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상에서 많이 행하는 제사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어떻게 하셨느냐. 이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걸식을 나가셨는데, 그 찾아간 마을이 산간마을이었어요. 즉, 사냥꾼들의 마을이었다.
부처님께서 이 마을에 오니까 남자들은 다 사냥을 나가버리고 부인들만 마을에 있었습니다.
부인들이 부처님이 오시니까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모여들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은데, 자기들이 가진 게 고기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 고기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했더니 부처님께서
“나는 이미 오늘 식사를 했노라.” 즉, 오시다가 아마 공양을 얻어 드셨나봐요. 하루 한 끼 드시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공양을 안 먹어도 된다.
그렇게 하시면서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이렇게 남의 살코기를 맨날 먹고 사는 것은 매일매일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야 한다. 그러니 곡식을 먹고 산다면 이렇게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내 입맛은 남의 살코기를 먹으면 좋을지 몰라도, 그 살코기 속에는 그 생명들의 온갖 고통과 비명이 들어있다. 그러니 그런 음식을 자꾸 먹게 된다면 마음이 사납게 된다.
이렇게 하면서 이 불살생계율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그분들에게 이렇게 게송으로 읊으셨어요.
/인자한 마음으로 생물을 죽이지 않고 항상 제 몸을 잘 단속하면
거기는 죽음이 없는 곳, 어디를 가나 근심 없으리라.
인자하여 생물을 죽이지 않고 말을 삼가고 마음을 지키면
거기는 죽음이 없는 곳, 어디를 가나 근심 없으리라.
팔장끼고 할 일 없이 중생들을 헤치지 않고
교란하고 괴롭히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범천이 되리라.
항상 인자하여 가엽게 여기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청정하며
만족할 줄 알고, 그칠 줄 알면 이로서 나고 죽음 건너게 되리라./
이렇게 설법을 해서 그 여인들이 너무너무 기뻐서 부처님께 다시는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맹세를 했어.
그때 마침 남자들이 즉, 남편들이 사냥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이 여인들은 남편들이 사냥해 오면 마을 어귀에 나가서 마중을 해서 사냥감을 들고 오고 남편들을 위로하고 이렇게 했는데, 다 부처님 법문 듣는다고 마중을 안 나갔어.
남편들이 아내가 마중을 안 나오니까 의아해하고 약간 성이 나서 들어왔는데, 부인들이 다 모여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지, 거기 쭉 모여 있는 거요.
그러니까 이 남편들이 화가 나서 가지고 있던 칼이나 창이나 활을 들고 부처님을 겨누면서 잔뜩 화가나 있는 거요.
그러니까 부인들이 자리에 일어나서 남편들을 말리면서 이 분은 정말로 훌륭하신 분이다. 그러니 이 분을 헤치게 되면 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도리어 우리가 이 분에게 참회를 하고 이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렇게 다 부인들이 권유를 했더니 그 남편들도 창을 버리고 활을 버리고 칼을 버리고 오히려 부처님께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사과를 했어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다시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을 하셨어요.
/인을 실천하고, 자비를 행하여 중생을 널리 사랑에 구제 하면 11가지의 칭찬에 있어서 복이 늘 몸을 따르리라.
잘 때도 편안하고, 깨워서도 편안하며, 나쁜 꿈꾸지 않고, 하늘이 보호하고 사랑하며, 독을 받지 않고, 흉기에 상하지 않으며, 물이나 불에도 상하지 않고, 있는 곳마다 이익 얻다가 죽어서는 범천에 오르리니, 이것을 11가지 복이라 한다./
이렇게 게송을 읊었더니 이 남자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가 되어서 부처님께 귀의를 했어요. 그러면서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사냥꾼이 살생을 안 하면 어떻게 삽니까? 이것도 보통일이 아니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왕에게 설법을 하셨어요.
즉, 왕에게 말씀을 해서 이 사냥꾼들에게 일정한 땅을 줄 것을 요청했고, 왕은 흔쾌히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이분들에게 땅을 제공해서 농사를 짓고 행복하게 살도록 했다.
이런 기록입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사냥꾼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살생을 하며 살기 때문에 결국은 과보를 받는다. 하는 것을 깨우쳐서 살생을 그만두게 하는데서 머문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생업이 있어야 살 거 아닙니까. 그죠? 그러니까 그들에게 다른 생업을 왕에게 말을 해서 일자리를 마련해 줬다. 이런 얘기에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는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도박을 하고 산다든지, 매매춘을 하고 산다든지, 여러 직업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나쁘다고만 하지, 그 사람들이 그것을 그만둘 때 가질 수 있는 직업에 대한 대책도 마련이 되어야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불교는 이런 세상에 대해서 그렇게 살지 마라. 나쁘다고만 말하지, 제도적으로나 또는 정부나 정치인들에게나 여러 사람들에게 바르게 지도를 해서 그들에 대해서 다른 생계 대책을 마련을 해서 법에 맞는 직업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런 것 까지도 함께 해나가야 된다.
부처님 당시에 이런 걸 안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해야 되는데, 이 경전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당시에도 이렇게 그들이 중생을 괴롭히는 직업을 갖고 살아갈 때, 그 직업을 버리게 할 때는 다른 직업을 알선해줬다. 이런 장면을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서 제가 오늘 제사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어느 나라의 왕이 어머니가 중병이 들었어요. 온갖 방면으로 의사를 초빙해서 치료를 해도 병을 나을 수가 없는 거요.
그래서 왕이 소위 용한 점쟁이를 불러다가 어이하면 병이 낫겠냐? 이렇게 물어봤더니 그 점쟁이가 하는 얘기가, 지금 우주 기운이 균형이 안 맞아서 병이 났다. 즉,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에 병이 났다. 그러니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해서 이 신들의 노여움을 풀어야 한다. 이런 말이에요. 우리도 이런 경우 많이 있죠.
그래서 먼저 하늘의 신인 칠성님한테 별에게도 제사를 지내야 하고, 그 다음에 산신에게도 제사를 지내야 된다. 즉, 명산마다 다 제사를 지내야 되는데, 어떻게 제사를 지내야 되느냐? 각 종류의 짐승, 100마리를 죽여서 제사를 지내야 된다는 거요. 거기다가 아주 깨끗한 어린아이도 하나 죽여서 제사를 지내야 된다.
이런 얘기는 우리나라 옛날 얘기에도 많이 나오죠. 공양미 300석 나올 때도 깨끗한 처녀를 재물로 바쳐야 풍랑이 가라앉는다. 제주도에도 뱀사골 얘기에 보면 처녀를 재물로 바치는 이런 얘기 나오지 않습니까. 신라 에밀레종 거기도 보면 애기를 재물로 바치는 얘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왕은 이 말을 듣고 제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갖가지 종류의 짐승 100마리와 어린 아이를 죽여서 그것을 희생의 공양물로 삼아서 자기 어머니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려고 큰 재단을 차려놓고 제사의식을 행하려고 하는 거요.
그때 부처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각각의 짐승들은 죽음이 임박하니까 그 울부짖음이 야단스럽고, 또 어린아이나 그 부모도 아픔이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이 이것을 보시고 ‘왕이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왕에게 가서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곡식을 얻으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지
제사 지낸다고 곡식이 얻어지는 게 아니다.
부자가 되려면
널리 베풀어 보시를 해야 부자가 되지,
제사를 지낸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장수를 하려면 즉, 오래 살려면
대자 대비한 마음을 내어야 오래 살지
악심을 품고 제사 지낸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널리 배우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야 지혜가 얻어지지
제사 지낸다고 지혜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니 대왕이시여,
어떤 일을 할 때는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봄에 밭 갈고 씨 뿌리고, 여름에 김매고 거름 주고, 그래야 가을에 추수할 게 있지,
하늘만 쳐다보고 밭도 안 갈고, 씨도 안 뿌리고, 거름 주고 김도 안 매는데,
어떻게 곡식이 생겨나겠냐. 하늘에서 떨어지겠냐 땅에서 솟겠냐.
그러니 대왕이시여,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온당치가 않습니다.
지금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신들은 아주 좋은 곳에 살고 있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의 음식을 탐하지 않는 것처럼,
저 하늘나라에 가면 다 향기 있고 정갈한 음식이 많은데,
왜 신들이 바보같이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이런 음식을 탐하겠느냐.
그러니 이런 음식을 신들에게 올린다고 해서
신들이 복을 준다. 이것은 온당치가 않습니다.
이렇게 법을 설했더니 그 왕이 알아들었어. 자기가 생각해도 이것은 원인과 결과가 인과가 맞지가 않는 거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인과가 맞지 않는 행동을 많이 하게 되죠.
그때 부처님께서 이렇게 게송으로 읊으셨어요.
사람이 100년 동안 오래 살면서
천하에 귀신을 정성껏 모시고
코끼리와 말 따위를 제사지내도
한번 자비를 행한 것만 못하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 나서 좋은 법을 해줬더니 왕과 거기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듣고 이치를 깨치고 환희심을 냈어.
그랬더니 그 왕의 어머니도 법의 이치를 깨치고 마음에 무지가 사라니까 기쁨이 생기고 병이 나아버린 거요.
그래서 왕이 너무너무 기뻐해서 전국에다가 ‘앞으로 살생을 하지마라.’라고 살생금지령을 내리고,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해서 한 달간 공양을 올렸다.
이런데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오늘 우리들도 무슨 좋은 일이 생기라고 뭘 할 때는 돼지머리 올려서 제사를 지냅니까? 안 지냅니까? 지내죠.
여러분, 인도에 가보면 켈거타의 칼리사원 같은 데는 매일매일 아침에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양의 목을 칩니다. 그리고 그 피를 이마에 찍어서 축복을 해 줍니다.
남의 생명을 해치고 그 피를 이마에 찍어서 복을 비는 거요.
그리고 그 양고기로 시장에서 팝니다.
이것이 현재에도 매일매일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희생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죠?
그런데 부처님 말씀대로 이게 합당한가? 이런 문제요.
우리는 오늘 장례를 치를 때,
또 돌아가신 분에게 예의를 갖출 때,
소를 잡고 돼지를 잡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돌아가셨다고 우리가 슬퍼하면서,
내 부모가 돌아가셨다. 내 형제가 돌아가셨다. 그걸 슬퍼하면서
왜 다른 생명을 죽여서 그 슬픔을 달랩니까? 이게 온당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전에는 모르고 다른 생명을 죽이고, 그 고기로 입맛을 돋우었다 하더라도
내 부모나 형제가 죽는 걸 보고 내가 가슴이 아프다면
“아, 그 생명들이 죽을 때, 그 생명이나, 그 생명의 인연이 있는 것들이 얼마나 가슴 아프겠느냐.
그러니 내가 평소에는 설령 살생을 한다 하도라도 내 부모가 죽은 오늘만큼은 살생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오늘 만큼은 고기를 먹지 말아야 되겠다.”
이래야 오히려 정당한 거 아니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아는 사람은 죽었다고 슬퍼하면서
그날 살아있는 다른 생명의 목숨을 해친단 말이오.
또 하나 모순인 것은 축제에요.
우리는 이렇게 제사지낼 때도 생명을 헤치지만 축제할 때도 헤칩니까? 안 헤칩니까?
좋은 일 생겼을 때 또 소를 잡고 개를 잡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럼 내 아이가 태어났다고 기뻐하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고 기뻐하는 그 축하연을
왜 다른 생명을 죽여서 축하를 합니까?
그 축하는 피비린내 나는 축하 아닙니까?
그 죽어가는 생명은 얼마나 원한이 사무치겠습니까?
평소에는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태어난 날이나
우리 집에 아이들이 태어난 그날만큼은
살생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오히려 이래야 이치가 맞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자기만 생각하고 사느냐.
자기 부모 죽었다고 슬퍼하면서 다른 생명을 헤치고,
자기 아들 낳았다고 기뻐하면서 다른 생명 헤치고,
이런 것들이 합당하지가 않다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치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곡식이 얻어지는 것처럼
병이 낫고, 장수하려면 방생을 해야 된다.
살생을 하게 되면 그 과보가 뭐냐?
단명입니다.
그리고 병고에요.
그러니 우리가 이 병고에서 벗어나려면 방생을 해야 되고,
이 단명, 이 비명횡사에서 벗어나려면 방생을 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 도리어 오래 살게 해달라고 다른 생명을 죽이고,
병 낫게 해달라고 다른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병을 더 깊게 만들고 명을 더 단축하는 행위다.
이것은 마치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거와 같다.
잘한다고 하는데 더 자기를 헤치는 행위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다. 몰라서 이렇다. 몰라서.
왜 모르느냐? 자기 밖에 생각 안한다는 거요.
이렇게 되었을 때, 저 사람은? 다른 것은? 이렇게 견주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 희생을 치러서 복을 비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즐거울 때 그냥 즐거워하십시오.
슬플 때 그냥 슬퍼하십시오.
오히려 법을 만나서 그 슬픔을 뛰어넘으셔야 됩니다.
그런데 왜 슬프다고 다른 생명을 헤치고, 기쁘다고 다른 생명을 헤치느냐 이거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평소에는 다 계율을 지키고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생일날만큼은 제삿날만큼은 고기먹지 마라까지는 제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을 헤쳐가면서 까지 제사의식을 치르고
생일파티를 하고 하지 않는 게
법의 이치에 맞지 않을까. 이런 걸 우리가 한 번 살펴봐야 되겠어요.
이것은 꼭 육식을 하지 않는다 하는 그런 어떤 식생활 문제가 아니고,
이치적으로 볼 때 그렇다.
그러니 우리가 복을 빌려면 널리 베풀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무병장수하려면 널리 방생을 해야 합니다.
방생이라는 꼭 미꾸라지나 자라를 강가에 띄어주는 것만을 방생이라고 하지 않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
지금 제3세계 어린아이들이 굶주리는 데 식량을 주는 것,
간단한 질병도 치료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치료를 해서 살리는 것.
또 마음의 원한을 품고 자기를 헤치는 사람들에게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법을 전해서 원한을 풀어주는 것. 이것도 방생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에 해당이 된다.
이렇게 법을 전하고 방생을 해서
우리가 복을 쌓고, 우리들의 명을 길게 해야지
오히려 재앙을 불러 오는 행위를 하면서 복을 빈다고 하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이런 부처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오늘 우리 현대인들은 꼭 새겨야 할 겁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알지 못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요즘 같은 교육받고 지혜로운 현대인들이 아직도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
이제는 좀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서 우리 불자들이 현명한 길에 좀 앞장을 섰으면 좋겠습니다.
'법륜스님 > 부처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32. 세상을 살아가는 가르침 (0) | 2018.10.10 |
---|---|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31. 몸을 함부로 하는 사람 (0) | 2018.10.04 |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29. 여인을 보고 애욕에 빠진 비구 (0) | 2018.09.20 |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28.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 나가려면 (0) | 2018.09.12 |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27.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말한다면 (0) | 2018.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