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랑 언니 엄마 이렇게 세 모녀가 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 자매는 둘 다 우울 증세가 있습니다.
언니는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엄마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아직 우울증을 앓고 있는 상태입니다.
자살 기도를 하려는 언니를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걸까요?
또 엄마는 이런 언니의 상태를 전혀 모르시는데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까요?//
네 병원에 가서 치료받도록
즉 진찰을 받도록 안내하면 안 되나요?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도 자살 충동을 느낀다면
의사하고 더 상담해서
약의 종류를 바꾸든지, 약의 양을 늘리든지 해야 합니다.
즉 현재의 치료가 약효가 딱 맞지 않다
이렇게 볼 수 있네요.
병원을 조금 바꿔보든지
안 그러면 그 의사 선생에게 약을 먹고 있지마는
지금 상태가 이렇다
이걸 솔직하게 얘기해서 그 약의 종류가
이 사람한테 맞는 게 있고, 저 사람한테 맞는 게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종류를 바꾸든지, 양을 조절하든지
둘 다가 잘 안 맞으면
의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다른 의사는 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거든요, 처방에 대해서.
어디 뭐 척추가 아파서 가도 ‘수술하는 게 좋겠다’ 하는 사람도 있고
이거는 ‘수술하지 말고 운동을 해서 나아야 된다’
이렇게 견해가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다른 데 가서 바꿔서 한번 해본다든지
이런 먼저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거를 언니가 안 한다 그러면
요즘 우리 대한민국의 어떤 인권 정책 때문에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옛날에는 부모가 강제로 입원을 시킨다든지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발작해서 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했다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합니다.
안 그러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거나
안 그러면 길거리에서 절을 하거나
정말 누가 봐도 이상하다 이럴 때는 강제 입원이 가능하지마는
그렇지 않는 경우는 강제입원을 시킬 수가 없다
이런 얘기예요.
어떻게 보면 환자를 가진 부모나 이런 사람은 굉장히 답답하지마는
이것이 현재의 인권에 대한 관점이에요.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그가 원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강제할 수가 없다하는 그런 지금 관점이에요.
그래서 옛날에는 내 아이니까 말 안 들으면 때려도 되고
선생님이 아이를 매로 때려도 되고
우리도 어릴 때 자로 손바닥 숙제 안해 가면 맞고 이랬거든요.
요즘 이거 다 아동학대에 들어갑니다.
옛날에는 어떤 사람을 정신병으로 몰아서
즉 아내가 남편을 또는 남편이 아내를 정신병으로 몰아서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버리고
이런 사고도 많았거든요.
이런 것 때문에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런 걸 못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언니에게 얘기해서
그런 치료를 받게 하거나 좀 조정하거나
이런 조언을 해서 언니가 하면 다행이지만은
언니가 하지 않으면
병이 더 악화해서 이상한 행동을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안 그러면 그러다가 점진적으로 낫거나
안 그러면 이제 어떤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그 어느 쪽도 우리는 열어놓고 기다려야 됩니다.
자연적으로 나으면 다행이고, 완화되면.
더 극단적으로 더 나쁜 쪽으로 악화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면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거는
결과를 아까 자기가 말한 대로 장례를 치러주는 길이 있다.
근데 약을 먹는 동안은
그 충동이 어떤 극단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낫지는 않지마는.
그래서 그 좀 심한 사람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극단적 선택을 안 하게 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이 뇌에 고장이 생기고, 순간적으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해버립니다.
그렇게 결과가 나면
마지막으로 내가 장례라도 치러주는 길이고
그러나 그전에 여러 가지 길을 안내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내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간섭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형제라 하더라도 그건 한계가 있습니다.
근데 우리는 형제거나 부모거나 자식이거나 하면
자기와 동일시됩니다.
그래서 타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꾸 자기 식대로 하려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거나 괴로움이 생긴다.
엄연히 형제라더라도 부모 자식이라도 별개의 존재다.
그걸 꼭 자각해야 합니다.
..
그건 뭐 드리는 게 좋다, 안 드리는 게 좋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고요
자기가 보고 ‘엄마도 언니의 상태를 아는 게 좋겠다’ 생각하면
얘기를 하는 게 좋고요.
‘아는 게 언니 치료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엄마만 더 괴롭다’하면
안 하는 게 낫겠죠.
근데 우리가 어떤 것을 알린다 하는 것은
예를 들어
말기암 환자다, 엄마가 병이 들어서 말기암 환자다
이걸 알릴 거냐? 말 거냐? 이럴 때
저는 알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왜냐하면 자기 인생이기 때문에
자기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타인에 대해서
어머니가 노인이 지금 오늘내일하는 그런 위독한 상태에 있는데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
이걸 알릴 거냐? 말 거냐?
이거는 알려야 된다, 알리지 말아야 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고
알리는 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겠느냐?
이렇게 봐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는 두 가지죠.
알리는 게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겠느냐
안 그러면 알리는 게 언니의 치료에
언니가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할 때도 엄마가 그걸 이해할 수 있도록
오히려 엄마가 아는 게 도움이 되겠냐
이렇다면 알리는 게 낫고
오히려 알림으로 해서 언니 치료에도 도움이 안 되고
엄마가 더 언니한테 잔소리하고, 더 관심 가지고, 더 걱정해서
언니한테도 치료에 도움이 안 되고 어머니한테도 나쁘겠다 하면
알릴 필요가 없다.
그건 자기가 옆에서 잘 보고
두 사람의 상태를 잘 봐서 알리는 게 낫겠다
이제 이렇게 결정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그거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유전자적으로도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지마는
이 카르마라 그래서 엄마의 이런 까르마가
아이에게 전의가 되거든요.
그래서 서로 공감력이 굉장히 높습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어떤 기도를 하거나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어떤 기도를 할 때는
서로 영향을 준다는 거예요.
환경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형제간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마는
그거는 본인의 어떤 행위에 비해서는 매우 미미하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특히 아이가 20살 미만, 어릴 때는
아이를 치료하는 것보다 어머니를 치료해 주는 게 더 효과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런 처방이 나오는 거지
다 큰 성년에
그것도 엄마가 와서
딸 때문에 어떤 굉장한 자기의 내적 괴로움을 얘기하면
이런 처방을 낼 수는 있지마는
지금 즉문즉설의 상대는 어머니도 아니고 언니도 아니고 자기 문제잖아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처방은
그냥 언니를 낫게 한다, 어머니를 좋게 한다.
이런 처방은 없습니다.
그런 처방은 수행이 아닙니다.
수행은 나를 치료하는 게 수행이거든요.
자기 치료법은
언니에게 병원을 안내해 주는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속한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
이것이 자기 치료법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근데 병에 대해서 걱정하는 게 왜 도움이 안 될까?
자기가 의사가 아니잖아요.
내가 만약에 암이 생겼다.
그럼, 이거 수술을 한다면 이건 내 일이에요? 의사 일이에요?
아니 수술을 한다면 이게 내 일이에요? 의사 일이에요?
의사 일이지 내 일 아니에요.
그걸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그건 의사의 일이지.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식이요법을 한다든지
맑은 공기 있는데 또 맑은 물을 마신다, 식을 조절한다, 적당하게 운동한다.
이건 누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수술을 어떻게 한다? 치료를 어떻게 한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수술이 잘 될까? 안 될까?
그런 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문제 삼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
그건 밤새도록 고민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건 그에게 맡겨야 하는 거예요.
기차를 타고
차가 빨리 갈까? 늦게 갈까?
이런 얘기 아무리 생각해 봐야 빨리 가지가 않습니다.
그건 기차가 하는 일이지.
빨리 가게 하려면 오히려 기사한테 가서
얘기를 해야 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
혼자 앉아서는 아무리 얘기해 봐야, 생각해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제가 가끔 여러분들을 보고 ‘감정 낭비한다’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차를 타고 가면서
빨리 가고 싶어서 조급하다고
뒷자리에서 앞자리 갔다, 앞자리에서 뒷자리 갔다 한다고 차가 빨리 갑니까?
아니죠.
그것처럼 그런 건 낭비라 그래요, 저는 .
여러분들이 걱정하고, 근심하고, 애쓰고
이런 것이 대부분 낭비적인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해서 어떤 도움이 되느냐?
그렇다면 괜찮아요.
뭐 그렇다면 내가 죽어도 괜찮아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내가 죽겠다.
뭐 그것도 괜찮아요.
죽고 사는 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에요.
[그래서 무슨 도움이 됐느냐?] 하는 거예요.
무슨 도움이 됐느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해만 되는 행동을 한다.
북한 동포들이 지금 굶고 있다. 그래서 내가 매일 운다.
그게 도움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돼.
다만 도네이션을 천원을 하든지
뭐 중국 가서 국경변에서 난민을 만나서 돕든지
뭐 언론에 글이라도 하나 인도적 지원을 위해서 쓰든지
이게 도움이 되는 일이지
우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런 것처럼 자기가 언니의 그런 일이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을 안내하는 일이다.
심해지면 강제 입원을 시킬 수가 있습니다.
언니와 대화를 해서
언니가 병원에 조금 더 자기 병을 의사와 상담해서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 거는
그냥 언니하고 뭐 대화도 나누고
가끔 밥도 사주고
이런 게 언니에게 도움이 되지
선물도 하나 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지.
‘언니가 혹시 죽으면 어떨까?’
이런 걱정은 하나 마나 한 자기만 피곤한 일이 된다.
이런 얘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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