게 사량 분별하고 해석하고

그림을 그려서 있는 그대로가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다 드러나 있는 것이

이게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이고

이거는 두 번 다시 찾을 필요가 없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사들이 이렇게 도를 가리킬 때

뜰 앞에 잣나무다

아니면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탁자를 치고 그러거든요.

 

이거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가리키는 것이지,

손가락 뒤에 숨은 어떤 이거의 본질이나

무슨 본체를 가리키거나

따로 있는 게 아닌 거예요.

 

일어나는 현상이

이것이 살아있고

이것이 깨어 있고

이것이 체인 것이고 그런 것이지

이 현상을 떠난 본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이 용을 떠난 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근데 대부분의 여기서 막히는 사람은

버젓이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고

다 드러나 있는 거를 놔두고

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게 뭘까?

이런 식으로 생각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 생각이 딱 갇혀서

지금 일어나는 이것을 그냥 액면 그대로 보질 못하거든요.

그게 조작이라는 거를 몰라요.

 

그래서 한 생각도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이

진실인 것이고, 있는 그대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이거예요.

그냥 다 이거는 말할 필요 없이

내가 두 번 다시 찾을 필요 없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슨 생각을 지어서

그러는 게 있어

아니면 손을 드는 게 있어

똑똑똑 두드리는 자리에 뭐가 있어 하면은

그건 다 어긋난 거예요.

그건 생각이지 도가 아니고 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이미 다 드러나 있는 이것인데

여기서 우리 자칫 또 실수를 하는 게 뭐냐 하면

이게 생각으로 해석을 하면 안 돼요.

다 드러나 있는 이것이 도이다 하면

또 이게 생각이거든요.

 

그냥 다 드러나 있는 이것이 도이다라는 그 내용이 아니라

이 자체가 도인 것이지.

그럼 뭐냐?

그런 식의 생각이나 의미에 떨어지지 않으면

모든 말이 이것인 거예요.

 

그냥 꽃을 보니까 아름답다.

오늘 저녁 지금 날씨가 어제보다 좀 풀렸습니다.

이 자체인 것이지

어제보다 풀린 날씨 기온이 도는 아니고

꽃이 아름다운 게 도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 내용이 도가 아니고

그건 생각이고. 그건 조작이잖아요.

 

어린아이가 이걸 보고 아름답다라고 생각 안 할 수도 있죠.

그럼 그 친구한테는 도가 없는 거잖아요.

그건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고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근데 어린아이도 그냥 어떤 해석이나 판단 없이 압니다.

이게 다 드러나 있는 거를.

이거는 왜냐하면

애가 보는 게 아니라 저절로 드러나 있는 거기 때문에

어른이 보는 게 아니라 저절로 드러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만약에 여기에

이름이 붙어버리고 해석이 붙어버리고 그게 따로 있다라고 여겨버리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

꽃이 이미 드러나 있는 건 진실인데, 이 자체인데

꽃이 아름답다라는 식의 어떤 의미가 따로 있어 버리면

그건 망상이라는 거예요.

 

그걸 따로 있다라고 여긴다면

벌써 생각이 떨어진 것이고

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그게 뭐가 있어라는 그 생각과

구조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근데 그냥 단지 이 자체이기만 하다면

그냥 이 자체, 아니면

그냥 꽃이 아름답다 하든, 아름답지 않다 하든

이 자체이기만 하면

이거 다 드러난 것이고, 이게 진리인 거죠.

따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이대로

따로 있는 게 아닌

그냥 액면 그대로 이 즉한 거, 이거인 것이지

따로 이면에 뭐가 있으면

그건 다 망상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진리는 다 드러나 있는 것이고

도는 다 드러나 있는 것이고

사실은 여기에서 다 드러나 있다라는 의미에도 빠지면 안 됩니다.

이게 또 다 드러나 있는 게 도야그러면

그게 법상인 것이고

법을 따로 두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다 드러나 있는 게 도야그러면

다 드러나지 않은 그것을 배제한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도가 아니에요.

근데 그냥 이 자체 이기만 하면

다 드러나 있다 하든, 다 드러나 있지 않다 하든

그 의미와 상관없는

그냥 이 즉한 이것이기만 하면

이게 이거 아닌 게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게 다 드러나 있어요.

숨어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거 이 자체인 것이지

손을 움직이는 뭐가 아니에요.

그냥 이겁니다.

이거예요.

여기에 이게 현상이 살아 있잖아요.

현상이 깨어 있잖아요.

근데 이 자체예요.

 

근데 손을 움직이는 뭐

그러면 이게 생각이 떨어진 거라 이거예요.

꽃을 아름답게 하는 뭐

그러면 그 생각이 떨어진 것이고

그냥 그냥 그냥 이 자체에 아무런 뜻도 맛도 의미도 없으면

그냥 이 자체가 살아있는 거예요.

이게 다 드러났다, 끝났다 이거예요.

끝이다, 끝났다 하는 그 끝을 말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끝났다 이 자체인 것이고.

 

이면이 없어요.

그래서 이게 다 드러난 이 평면성이

이게 도인 것이지

도는 그래서 숨어 있는 게 아니고

진리는 숨어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이미 진리를 경험하고 있고

도를 경험하고 있으면서

이거와 하나이면서 경험할 주객이 따로 있는 건 아니죠.

 

하나이면서 생각에 떨어져서

도를 따로 두고 추구를 하는 게

우리의 중생의 병인 것이고, 그게 무명인 것이다.

 

그러니까 무명이라는 것은 원래 명인데

자기 생각에 빠지니까 무명이 되는 거예요.

 

본각인데

본각인 그 각이 명료하지 않은 거는

자꾸 이 본각에

있는 그대로에 대한 생각에 떨어지기 때문에

그 내용에 빠지기 때문에

그거를 이 자체가 아니라 따로 두기 때문에

그게 무명인 것이지.

 

그러니까 사실은 백주 대낮에 잠에 빠진 거나 다름이 없죠.

훤히 밝아 있고, 다 드러나 있고

두 번 다시 수행할 필요가 없고, 노력할 필요가 없고

다시 생각을 지어가면서 뭔가를 구조화하고, 구상하고

도에 대해서 그림 그릴 필요가 없는 것인데

내가 이미 노력하기도 전에

이미 다 드러나 있는 이거를

여기에서 마음을 일으켜서 이러쿵저러쿵 하기 때문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즉한 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초직입여래지

단번에 여래지에 들어간다는 건

들어갈 필요가 없는 그냥 이것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두 번 들어갑니까?

이미 여기에 있는 것인데.

 

그래서 뭐가 어렵냐면

분별을 멈추기가 어려운 것이지

도를 깨닫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나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데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그 망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거를 몰라요.

자기 생각이 속고 있는 줄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데

더 이상 뭘 어떻게 놓으란 말입니까?”

 

더 이상 뭘 어떻게 하고 있지 않다라는 그 생각을 내려놔, 이거예요.

그거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옛날에 그 조주선사하고

그 제자와의 대화가 있잖아요.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그러니까

조주가

내려놓아라그랬거든요.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라는

이 생각을 짓고 있는 줄 모르는 거예요.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가만히 그냥 이것 뿐인지

두 번 다시 물을 필요가 없잖아요.

 

근데 나는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이 생각에 빠져 있고

그것이 따로 있는 거예요.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게 따로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따로 있는 거를 내려놔라

조주가 얘기하니까

못 알아들었어요.

 

아니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찌 내려놓으란 말입니까?”

그 생각을 내려놓으면 되는 것인데

못 알아들으니까

그러면 도로 가지고 가라.”

그 생각 어떻게 내려놓지 못하니까

도로 가지고 가라

 

이런 데서 깨치는 거거든요, 사실은.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의미화해서 들고 있는 이 법상

이 상에 빠져 있는 줄을 모르는 거예요.

 

절대 도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는 내용물이 아니에요.

그냥 다 드러나서

너무도 투명하고 이면이 없어요.

따로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 숨은 뜻이 없습니다, 도라는 건.

 

액면 그대로 다 드러나 있는 거거든요.

그럼 다 드러나 있는 걸

어찌 다시 깨닫겠으며, 어찌 다시 그걸 얻겠습니까?

이미 도달해 있는 데를

어찌 두 번 다시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한 생각이 탁 쉬워지면

이게 다인데

뭐지 뭐지? 이걸까 저걸까?

이 생각에 빠져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게 바로 상,

이 생각이 딱 사로잡혀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