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이 없다고 해야 될까요? 뭔가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계속 자고 싶고 놀아도 놀아도 부족한 거 같고//
첫째, 병원 치료가 필요해요.
아니, 웃지 말고, 병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증상이 나오면, “내가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고, 직장 사람도 보기 싫다”
그러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냥 딱 누구, 꼴보기 싫다, 이거는 치유가 되지만
바로 그게 두세 사람에게 겹치면, 그건 의욕이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고 그건 병이에요.
그건 가서 치료받으면 금방 좋아져요.
근데 병원에 가서 상담치료나 약물치료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거 외에 달리 치료하는 방법도 있어요.
저기 경허스님의 치료법은 이런 거예요.
제자하고 탁발하러 갔어요.
탁발이라는 건 쌀을 얻으러 갔다. 이 말이오.
그러면 옛날에는 요만한 그릇에다가 나도 먹을 거 없으니까 동냥을 줍니다.
그러면 그것도 하루종일 이동네 저동네 다니면서 모으면 한말 두말 얻을 거 아니오.
노스님이 얻어서 젊은 제자가 짊어진 가방에 계속 부으면서 다닌단 말이오.
하루종일 안 쉬고 계속 다니시는 거예요.
저녁 4시 5시에 절로 돌아가려면 몇십 리 길이 되니까
이제 그만하고 가야 되잖아. 그죠?
끝나니까 큰 스님이 해질녘이 다 되어 가니까
“가자” 이러는 거요.
그런데 제자가 다리가 아픈 거예요.
하루 종일 걸은 데다 짐을 졌으니까, 그래서 큰 스님께 말했어요.
“스님, 제가 좀 다리가 몹시 아픈데 쉬었다 가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문제 제기했어. 그랬더니
“오, 그래, 그러면 저 동네 가서 좀 쉬자” 이러는 거요.
아픈 다리를 끌고 갔단 말이오.
어떤 동네 앞에 이르렀어.
해가 질 녘이 되니까, 남자들은 일하다가 삽이나 곡괭이, 이런 거 씻어서 매고 집으로 돌아오고, 아낙네들은 불을 피우고 밥을 하면서 우물가에 와서...
옛날에는 집집마다 우물이 없고 동네 앞에 하나 있단 말이오.
우물가에 와서 옛날에는 똬리 입에 물고 항아리 이고 가잖아요.
젊은 망공스님은
‘저기 가서 물도 한 그릇 먹고 쉬시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방심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스님이 어떤 젊은 아낙네가 물을 이렇게 양쪽을 잡고 머리에 얹은 여자분한테 가서 두 손이 다 잡혀 있잖아. 그죠? 물동이 쥐고 있으니까
귀를 잡고 입을 쪽 맞춰버리는 거요.
여자가 놀랐을까? 안 놀랐을까?
놀라서 비명을 지르니까, 물동이가 깨지고 박살이 나고...
그러니까 남자들이 오다가 봤단 말이오.
“저 중놈 죽여라” 이러면서 삽하고 곡괭이 매고 쫓아오니까
스님이 산고개길로 도망가요.
그러면 저 스님이 저랬으니까 저 스님만 잡히면 때릴까? 옆에 있는 젊은 중도 잡히면 맞아죽을까?
맞아 죽겠죠.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현장이 됐단 말이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도망을 왔는데, 해가 질 녘에 고갯길로 죽기 살기로 가니까
따라오는 사람은 잡아서 때리기밖에 안하는 거고, 잡히는 사람은 죽을 수가 있으니까 누가 더 다급하다?
잡힐 사람이 더 다급하니 잡힐 사람이 죽기 살기로 도망가니까 결국 못 따라왔단 말이오.
고갯마루 넘어서 오니까 따라오는 사람이 없어.
고갯마루에 턱 올라오니까 스승이 떡 누워서 있는 거요.
화가 날까? 안 날까? 화가 엄청나게 난 거란 말이오.
스승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요.
“도대체 누구 죽이려고 그런 짓을 하냐”고 고함을 지대고 화가 나서 씩씩거렸단 말이오.
그러니까 스승이 하는 얘기가
“아직도 다리가 아픈가?‘
이 위험한 상황을 뭣 때문에 진행했나?
그 ’다리 아프다‘ 하는 것을 가지고 깨우쳐주려고 진행한 거예요.
일체유심조라는 것을...
그런데 이거를 위급한 상황이 전개 안 되면 아무리 얘기해도 될까? 안 될까?
안 되겠죠.
그러니까 자기가 게으르니 뭐니 어쩌니 해도
옆에 폭탄이 탁 떨어져서 펑 터지면, 일어나 도망갈까?
”아이고, 허리야“ 이러고 누워있을까?
그러나 다리가 부러져서 못 움직이는 사람은 폭탄 아니라 우폭탄이 터져도 움직일 수 없겠지.
무조건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첫째,
자기가 정신적으로 약간 치료가 요하는,
호르몬 분비나 이런 게 이상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
먼저 치료를 받아야지 무조건 결심만 하면 안 된다.
그런 게 이상이 없다 그러면
두 번째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조건이라는 거에요.
직장도 안 가고 놀고 밥먹고 빈둥빈둥 해도 살 수 있는 조건이가? 못 사는 조건이가?
살 수 있는 조건이에요.
그러니까 배가 불러서 그렇다.
옛날 사람들의 표현으로 그런 거요.
조건이 좋아서 그렇다.
요즘 젊은 사람은 이해가 안 되죠.
그러니까 어째도 무의식 세계에서
’죽기야 하겠나‘, ’우리 엄마가 나를 내버려 두겠나‘ 이게 있다는 거요.
그래서 그런 거요.
그러니까 누구나 다 이 경우에도 다급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가난한 나라의 우리가 생각하면 자살이 더 많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긴 살기 바빠서 자살할 생각이 없어요.
여러분들, 만약에 내가 자살하려고 마음이 우울해서 ”죽어야지, 못 살겠다“ 이래서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에다 밧줄 메어놓고 목을 딱 거는데 호랑이가 뒤에서 ”어흥“하면
”아이고 잘됐다“ 이럴까? 도망 올까?
그럼 이 사람 다시 자살할 마음이 들까?
안 들어요.
생존 의지가 확 돌아가면서 확 없어져 버려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늪에 빠져서 ”나 같은 거 필요 없다. 난 죽어야 해“ 빠져있다가
위급상황이 되면 확 뛰쳐나오면서 늪에서 확 빠져나와 버린 거요.
그것도 치유 방법이에요.
그러니까 치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런 거를 현실에서 자기에게 긴급 상황을 만들기가 어려우니까 우선 어디 가봐야 한다?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예요.
(마음먹는 게 힘들 때 어떻게 하면 잘 먹을 수 있나요?)
그런 질문은 필요가 없어.
그냥 하면 돼.
그냥 하면 돼.
’어떻게 일어 나느냐?‘
그건 일어나기 싫다는 아이예요.
’어떻게 하느냐?
‘그건 하기 싫다는 거예요.
그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해버리면 돼요.
어떻게 일어나요?
벌떡 일어나는 거요.
어떻게 해요?
그냥 하는 거요.
거기에 방법을 얘기한다는 거는
”하기 싫다” 여기에 사로잡혀 있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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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재미있었어요?
재미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재미가 있다는 것은 지금 좋다는 거고,
유익하다는 것은 나중에도 좋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라고 가르칩니다.
도덕주의자, 어른들은...
또 젊은이는
지금 좋다고 나중을 희생해요.
이건 다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을 희생하고 나중을 기대해도 안 되고
나중을 희생하고 지금에 빠져도 안 돼요.
지금도 좋고 뭐해야 한다?
나중도 좋아야 해요.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해요.
그게 진리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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