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75. 나라가 망하지 않는 7가지 법

Buddhastudy 2019. 8. 14. 20:35

 

안녕하세요.

부처님의 교화사례를 따라서 우리가 하나하나 공부하다보니까 어느덧 100일에 가까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시간들은 부처님께서 열반을 향해 가셨던 마지막 여행을 중심으로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여러분에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1년을 세세하게 기록한 경전을 열반경이라고 합니다.

이 열반경에는 부처님이 세수 80세 되던 해에 왕사성밖에 영축산에 계실 때, 그때 마가다국왕인 아사타사투왕이 대신을 보내서

지금 밧지족을 치려고 하는데,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이런 질문을 하는데서 시작이 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대신의 질문에 직접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곁에 있는 아난다에게

밧지족들이 7가지 아주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제도를 아직도 그대로 지키고 있는가?”

그렇게 하시면서 그 하나하나를 물으십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그 하나하나마다 다 밧지족들이 지금도 잘 지키고 있다.”

이렇게 대답하니까 부처님께서

그것을 지키고 있는 한은 그 나라는 쇠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대신이

부처님 잘 알았습니다. 7가지 가운데 하나만 지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가다국왕은 결코 밧지족을 멸망시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전쟁은 무익한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부처님을 물러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을 나라가 망하지 않는 7가지 법이렇게 부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쟁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전쟁하는 것은 잘못됐다이렇게 상대를 나무라지 않고

어떻게 하는 것이 평화롭게 사는 길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삶인가,

이런 법을 설하심으로 해서 그들이 듣고 깨우쳐서 그 전쟁의 무익함을 알고, 전쟁을 그만두도록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밧지족의 대신이 돌아가자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아난다여, 이 주위에 있는 모든 비구들을 중림정사로 모이게 하라.”

이렇게 지시를 합니다.

그러니까 아난다께서 잘 알았습니다 하면서 모든 주위에 수행하는 비구들을 베노반바나, 즉 중림정사로 모이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영축산을 떠나셔서 중림정사에 이르셔서 비구들에게 승가가 망하지 않는, 승가가 쇠망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유언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이 승가가 쇠망하지 않는 7가지 법에 대해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승가가 쇠망이 오지 않는 7가지 가르침을 설 할테니 잘 듣고 마음에 새겨둠이 마땅하리라.

이렇게 하시면서

 

첫 번째)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자주 모임을 개최하고 그 모임에 많은 비구들이 모이는 동안에는

비구들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이 없을 것이다.

 

, 자주 모임을 가져라. 자주 모임을 갖고 그 모임에서 모든 것을 의논해서 처리하라. 하는 것은 요즘 말로하면 민주주의겠죠.

가장 민주적으로 승가를 운영할 때, 승가가 가장 오래오래 유지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민주적인 질서를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많은 나라 가운데도 가장 민주적인 나라가 바이샬리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특별히 바이샬리를 사랑하시기도 했던 겁니다.

 

오늘날 인도에서는 이 바이샬리를 인도공화국의 원류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도 국회가 개원될 때는 바이샬리에 있는 연못물을 떠가서 개원식을 합니다.

그만큼 바이샬리는 민주주의 원류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여성의 출가같은 이 어려운 문제를 행하실 때도 바이샬리에서 행하셨고,

또 대승불교가 일어날 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마거사의 활동무대도 이 바이샬리입니다.

바이샬리는 그만큼 자유로운 도시였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승가의 모범은 이 바이샬리의 밧지족이나 리차비족이 갖고 있는 그런 민주적인 어떤 제도를 보고 오히려 승가도 그와같이 하지 않았나 이렇게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승가는 굉장히 민주적인 제도입니다.

이것이 오늘 그대로 남아 있어서 승가에서는 대중공사라 해서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누가 더 큰 결정권을 갖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모든 대중들이 모여서 직접 민주주의를 하죠.

회의를 해서 결정을 합니다.

이것을 오늘날에 대중공사다 이렇게 부릅니다.

 

첫째가 이렇게 대중이 다 둘러모여서 문제들을 서로 의논하라.

그런데 여기 그런 직접 민주주의를 할 때는 대중들은 가끔 참여를 잘 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거를 할 때 투표율이 아주 저조한 것처럼 대중들이 참여를 안 해버리죠.

그러면 회의를 해서 의논한다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다수의 대중이 참여하지 않고, 소수만이 모여서 결정을 한다면 그것은 대중의 뜻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자주모임을 갖되,

그 모임에 많은 비구들이 모이는 동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비구들이 모인다. 거의 대부분의 비구들이 다 모인다.

이렇게 모인다는 것은 회의에 참석했을 때 각자 자신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이 된다고 할 때 사람들은 회의에 모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서 얘기해 봐야 형식은 민주주의인데 자신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을 때,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군중심리로 이렇게 회의를 진행할 때에는 대중은 그 회의에 점점 참여를 하지 않게 됩니다.

 

또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를 가지고 회의를 하지 않고, 추상적인 관념적인 그런 문제들을 갖고 논쟁만 일삼아도 사람들은 회의가 지루하고, 그래서 참여욕구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부터 참여를 하지 않게 되죠.

 

그래서 비구들이 자주 모임을 갖는다. 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의논해서 결정한다 이런 얘기이고,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모임을 가질 때, 즉 참여율이 높을 때,

이 상가는 결코 멸망하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이 된다고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모일 때도 한 줄로 줄지어 모이고

헤어질 때도 한 줄로 줄지어 헤어지며,

또한 승가로서 해야 할 바도 한 줄로 줄지어 행하는 동안에는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 번영이 기대될뿐 쇠망은 없을 것이다.

 

, 한 줄로 줄지어 모이고

한 줄로 줄 지어 헤어지고

한 줄로 줄지어 행한다.

이게 뭐겠습니까? 질서죠.

민주주의라는 것이 잘못되면 무질서가 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바로 대중의 뜻을 수용을 하되, 거기에는 질서가 있어야 된다.

대중이 다 질서를 지켜야 된다.

그래서 승가는 질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질서가 독재자에 의해서, 힘에 의해서, 강압으로 세워진 줄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일어난 그런 질서라야 된다.

그래서 요즘도 이런 게 남아 있죠?

 

해인사나 통도사나 송광사나 이런 큰 절에 갔을 때, 스님들이 예불을 할 때 한번 보십시오.

강원이나 선방에 계시는 스님들이 법당에 올 때 한 줄로 쭉 서서 오죠.

이것을 기러기처럼, 한 줄로 쭉 서서 와서 신발도 순서대로 쭉 벗고, 그리고 법당에 들어가도 자리가 순서대로 딱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예불이 끝나고 나갈 때도 뒤쪽부터 차례로 한 줄로 순서대로 나가게 됩니다.

 

신발이 바뀌거나 사람이 부딪히거나 겹치거나 이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누가 그렇게 명령을 하고 줄을 세우고 이런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렇게 한다.

이런 것이 다 질서의식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요즘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질서의식이 좀 부족합니다.

그러나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죠.

버스를 타거나 은행 창구에 서거나 이럴 때 가면 그저 순서대로 아무런 혼란없이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서로 앞에 하려고 소위 말하면 새치기를 하고 이렇게 해서 늘 무질서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승가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이게 중요합니다.

 

세 번째)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예전에 정해지지 않는 것을 새로 정하거나

반대로 정해진 것을 깨뜨리거나 하지 않고,

정해진 바에 따라 행동하는 동안은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다.

 

이건 무슨 얘기냐 하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제도, 법률, 계율,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함부로 폐해서는 안 된다.

있는 전통을 함부로 바꾸거나 있는 규칙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

 

그런데 혼란된 사회는 어떠냐?

누가 대통령이 새로 되거나, 회장이 새로 되거나, 왕이 새로 등극하거나하면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을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어느 날 바꿔버리게 되죠.

그래서 사람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니까 특별한 경우가 없을 때는 있던 것들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있는 것을 바꿀 때는 반드시 전체 동의를 얻어야 됩니다.

 

사미재라고 했어요.

회의를 할 때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되는데,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무조건 통과되는 게 아닙니다.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찬성하고 3분의 1 이하가 반대를 했을 때는 반대그룹에 대해서 반대자에게만 발언권을 줍니다.

그래서 왜 자신들이 반대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다시 투표를 합니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또 3분의 1 이하로 소수자가 생겼다. 그럴 때 소수자에게 물어봅니다.

취소하겠는가? 취소 하겠다 그러면 통과가 됩니다.

그런데 취소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집하는 게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

다수라 하더라도 그들이 잘못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자신의 의견을 충~~~ 분하게 설명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또 한 번의 회의를 했는데, 그것을 듣고 사람들이 동의를 하면 소수의견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것이 소수의견이 된다. 이렇게 될 때는 3번 째까지 그렇게 될 때는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끝까지 고집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세 번째가 지나면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게 된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만장일치제가 됩니다.

그런데 무조건 만장일치제가 아니라 소수자가 소수의견을 충분하게 발표할 기회를 주고, 그것이 3번 이상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다수 대중이 동의를 하지 않을 때는 소수도 횡포를 부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수의 횡포도 안 되지만 소소의 횡포도 안 되는 거요.

그래서 소수자는 스스로 자기의 의견을 내려놓음으로 해서 만장일치제가 해결이 되는, 이것을 우리가 삼의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것을 재정할 때는 반드시 다수대중의 동의를 얻어서 재정을 해야지, 함부로 재정해서는 안 된다.

, 있는 것을 폐기할 때도 함부로 폐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법률같은 것도 전에 있던 법이 언제 폐지되었는지, 또 이런 법이 언제부터 새로 생겼는지도 모르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죠.

이렇게 되면 우리는 법을 지키는 그러한 질서의식이 점점 약해지게 된다.

뭐 저거, 좀 있다가 또 바뀔 거야.” 이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까.

어떤 지시, 어떤 법률이 내려오면 사람들은

, 지금뿐이지 조금 있으면 흐지부지될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한은 질서가 잡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규칙이나 법률 중에, 함부로 폐하지 않고

또 새로운 것을 함부로 만들지 않고, 이미 정해진 것은 반드시 지킨다.

하는 이런 일이 있는 한은 승가는 쇠망하지 않는다.

 

네 번째)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경험이 풍부하고 출가한지 오래되는 장로나

모임의 아버지 모임의 지도자인 비구들을 경외하고 존경하고 숭배하면, 또 공양하고, 그들 장로들의 말을 경청하려고 생각하는 동안은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뿐이니라.

 

, 경험이 많은 사람, 우리 사회로 말하면 기술자라면 기술적인 노하우가 있는 사람을 존중해야 된다.

또 나이가 많은 분들의 경험을 존중해야 된다.

이런 거죠.

그래서 연세 드신 분에 대한 예우, 단순히 권위주의가 아니고, 경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예우, 기술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 덕망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

그들은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자하는 이런 마음이 있는 한은 승가는 쇠망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 번째)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의 어리석은 생존을 초래하는 갈애의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지배되지 않는 동안은

비구들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이 없을 뿐이다.

 

지금 4개는 꼭 스님들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사회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얘기죠.

다섯 번째 얘기는 승려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또 불자들에 대한 얘기라고 말할 수 있죠.

 

오늘 우리들의 행위의 동력은 뭡니까?

갈애입니다. 갈망, 욕구라고 말할 수 있겠죠.

욕구와 갈애, 갈망이 없으면

우리는 업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됩니다.

완전 자유인이 되죠. 해탈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수행하고 있는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갈애가 있고 갈망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갈애와 갈망에 우리가 휩싸이는 이 현실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갈애와 갈망에 따라간다면 우리는 윤회고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서 어리석은 생존을 초래하는 갈애의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여기에 휩싸이고, 여기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일어났을 때는 일어나는 줄을 알아차려서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을 놓아버리는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여섯 번째)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산림생활을 희망하고 있는 동안은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다.

 

출가한 스님들이 숲속에서 사는 것을 즐겨해야한다.

, 숲속에서만 살고 저자에 나와서는 안된다하는 것도 아니고, 저자에만 살고 숲에 가기를 싫어해도 안 된다.

그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출가한 수행자들은 바로 이 세상의 번다함을 떠날 줄 알아야 된다.

그리고 한적한 곳에서 자기 내면을 관찰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건 가장 기본이다.

 

그러나 때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번다한 저자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면의 세계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

이 세속생활의 휘둘려서 쾌락에 물들고, 또 잡담하고 이런 놀이에 빠지고,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원래 근본이 숲속 한적한 곳에서 정진하는 것을 즐기는 그런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 말은 세속에 빠지지 마라.

이 세상에 욕락에 빠지지 마라.

출가의 근본 도리를 놓치 말고, 늘 정진해야 된다. 이런 얘기에요.

 

일곱 번째)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각자 달리 행동하지 않는 바른 사념을 확립하고

아직 오지 않는 동료 수행자가 있다면 오도록 하고

찾아온 동료 수행자에게는 쾌적하게 지내도록 바라는 동안은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이 기대 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다.

 

, 자신은 바른 사념, , 항상 자기의 상태에 깨어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좋은 도반들이 함께 오도록

오지 않는 도반들은 함께 모여서 정진할 수 있도록 오도록 하고,

이미 온 사람들은 이렇게 정진을 잘 할 수 있도록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쾌적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좋은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스스로 바르게 정진하고,

다른 도반들이 함께 와서 정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미 함께 있는 도반들에게는 쾌적하게 정진할 수 있도록 해나가는 것.

이것이 존재하는 한은 상가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일반신도님들에게 적용을 한다면

자기가 절에 올 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자기 정진을 중심에 둬야 된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법을 전해서 함께 와서 정진하도록 권유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절에 와서 정진하고 있는 다른 도반들에 대한 그들이 정진할 수 있도록 아주 많은 배려를 해야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이렇게 하는 한은 이 상가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처님을 오늘 우리들이 잊지 않는다면

우리 불교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정법이 살아있는 그런 불국토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