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가 산다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요, 사실은 다 인간관계죠. 인간관계.
남편과 아내의 인간관계, 부모와 자식의 인간관계, 이웃과의 인간관계, 스승과 제자의 인간관계. 이런 인간관계가 사는 것에 어떤 면에서 보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말씀은 대부분 ‘마음을 깨쳐라. 마음을 바로 써라. 욕심을 버려라.’ 이런 얘기만 있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되느냐’ 하는 이런 삶의 지혜에 대한 얘기는 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씀 중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위 세속사람들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어야 인간관계가 갈등으로 나타나지 않고, 또 이것이 속박이 되지 않고 오히려 행복의 원천이 되는가. 이런 거에 대한 부처님의 지침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보통 육방예경이다. 이렇게 물러요. 이런 가르침이 들어있는 경전을.
어느 날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탁발을 나가셨어요. 탁발을 하셔서는 처소인 영축산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청년이 동쪽을 보고 절을 하고, 서쪽을 보고 절을 하고, 남쪽을 보고 절을 하고, 북쪽을 보고 절을 하고 이렇게 아주 절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부처님이 지나가다가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
“절하고 있습니다.”
“왜 절을 하느냐?”
“예, 저의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저보고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네가 어려운 일이 있거들랑 동을 보고 절을 하고, 서를 보고 절을 하고, 남을 보고 절을 하고, 북을 보고 절을 하고, 하늘 보고 절을 하고, 땅을 보고 절을 하라.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래, 왜 그렇게 한다더냐?”
“그건 말씀 안하셨어요? 저도 잘 모릅니다. 아무튼 이렇게 하면 좋다니까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그렇게 무턱대고 하는 것 보다 더 좋은 법이 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이
“어떻게 하는 건데요?” 하고 물었어.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청년에게
* “동쪽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다. 그러니 동쪽을 보고 절을 할 때는 이런 마음으로 절을 해야 한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는 5가지 길이 있다.
1.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골수에 맺혀야 되고
2. 자식을 잘 키워야 되고
3. 교육을 잘 시켜야 되고
4. 적당한 배필을 찾아서 결혼을 시켜야 되고
5. 그리고 자립할 수 있도록 적당한 재산을 물려줘야 된다.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잘 돌봐야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1. 언제나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말아야 하고,
2. 부모가 하는 가업을 계승해야 하고,
3.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와 의논해서 결정해야 되고,
4. 부모의 그 가산을 탕진하고 않고 오히려 증산시켜야 한다.
5.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모를 위해서 좋은 세계에 나도록 천도를 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이 청년이 너무너무 기뻤어요. 자기는 멋도 모르고 무턱대고 그냥 동쪽을 보고 절만 했는데 동쪽을 보고 절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구나.
부모는 자식에게 이렇게 해야 되는 거구나. 자식은 부모에게 이렇게 해야 되는 거구나. 이것을 알게 되었단 말이오.
그러니까 청년이 다시 묻기를
“그럼 남쪽을 보고 절할 때는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 남쪽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니라.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는 아끼고 사랑하고 바른길로 인도하고...
이렇게 5가지 바른 길로서 제자를 가르쳐야 하느니라.
또 제자는 스승에게 5가지로 스승을 공경해야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고, 때에 따라서 스승에게 적당한 공양도 올려야 하고...
이런 식으로 5가지로 말씀을 하셨어요.
듣고 보니까 “그래. 마땅히 스승이라면 이렇게 제자를 가르쳐야 한다. 마땅히 남의 제자가 되었다면 스승을 이렇게 공경해야 한다.” 너무 너무 기뻤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말할 여가도 없이 다음 것이 또 알고 싶은 거요.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의 특징이에요.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얘기하면
“아이고, 빨리 안 끝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제 좀 그만하시지.” 이런 생각이 드는데,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사람들은 늘 듣는 게 즐거워.
그래서 금강경에 뭐라고 그래? 원요욕문(願樂欲聞) 이라 그러죠. 기꺼이 듣기를 원합니다. 즐거이 듣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언제 끝나나 생각하는 게 아니라 끝날까봐 오히려 아쉽고 두려운 그런 마음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동쪽과 남쪽 얘기를 하니까 그럼 서쪽은요? 이게 알고 싶단 말이오. 사람이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하고 들으면서 들으면 듣는 귀가 열려있기 때문에 쏙쏙 귀에 들어간단 말이오. 듣기 싫어서 들으면 3번 4번 들어도 지나고 나면 기억도 안 나요.
* 서쪽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다.
그러니까 남의 아내가 되었다면 남편을 어떻게 받들며 남의 남편이 되었다면 아내를 어떻게 잘 보호할 건가. 사랑한 건가. 이런 5가지 얘기.
요 두 개만 딱 뽑아서 결혼식 할 때, 제가 늘 하는 거요.
제가 결혼식 주례법문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례 법문 좋다고 많이 읽고 편지도 보내고 하는데, 제가 무슨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겠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말씀을 따서 그대로 한 거요.
그러니까 아내를 맞아들이는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하고 보호할 것인가. 그 사랑한다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를 우선 가정생활이 경제적으로 보살펴야 하겠죠.
거기 보면 그 당시 풍속이 그랬는지 때때로 선물을 잘해야 된다는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동의하세요?
눈치를 잘 살펴서 결혼 5주년이다. 10주년이다 이런 것도 있을 것이고, 때를 딱 따져서 선물을 적당하게 할 줄 아는.
부처님이 이런 세상살이를 잘 아셨나 봐요. 그래서 10대 명호 가운데 뭐가 있어요? 세간해, 세상을 다 안다. 이런 말이 있단 말이오.
그리고 가사 일에 대해서는 아미 그 당시에 견주어서 말한 거 아니겠어요?
가사 일에 대해서
남자가 시시콜콜 간섭하지 말고 아내에게 맡겨야 된다. 이런 것도 나와요.
그리고 적어도 먹고 살고 하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 하도록 해야 된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그렇게 해서 아내를 잘 돌봐야 된다.
그 중에 특이한, 요즘 들어도 좋은 말은 뭘까?
아내를 존중해야 된다는 거요. 아내를. 남편이 아내를 깎듯이 존중하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또 아내를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늘 어떤 일이 있을 때, 남편보다 자기가 한발 뒤에 멀러서는 마음을 내야 된다. 이런 것도 나와요. 요즘은 좀 안 맞나요?
그러니까 남편을 좀 앞세우고, 얼굴은 남편이 받도록 하고 자기는 약간 물러나는.
그렇게 해서 남편의 위신을 세워주는 이런 얘기도 나와요.
요즘 시대는 좀 다르겠죠. 요즘은 얼굴을 같이 내야 되니까, 안 그러면 앞서 내든지.
그 다음에 가정생활에 있어서 남편이 걱정하지 않도록 집안을 잘 돌봐야 된다는.
그리고 그 가산을 아내가 운용하면서 오히려 탕진하지 말고 더 늘릴 수 있도록 잘 가정을 꾸려 나가야 된다는 얘기부터.
또 혹시나 남편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청정한 생활을 해야 된다.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함부로 해서 세상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해서는 안 된다든지.
이런 부부간의 얘기가 나오죠.
여기서 하나하나 다 자세하게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아내와 남편이 어떻게 서로에게 해야 되는가. 이게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 법문을 듣고는 꼭 육방예경을 읽어보셔야 되요.
선생경이라고도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 젊은이 이름이 선생이기 때문에 선생경이다. 이렇게도 불립니다.
* 북쪽은 뭡니까?
여기는 친척간의. 그러니까 친지나 친척 간에 상호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대해서 얘기가 나오죠.
이 부모자식간의 얘기 가운데서 결혼하고 관계되는 것은 어떤 겁니까?
부부간에죠. 동시에 결혼은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나를 낳아준 부모만 내 부모인데, 결혼을 함으로 해서 상대편의 부모도 내 부모가 되죠. 그러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새로운 부모, 즉 시부모라든지 또는 장인 장모라든지, 이 부모들도 바로 내 부모처럼 받아들여야 되는 거요. 결혼을 하게 되면.
또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식을 낳게 되죠. 그럴 때 내가 자식을 잉태할 때가 굉장히 중요한 거요.
정말 자식을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생각한다면 그 생명이 처음 잉태할 때 아주 좋은 잉태를 하게 하려면 애기를 가질 때 내 마음이 청결해야 됩니다.
애기를 갖는 사람은
반드시 100일 기도를 하고
애기를 갖는 게 좋다.
요즘은 그런 거 없죠? 그저 좋아서 저희끼리 시뚝배뚝 하다가 그냥 애가 생기는, 이런 거 보다는 우리가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얼마나 가서 살펴보고 정성들여서 삽니까? 그런데 하물며 소중한 생명을 하나 잉태하는 데 좀 정성을 들이는 게 좋다는 거요.
그리고 애기가 뱃속에 있을 때는 애기의 육신은 내가 먹은 음식이 그대로 아이의 육신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청결한 음식을 먹어야 되요. 탁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거요. 술이라든지, 담배, 이런 것은 더더욱 큰 타격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애기를 가진 엄마는 음식을 삼가야 되고,
두 번째 아이의 마음은 엄마의 마음을 그대로 닮아서 형성이 된다.
우리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초조하고 불안하면
자기 위도 소화가 잘 안되지 않습니까. 그죠? 고장 나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애기는 엄마와 한 몸이기 때문에, 만약에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괴로워하고 이러면 아이의 상태가 아주 나빠집니다. 아이가 선천적이 불안증에 걸리게 되요.
그러니까 이걸 태교라고 그러죠.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아이가 편안~~~~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떻게 태교를 해야 되는가.
마야부인, 부처님 어머니가 부처님을 뱃속에 가졌을 때는 그 마음가짐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그러잖아요. 사자와 토끼가 함께 뛰놀고, 뱀과 개구리가 같이 뛰놀았다.
그 말이 무슨 뜻일까?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거나 살심이라든지 이런 게 하나도 없었다. 마음이 평화롭게 자비했다. 이런 뜻이죠.
그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봉사가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이렇게 표현한 것은 그 엄마의 마음이 아주 맑고 가볍고 밝았다는 얘기요.
이렇게 함으로 해서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니까 좋은 인연을 맺게 되고, 또 잉태를 시켜서 키울 때 싹을 틔울 때 아주 잘 싹을 틔운다. 이런 얘기죠.
그 다음 애기를 낳게 되면 잘 보살펴야 됩니다. 이때는 마치 흰 종이를 붉은 물에다 집어넣으면 붉은 색깔이 되고, 파란 물감에 집어넣으면 파란 색깔이 되듯이 그냥 그대로 물든단 말이오.
그대로 물들기 때문에 거기에 무엇을 경험하게 해주느냐.
무엇을 보게 하고, 무엇을 듣게 하고, 무엇을 냄새 맡게 하고, 무엇을 맛보게 하고, 무엇을 감촉하게 하느냐가 그 대로 그 아이의 자아형성이 된단 말이오.
그런데 우리는 애기가 어릴 때 애기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부부가 다투고 악을 쓰고 이러죠. 그러기 때문에 이 아이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어떤 불안증이 형성된단 말이오. 이런 것들이 다 커서 아이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거요.
그러니까 이렇게 아이를 키울 때 어떻게 키워야 되느냐. 이런 것을 우리가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여기저기에서 잘 찾아서 공부를 해야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다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육방예경에 이런 인간관계에 대한 말씀이 있다.
친족에게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런 것들이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또 묻죠.
* 그럼 저 위로 하는 것은요, 하늘보고 하는 뜻은 뭡니까?
그것은 사문, 그러니까 수행자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되는가. 수행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들고 공양을 올리고 해야 되는가.
즉, 정신적은 스승들, 청정한 수행자들에 대한 공경하는 태도가 우리 마음에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 그런 마음이 없을 때가 많죠.
* 또 아래로는 왜 절을 합니까?
아래는 아랫사람을 말합니다. 그 당시 같으면 하인이나 종을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주인으로서 하인에게 어떻게 자비롭게 잘 지도해야 되는가. 반대로 또 남의 하인이 된 사람은 주인을 어떻게 공경하고 섬겨야 되는가.
그러니까 옛날에는 그것이 신분으로 맺어졌지만 지금 같으면 회사나 직장이나 모든 곳에서의 뭐가 될까? 상하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죠. 상하관계. 선배와 후배 이런 상하관계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가. 이런 얘기요.
요즘은 노동자와 자본가가 아주 대결을 해서 윗사람은 즉, 돈 가진 사람은 사주는 노동자들에게 어쨌든 일은 많이 시키고 즉, 노동생산성은 높이고, 임금은 적게 주고, 그래야 이익이 남잖아. 그죠?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된다? 가능하면 일을 적게 하고, 월급은 많이 받아가고 그래야 되잖아. 이래서 대립을 한다는 거요.
그런데 불자라면, 이런 내용을 잘 아는 불자라면 조금만 현명하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직장이 오래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주인이 볼 때 사업주가 볼 때 내가 그 회사에 있음으로 해서 이익이 되어야 갈려고 그래도 가지마라고 잡을 거 아니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게 이익을 많이 줘야 거기 오래 있을 수 있어.
즉, 내 노동생산성은 1,000인데 내가 받아가는 임금은 500이하라면 그 사람은 날 잡아두겠어요? 내보겠어요? 잡아두겠지.
그것이 내 임금이 착취되는 게 아니고 그것이 내가 안정된 직장을 확보하는 방법이오.
반대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노동자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 사람이 딴 회사가면 500을 받을 사람인데, 내가 700을 주면 어떻게 될까? 가라 그래도 안 가겠죠. 그러니 직원을 오래도록 안정되게 간직하는 법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이익 되게 해 주는 게
사실은 자신에게 이롭다는 거요.
이것이 우리들의 인간관계라는 거요.
내가 있으므로 해서 그에게 이로워야 돼.
그래야 이 인간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거요.
그런데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언제나 이익을 보려한단 말이오.
내가 이익을 봤다고 생각하면 그는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 인간관계가 오래 못 간다는 얘기에요.
인간관계를 맺을 때
내가 있으므로 해서 상대편에게 이익이 된다.
도움이 된다 하는 일을 해야 돼.
그럴 때 이 인간관계는 오래 가게 되고
좋은 인간관계가 된다.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아서 절을 해야 그게 의미가 있지 그냥 무턱 대놓고 동서남북으로 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거요.
“그럼 동쪽이 진짜 부모하고 자식입니까?”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부처님의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오.
부처님은 동서남북을 얘기하는 게 아니죠. 이 사람이 동서남북을 얘기하고 있으니까
“야, 동서남북 그렇게 절할 필요 없어. 아무것도 없어 거기는.” 이렇게 얘기하면 그 사람이 상처를 입잖아.
“그럼 당신은 뭔데?” 이렇게 된단 말이오.
부처님은 언제나 가능하면
껍질은 그냥 둡니다.
내용만 바꿔치기 해요.
그 사람이 동쪽으로 절하면 동쪽으로 절하는 것은 놔두되 그 절하는 의미를 바꿔버린다.
즉, 마음의 자세를 바꿔주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불교는 이러한 형식을 갖고 다투지 않게 된다.
그래서 불교가 다른 문화권으로 전래되면서도 이 문화적인 충돌을 적게 합니다.
한국에 왔는데 제사를 지낸다. 그러면 ‘제사는 안 돼.’ 이렇게 안한 단 말이오.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냥 두되, 그 제사를 지내는 내용을 바꿔버리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불교에서의 재는 귀신한테 뭘 준다는 제사가 아니고 베풀 재자를 쓰죠. 베푼다. 널리 베풀므로 해서 그 영가에게 공덕이 된다. 이렇게 내용을 바꿔버린다.
이런데서 부처님께서는 길가다가 한 젊은이가 어리석게 아무 뜻도 모르고 이렇게 절을 하고 있을 때, 형식은 그냥 두고 내용을 잘 바꾸어서, 이 세상을 살면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잘 만들어 나갈 건가. 이런 가르침을 폈어요.
그래서 이 경전을 꼭 읽어보시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인간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데 좋은 해답을 얻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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