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항상 이렇게 말하죠.
예전에 임제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네가 주장자가 없다면 내가 뺏을 것이로되
네 주장자가 있다면 내 주장자를 너에게 줄 것이니라.” 하고요.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요.
첫째는 이 마음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다면 마음을 줄 수가 없죠.
또 마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고
두 마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아주 숭배하고 받아들인다면
얼른 마음이, 그 아주 기특한 마음이 들어가고 좋은 마음이 들어가죠?
그러니까 주는 거죠.
그런데 얄밉게 해보세요.
그것을 아예 그냥 뺏음과 같은 거죠.
또 고걸 이차적으로 표현하자면
아까 전화 얘기 했습니다.
전화를, 내 마음에 전화를 놓지 않았다면
전화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어요, 전화가.
그러니까 내 전화가 있음으로써 전화를
임제스님이 전화를 할 수도 있고
네 마음속에 전화를 놓지를 않았기 때문에 전화할 수도 없지 않으냐.
그러니까 깨닫지 못한 자는 전화를 놓은 게 아니다.
그러나 모두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전화를 아예
'나한테 전화가 있다' 이렇게 전제하고 들어가는 겁니다,
지금 가르치는 것이.
‘이게 뭣고?' 하고 가는 것보다 전제하고 들어가세요, 아주.
나한테 전화가 있다!
이 전화로 말할 것 같으면
우주하고도 직결 돼 있고
세상하고도 가설이 돼 있고
모든 사람들의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또는 사업적으로나
모든 게 이렇게 할 때도
모두 내가 통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통한다.
몸으로는 뛰어주고 마음으로는 통해주고
이렇게 하는 이 전화가 나한테 있다, 아주
“있다” 하고 실험을 하고 들어가란 말입니다.
“있는 것이니까 여기다 맡기고, 믿고 맡기자.”
“맡기고 지켜보자”
“지켜보면 알 바가 있을 것이다” 하고 실험을 해서 체험을 하시는 게 참선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너는 전화통이 안 놓아져 있으면 내가 너한테 전화를 못 할 것이고
네게 전화통이 놓아져 있을 것 같으면 내가 전화를 할 것이로되,
네가 전화통 안 놨으니까, 못 하니까 그냥 뺏어옴과 같다.
아예 통하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그 말씀이나 똑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이,
모두 마음의 주장자가 이게 없다고 하지만 옛날에도
“부처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불(佛)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을 때에도
“똥친 막대기니라.” 이렇게 한 것도,
옛날에는 밑씻개가 없어가지고 작대기를 갖다가 세워놓고선
그저 누구든지 똥누면 그걸로 쓱 씻고 쓱 씻고 이러고
너무 묻었으면 개천에 가서 쓱쓱 닦아다가 도로 세워 놓고 이렇게 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죠.
똥 친 막대기죠!
부처가 뭐 다른 겁니까?
똥 친 막대기지.
여러분들도 똥 친 막대기가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있는 거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물질로 생각을 하지 마시고
물질이 아닌 마음으로 무한량 할 수 있는 마음, 지혜를 내시고
무한량 남과 나와 서로 통과를 하려도 하고
꽃도 ‘아프다’ ‘아주 좋다’ 하는 것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아마 자주 재미있는 게 생길 겁니다.
재미있는 체험이 아마 자꾸자꾸 생길 겁니다.
아니 어떤 분들은, 한두 분이 아니죠.
정말 체험을 하고 실험하고 들어가는 분들은
너무나 '나'가 이렇게
소중하고 이렇게 근중하고 묘하고 광대무변한 걸 내 진작 몰랐다고 하면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뭐 한두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서어서
그저 전화통을 '이게 뭣고?' 하지 마시고
전화통을 미리 믿고 거기다가 놓으시고 항상,
그저 마음과 마음이 항상 같이 통하도록 그렇게 하시고 그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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