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경험한 재수생에게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실패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것을 조언
--
대입에 실패하면서 처음으로 인생 실패를 겪었습니다.
늘 최선을 다했고, 항상 결과가 좋게만 나왔기 때문에
지금은 패배자가 된 기분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네, 올해 성적은 잘 나왔어요?
잘 나왔으니까 더 높은 데 내야지. 그지?
잘 나왔으니까 높은 데 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면 또 떨어지면 또 3수 하면 되겠지.ㅎㅎ
원래 등수라는 건 없어, 상대적인 거지.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앞서고 한 사람이 뒤 서면
앞에 가는 사람 뭐라 그래?
“뭐 하나 빨리 좀 오지” 이렇게 얘기해.
뒷사람 늦다고 생각하겠지.
뒤에 가는 사람 뭐라고 그럴까?
“뭘 그리 서두르노?” 이러겠지.
사람이라는 건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사물을 보는 거예요, 뭐든지.
근데 우리 뇌 구조가 그렇게 돼 있어.
그래서 내가 뭘 잘못했을 때는 가능하면
그거는 안 드러내려고 그래.
100을 잘못했으면 아예 오리발 내밀거나
안 그러면 10쯤 잘못했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
근데 잘한 일은 어떠냐?
10쯤 해놓고 100쯤 했다고 선전하고 싶어.
우리 심리가 다 그래.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너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가 다 그래.
그러고 내가 피해를 입은 거는 생생하게 기억해.
엄마가 언제 야단친 것까지 다 알아.
근데 엄마한테 물어보면
“내가 언제 그랬나” 이래 기억도 못해.
기억을 했다 하더라도
“다 너를 위해서 했지” 이렇게 말을 해.
그래서 가해하고 피해가 전혀 안 틀려.
이거는 인간이 엄마가 나빠서도 아니고
겉으로는 내가 잘못했다고
속으로는 “너만 잔소리 안 하면 내가 왜 이랬겠어?
네 애교만 있었으면 내가 왜 이렇게 했어?”
이렇게 속으로는 생각한다 이거야.
이게 인간이 나쁜 게 아니고
“잘못해 놓고 저게 잘못한 줄도 모른다”가 아니라
우리의 뇌 구조가 그렇게 생겨
앱이 그렇게 깔려 있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자기를 변명하도록 돼 있어.
근데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자기 같으면 어릴 때부터
-아이고 잘한다.
-공부 잘한다, 공부 잘한다,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
이렇게 자라면
자기가 예쁜 줄 알고 있잖아.
공부 잘한 줄 알고 있잖아.
그런데 공부 잘하는 애까지만 모였어.
그럼 시골 초등학교, 시골 중학교, 지방 고등학교까지는 1등을 했는데
전국으로 모여 대학에 시험을 치거나 어떤 일을 하면
자기가 잘한다 소리 듣기 어렵잖아. 그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면 이게 열등의식이 엄청나게 커지는 거야.
보통 사람은 중간 해도 열등의식을 안 느끼는데
서울대학교 같은 데 갈수록 이렇게 열등의식이 심해.
그 이유는
그건 잘하는 애만 모였기 때문에.
그러면 성형을 어떤 사람이 많이 할 것 같아?
우리 같이 대충 생긴 사람이 많이 할 것 같아?
우리가 볼 때는
“저 사람이 왜 성형하나? 예쁜데”
이런 사람이 많이 할 것 같아?
“저 사람이 왜 성형 예쁜데” 이런 사람이 많이 해.
아주 뭐 흉터가 생긴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왜 그럴까?
어릴 때부터 “이쁘다 이쁘다 이쁘다 이쁘다” 이래 들었는데
배우하고 비교해 보니까 어때요?
눈이 약간 적어.
그럼 눈을 수술했어.
눈을 수술해 놓고 전체 보니 코가 약간 또 문제야.
아까 눈에는 이게 괜찮았는데
이 눈에 이 코는 좀 작아.
코를 딱 수술해 놓고 보니까
여기가 약간 나와서 턱을 조금 깎아야 돼
이렇게 해서 성형 중독이 걸리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어릴 때 이쁘다 소리 듣고, 공부 잘한다 소리 듣고 하는 사람들이
인생 불행도가 훨씬 높아.
특히 요즘 아이돌 있죠?
이런 사람들은 열에 한 명도
인생을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 부모라면 이런 데 보내면 안 돼요.
어릴 때 유명해지면
그 아이돌이 성공한 케이스일수록 더 위험하다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유명해지면
평생 그 과거에 어릴 때의 그 기억을 갖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건 자기도 지금 그럴 위험이 있어.
이게 계속 좋은 대학 가서
거기서 또 하고, 또 하고 가다가 어느 시점에 가면
이제 좌절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지금 대학 시험에서 좌절된 건
결과적으로 인생 전체에서 보면 잘 된 걸까? 못된 걸까?
잘 된 거야.
이게 뒤에 가서 일어날수록 피해가 커.
그래서 이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내가 환상에 젖어 살다가
남의 시선만 의식하고 살다가
내가 내 인생을 모르고
그냥 남의 시선, 남 소리만 듣고 의식하고 살았구나”
그걸 시험에 떨어졌다 좌절했다. 실패했다고 보지만
그걸 내가 자각할 수 있도록, 돌아볼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졌구나.
만약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래야 돼.
고통 속에서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만
하나님의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말도 있거든요.
이 잘 나갈 때는 미쳐서 정신이 없어서 자기를 잘 몰라
그래서 그걸 계기로 삼아야 된다.
그러면 이번에도 아니까
또 좀 잘 나왔다고 또 높은 데 내면
떨어질 위험이 높겠지.
그러면 그때는 자기가 이제 전에처럼 실패 개념이 아니다.
“떨어져도 좋다. 나는 가겠다”
이렇게 되거나
안 그러면
“굳이 한 번 재수하면 되지, 두 번 할 거 뭐 있노?”
이거 약간 낮춰서 안전을 더 선호하는 게 필요하다.
안전 때문에 전공을 완전히 포기해도 안 되고
그 선호 때문에 안전을 포기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재수를 하게 되면
안전을 좀 더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게 이제 경험 아니야.
한번 떨어져 봄으로 해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인생의 경험을 얻게 된다.
이런 거를 살린다면 이건 복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은
꼭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게 아니에요.
때로는 실패라는 이름으로
또는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복이 온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재앙이 복인 줄 알면
인생 끝난 거예요,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원이라 그러잖아.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자꾸 새로운 거를 자각해 나갈 수가 있다.
그런 데서 “실패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어떤 기회를 얻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좋겠다 싶네요.
그런데 뭐 시험 한 번 떨어진 게 지금 큰일인데
한 30년 후에 재수한 게 큰일일까? 큰일 아닐까?
아무 일도 없어.
내 친구, 주위 중에
재수 삼수 한 사람도 있는데
그때는 큰일인데 30년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니고
이 위기를 극복해서
앞으로 한 10년 20년 지나 늙어서 돌아보면
그게 별일일까? 별일 아닐까?
별일 아니야.
근데 문제는
지금 별일을 만들 건지, 별일 아닌 걸 만들 건지는
나한테 달렸다, 이런 얘기.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이런 저도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요? (0) | 2025.04.08 |
---|---|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위기의 대한민국, 해법을 제시하다 (0) | 2025.04.07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110. 강박증으로 힘들 때 어떻게 제 자신을 달랠까요? (0) | 2025.04.03 |
[법륜스님의 하루] 선택하고 나면 늘 찜찜합니다. 선택장애를 어떻게 치료하죠? (2025.3.29.) (0) | 2025.04.03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108. 부처님은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고 하셨는데… (0) | 202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