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51회 용서란 어떤 단계까지 해야합니까

Buddhastudy 2013. 4. 11. 22:04

출처 YouTube

 

인간이 아니다 이래 생각하고, 그냥 길은 여러 가지가 있죠. 아버지라도 고발해 버리는 방법이 하나 있고, 그래가지고 감옥에 쳐 넣어 버리는 것도 하나 있고, 그 다음에 아예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만은 아예 집에도 안가고 연락도 끊고 아예 사는 길도 하나 있고. 그런데 이게 인간이 그렇게 하면 외부적으로 그런 것만 차단이 되면 내가 그럼 편안하고 행복하겠느냐?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인간이라는 게 또 안 그렇다는 게 문제요.

 

그래서 부모 자식 간 아니오. 그죠? 그럼 또 부모에 대해서 부모가 죽고 나면 또 뭐가 생길까? 죄의식이 들겠지. 나는 죄의식이 안 들어. 그 놈 잘 자빠졌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당신 같은 사람은 또 죄의식이 든다는 거요. 아버지에 대해서. 그러면 죄의식이 들면 누가 고통스러워? 내가 고통스럽지. 살아서 아버지한테 고통을 받고, 죽은 뒤에도 아버지에 대한 후회로 어때요? 또 고통 받고, 오늘도 고통 받고, 내일도 고통 받고. 이런단 말이오. 용서하고 싶지.

 

용서라는 거는 상대가 잘못했는데 내가 봐 주는 거야. 용서라는 거는. 그 하는 짓은 잘못 됐지만은 내가 크게 생각해서 봐준다. 이게 용서 아니오. 그지? 이렇게 하려면 용서하는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려. 1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르고, 용서를 했다가도 나중에 또 그런 행동을 보면 또 나타나. 그러니까 기도를 하셔야 돼. 내가 불러주는 대로 늘 생각하고 기도하세요.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아버님의 그 답답한 심정을 제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버님의 그 답답한 심정을 조금만 이해했더라면 아버님을 제가 잘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었는데. 내가 어리석게도 아버님의 그 고통을, 그 어버지의 가슴의 답답한 거를 제가 알지 못하고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에 대해서 참회기도를 하세요.

 

이렇게 간절하게 참회를 하면 처음에는 참회가 안 되겠지. 지가 참회 해야지 내가 참회해야 되나. 이렇게 될 거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한테 참회를 하다가도 아버지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한 눈물이 날거고. 그러다가 더 진실하게 자기를 들여다보고 공부를 하면 그 미움과 증오가 자기한테 있어. 그러기 때문에 그걸 깨닫게 되면 정말 아버지한테 내가 참회를 하게 돼. 아버지한테 진정으로 용서를 해주는 게 아니고 내가 아버지한테 용서를 비는,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어리석었다는 거를 깨달아서 내가 진실로 참회가 될 때 참회를 하면 내가 잘못했다하면 용서해 줄게 있나?

 

내가 잘못된 줄을 알면 용서해 줄게 있어요? 없어요? 용서해 줄게 있어요? 대답해 보세요.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할 때 용서해 줄게 있어요? 없어요? 아니. 우리가 어떤 일에서 내가 잘못했다고 자각된 일을 가지고 상대에게 용서를 해 준다는 말이 성립하나? 안하나? 그렇죠. 그러면 용서해 줄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게 진정한 용서다. 술을 먹고 주정하는 사람은 그 만큼 내면에 왜곡된 심리가 있는 거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그만큼 내부에 어떤 불만이 있는 거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다 일종의 정신적으로 말하면 다 일종의 정신적인 질환자란 말이오. 그죠? 그걸 내가 깊이 이해하면 이 문제는 풀기가 아주 쉬워요. 그래서 그렇게 이해하면 불쌍하게 미워하기보다는 불쌍해지는 마음이 들죠. 불쌍해지는 그게 자비심이거든요. 그 불쌍해지는 마음에서 더 들어가야 내가 참회가 되고, 이 문제의 실마리를 확실히 찾을 수가 있죠. 풀려고 한다니까 이런 얘기 하는 거요. 풀려고 하려면 그렇게 해야 된다.

 

그러니까 만진다, 안 만진다는 게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거요. 내가 집에 가고 안가고도 본질이 아니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해도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된다. 그러니까 지금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잘해주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이 옳지 않다면 집에 안가면 되는 거요. 그거는.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는 기도를 해야 되죠. 이렇게. 돌아가셨더라도. 살아있더라도. 같이 살더라도. 같이 안 살더라도.

 

자꾸 초점이 만지냐? 안 만지냐? 이게 초점이 아니에요. 그건 어쩌면 굉장히 부차적인 문제요. 그런 성격적인 결함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거요. 그러니까 연구를 해야 되겠죠. 그래서 깊이 참회하면 그 아버님이 아버지가 또 어렸을 때 가족사를 잘 연구해 보면은 아버지가 어렸을 때 어떤 그런 성격적인 결함을 갖는 어떤 또 요소가 있을 거요. 본인이 그걸 자청해서 한게 아니라 마치 내가 아버지의 그런 환경 밑에서 자라서 성격적인 결함을 갖게 되고, 이걸 가지고 남편에게 못살게 굴게 되고.

 

그러니까 남편이 볼 때는 나는 웃기는 여자가 되겠죠. 그죠? 마치 아버지가 내가 보기에 웃기는 사람인 것처럼. 그런데 그 밑에 태어난 자식은 이 부부의 갈등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또 성격적인 결함을 갖게 되고. 이게 계속, 마치 유전인자가 내려가듯이 내려가거든요. 그래서 내가 내 선에서 여기서 끊어야 되. 내 선에서. 끊으려면 아버지에 대한 깊은 이해. 그것을 미워하기보다는 그거에 대한, 남 같은면 안보면 끝나잖아. 그죠? 가족이니까 내가 아까도 얘기했잖아.

 

감방에 집어넣든지. 그 다음에 안 봐 버리든지. 길을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지금 얘기하는 기도는 해야 되. ? 그것은 나를 치유하는 길이라는 거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아버지를 깊이 이해하는 게 아버지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버지의 그런 것을 깊이 이해해서 용서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해서 아버지가 바뀌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내 성격 장애가 치료가 된다. 이거야.

 

얼른 잘못 들으면 왜 내가 아버지한테 참회를 하느냐? 그런 아버지를 왜 용서해야 되나? 이렇게 들릴 수가 있는데 그거는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면 나에게 성격 장애가 있다.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면 아버지가 고통을 받으면 얼마나 좋겠어. 그지? 내가 저 남자를 미워하면 그 남자가 손해를 보면 얼마나 좋겠어? 그지? 나를 강간한 그 남자를 내가 이를 오도독오도독 갈면 그 남자가 길가다가 차에 팍 쳐서 뒈져버리면 얼마나 좋겠어? 그지?

 

그런데 그걸 미워하면 그 남자는 이미 재미보고 가 버린 뒤에 나는 그 고통을, 그 남자가 준 그 날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 되고. 그것을 내 사랑하는 남편한테까지 전이시켜가지고 또 그 남자도 고통을 주고, 내 자식한테 까지 전이시켜 또 고통을 줘. 그게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거요. 이게 부처님이 제1의 화살은 맞더라도 제 2의 화살은 맞지 마라는 말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이 자기를 학대. 첫 번째는 그 사람이 나를 고통을 줬는데 그 이후는 그 사람이 없는데도 계속 내가 나를 학대하는 거란 말이오. 내가 나를 고통을 주는데 그걸 나는 어떻게 착각하고 있냐? 그 사람이 나를 지금도 고통을 주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아니오. 그 이후부터는 그게 몇 십 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전부 자기가 자기를 학대하는 거요. 그 상황에 맺힌 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 허상이 나를 계속 학대하는 거지. 그 바보 같은 인생이라니까.

 

그리고 여자들이 남자에 대한 태도는 일상적으로 예를 들면 남자가 나한테 치근댄다. 보통 남자관계도. 그럴 때는 첫째 남자가 문제다 하지만 여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그때 단호해야 되. 아시겠어요? 태도가 아주 단호해야 되. 요만큼의 빈틈을 주게 되면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저런 거다. 이렇게 착각을 해.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되면 꼬리를 지가 쳤네, 어쨌네. 이렇게 자꾸 말썽이 되잖아. 딱 단호하면 사람이 다 받아들이게 돼 있어. 밤에 칼로 가지고 강제라 하는 이런 건 제외하고는 추행 같은 거는 단호하면 딱 끊어 져.

 

그런데 여러분들이 얘기하지만은 내면에 우리들은 다 그런 어떤 보이지 않는, 자기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어떤 그런 성적인 것들이 있어서 단호 안해져. 싫다 싫다 하면서 끌고 가는 거요. 그런 것이 한번 두 번 반복되는 거는 한번 정도 두 번 사건이 생겼다 할 때는 남자의 책임이지만은. 그게 세 번 네 번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하면 심리적으로는 여자에게 책임이 있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거야.

 

그건 뭐냐 하면 자기 태도가 아주 단호하지가 못하다는 거. 그럼 칼같이 어떤 화를 내라는 뜻이 아니에요. 태도가 아주 딱 분명해야 되. 가슴이 섬찟할 정도로. 딱 칼로 물 베듯이 분명이 해야 되. 그러면 딱 끊어 져. 그런데도 그러면 나중에 아까 얘기한대로 송곳으로 갖고 손을 찔러 버리든지, 칼로 갖고 손가락을 베버리든지. 그렇게 딱 나가면 다음에. 부처님 당시에 비구니들이 옷을 다 떨어진 것을 입고 가슴도 내놓고. ? 몸에 집착을 안 한다. 이래서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니까.

 

그 때는 여자는 인간이 아니잖아. 주인이 없는 여자는 아무나 잡아가면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남자들이 겁탈을 많이 했어요. 초기 비구니들이 굉장히 많이 당했거든요. 그래서 이 비구니를 비구처소에 묶어두는 계율이 생긴 거요. 그게 오늘날은 남녀 불평등의 어떤 계율로 묶여 있는데 그게 역사를 이해하면 그렇게 보면 안 돼. 그런데 한 비구니가 딱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와서 유혹을 하는 거요. ! 당신이 너무나 아름답소. 하니까 그래도 꼼짝도 안하고 앉아 있으니까. 당신 눈은 별빛처럼 아름답소. 그러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렇소. 그러니까. 가져가십시오. 콱 내가지고 줘 버렸어.

 

그런데 거기 뭐 껴안을 정신이 있겠어? 없겠어? 있을까? 이렇게 단호했단 말이오. 해탈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오. 여자 성불 못한다는 건 99% 맞는 얘기요. 현실적으로. 집착이 딱 끊어 져야 되. 몸이고. 삶의 태도가. 의지심이 딱 끊어져야 주인이 되지. 의지심을 갖고 어떻게 주인이 되겠어. 그 얼마나 그 우리가 본받을 일이오. 눈이 아름답다니 자기 손가락을 넣어 딱 빼서 줬어. 나쁜 놈이다. 이래 안하잖아. 그렇게 자기 구도열이 단호하니까 거기 어디 범접하겠어.

 

여러분들은 짜증만 ~ ~ ~ 이 짓 한단 말이야. 자기 책임이 있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그런 아버지를 만든 데도 자기 책임이 있다. 그런데 그건 계속 됐다는 건 책임이 있어. 열 번을 가출을 하고, 열 번을 아버지하고 싸웠다 해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오. 그걸 못 끊었다는 건 자기 책임이오. 그래도 자꾸 끈적끈적 하게 결국 싸우기도 하고 아버지한테 저항도 했다 이런 얘기는 그건 끈적끈적하다는 거야. 정으로. 그러기 때문에 그건 지금 식으로 해선 해결이 안 돼. 그렇게 집안에 습관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럼 이런 근친간의 이런 습관은 마치 유전인자가 유전되듯이 이렇게 집안에 영향을 줍니다. 아셔야 되요. 앞으로 자식하고 관계도. 그러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딱 참회기도해서. 내면으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끊어져야 아버지에 대한 이런 흔적들을 내 속에서 지울 수가 있는 거요. 아버지 미워한다고 해결될 일 아니에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이 말이야. 그런데 금방 질문에 그럼 만지게 놔둘까요? 이런 질문은 그렇게 문의가 거기에 그냥 한번 생각해 보는 거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자기 결함이 있습니다. 이따 갈 때 송곳하나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