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기 위해서 준비한 테마는요
사유와 명상에 관한 부분이에요.
--사유란 무엇인가?
여러분 명상이란 말은 많이 들어보셨죠?
사유는 뭘까요?
사유라는 거는 생각의 흐름이에요.
생각의 도도한 흐름이에요.
이렇게 어떻게 흘러가느냐
생각한다라는 말이 사유한다라는 말하고 같은 뜻이죠.
보통 마음공부를 하는 도판에서는
사유에 관련된 부분이 조금 외면받아 왔습니다.
이유는 뭡니까?
생각으로 어떻게?
이성을 통해 말 그대로 그냥 속된 표현으로
머리 굴려서, 진리에 대해서 머리를 굴려서 알 수 없다라는 그 분위기가
지배적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존재의 실상을 아는 앎은
오로지 직관적인 앎을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는 거다라는
이런 풍조가 있었죠.
맞는 얘기입니다.
결국 활용점정,
용 한 마리를 그리는 데 있어서
마지막 방점을 딱 짓는 그것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앎의 영역이에요.
앎의 영역이 빵하고 터져 나올 때 그것이 깨달음인 것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각하고는 다르게
사유를 통해서 이 앎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어요, 오히려.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사유를 통한 앎의 완성
사유란 것은 절대로 외면받고 그 배척받아야 할 무언가가 아니에요.
무언가가 아니라
오히려 신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아주 소중한 기능이에요.
그리고 이 사유를 통해서 깨달음이 완성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감성적인 영역, 어떤 직관적인 영역에서의 아주 모호한 앎을
여실한 사유를 통해서 여실히 생각함으로써
그 모호함을 완성시키는 것과도 같아요.
여러분 무슨 얘기입니까?
사유하세요.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유가 깊어지면
여기 머리로 사유를 하는 게 아니에요.
사유 자체가 어디로 일어나게 됩니까?
가슴으로 사유가 일어나요.
석가모니께서 다년간의 고행과 어마어마한 수행을 통해서
무언가 미진함을 스스로 느끼십니다.
스스로 느끼세요.
그러면서 거의 힘이 다 빠져서 보리수나무 아래에 털썩 앉으셔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관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관하였다라는 것은
단순히 직관적인 앎을 뜻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사유에 가깝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유하는 것과도 같아요.
그런데 어디로?
여기(머리)로 한 게 아니에요. 단순히 여기로 한 게 아니에요.
여기(가슴)으로 한 겁니다.
반드시 사유가 동반되어야 여러분들의 깨어남이 완전해져요.
깨어남 자체가 완성이 됩니다.
이 광경이 뭐예요?
어떤 경전이에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불교의 반야심경이에요.
어떤 내용입니까?
관자재보살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하였더니
세상은 연기이더라
연기.
이게 프라티트아 사무바다라고 불리우는데요.
연기, 인연 할 연, 일어날 기
이게 뭡니까? 세상이 뭡니까?
관계성에 의해 관계에 의해 나타나더라라는 이 부분을 보는 것이죠.
이것은 단순히 명상을 통한 직관적인 앎이 아니었습니다.
직관적인 앎에 동반한
가슴으로 했던 하나의 사유예요.
이 사유가 직관의 영역과 감성의 영역을 완성해 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명상과 사유는 분리된 것이 아니에요.
명상으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사유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사유로 시작해서 이 사유가 깊어지면
또 자연스럽게 명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론적인 사고방식의 습성에 사로잡혀 있어서
사유면 사유, 명상이면 명상을 분리시켜 놓는 그런 버릇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두 가지가 분리되어 있잖아요.
명상과 사유는 함께 갑니다.
함께 가고 명상의 사유고 사유가 명상인 거예요.
사유라는 것을
단순히 뇌 속에서 이루어지는 머리 굴리기 정도로만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진정한 사유는 앎의 각성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의식의 성숙과 의식의 변형을 일으켜요.
사유라는 건 이만큼 중요한 거예요.
--어떻게 사유하는가?
그러면 어떻게 사유를 하는가?
무엇을 사유를 하는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라는 건 뭐냐면
상대성, 동시성, 전체성을 관하는 거예요.
이성을 통해서
감성의 영역과 직관적인 앎의 영역을 하나로 통합하는 겁니다.
상대성과 동시성과 전체성을 꿰뚫어 봄으로써 이게 가능해요.
상대성,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상대성 안에서 나타난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어 이것이 없습니다.
뭡니까?
석가모니가 이야기한 연기법의 실체지요.
이것은 깊은 수준으로 들어가면요
인식과 존재가 같은 것이다.
하나다라는 것을 뜻해요.
이원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인식과 존재는 분리되어 있죠.
존재는 존재고, 인식은 인식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식이 존재고요. 존재가 인식이에요
이러한 인식과 존재 간의 비이원성에 대한 앎은
물론 직관적인 영역이에요.
앎의 영역이에요.
하지만 이 직관적인 앎을
앎에 도달하도록 돕는 역할은 무엇이 합니까?
사유가 해요.
그리고 이러한 사유는 머리에서 남는 게 아닙니다.
머리에서 남는 게 아니에요.
직관적 영역의 앎의 본질적인 변화를 끌어냅니다.
본질적인 변화가 정말 중요해요.
성경에서는요
예수님이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킨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셔서 혼인 잔치예요.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잔치에서는
그 사람들 특유의 포도주를 먹습니다.
근데 유태인들의, 히브리인들의 포도주는 물을 타서 먹어야 돼요.
이게 포도주 그 자체로는 못 먹어요. 너무 독해가지고.
물을 타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농도로 조제를 해서 마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혼인 잔치 같은 큰 잔치에서는
이 포도주를 항상 어마어마하게 준비를 해놔요.
그런데 그날 그게 다 떨어졌어요.
떨어졌더니 그 난리가 난 거죠.
잔치를 주최한 그 집에서는.
‘이거 어떻게 하나
손님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벌써 떨어졌다.’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한테 가서 부탁하십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거절하셨는데, 성모님이 계속 설득하셔서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세요.
어떤 기적인가요?
맹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물이 포도주가 됐다라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를 뜻해요.
그리고 사유를 통해서도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과 같은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관점의 진정한 전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뭡니까?
의식 또한 동시에 전환되게 돼요.
관점의 전환, ‘메타노이아’라는 단어인데요.
이게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셨을 때 모토가 있었습니다.
회개하여라. 첫 번째 이거였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이제 밥상 공동체인데
모두 모여가지고 둘러앉아서 밥을 함께 먹는.
이건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고요.
여기에서 우리나라 성경에서는 ‘회개하여라’라는 단어로 번역된 이 단어가
사실은 이제 메타노이아라는 단어예요.
메타노이아의 원래 뜻은 뭐냐면 관점을 전환하다입니다.
관점을 전환하려면
단순히 직관적인 앎에 아니면 감성적인 영역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게 뭐냐면요.
사유를 통해서 이성이 진정으로 납득될 때, 이성이 설득될 때
이 전환이 완성되게 돼요.
정말 아름다운 변화입니다.
논리적인 사유를 통해서
내가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질적으로 변환하게 되면
우리의 세상을 보는 눈, 관점이 변하게 돼요.
이 관점이 진정으로 딱 변하게 될 때
직관적인 영역에서의 앎 자체가 변해버립니다.
결국은 뭡니까?
사유를 통해서 뭐가 일어나는 거예요?
앎의 자각이, 앎의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명상과 사유를 분리하지 마세요.
“나는 생각하는 게 싫어. 그냥 명상만 할래”
앉아 있는 게 좋아요, 그냥 멍하니.
그거는 명상도 아니고요.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거예요.
반대도 있어요.
반대도 나는 명상이 너무 싫어.
그럼 뭐야?
그냥 사유만 할래.
그런 식의 사유는 또 뭐가 문제입니까?
말 그대로 머리만 굴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에요.
명상과 사유는 하나입니다.
진정한 사유는 명상과 다를 바가 없어요.
그리고 명상이 깊어지면은
사유를 통해서 알려지는 내용들이
말 그대로 직관적인 앎만으로 흡수되어 들어가게 됩니다.
오히려 이 직관적인 삶을 완성하는 것이
사유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사유하세요, 생각하세요.
생각하시는데 어떻게?
있는 그대로 보세요.
있는 그대로 본다라는 거는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판단을 하시라는 얘기예요.
어떻게, 대신에?
상대성과 존재의 상대성과 동시성과 전체성을
한꺼번에 꿰뚫어 보시라는 거예요.
이것이 가능해질 때, 여러분의 사유가 최고의 명상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뭡니까?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의식의 그리고 관점의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앞으로는 사유를 멀리하지 마세요.
그리고 명상을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유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명상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명상을 하시다가도
또 자연스럽게 사유로 들어가셔도 상관이 없어요.
이것이다 저것이다, 이것만 되고 저것은 안 된다라고
단정 지어놓고 딱 잘라서
나의 그 사고방식 자체를 칼같이 나누지 마시라는 얘기입니다.
아시겠죠?
사유와 명상, 간략하게 알아봤습니다.
물론 여기서 이제 더 깊이 들어가면 사유하는 방식
그다음에 사유를 통해서 또 명상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방법
이런 것들이 세분화가 되게 되는데
어쨌든 간에 이번 영상에서 제가 여러분들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뭐냐 하면
사유와 명상이라는 것은 하나다라는 얘기예요.
같은 것에 또 다른 얼굴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와도 같은 겁니다.
하지만 두 개 다 뭐예요?
손이에요
동전의 양쪽 면과도 같은 거예요.
사유와 명상
잊지 마세요.
여러분 적극적으로 사유하세요.
괜찮습니다.
적극적인 여러분의 사유가 여러분의 가슴 안에서
딱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싹 하고 빨려 들어가기 시작할 때
사유를 통해 명상으로 이어지고
그다음에 앎이 자각되기 시작합니다.
이 사유가 이성적인 납득이
뒷받침해 주는 앎보다 완벽해져요.
그러니까 여러분 사유하십시오.
다만 이 사유는 단순히 머리 굴리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사유와 명상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사유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 더 한번 깊이 들어가서 알아볼게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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