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야 범을 잡는다. 산에 가면 범을 잡는데 부처님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될까? 우리 같이 걱정해보자고. 부처님은 어디 계실까? 그냥 내 옆에 내 가족이 부처님이시다. 내 자식이 부처님이다. 내 이웃이 부처님이다. 내 친구가 부처님 같은 친구다. 왜? 그런 마음을 내주니까 부처님을 흉내라도 내려고 애를 쓰다보면 이생에 못 닦으면 다음 생이라도, 다다음 생이라도 될 거 아닙니까? 그죠?
그런 마음을 우리가 내고, 또 기도를 하면 좋은 그런 또 인연법이 연결이 되고, 그래서 우리는 또 하루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냥 별거 아니에요. 내 몸이 아파서 ‘아야 아야’ 하면서 사나, 아프니까 ‘아야 아야’ 나오는데, 그 ‘아야 아야’를 약간 소리를 바꿔서 하면 돼. “아이고 아파라 아파라” 하는 것을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좋아라.”
그럼 아픈 게 좋다는 게 아니고, 말만 바꿔버리는 거야. 그냥. 아픈 것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아프면 싫지. 아픈 것을 “아프다. 아프다”하면 더 아파. 그러니까 “와이리 좋노.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좋아라. 좋아라.” 이렇게 마음을 내서 그렇게 하다가보면 그 아픈 시간이 나도 모르게 빨리 지나가버려. 빨리 지나가고 나면 어떻게 돼? 빨리 나아.
어차피 열흘 아파야 낫는 것 같으면 그냥 열흘 동안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좋아라.” 하면 열흘이 열흘 같지 않고 한 2~3일 밖에 안간 것 같은데 열흘이 후딱 지나갔어. 덕보고, 그러잖아요. 그것이 덕 보는 거지. 당연히. 금방 지나갔어. 그러면 어차피 우리가 부처님 전에 우리는 불자니까.
기도하러 오면서 집에서도 나오면서 “아이고 귀찮아 죽겠네. 오늘 내가 절에 가야 되나?” 양심에 찔리지? “안가면 안 되나. 아이고, 오늘 가기 싫은데.” 하는 마음보다도 기왕이면 “아이고 좋아라. 내가 절에 가니까 좋구나. 좋아라. 좋아라.” 하는 마음으로 “와이리 좋노.” 하고 오면, 괜히 내 마음이 좋아지다 보니까, 창밖에 가로수 하나를 쳐다봐도 멋진 나무로 보이는 거야. 꽃을 하나를 봐도 “아이고 저 꽃이 왜 저리 예뻐?” 예쁘게 보이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쳐다봐도 내 마음이 좋으니까 저 사람이 인상을 쓰고 가도 그냥 그냥 평온한 거라.
그런데 내 마음이 웅크러져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약간의 인상을 쓰고 있으면 “주는 것이 없이 왜 기분 나쁘게 인상 써.” 속으로 또 같이 한방 치고 가는 거야. 그러면 뭐가 되는가? 인제 업을 짓고 가는 거야. 그 양반은 자기도 모르게 그냥 여기 와서 한주먹 때리고 간 거야. 또 자기는. 그것도 모르고 지나가는 거야.
이왕이면 웃음을 줘서, 남 앞에 이렇게 가면 “그분 참 웃는 모습이 보기 좋네.”하고 가면 나한테 복을 한 짐 탁! 주고 가는 거야. 나도 모르게 받아도 받은 줄도 몰라. 그런데 내가 좋은 생각을 던졌기 때문에 나도 복을 또 짓고 가는 거야. 이런 좋은 세상을 놔놓고, 왜 우리는 말이야, 고작 한다는 게 남이 잘났으면 "왜 저거는 나보다 예뻐?" 우리가 그런 게 아니고, 저기 있는 저 멀리. 우리나라는 없어. 저 멀리 있는 사람들. 하하하.
질투하고, 저 사람은 무슨 좋은 옷을 입었어. “아이고 팔자도 되게 좋은 거 같다. 신랑 잘 만난 갚다. 지 꼴은 별것도 아니고마는.” 그지? “별꼴도 아니고만, 내가 저 옷 걸쳐놓으면 너보다 낫겠다.” 괜히 시기실투해서 보이지 않게 업을 지어. 그러잖아. 그래놓고 우리는 마치 무엇을 잘하나? 잘못했나? 되도 않은 소리를 하면서 “아이고 스님요,” 요즘은 없어. 옛날에. “아이고 스님요. 스님요. 나는 팔자가 와이런교. 나는 못 할 짓 안하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하고 대성통곡을 하고 펑펑, 많이 울어요.
그러면 내가 속으로 뭐라는고 알아? “그래그래 열심히 울어라. 눈에 티 들어간 거 싹 빠지게 울어라. 펑펑 울어라 그래. 잘한다. 잘한다. 많이 울어라. 화장지로 눈물 닦으려면 돈이 들어가도 병원에 가서 치료비보다는 싸니라. 아이고 괜찮다. 그래 그래 잘한다. 더 울어라. 그래 잘한다.” 실컷 울고 나서는 “아이고 스님, 스님. 아이고, 감사합니다. 속이 후련하네요.”
그래서 나는 너무 고마운 거라. 덕분입니다. 하거든. 그게 내 덕분이가? 부처님 덕분이지. 부처님께서 심금을 울려주시고, 부처님께서 다 작용을 만드는 거라. 여러분들이 밥 잘 먹고 잠 잘 잔 게 누구 덕인가? 물론 현실적으로는 내 남편, 나를 위해서 고생해 주시고, 가정을 위해서 어떤 일, 힘든 일, 다 참아내시고, 그래도 밤만 되면 남의 집 안가고 내 집 잘 찾아오시고, 얼마나 감사하냐 말이야.
그러니까 그분이 바로 부처님이라. 부처님 덕분에, 이게 바로 부처님 덕분인 거야. 그분이 부처님이니까. 여러분 지금 부처님 덕분에 살고 계시잖아. 맞잖아. 하하하. 그런 부처님을 우리는 정말로 정말로 잘 모셔야 된 데이.
그 부처님을 잘 모시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내가 부처님이 되는 법이야.
이게 인과법이라. 이것만 알면 돼.
내가 그냥 부처님이 되어 있는 거야.
어느 날 보면.
그래서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게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고,
나를 위해서 기도하게 된 거고,
부처님을 잘 시봉한 게
부처님을 위해서 했지만,
바로 알고 보면 나를 위해서 하게 된 거다.
그런데 이 좋은 것을 하면서 왜 그렇게 마치 “아이고 나는 절에 가서 놀고 온 줄 아나? 다 너희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너희 새끼들을 위해서 내가 무릎이 닳도록 절하고 기도하고 왔다. 너희는 뭐하노?” 이러면 설상가상 그렇게 했더라도 내가 한 행이 이 말속에서 바로 다 날아가 버리는 거라. 어떻게 날아가는가?
남편 부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너 보고 기도해주라 했나?” 속으로 그렇게 말한단 말이야. 겉으로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거 다 한 거 날아가 버리는 거야. 아들보고 딸보고 손자보고 손녀보고 주변보고 막 잔소리하니까, 무식한 말로 해야 재미있으니까. “나는 쎄가빠지도록 기도하고 왔는데, 너희는 뭐하고 쳐자빠졌노? 공부도 안하고 뭐도 안하고 뭐가 어쩌고저쩌고.”
어머니가 소리 지르니, 할머니가 소리 지르니 대꾸를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고, 하는 경우도 있겠지. 때로는. 안했을 때 마음속으로 “누가 나보고 기도해 주라 했나?” 한 생각 스쳐가 버리면 그게 다 허사가 되는데, 그것을 왜 우리는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왜 못 지키는지, 정말 부처님 법은 위대한 거고, 부처님이야 말로 이 세상에 부처님처럼 위대한 분이 어디계시냐 이 말이야. 있으면 나와 보라 해. 없단 말이야.
왜 우리 부처님을 욕되게 하냔 말이야. 그건 또 나도 모르게 또한 업을 지은 거야. 그지?
그래서 우리는 매일 같이 아는 것을 반복되게 하지 말자.
이제 오늘도 한 살 더 먹었으니까,
한살 더 먹은 값을 한번 내보자 이거야. 우리가. 멋지게.
오늘도 부처님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큰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의 산더미 속에서도
향기 짙은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오르듯
눈먼 중생들 속에 있으면서도
바로 공부한 이는 찬란하게 빛나리라.
오늘도 모든 이, 모든 가정마다
늘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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