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떤 집단이든, 본인이 잘못을 했든 본인들이 잘못을 하지 않았든, 세상 사람들로부터 때로는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본인들이 잘못을 해놓고도 비난에 대해서 항변하는 경우도 있고,
또 본인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참회하는 경우도 있고,
또 본인들이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에 억울해 하고 항변하는 경우도 있고.
본인이 잘못하지 않았지만 이런 세상의 비난에 대해서 묵묵히 받아들이고 때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로 위대하신 분이기는 하지마는 세상에서 볼 때는 세상에 한 분이고, 승단은 비록 청정하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볼 때는 하나의 단체, 하나의 조직임이 분명하다.
부처님께서는 다만 진실을 설하시고, 중생의 아픔을 섭수하셨지마는 그런 부처님의 말씀과 행동에 감동을 해서 중생들이 부처님을 공경을 했다.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요. 또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따르는 사람을 많이 만들 목적으로,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한 목적으로, 절을 짓기 위한 목적으로, 세력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교화를 하신 것은 아니지마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소위 말해서 교세가 급속도로 신장이 된다. 거기에 대해서 질투를 하게 된 거요. 그래서 방해도 많이 있었다.
부처님의 명성이 워낙 자자하니까 부처님이 이 도시에 오시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종교가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였고, 자신들이 저자에 나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존경을 하고 공양을 올렸는데, 부처님이 오시고 난 뒤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오직 부처님에 대한 명성, 부처님에 대한 얘기만 자자하다는 거요.
그러다보니까 비록 수행자집단이라고 하지마는 이 마음속에 아직도 욕심이 있고, 진심이 있고, 질투가 있고, 이것을 깔끔하게 지우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부처님에 대한 그런 어떤 질투가 가실수가 없었던 거요.
그 당시에 한 이교도집단 가운데에 이런 부처님의 명성을 어떻게 하면 깎아내릴까,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말썽을 일으켜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할 건가, 이런 것들이 많이 논의 됐나 봐요.
그래서 이런 저런 방법들을 다 써 봤는데도 그것이 효력이 있기보다는 부처님의 명성을 더 높이는 이런 경우를 자꾸 빗게 되니까,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이성간의 스캔들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나 봐요.
요즘도 정교단체에서 말썽이 생기면 두 가지 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는 남녀 간의 문제고, 하나는 돈 문제고. 사살 이 두 가지만 깨끗해도 말썽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이교도를 따르는 신자 가운데에서 아마 아주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는 기생이 있었나봐요. 순달이라고, 그런데 이 순달이는 말은 사람이름처럼 우리에게는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인도말로 하면 예쁘다는 뜻입니다. 그게 아마 인도말로 그냥 와서 사람 이름이 된 것 같아요. 예쁜 여자다. 이런 의미겠죠.
이 여인에게 이 종교 지도자들이 아주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그 여인이 묻기를
“아니 스승님들이 왜 이렇게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이 붓다의 명예를 우리가 떨어뜨리지 않으면 우리가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 분에게 뭔가 사명감을 일으켰나봐요.
그래서 이 여인을 시켜서, 이 여인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자청을 했기 때문에 아침에는 정사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저녁에는 정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밤에 기원정사로 가는데
“어디로 갑니까?”
“나는 부처님을 만나러 갑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간다쿠티에서 그분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이러면서 정사로 들어가고,
새벽에 동이 틀 무렵에는 정사에서 또 일찍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요.
“어디서 옵니까?”
“어제 밤에 간다쿠티(부처님이 머무는 초막)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식으로 소문을 내면서 저녁에는 들어가고 아침에는 나오는 것 같은 이런 모습을 늘 보여주고 다녔던 거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부처님이 대중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이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부처님을 보고
“여보,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좋은 소리만 하지 말고 당신이 만든 이 아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해보시오. 남 앞에 가서 맨날 좋은 소리나 하고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자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안하는 그런 위선자적인 행동을 그만하시오.
곧 내가 해산을 내가 해산을 하게 되는데,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 뭘 준비 좀 해야 될 거 아니냐. 당신이 바빠서 준비를 못하면 당신을 따르는 사람을 많이 있지 않느냐. 아니 베사카 부인 같은 사람도 있지, 아나티핀디카 같은 사람도 있지, 또 프라세나지드 같은 이 나라 왕도 있지,
당신이 그분들에게 한마디만 해주면 그분들이 얼마나 잘 도우겠냐.”
이런 식으로 법문을 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얘기를 한 거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니까 배가 산처럼 부르게 해서 이렇게 해서는 그렇게 악을 쓰는 거요.
사람들이 다 의아해 하고 있었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했어요.
“여인이여, 지금 당신이 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렇다,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이니까 이 진실을 아는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다. 사실이다.” 오히려 이렇게 대꾸하고 나서는 거요.
그렇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어. 그래서 치마가 휙 들려버렸어요. 그러면서 배에서 뭐가 툭 떨어졌는데 바가지가 떨어진 거요. 이 여인이 바가지를 끈으로 묶고 치마로 내리고 애기를 가졌다고 했는데, 그러고 있는 중에 한 줄기 돌개바람이 불어서는 치마를 확 걷어 올리게 되면서 줄이 끊어지면서 박이 땅에 떨어진 거요.
이렇게 해서 망신을 사고는 도망을 갔다.
또 어떤 데 보면 재가신자들이 ‘이 나쁜 ㄴㅕㄴ’이라고 하면서 정사 밖으로 끌고 나갔는데, 땅이 갈라지면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얘기도 되어있어요.
아무튼 이런 스캔들 같은 것들을 통해서 부처님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그런 시도도 있었다.
이보다 더한 시도도 있었어요.
입장은 다 똑같은데, 역시 이 사건이 실패하자 그 다음에는 아름다운 여인을 시켜서 정사를 오고가도록 해서 그래놓고는 없어져버렸어.
그러니까 이교도들이 왕에게 가서 우리 교도가 한 분 없어졌다. 그런데 이분이 알기로는 저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에 늘 출입을 했다. 그런데 사람이 없어졌다. 그러니 필이 히 사람들이 이 여인을 해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수색을 하게 해달라는 거요.
그래서 왕의 허락을 얻어 기원정사 주위를 수색을 했더니 꽃을 버리는 쓰레기장 밑에 이 여인의 시신이 나온 거요. 그래서 이 여인의 시신을 매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부처님을 비난한 거요.
“이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고 불리는 이 고타마가 결국은 제자들과 어울려 이렇게 나쁜 짓을 하고는 사람을 죽여서 쓰레기더미 밑에 묻었다.”
이렇게 악을 쓰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처음에는 긴가민가해도 나중에는 사람들이 믿기 시작한 거요.
그래서 이런 소문이 퍼지고 그 다음에 공양을 얻으러 탁발하러 간 스님들에게 사람들이 삿대 짓을 하면서 이 위선자, 나쁜 놈, 이렇고 비난을 하고 공양도 안 주고, 이렇게 되니까, 제자들이 돌아와서 부처님께 이런 사실을 얘기하게 된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다 듣고는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말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 누가 묻거든 그렇게 대답을 하는 거요.
그래서 스님들이 탁발을 나가서 누가 비난을 하게 되면
/누구든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말하게 되면
그는 그 과보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된 거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듣기에 만약에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런 행위를 했다면 저들 스스로 큰 과보를 불러오는 저런 맹세를 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민심이 조금 잠들어가는 참에
이 여인을 죽인 사람들이 그 돈을 받고, 청부살인 업자들이 죽였는데, 돈을 받아서 그 돈을 갖고는 독주를 사마시고는 술에 취해서 저희끼리 죽인 장면에 대해서
“저 사람이 한 대를 탁 때려 버리니까 어떻고, 어디에 숨겼는데 어떻고”
이런 얘기를 자기네들끼리 하다가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결국은 체포가 되게 되고,
체포가 되어서 왕이 심문을 해서 이것이 음모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고, 이것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이 도시에서는 부처님의 명성이 더욱더 빛나게 되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정말 얼토당토 않는 이런 비난들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좀 작은 파장이 나중에는 큰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첫째 부처님께서는 담담하셨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했다.
저 같았으면 이런 얘기 들으면 심장이 뛰고, 피가 거꾸로 돌고,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눈이 부라려지고 이렇겠죠.
“도대체 누가 이렇게 했느냐.”
그러지만 부처님께는 그러한 비난을 받으시고도 마음에 평정을 유지하셨다. 마음의 평정을 먼저 유지하시고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때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그러한 짓을 행하는 자만이,
즉 그런 거짓말을 행하는 자 스스로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거다. 세상 사람은 모른다 하더라도.
그런 당당함이 계셨던 거요.
그러한 모함을 받고도 담담히 때를 기다림으로 해서 오히려 부처님을 비난했던 여론은 상황이 전환되면서 부처님을 더욱더 존경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런 여러 사건들은 생기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게 아니고
생긴 것이 생기지 않는 것 보다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일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이런 위해들은 대부분 다 생기지 않는 것 보다는 생긴 게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어요.
즉, ‘부처님을 좋게 만들려고 생겼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마는 우리가 볼 때는 엄청난 장애에 부딪혔는데 부처님께서 그것을 슬기롭게 잘 극복함으로 해서 오히려 부처님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즉, 위대한 성자는 이런 갖가지 장애에서 빛을 본다는 거요. 아무런 장애가 없다면 굳이
‘위대하신 분이구나. 훌륭하신 분이구나. 정말 다르시구나.’ 이렇게 말할 게 없잖아요.
그러나 이런 여러 장애가 부딪혔을 때 그분께서 보여주는 모습에 사람들은 크게 감동을 하게 된 거요.
그러니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 부닥치는 여러 장애를
재앙이라고 여러분들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게 되면
그것은 분명히 재앙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연의 과보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마음에 평정을 유지하면서 지혜롭게 그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그것은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 일어난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다 라고 하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거요.
이것을 우리가 세상말로는 뭐라고 그래요?
전화위복이다. 이렇게 말하죠.
그래서 재앙이 곧 복이다가 되는 거요.
재앙이 복임을 안다면
세상에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우리가 원하는바 대로 주어지는 게
부처님의 가피다. 복이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보디사트바는
재앙이 부처님께서 나에게 내려주신 복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사람이오.
재앙이 복인 줄 알아버렸으니
이것이 수행의 과제임을 깨쳐버렸으니
이 세상에 그가 두려워해야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지장보살은
스스로 저 지옥에 뛰어든 거란 말이오.
지옥 중생을 구제하러. 그 얼마나 힘든 일이오.
바로 그것을 수행도량으로 삼는 거요.
그러니 오늘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난관,
결혼을 했는데 갈등이 생기고,
회사를 취직을 했는데 거기에 여러 난관에 부딪힐 때,
또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여러 난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피하려하고, 도망가려 하고,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 한탄하고 이런 것 보다는
마음에 평정을 유지하면서 이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나에 해결의 과제로 삼아서 연구하는 태도,
그것이 수행이다.
수행자라는 것은
마치 어떤 과제를 연구하는 사람과 같은 태도.
이게 수행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그 문제를 풀어 나아가게 될 때는
이 과제가 떨어짐으로 해서 내가 실력이 늘어난 거요.
이것이 수행이다.
그래서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이 사바세계 갖가지 난관이
다 수행을 도와주는
붓다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그런 부처님의 법문으로 들린다.
그래서 우리가 정토세계에서 보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까지도
다 부처님의 법음이 아닌 것이 없다. 이래요.
그럼 그런 정토는 부처님의 법문을 가지고 온 산천에 녹음기 틀어놓듯이 틀어놓은 것이냐. 이렇게 생각하시며 안 돼요.
모든 것들이 자연현상부터 인간계에 나타난 모든 것들이
바로 부처님의 법의 가르침으로 나에게 받아들여진다.
모든 것이 다 수행의 과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럴 때 모든 것이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들린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렇게 될 때는 이 세상이 정토에요.
하는 일마다 불공 아닌 것이 없고,
처처에 부처님 아니 계신 곳이 없고,
그래서 우리가 처처에 불상이오, 사사에 불공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될 때는 바로 이 땅이 그대로 정토다.
정토라는 것은 어떤 완성된 세계를 말하는 아니라
보디사트바가, 수행자가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들을
수행의 과제로 삼게 될 때,
바로 이 세상이 정토가 되는 거다.
지장보살에게 있어서는 지옥이 정토요,
관세음보살에게 있어서는 이 사바세계다 정토다.
오늘 우리 한국의 불자들은
바로 우리가 태어난 이 한반도,
갖가지 갈등과 분쟁이 있는 이 곳,
온갖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현실을
그대로 수행의 과제로 받아들인다면
바로 이 땅이 그대로 정토가 된다.
정토는 저 미래에 오는 정토도 아니고,
저 죽어서 가는 타방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
정토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불자들이 가야 되는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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