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지 그랬는데 둘이 의견차이가 뭔데? 나 의견차이가 뭔지 모르겠는데요? 생각차이가 뭔데 그래? 둘의 차이가. 왜? 네. 네. 그러니까 그 말은 맞는데. 이론적으로는 맞는데. 예를 들면 뱀이 있잖아. 그죠? 뱀은 독 있는 뱀만 위험하지 독 없는 뱀은 어때요? 하나도 위험 안 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래도 우리가 그거 다 알아도 뱀 만질라 그러면 겁나요? 겁 안 나요? 그래. 아는 거 하고 우리들의 까르마, 업식. 형성된 업식하곤 다르다. 이거요. 아까 아이가 ‘일어나야지.’ 하는 거 하고 일어나기 싫은 거 하곤 별개로 논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안가도 마음만 바꾸면 행복해지는 건 맞는데, 아직 그 수준이 안된다는 거요. 부인이.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그 수준이 안되니까. 가서 법문을 듣든지, 절을 하든지, 행사에 참여해야 겨우 좀 좋아지고, 또 그거 안 하면 아직은 안 좋아지고. 아직은 이 수준이라는 거지. 그래서 이제 점점점점 수준이 높아져서, 가든 안 가든, 보든 안 보든 이 정도 되면, 부처의 경지에 가까워지지.
그러니까 아~ 우리 부인이 맨날 절에 다녀도, 1년, 2년, 3년을 절에 다녀도 아직도 그 수준이다가 아니라, 옛날 부인에 비해서 요즘 조금 좋아진 거 같아요? 나빠진 거 같아요? 예. 그러나 아직도 부처가 되려면 많이 부족하다. 이런 얘기거든요. 옛날보다는 좋아졌는데, 그러나 아직도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수준은 아직 아니구나. 경계가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쁘고. 아직 이 수준이구나. 그러나 옛날보다는 좋아졌으니까.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 뭘~ 몇 년이나 다녀도 아직도 그 수준밖에 안 되나? 이렇게 생각하면 불만이 생기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 부인수준이 옛날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완전에는 못 미치는, 가는 가운데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렇다. 우리가 만약에 하루에 내가 화를 열 번 내고, 한번 내면 그냥 씩씩되는 게 한 10분쯤 갔다고 하자. 그러다 마음공부를 자꾸 하면서 하루에 화를 다섯 번 내고, 그다음에 한번 화를 냈을 때는 한 3분 정도 되면 가라앉는다고 하자 이 말이야. 그러면 옛날보다 좋아졌어요? 안 좋아졌어요?
그런데도 아직도 이 인간이 화를 내요? 안내요? 아니 다섯 번 낸다. 이 말이오. 내지. 그러니까 아직도 수행하는 게 화내나? 이렇게 말하면 안 되고. 옛날보다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런 사람을 보디사트바라 그래요. 부처는 아직 아니고, 그렇다고 중생도 아니고, 중생에서 출발해서 부처로 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니까 아내가 그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자기가 조금 지켜봐 주는 게 좋다. 네.
그런데 제일 좋은 거는 이래요. 아내를 지원해주는 것보다 더 좋은 거는 나도 수행하는 거요. 예. 내가 열심히 하는 게. 아까도 얘기했지마는 산이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내가 산을 좋아하듯이, 아내가 좋아져서 내가 좋아지는 거는 그건 큰 공덕이 아니고, 내가 좋아져서 좋아져야 그게 진짜 공덕이다. 그게 내 재산이다. 이런 얘기요.
Q2.
내가 배가 고플 때 밥 먹는 것도 욕심이라고 하면 욕심이고. 그다음에 관세음보살님이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이고, 욕심이라고 갖다 붙이면 다 욕심이 돼요.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욕심을 버려라.’는 것은 그런 의미는 아니다. 밥 먹는 생각도 버려라. 중생 구제하겠다는 생각도 버려라. 이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관세음보살님이 고통받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 할 때는 욕심이 아니고 원이라. 그래요. 원.
지장보살은 대원을 세웠다.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겠다. 큰 원을 세웠다 해서 대원지장보살. 이래 부르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가만히 보면, 원하고 욕심하고 차이가 뭐냐? 똑같은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러면 그건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안됐을 때 보면 구분이 됩니다. 안됐을 때 욕심을 가지고 한 일은 괴로워합니다. 원을 가진 사람은 또 합니다. 괴롭지가 않다. 이 말이오. 자기도 어떤 일을 할 때, 이게 원인지, 욕심인지는 안 됐을 때 괴로워하면 ‘아 ~ 내가 욕심을 부렸구나.’ 이렇게 알면 돼요.
그러니까 어제 만약에 무슨 행사를 했다. 내가 ‘아~ 사람들이 꽉 차서, 스님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욕심인지 원인지는, 원을 가진 사람은 최선을 다하는 거에요. 그래서 설령 자리가 비었다 하더라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 하는 것에 만족을 하고, 내가 조금 노력이 부족했나 보다. 다음엔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생각이 이래가고. 욕심을 가진 사람은 ‘내가 죽어라고 했더니 이것밖에 안 왔네. 아이고~ 하면 뭐 하노?’ 이렇게 생각이 좌절이나 절망으로 가거나 괴로움으로 가면 그건 욕심이에요.
그러니까 욕심은 다시 정리하자면 욕심이나 원은 겉으로 보면 똑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원은 갈수록 커지고, 안 되면 또 연습해가 또 하고, 연구해서 또 하고, 이래하고 저래하고 하니까 능력이 갈수록 커지고. 욕심을 부리면 어떠냐? 하면 자꾸 좌절하고 절망하니까 갈수록 자꾸 쪼그라들고. 그래요. 수행도 수행이 안 돼 가지고 괴롭다 하면 수행이 뭘까? 욕심이오. 남을 돕는 것도 능력이 부족해서 자기를 한탄하고 내가 많이 도와야 되는데 요것밖에 못 도와 가지고 아이고~ 힘들다. 이러면 그것도 뭐다? 욕심이오. 남을 돕겠다. 하는 것도 욕심이오.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 부자가 되겠다. 하는 것도 욕심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건 자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안 되면 또 해보고 또 해보고 이러면 그건 욕심이 아니에요. 시험을 재수 친다 해서 욕심이 아니에요. 괴로워하면 떨어졌을 때 괴로워하면 그건 욕심이고. 괴로워한다는 게 왜 욕심이냐? 어떤 일을 성취하려면 10번을 연습을 해야 되는데. 두 번 하고는 주저앉아가지고 한탄한다. 그거는 공짜 먹으려고 했던 거거든요. 노력이 부족한 건 생각 안 하고, 방법을 연구는 안 하고. 그냥 괴로워만 하는 거는 욕심 때문에 생기는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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