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76회 수행에 어려움이 있을 때

Buddhastudy 2013. 4. 25. 22:20

출처 YouTube

  

하나만 얘기해 봐. 뭐 갖고 다퉈요? 구체적으로. 제일 자기가 남편이 마음에 안 들거나 다투는 것 중에 하나가 뭐요? 성격 어떤 거? 자주 화를 낸다. 자주 화를 낸다.

우선 화내는 거 한 가지만 가지고, 저 사람이 왜 화를 낼까? 화낼 때, 그걸 한 번 연구를 한 번 해봐, 오늘부터.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할 때 저 사람이 왜 화를 냈을까? 왜 화를 낼까? 이렇게. 따라 화내지 말고. 연구를 하면 화가 안 나지. 연구를 안 하고 너 왜 화가 났냐.” 이러니까 내가 화가 나는데. 화 낼 때 마다 왜 화를 낼까? 이렇게 연구를 한 번 해봐. 오늘부터.

 

기도할 때도 계속 그걸 한 번 연구를 해봐. 왜 화를 낼까? 우선, 그래서 그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아무리 연구해도 모르겠다. 별일도 아닌데 화를 내니까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지금 그런데, 다시 한 번 연구를. 연구를 해 도저히 모르겠거든, 한 달 연구를 해 보고, 모르겠거든. 다시 그 다음에 남이니까 잘 연구가 안되거든. 자기를 갖고 연구를 해봐. 그럼 저 사람이 화를 내는데 나는 왜 덩달아 화를 낼까? 화내는 게 안 좋다면서 왜 나는 화를 낼까? 이 말이야. 저 사람은 저만한 일에 화를 낸다고 하면서 나는 왜 그 사람이 화낸다고 덩달아 화를 낼까?

 

이걸 집중적으로 계속 연구해서 11월 법회 올 때 한 번 대답을 해봐. 원인을 확실히 끝까지 찾아요. 대강 찾지 말고, ‘술 먹고 화를 낸다.’ 이렇게 찾지 말고. 근본으로 추구해 들어가 봐요. 그 이유가 뭔지. 물어도 보고, 연구도 하고. ~. 그리고 하나는 그럼 나는 왜 화를 낼까?’ ‘화내는 게 안 좋다며 저 사람이 삐뜩하면 화를 낸다? 그러면서 나는 왜 삐뜩하면서 화를 낼까?’ 상대가 화내는 게 안 좋다면서 화내는걸 보고 화내는 거, 그건 뭘까? 화내는 게 안 좋다 하면 화를 안내야지, 화내는 게 안 좋다 하면서 지는 또 왜 화를 낼까? 이 말이오.

 

오늘부터 이거에 대해서 절을 할 때도 연구를 하고, 앉으나 서나 계속 해서 대답을 한 번 해 봐요. 과제가 그거요. 화낼 일이 있거든 이거부터 먼저 연구를 해요. 또 화를 내 가면서도 연구를 해. 연구하기 좋잖아. 화내가면서 자기가 화내니까 ~ 왜 냈지?’ 이렇게 연구를 해보면 훨씬 소재가 좋잖아. 저 구름 잡는 생각 하지 말고. 그게 기도요. 그 연구하는 게.

 

 

Q2

지금 애들이 옷을 이것저것 갈아입고, 또 꾸미고 하는 거는 연애하는 중이오. 그러니까 어디 한 사람이 있어서 연애를 하든지. 안 그러면 수컷을 하나 불러들일라고 지금 꼬시든지. 나이로 보나 꾸밀 때는 그래요. 누구나 다. 사람이 이래 꾸미고 자꾸 이래 뭘 하면, 애인이 하나 있거나, 안 그러면 애인을 구하는 중이거나, 꼬리를 쳐야 뭐가 붙을 거 아니오. 그죠? 그걸 좋게 보면 돼. 첫째 그걸 나쁘게 보기 때문에 참을 일이 생기잖아. 그지? 그걸 좋게 보면 참을 일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꾸며놓고도 자기가 마음에 안들은거 아니오. 그죠?

 

그러니까 어쨌든 그런 지금 중이니까, 그걸 응원을 해 줘야 돼.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지도록, 잘 되도록, 응원을 해 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서 지켜보거나. 그런데 그거는 사람 생각의 차이가 그래. 외출을 할 때 남자들은 대문밖에 나가 있는데, 여자들은 화장하거나 옷 갈아입는다고 한 30분씩 늦게 나오잖아, 그죠? 남자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간다면 가지.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잘 보이려면, 내가 잘 봐주겠다는데 나한테 잘 보이면 되지. 어느 놈한테 잘 보일라고 그 짓하고 있는지.

 

그런 것처럼 엄마가 볼 때는 공부가 더 중요하거나, 학교 출근이 더 중요하다, 이 생각 하지만. 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애 대학 보내고 하는 거는 지금 보통 부모가 시집 잘 보낼라고 그러는 거 아니오. 그죠? 그러니까 학교 다닐 때 하나 꼬시는 게 중요한 거지. 학교 그거 결석하는 거 그거 중요한 일이 아니오. 그러면 저렇게 못 가서 애먹는 거 생각해 봐라. ~ 남자 하나 구해가 붙여 준다고 앞으로 지가 못 구하면, 그거 붙여 줄려면 그거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거 붙는 거 띠는 거 보다 더 어렵다니까.

 

그러니까 그걸 좋게 보세요. 마음으로. ~ 저게 이제 마음이 동해서 저래. 어쨌든 다니구나. 그렇게 해서 이렇게 좋게, 절대 생각을 바꾸면, 이게 나쁘게 생각하니 참을 일이 생기고, 참자니 분통이 터지는데. 좋게 생각해 버리면 참을 일 자체가 없어져 버린단 말이오. 그럼 아무 기도할거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이게 중요한데. 그럼 한번 딱 입고 가지. 그거는 본인이 지금 뭔가 자기가 꼬셔야 될 대상이 만만치가 않는 거요. 만만하면 이게 옷을 안 갈아입고 갈 텐데, 만만치가 않는 거요. 그러니까 남자가 따라오는 게 아니고, 지가 따라가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입었다가 저거 입었다가,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거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지 나름대로 굉장히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그걸 엄마가 보이지 않게, 그걸 아는 척 하고, 거들면 자존심 상해 하니까. 멀리서 이렇게 응원을 해 주면 돼. 응원을 해주고, 슬쩍 한 번 물어보고, 옷 예쁜 거 없나? 이렇게 물어보고, 오히려 참는 그 시간에 어디 가서 청소부 해서 돈 벌어 가지고, 옷이나 한 벌 사주든지. 그렇게 생각을 해야 돼. 그게 뭐냐 하면 그게 내 운명을 바꾸는 거요. 운명을 바꾼다는 거는 이걸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고 참을라니 분통터지고, 그래서 싸우고. 이게 하나의 운명 아니오. 그죠?

 

그걸 좋게 봐 버리면, 딸이 귀엽고, 응원해 주고, 그러면 이게 모녀가 한패가 된단 말이오. 그러면 이게 운명이 바뀐 거요. 운명이 바뀐다는 게 딴 게 아니란 말이오. 그 운명을 바꿔야 돼. 운명을. 그러니까 공연히 지금 쓸데없는 짓 하는 거요. 그게. 안 해도 될 짓을 지금 일을 만들어서, 그런데 딸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지금 자기 생각에 빠져가지고 지금 이렇게 하거든. 그러니까 ~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이렇게 해서 생각을 바꿔. 잘못했구나 하는 게 참회고, 아시겠어요? 그 다음에 참을 것이 없이 수행하는 게 인욕이고, 그 다음에 그렇게 한 생각을 돌이켜 버리는 게 운명을 바꾸는 거고. 그게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기도를 그렇게, 좋게 안봐지는 자기를 뉘우쳐 참회해야 그게 기도지. 그거 꼬라지 안 볼라고 한쪽에 가서 하는 거는 그건 기도가 아니오. 그렇게 하니까 기도가 즐거워야 되는데 기도가 괴롭잖아. 기도가 괴로우면 안 돼. 기도문 데로 안 하는 거요. 기도문이 없을 때는 이렇게 하지만, 기도문을 참다가 기도문을 딱 보면서 어때요? ‘~ 부처님 가르침이 뭐지? 제법실상이 뭐냐? 공이잖아. 옳고 그른 게 없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잖아. 그럼 내가 지금 옳으니 그르니 하고 있구나.’ 이게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데서 내가 자각을 하는 거란 말이오.

 

 

성격이 유별났다고 하는 그 생각을 버려라 이 말이오. 유별났다는 게 나쁘다는 뜻이 포함이 되어 있잖아. 그래, 그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게 자신에게 해로워. 내가 저 사람한테 나쁘게 했더니 얘가 나한테 나쁘게 하구나 할 때는 내가 벌 받는 거 아니오. 아시겠어요? 벌 받는 거는 내가 후회할 일에 속하는 거요. 그러니까 아이를 보고 저게 왜 저래 성질이 까다롭나하고 봤더니 ~ 내 닮아 저게 까다롭구나.’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그러니까 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좀 까다로웠더니 애도 저래 배워서 까다롭구나. 이렇게 되면 ~ 내가 까탈스러운 성격을 좀 버려야 되겠구나.’ ‘~ 옛날에 가정부한테도 까탈스럽게 한 게 참 잘못됐구나.’ 이렇게 뉘우치면 아이가 저절로 바뀌잖아. 그러면 이게 후회가 아니잖아. 지금 내가 저놈한테 잘못했더니 이 놈이 나한테 벌주구나. 이러면 내가 잘못했고, 또 나는 벌 받고, 벌 받는 게 뭐 좋은 일이에요. 그건 불교가 아니에요. 그건 인과법을 너무 세속적으로 해석해서 생긴 거요.

 

그러니까 ~ 내 닮아서 저렇구나. 저게 왜 저리 까탈스러울까?’ 하고 미운 마음이 들다가 아이고, 저게 나 닮아서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뉘우쳐진다 이 말이오. 뉘우침하고 후회는 다른 거요. 벌을 받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면, 이건 벌써 후회에 속하는 거다 이 말이오.

 

그런 딸을 보고 참지 못하는 엄마 닮아서 그러니까. 나는 딸도 보고도 못 참는데, 그 딸은 뭐 누구보고 참겠어? 그지? 그러니까 딸은 더 이상 얘기하지 말고. 그 딸을 보면서 ~ 내가 저랬구나. 내가 저랬구나. ~ 내가 저랬구나.’ 이렇게 내 모습 보듯이 하면서, 내 수행을 뉘우치는. 내가 나를 잘 못 보니까 우선 딸을 보면서 저게 내 닮아서 저런 거니까. 딸을 보면서 내 모습을 보듯이 참회하는 어떤 계기로 삼으면, 딸이 나를 공부를 잘 시켜주는 효녀가 되지.

 

지금 딸을 보면서, 딸도 심리가 불안하니까 옷을 이거 입었다 저거 입었다. 심리가 불안하면 손톱 물어뜯듯이, 심리가 불안하면 화장을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지웠다가 했다가 이런 것처럼. 지금 이게 같이 겹쳐있다니까. 얘기를 해도 자꾸 그래. 그러니까 딸이 옷을 한번 갈아 입고 가면 되는데. 그걸 한 번 왔다 갔다 하는 거 보고 그거 옳지 않다. 저래 봐야 낭비라는 생각이 들잖아. 그런 것처럼 내가 집에서 남편 사업 걱정, 뭐 걱정, 딸 걱정 하는 게 내 인생에 아무 도움, 그 걱정한다고 남편 사업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거 걱정한다고 딸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란 말이오.

 

그게 쓸데없는 번뇌에 속한다는 거를 내가 딸을 보면서 나를 보면서 당연하게 걱정거리라 생각했는데. 딸을 보니까 지는 엄청난 걱정거리잖아. 내가 볼 때는 쓸데없는 걱정이잖아. 저렇게 안 해도 될 텐데. 그것처럼 나도 이렇게 안 해도 된다는 걸. 그걸 보고 내가 오히려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된다는 거요. 부처님 당시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부모가 돌아가셨어. 그러니까 그 아들이 부모 돌아가셨다. 그 무덤가에서 초막을 치고, 늘 울고, 농사일을 짓는 사람인데 농사도 안 짓고, 거기서 삼 년을 무덤가에서 일체 모든 걸 안하고, 그저 부모생각하고 슬퍼하고 뉘우치고 후회하고 그러고 산단 말이오.

 

집안이 다 엉망이 되어 버렸어. 가장이 그러니까. 그래 이제 부모가 돌아가시고 남자가 40~50대 되는 사람이. 30~40 대 되는 사람인데, 고 밑에 아들이 있을 거 아니오. 아들이 20대 인데. 그러니까 집안이 엉망이 되니까. 이 애가 부처님한테 가서 집안 얘기를 했어. 지금 아버지가 저리 되 가지고 집안이 엉망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물었어. 부처님이 애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닥속닥속닥 해줬어. 애가 부처님 시키는 대로 고대로 했어.

 

어떻게 했냐 하면. 인도는 소가 길거리에 죽어있는 게 많이 있잖아 그죠? 안 먹이니까. 죽은 소 앞에다가 이렇게 하고 있다. 그래 이 소문이 무덤에서 울고 있는 아버지한테 들린 거요. 그 아버지가 그 어머니 무덤가에 앉아 있다가, 할머니지. 이 소리를 들으니까 기도 안차는 거요. 그래 이 놈의 시끼. 왜 이리 갑자기 미쳤나 해가지고 그리 쫓아 가봤어. 아니나 다를까 그 죽은 소 앞에 앉아가지고 소 꼴 한 움쿰 쥐고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울고 있어. 이놈의 시끼야. 하면서 야단을 쳤어. ‘, 임마. 죽은 소가 어떻게 소 꼴을 먹느냐?’ 그러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떡 쳐다보면서 그럼 아버지는 요.’

 

그때 아버지가 탁 깨달았어. 이게 부처님의 처방이오. 그 미쳐가 있는데 가가지고 죽은 사람한테 그래봐야 소용없다고 해야 그 사람 귀에 들어갈까? 안 들어갈까? 안 들어가지.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줄 몰라. 그게 효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자식이 하는 짓을 보고 미쳤다고 자기가 생각을 했다 이 말이오. 그때 자식이 짝 말하기를 아버지는요.’ 이럴 때, 자기 모습을 봤다 이거야. 내가 뭘 말하는지 알겠어요? 애가 문제가 있다 하면 그걸 통해서 나를 봐야 돼.

 

그래서 나부터 편해져야 된다. 그래야 아이도 편해지고 남편도 편해져. 걱정한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어떤 꿈꾼다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닌 것처럼, 걱정은 꿈과 같은 거요. 헛거에 불과해요. 실제로 일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요. 그러니까 기도할 때는 딱~ 앉아서 지금 이런 걱정하는, 이 근심걱정이 많은 이런 인생은 딸도 똑같이, 내가 초조 불안하면 딸도 초조불안하고. 대대로 이렇게 내려와. 이 운명을 바꿔야 돼. 그래야 딸도 행복해 지는 거요. 나만 행복한 게 아니라. 아들 자식세대에도 운명이 바뀌는 거란 말이오.

 

그리고 인욕을 해라 하는 거는 딸이 변덕이 많고 못 참는다. 그 말이 인욕이 필요하다는 거 아니오. 그건 나도 그렇다 이 말이오. 내가 볼 때 딸이 그렇지, 나도 그렇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나를 잘 살펴야 돼. 오히려 내가 기도문을 갖고 기도를 하니까 도대체 이게 내가 잘 안 살펴 지는데, 오히려 딸을 통해서 나를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 어쩌면 나중에 깨닫고 보면 어때요? 딸이 엄마 좀 깨치게 해 줄라고 그럴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