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를 하지 말고 사랑만 해야 하는데 사랑이든 물질이든 주면
계속해서 더 달라고만 하는데 지치고 결국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안 주면 되요.
제라 말하는 거는
내가 줬다, 달라, 내거 알아달라.
이렇게 거래하지 말라는 얘기이지
안 주는 거는 거래 아니잖아요.
안 주면 돼.
당연히 주면 계속 달라 하는 건 인지상정이에요.
인도가서 아이들이
박시시, 박시시할 때, 내가 한푼 줬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준 사람 따라 다닐까? 안 준 사람 따라 다닐까?
자기도 돈을 빌려보면
친구나 친척에게 돈을 빌렸을 때
한번 빌린 사람에게 다음에 또 빌리기 쉬워요?
안 빌려준 사람한테
“이 사람한테 빌렸으니까 요번에는 안 빌려준 쟤한테 빌리자”
이렇게 됩니까?
“전에 빌려준 사람한테 빌리자” 그럽니까?
너무 당연한 얘기를 왜 해요.
주면 당연히 계속 달라는 것은 그거는 자연스러움이다.
그게 무슨 내가 얄미운게 아니고 그건 자연스러움인데
줄 수 있으면 주고 줄 수 없으면 안 주면 되지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욕할 필요가 없다.
제 말은 그런 뜻이에요.
‘계속 줘라’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내줬으니까 내 공 알아달라
내 그때 너 도와줬는데 너 내 은혜를 모르니’
이런 얘기 하지 마라는 얘기예요.
그러면 괴로움이 생기기 때문에.
그러니까 줄 수 있으면 주고 못 줄 수 있으면
“아이고 미안하다, 없다” 안 그러면
“있어도 넌 못 주겠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그게 부모든 형제든 누구든 따질 게 없어.
절에 스님이 달라 그래도
줄일 수 있으면 주고 없으면
“죄송합니다 스님, 없어요” 이러던지
“하는 일 보니 별로 주고 싶지 않아요” 이러든지
그냥 그렇게 말하면 돼요.
별일 아닌 걸 가지고 그래.
내 거 갖고 왜 내가 고민을 합니까?
내가 남의 집에 돈 빌리러 갔을 때
빌리러 간 사람이 전전긍긍하지
자기는 자기 거 주면서 그 전전긍긍한다니
바보 중에 상바보요.
줄 수 있으면
“그래, 써라,” 이렇게 주면 되고.
그러니까 빌려는 주지 말라는 얘기에요.
특히 친한 사이에는 빌려주는 건 안 좋다, 그냥 줘야지.
빌려주면 반드시 원수가 됩니다.
내가 돈을 빌렸다.
친한 사이에 빌렸다.
이자도 없이 빌렸다.
그리고 이쪽은 잘 모르는 사람한테
서류 쓰고, 각서 쓰고, 이자 물기로 하고 빌렸다.
그럼 설령 내가 돈이 생겨도 어느 것 먼저 갚겠어요?
무이자로, 서류 없이 그냥 빌려준 형제나 친구 돈 먼저 갚겠어요?
이자 많이 주기로 한 사람 거 먼저 갚겠어요?
그러니까 친구나 친척이나 가족한테 빌려주는 건 못 받을 확률이 높아요.
그럼 그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이 얘기예요.
그거는 이치적으로 못 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못 받을 확률이 높은 거를 해놓고 받으려고 하면
결국 미워지고 원수된다.
돈은 돈대로 잃고 원수 되니까
내가 거래하지 마라는 거는
그냥 어렵다니까 그래 형제간에 친구지간에
천만 원 빌려 달라면 100만원이라도
“아이고 천만은 없고 100만원 써라” 이러고 끝내야지
거기에 빌려주는 그런 거래
빌려주고 받겠다는 게 거래고
두 번째 주더라도
“내 공을 알아라” 하면 거래에요.
이렇게 되면 나중에
“은혜를 모른다 배신한 놈이다” 이렇게 원수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마란 얘기지
주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줄 수 있으면 주고, 줄 수 없으면 주지 마라.
이 얘기에요.
더 얘기해 보세요
...
아니요, 그게 사람이 다 그래요.
사람이 다 그런데 아까 얘기하고 똑같은 얘기인데
예를 들어서 누가 나한테 돈을 100만 원 줬다.
그러면 엄청나게 감사하겠죠.
근데 한 번 주는 게 아니라 매달 준다 하면 더 고마워해야 되잖아요.
근데 첫 번째 받는 달, 두 번째 받는 달, 세 번째 받는달 해서
1년 정도 받으면 받을 때마다 그것이 더 고마워질까? 고마움이 감퇴할까요?
2년 정도 지나면 어떨까?
3년 지나면 어떨까?
“아직도 100만 원이냐?” 이렇게 되겠지.
“올려줄 때 안 됐나 아직도 100만 원이야?” 이래서 불만을 토로 하겠죠.
그게 나빠서가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다 그래요.
모든 사람이 다. 자기도 그래.
여러분들이 부부지간에도 뭐 부모 자식간에도 마찬가지예요
왜 자식이 부모를 미워합니까? 원망합니까?
자식이 부모한테 해준 건 없고 전부 부모한테 받았는데.
그랬는데 받는 건 당연하고 더 달라 그래서 안 주니까
지금 불만인 거 아니에오.
그러니까 그거는 그 할머니가 나쁜 것도 아니고 늙어서 나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심리가 원래 그렇다, 자연스러움이다.
그래서 자기같이 친절하고
그러니까 자기가 좋아서 친절해 놓고
자기가 또 그 사람들 욕하고
이게 뭐하고 똑같은지 알아요?
인도에 가서, 제가 예를 들을 테니 들어보세요.
아이들이 ‘박씨씨 박씨씨’이래요
그럼 스님이 안 주고 가.
그러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아이 스님, 애들이 저렇게 달라는데 좀 주지 왜 그래요?”
학교 선생 특히 여선생님들이 더 그래요.
“아이고 애들 불쌍하잖아요”
그러면서 줘.
근데 얘가 받고 가면 괜찮아.
근데 또 따라와서 또 달라 그래.
그러면 어떤지 알아요?
“너 아까 받았잖아. 너 저리가, 너 받아 놓고 왜 그래?”
근데도 막 계속 달라 그러면 어때요?
“아, 이 애들 버릇 나빠지겠다, 안 줘야지, 안줘.”
애를 나무래.
나는 주지도 않고 그런 애들도 안 나무래.
달라는 건 자기 자유이고
주고 안 주고는 내 자유이고.
그 아이는 그 10루피 받아서
그 100원짜리 하나 받아서 그거 만족하겠어요? 더 달라고 그러지.
그러니까 한꺼번에 차를 한대 사줘 버렸다든지, 집을 하나 사줘 버렸다하면
더 달라 안 그러지.
그 차 좀 태워준 것 갖고 뭘.
당연히 차 필요하면 타고 가자 그러니까
늘 그 생각을 하지
“아 그 집에 얘기하면 난 차 타고 갈 수 있어”
근데 어느 날 가자는데 안 가니까
기분이 나쁜 거지.
또 내가 비유를 들어볼게요.
내가 인도에 가난한 아이들, 학교도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었어.
학교 오라 그래도 안 와.
사탕 줘 가면서 애들을 학교 오게 했어.
얘들이 초등학교 졸업했어.
중학교 가고 싶어 해,
그러면 중학교 안 보내주면
학교 다닐 때는 고마워했지마는 중학교 안 보내주면 섭섭해.
그러면 섭섭하고 말아.
근데 얘들을 중학교 보냈어.
그럼 고등학교 더 가고 싶을까 안 가고 싶을까?
고등학교 안 보내주면 욕해.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 가고 싶을까 안 가고 싶을까?
가고 싶겠지.
대학을 안 보내주면 얘들은 바로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니까 해코지 해, 해코지.
안 보내 준다고.
뭐 여기 와서 뭐 좋은 일 한다고 해놓고 해 놓은 게 뭐 있나?
근데 그게 당연하다는 거야.
그 배신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그거는 처음부터 손을 댈 때는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을 알고
그런 결과가 나오니까 안 할 거냐?
아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해서 기술을 배워서 나를 해치더라도
이 아이는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관점을 이렇게까지 해.
그래야 거기 가서 그 주민을
주민들 잘 알아서 사는데 괜히 가서 일을 벌여놓고
나중에 그 나쁜 놈들이라고
그 동네 애들이 못 쓰겠다고 그런 얘기를 왜 하나?
그러니까 아예 그러려면 손을 안 대야지.
섭섭해하면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여기까지밖에 능력이 안 된다”
“아이고 그래 대학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에게 예산이나 규정이 이거밖에 안 돼서 미안하다.
아이고 죄송해” 이렇게 해야 돼요.
그러니까 자기는 관점을 지금 못 잡고 있어.
그러니까 그거는 그 할머니 잘못도 아니고. 노인 때문에도 아니고
사람이란 게 본래 그래, 사람이라는 게.
그래서 다 부부 갈등이 생기는 거 아니에요.
남편이나 아내가 잘해주면 당연한 거고
여러분들이 지금 남편 안에 불만이 있는 거는
남편 아내가 자기한테 손에 끼쳐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남자는 아니야
내가 원하는 부모도 아니고
그래서 다 부모 원망하고 형제 원망하고.
길 가는 사람보다는 나은데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오토바이 사달라 해서 안 사주면
엄마한테 막 항의를 하고 그러잖아.
“엄마는 너를 위해서 위험하다고 그렇다”
“뭐 우리 형편이 안 된다.”
“우리 반 누구는 우리 집보다 못 사는데도 오토바이 사주더라” 이렇게 나오지.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할 수 있는 건 하고, 못하는 거는
“죄송합니다” 하면 돼,
그때 할머니가 돼 달라고 하면
“할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더해드리면 좋은데 제가 여기까지 밖에 형편이 안 됩니다.
아이고 죄송해요.”이렇게 말해야 돼.
자기가 제대로 했으면.
자기는 자기 기분이야.
내가 기분 내가 해주고.
내가 기분 안 된다고 욕하고.
할머니는 아무 죄가 없어.
그 동네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 아무 죄가 없어.
걔들은 그냥 외국인 오니까 한 푼이라도 얻으려고 박씨씨하는데
지가 마음내서 주고
지가 또 원칙 안 지킨다고 욕하고.
이거를 스님이 할 말은 아니지만
좀 속된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면지
기분에 놀아나서 지랄을 발광하는 수준이에요, 알았어요?
다 자기 기분대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시어머니가 집에 와가지고 뭐 처음에는
이것저것 잘해주다가
뭐 몇 번 잔소리하면 어때요?
“아이고 밥이나 해주면 드시고 구경이나 시켜주면 하고 막 딱 하시면 되지
왜 잔소리를 하냐?” 이래.
할머니가 무슨 보릿자루요? 나무토막이요? 가만히 있게?
그것도 사람인데.
사람은 눈에 보이는게 있으니까 이것저것 얘기할 수밖에 없잖아.
근데 우리는 다 자기 식대로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자기 스스로 자기가 기분에, 자기 기분에 좋은 일 한다고 설치다가
자기 한계를 넘어서니 욕을 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할머니하고는 아무 관계 없고
늙음 하고도 아무 관계 없고
자기가 제 기분에 놀아나다가 지 플에 꺾여서 지금 욕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독하게 말해서 미안합니다.
알아들었죠?
이렇게 딱 알아들으면
친절하게 해주고
해달라는데 못 해주면
“할머니 죄송해요. 아이고 해주드리면 좋은데 오늘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못해요” 이렇게
하고
그다음 줄 수 있으면 주고
못 주면
“아이고 미안해요. 형편이 안 됩니다” 하고
돈 빌리러 왔을 때도
그렇게 뭐든지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너무 흥분해서 과잉 친절도 하지 말고
또 뭐 내 생각 벗어난다고 욕도 하지 말고.
여러분들 좋다고 어제 투표한다고 손가락 찍어 놓고는
또 좀 있다가 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어때요?
손가락 잘라야 한다, 또 난리 피우고 그러잖아.
그렇게 하지 마라 이거예요.
자기 기분에 놀아나는 거지
그게 객관적 사실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ㅎㅎㅎ
해결이 됐어요?
뭐 잘 대처할 것도 없어.
남의 인생에 가능하면 간섭하지 마.
간섭이야 그게.
가만히 있는 사람 괜히 차 태어워서 데려다주고
또 나중에 가겠다는데 또 안 태워주고 그러지 말고
다 내가 신경 안 써도 그 사람들 다 지 알아서 살아.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는 해 드리고
못 해주면 ‘죄송합니다’ 그러고 말아야 돼.
제가 저기 인도에 사람들을 파견해 보면
가서 처음에는 막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리고 하다가
애들이 막 약도 훔쳐 가고 뭐도 훔쳐 가고
막 시킨 말도 안 듣고 이러면
막 욕을 욕을 하고
이런 애들을 외도 없느냐 그러고 그래요.
그 가난하니까 훔쳐 가지, 가난하니까.
그래서 온 동네 가보면
학교에 있는 연장이라는 연장은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밥그릇은 밥그릇, 숟가락은 숟가락,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어요.
그게 무슨 특별한 잘못이 아니라 없으면 그렇게 돼요.
그러니까 가능하면 잘 간수하고
일정한 거는 뭐 흘리고.
자전거를 훔쳐 간다든지, 좀 큰 도둑은 막고. 아시겠어요?
잔잔한 거, 그런 거는 뭐
그래서 어떤 때는 밥을 줄 때 아예 그냥
“밥 먹고 그릇은 가져가라” 이렇게 해 버리는 거예요.
그릇 수천 벌을 사 와서 수천 명에게 밥을 먹이고
“밥 먹은 그릇은 각자 가져가거라” 이렇게 해서
그릇 공급도 하고.
생각을 바꿔야 해요,
그걸 가지고 시비하면
그러니까 도와주러 와서 욕하게 된다.
그럼 그건 뭐예요?
도와주러 와서 불쌍하다고 도와주러 와 놓고
나중에 또 욕을 욕을 하고.
자기 인생이지 그분들의 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다.
막을 건 딱 막고
창고를 탄탄히 지어서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거는 아주 단단하게 보관하고
좀 잃어버릴 만한 거는 어느 정도 눈감아 주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예요. 인생이라는 거는.
심화 과정에 우리 행복학교는 첫째 뭐가 있다?
마음편이 있어요.
첫 번째 단계가 마음편
내 마음은 어떻게 관리할 거냐.
두 번째 단계가 관계편이에요.
사람관계, 인간관계 어떻게 맺을 거냐.
세 번째가 마음공부뿐만 아니라 우리 사는 세상의 정의나
이런 것도 어떻게 실현할 거냐 하는 심화 과정이 있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은
첫 번째 단계
마음편에 참가하신 분인데
마음편에 참가하셨기 때문에
그래요. 조금 공부해서 심화과정까지 가시면 이런 정도는 별거 아니에요.
...
성격적으로 과잉 친절이 앞으로 큰 고통이 될 수 있으니까
너무 과잉 친절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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