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2년 반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저보다 일곱 살 연하입니다.
지금은 이 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와 종교도 같고 다정하고 순수하고 착한 친구입니다.
다만 그 친구와 깊은 대화를 하는 게 좀 어렵습니다.
저는 항상 발전적인 삶을 꿈꾸고
구체적인 삶의 비전이나 재정적인 목표,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서 큰 의미를 찾는데요.
남자친구와는 일상 대화 이외에 더 깊은 대화가 잘 안 되는 느낌입니다.
배우자는 가장 친한 친구로서 대화가 잘 통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평생 이렇게 가벼운 대화만 하면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좀 답답할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결혼을 조금 망설이고 있는데요.
제가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결정해야 할까요?//
결혼해서 같이 살 배우자에게
내가 얼마만큼 요구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연하라고 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철학적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할 것인가
미래 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뭔가 실천적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할 것인가
예술적으로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할 것인가 등
깊이 있는 대화도 그 범위가 엄청나게 넓지 않습니까?
만약 법륜스님과 같이 살면서
음악이나 예술에 대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겠다고 하면 잘 될까요?
법륜스님과 같이 있으면서
야구나 축구와 같은 스포츠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 잘 될까요?
법륜스님과 같이 있으면서
‘어느 해수욕장이 좋더라’ 하면서
여행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해보려고 해도
잘 안될 것이란 말이에요.
법륜스님과 같이 있으면서
커피는 어떤 게 맛있고, 차는 어떤 게 맛있고,
와인은 어떤 게 맛있고, 보석은 어떤 게 좋다는 대화를 좀 해보려고 한다면
대화가 전혀 안 되겠죠.
내가 그 친구와
어떤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싶으냐는 겁니다.
내가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배우자와 대화하고 싶다면,
아마 질문자는 배우자를 선택할 수가 없을 겁니다.
질문자의 남자친구 문제가 아니라
그런 배우자는 없다는 거예요.
법륜스님이 다방면에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지만
함께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잘 안 됩니다.
법륜스님이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 얘기하면
법륜스님도 졸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잔소리를 할 거예요.
그런데 배우자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함께 못 살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조금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 사람은 재미가 별로 없고
늘 심각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치 상황이나 교육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놀러 가자고 하면
아마 ‘기후 위기 시대에 놀러 가면서
자동차 기름을 낭비해서 되겠냐’ 하는 대답을 할 겁니다.
질문자가 뭘 좀 사자고 하면
‘법륜스님이 소비를 줄이라고 하셨는데 소비를 늘려서 되겠니?’
하고 반응을 할 겁니다.
이런 사람과 같이 사는 게 과연 질문자에게도 좋을까요?
배우자에게 모든 걸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내 배우자라면
다른 것은 다 달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서로 공감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또 성실하고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배우자로서 가장 적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안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까
질문자가 배우자에 대해 어떤 요구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와 가장 좋다고 하는 기업에 취직하고,
직장만 끝나면 집에 와서 가족과 함께하는 남성이 있었어요.
가족이나 누가 봐도 아주 좋은 남편입니다.
그런데 그의 배우자는 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남편이 비 오는 날이나 겨울날 바닷가를 함께 산책하면서
우수를 만끽하고 커피 한잔 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자기 남편은 그게 전혀 안 된다는 거예요.
어디 가서 커피 한잔하자고 하면
‘집에 커피 놔두고 뭐 때문에 나가는데?’ 이렇게 얘기하고
비 오는 날 어디 나가자고 하면
‘맑은 날 놔두고 비 오는데 왜 나가?’라고 하니
도저히 얘기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혼을 하려니까 가족들이 난리가 났어요.
이렇게 좋은 신랑을 두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결국 이혼했어요.
진짜로 비 오는 날 커피숍에서 함께 커피 마시며
바깥을 볼 수 있는 남자를 만난 거예요.
학벌도 안 좋고, 직장도 안 좋고, 수입도 별로 없지만
취향 하나가 딱 맞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을 사귀어서 결국 가정이 깨졌어요.
가족들은 제 밥그릇 걷어찼다고 난리지만
어떤 게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가족의 가치관과 이 여성의 가치관이 다른 겁니다.
그래서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 가치관에 맞게 사는 수밖에 없어요.
질문자도 자기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의 가치관 중에 이것 하나는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면
상대에게 미리 얘기하고
그게 맞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고 착해도
결혼은 안 한다는 자기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배우자에게
그런 것은 따지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야 하고요.
질문자의 남자친구가 나이가 어리다고 했는데
20대 후반이면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나이가 어려서 생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질문자는 결혼의 조건으로 상대가 내가 관심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그 누구도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좀 나아가고 싶어 하는 성향인데
남자친구랑 그런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이 조금 답답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이 친구는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에 감사하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부분을 간과하고
너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질문자의 생각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자기 생각대로 하려면 상대를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결혼은 함께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방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내가 지향하는 삶에 동의하는 사람이라야
만남이 성사가 되겠죠.
그렇지 않으면 아예 만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결정할 문제예요.
내가 어떤 것을 중요시하면
그것을 갖춘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게 아니라 사람을 중요시한다면
내가 중요시하는 것을 고집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지금 선택도 저의 자유의지가 아닌 운명일까요? (0) | 2025.01.02 |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080. 부모님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0) | 2025.01.02 |
[법륜스님의 하루] 불교가 소비주의 극복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나요? (2024.12.28.) (0) | 2025.01.02 |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돌아온 트럼프, 위기인가 기회인가? (0) | 2025.01.01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가족들이 볼까 봐 책 출간이 망설여집니다 (0) | 2025.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