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212회 업무 스트레스

Buddhastudy 2012. 8. 1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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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는 누구나 다 그래요. 스님도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 질문하는 사람, 스님하고 상담할 사람들은 진짜 자기로써는 죽을 일이라고 생각하죠. 스님하고 만나서 상담하고 싶은 게 절박해요? 안 해요? 절박하죠. 그럼 나는 매일 아침에 눈만 뜨면 저녁까지 이런 사람만 상대를 하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럼 여기서 강의하라 했는데, 두 시간 실컷 해서 끝나고 나가는데 또 붙들고 어때요? 으응? 그러니까 따로 얘기하자 그러면, 내가 살 수 있어요? 그럼 못살아? 못사니까 일정하게 정리를 할 수밖에 없어요.

 

나도 젊을 때는 무조건 다 했는데, 나중에 내가 감당을 못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래서 지금은 전에는 개인상담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원칙을 딱 정했어요. 공개적인 상담만 한다. 나로서는 공개적인 상담은 법문이에요. 일종의.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경전을 읽고 범문할거를 중생의 이러한 고통을 듣고, 그걸 가지고 우리가 진리로 나아가는 얘기를 한다. 금강경 한 줄 읽고 지금 이런 심리현상을 설명한 게 아니라, 이런 고통의 질문을 받고, 그걸 가지고 사실은 부처님의 말씀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공개적으로만 한다. 이런 원칙을 정해놓고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지금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거는 누구나 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 다 이룰 수도 없어요. 반대로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어요. 그게 인생이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걸 다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면 욕심이죠. 그게. 그런데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 있다. 이것도 욕심이오.

 

그러면 자괴감이 들어요. 다 못 해준다고. 그러니까 내가 근무시간에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는 내일이지마는, 그 시간에 농땡이를 치면 안 돼요. 예를 들면 두 시간 하기로 했는데 질문하는데. ‘에이~ 싫다고 그만하라고.’ 이러면 안 된다. 이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하지마는, 모든 시간 24시간을 내가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 사람들이 스님한테 얘기 듣고 싶은 사람을 만약에 내가 무작위로 받는다면, 하루에 24시간 1초도 안 쉬고 다해도 모자라겠죠. 안 그랬어요?

 

만약에 인터넷 올라오는 거 다 대답한다고 생각한 번 해보세요. 으음. 인터넷 같은 거 손도 안 대는 거에요. 편지도 아예 덮어버리는 거요. 그렇게 자기가 할 수밖에 없듯이, 자기도 자기가 정해야 돼. 자기가 직업적으로 하고 있잖아. 그죠? 그러면 근무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다 해야 되겠지. 집에까지 찾아와서, 근무시간에 밥 먹는데 찾아와서 아프다고 하면 그거는 응급환자에 따라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지만, 근무시간에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곤하고 지치니까 만성화되는 현상이 있어요. 나도 병원에 가보면 진짜 불친절한 경우를 당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나도 좀 반성을 해요. 나도 상담할 때 좀 친절해야지 이렇게.^^ 그런데 그거는 충분히 저도 이해가 되고요. 저도 여기 보면 자기 얘기하라 그러는데, 꼭 누구 남의 얘기 가지고 하는 사람 있잖아. ‘우리요~ 우리 이웃에 아무개가요~ 우리 동생이요~ 스님.’ 상담은 남 얘기를 갖고 할 수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 얘기만 갖고 할 수 있는 건데. 항상 20%는 남 얘기 갖고 합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거는 이제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자기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야죠. 불친절하게 하기보다는 사전에 간호원 시켜가지고 얘기를 한다든지. 그런데 시골에서 오신 분들은 이런 원칙 같은 거 지켜져요? 안 지켜져요? 안 지켜져요. 저도 할머니들 나갈 때 막 잡고 얘기하는 거는 스님이 여기 3분하라는 거 안 지킬까? 안 지킬까? 안 지켜. 3분 하라 그래도 30분 해요. 그러면 형편 따라 봐야 되요.

 

이게 우리가 대화가 돼서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규칙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그런 사람은 거기에 맞게 대응을 해야 돼요. ‘아이고~ 할머니 그래요. 걱정이네요. 아이고~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이렇게 시간을 조금 내줘야 돼요. 왜냐하면 자기는 부모님이 다 똑똑한 데서 태어나니 그렇지. 우리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다 무학이란 말이오. 그럼 동네 계신 분 대부분 그렇잖아. 그죠. 그런 분들 이렇게 얘기하거나 이렇게 해보면. 무슨 아버님 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 이렇게 해야 됩니다.’ 이런 말은 아무 필요가 없어요. 집에 가족도.

 

그거 그런 얘기해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냥 다 자기 생각대로 하거든요. ? 다른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나쁜 의도를 갖는다거나 그거는 아니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그런 거를 조금 자기가 수용할 수 있으면 의사 중에 조금 좋은 의사가 되고, 그게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하면 보통의사가 되고, 남보다 조금 별나게 하면 나쁜 의사가 되고 그런 거죠. 자기 선택이에요. 고게 조금 괴팍한 의사, 고것만 조금만 자기 설명하는데 두 번 설명하게 하면 모른다고 물으면 성질 빵빵 내는 의사들 있지 않습니까? 그럼 나쁜 의사가 되고.

 

보통 사람처럼 친절하게 대해 줬다고 짜증 좀 냈다가 하면 보통의사가 되고, 그럴 때 다른 사람, 다른 의사가 못하는 귀담아들어 줄 수 있으면 자기가 좋은 의사가 되니까. 현실은 보통 의사나 나쁜 의사 수준에 자기가 두 발을 디디고 있고, 자기가 지향해야 될 점은 좋은 의사 쪽으로 한발 한발 가도록 노력하면 좋겠지. 한꺼번에는 안 돼요. 내가 걱정하는 거는 그걸 다 자세하게 친절하게 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그 각각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친절하게 해 주는 게 뭐다? 우리 목표에요. 그러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다? 중간에 있다. 이 현실로부터 출발해서 조금 앞으로 가야 되요. 그래서 기도를 해야 돼요. 그래서 만약에 의사선생 같으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봐요. 나도 마찬가지인데. 물론 직업적으로 하기는 하지마는, 그래도 의사만큼 돈 받고 치료해주고도 고맙다. 소리 듣는 경우가 있어요? 없어요? 없죠.

 

사실은 돈 받고 일 해주는데, 그런데 의사한테만큼은 마치 무료로 해준 것 이상으로 어때요? 고맙다고, 사람 몸 아프면 그만큼 힘들다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사실은 돈 받고 해주는 일인데, 고맙다고 인사들을 이유는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들이 저렇게 하는 거는 몸이 아프기 때문에 그러거든요. 그래서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되요. 그래서 내가 돈 받는 걸 놔 버려도 어때요? 얼마든지 내 재능을 살릴 수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육신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병은 육신과 정신이 같이 돼 있으니까.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뭐다? 의사의 중요한 직분이다. 스님이 여기 지금 상담해주는데 이러면 몸의 병 절반이 낫습니다. 으음. 그러니까 꼭 어디 부러진 거 치료해주는 것만 치료가 아니고, 그 걱정하는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것도 뭐다? 의사의 굉장히 중요한 직분이다. 이것만 이해하면 조금 나을 거요.

 

그런데 내가 할 일은 부러진 다리 기부스 해주는 게 내 할 일이지, 정신적인 건 내 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귀찮은 거거든요. 그것도 그들을 안심시켜 주는 것도 의사의 중요한 직분이 된다. 이런 생각하셔가지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이렇게 마음을 내서 한 번 해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