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닌 저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나요? (2024.10.06.)

Buddhastudy 2024. 10. 10. 19:41

 

 

저는 처음에 남한에서 오래 살면 남한 사람이 되겠지하고 남한 정착을 시작했는데

정착한 지 7년 만에

남한 사람도 아니고, 북한 사람도 아닌

저의 정체성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참개구리도 청개구리도 아닌 얼룩 개구리 같은

혼성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굉장히 많은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몸은 남한에 있는데 마음은 북한에 가 있고,

제가 살던 북한 자체가 부정당하는 이곳에서

매일 그런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산다는 게

저에게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요인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정신분열증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분단구조가 해체된 상태에서

다시 원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보지만

그게 언제인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분열 증상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왔기 때문에

남한에서 북한으로 갔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아도 생기는 문제이고

캐나다나 유럽에 가서 살아도 생기는 문제예요.

 

이것은 다른 나라로 이주해서 가서 살면

누구나 다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주해서 생기는 문제 중에 제일 큰 것이 정체성 혼란이에요.

나는 호주에 가서 20년을 살았는데

한국 사람도 아니고 호주 사람도 아니다.

나는 도대체 뭐냐?’ 하는 이런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살아도 부모를 잘 돌보지 않을 거면서

외국에 살고 있어서

부모를 못 돌본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이주민들이 갖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여러분들도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북한에 둔 부모님이나 가족들에 대해서

늘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도대체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정체성 혼란도 느끼게 되고요.

 

태어나긴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살기는 한국에서 살고 있잖아요.

이것이 질문자의 정체성입니다.

 

태어나기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살기는 미국에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고 부릅니다.

한국계 미국 사람인 겁니다.

 

그럼 질문자는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북한계 한국인또는 조선계 대한민국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질문자의 정체성이에요.

 

그러니 자꾸 남한 사람과

자기가 똑같지 않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남한 사람하고 똑같을 수가 없어요.

30년을 북한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남한에서만 산 사람하고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온 사람하고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겠어요?

북한에만 계속 산 사람하고

북한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사는 질문자가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내가 북한 사람이냐? 남한 사람이냐?’

이렇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나는 북한에서 태어나서 한국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자기 정체성이에요.

북한 사람보다는 자본주의 물이 좀 더 들었고

남한 사람보다는 자본주의 물이 좀 덜 든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창의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이주민이 많다 보니까

해외여행을 가면 입국 카드를 쓸 때 항상

너 태어난 곳이 어디니?’, ‘너 지금 어디에 사니?’, ‘너 국적이 뭐니?’

이렇게 세 가지를 묻습니다.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태어난 곳은 코리아, 사는 곳도 코리아, 국적도 코리아입니다.

왜 똑같은 걸 세 번이나 묻나?’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세상에는 태어난 데가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사는 데가 다른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세 가지를 묻는 거예요.

 

그렇다면 질문자는 태어난 곳이 노스 코리아입니다.

국적은 사우스 코리아입니다.

지금 어디서 살아요?

만약 일본에서 살면 재팬, 미국에서 살면 아메리카, 이렇게 쓰면 됩니다.

이것이 질문자의 새로운 정체성이에요.

 

자꾸 [남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삼아서

나는 남한 사람도 아니고, 나는 북한사람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북한계 한국인이다.

태어나기는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고,

현재 살기는 대한민국에 산다.’

 

이것이 질문자의 정체성이에요.

그래서 남한 사람보다는 북한에 대해서 많이 알고

북한 사람보다는 남한에 대해서 많이 압니다.

서울말을 남한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북한 사람보다는 잘하고

평양말을 북한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남한 사람보다는 잘합니다.

나는 서울말과 평양말 두 가지를 다 할 줄 아는 것이

질문자의 정체성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크리스천 부디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배경은 기독교이지만

마음공부는 불교를 통해서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냥 불자하고는 달라요.

이걸 크리스천 부디스트라고 합니다.

자신의 종교를 버리지 않고 또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것처럼 질문자는 북한 출신 남한 사람인 겁니다.

 

이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에서 두 번 생겨났습니다.

남북이 분단되고 6.25 전쟁 때

북쪽에서 오백만 명이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남한에서 이걸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고 이북내기라고 그래요.

 

이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굉장히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남한에서 사는 사람은

다 자기 땅과 자기 집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북한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땅도 없고 집도 없었어요.

땅도 없고 집도 없으니까 장사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장사가 하대 받을 때였어요.

 

그런데 남한 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가 되니까

오히려 이북내기가 지금은 다 잘 살게 된 거예요.

농사짓는 사람은 점점 가난해진 반면

장사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처음에 남한으로 내려와서 10년 정도는 불리했는데,

세상이 바뀌면서 이 사람들이 더 유리해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북내기 중에 남한에서 가난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요즘 남한의 젊은이들은 어떻습니까?

컴퓨터를 다루는 편한 직업만 하려고 하지

기계를 수리하거나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잖아요.

지금 남한에서는 그런 일들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그런 일도 다 하고 살았잖아요.

 

앞으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점점 없어지면

인건비가 훨씬 비싸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북한 출신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더 잘살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가 있어요.

 

그러니 자기 정체성을 어디에 비교해서

나는 이것도 아니고, 나는 저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북한에서 어려운 일을 다 겪어보고 나서 남한으로 왔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도 북한에서 살 때와 비교하면 힘들지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생력이 있습니다.

 

남한 사람이 미국에 이민을 가도

미국 사람보다 더 잘 살거든요.

아주 부자보다는 못 살지만 일반 서민보다는 잘 삽니다.

왜 그럴까요?

이민을 가서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향을 절대로 숨기지 마세요.

일부러 자랑할 건 없지만요.

당신 말투 보니 어디 출신이에요? 연변 출신이에요?’ 하고 물으면

아니요, 북한 출신입니다하고 대답하면 됩니다.

 

고향이 어딘데요?’ 하고 물으면

평양이면 평양, 청진이면 청진, 이렇게 자랑스럽게 대답해야지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묻지도 않는데 내가 나서서 얘기할 건 없어요.

다만 묻는데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죄가 아니잖아요.

태어나보니 북한에 태어나 있었는데 그게 왜 죄에요?

태어나보니까 피부 빛깔이 노란 것은 죄가 아닙니다.

백인이 아니라고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태어나보니까 여자인데 이게 죄가 아니잖아요.

 

그런 것을 열등하게 생각하거나 숨기지 마세요.

그렇다고 자랑할 건 아니에요.

그러니 당당하게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북한계 한국인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세요.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굳이 문제를 말한다면,

북한의 정치 시스템과 정책이 문제지요.

 

그러니 내가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것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또 내가 남한에 간 것을 두고, 나중에 북한에 가게 되었을 때

죄지은 것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한에 가서 좋은 것을 많이 배우고 공부했잖아요,

그 덕분에 나중에 여러분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북한에 사는 사람보다 훨씬 일을 잘할 겁니다.

 

월남전쟁이 끝나고

월남에서 4백만 명이 보트피플이라고 해서

바다로 도망을 갔거든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살다가 베트남이 개방되니까

그 사람들이 미국에서 번 돈을 보내서

베트남의 초기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나쁜 게 나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북한이 앞으로 개방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북한에 가서 제법 힘을 쓰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고향 사람들에 비해 돈과 지식이 더 많으니까요.

 

고향에 살던 친구나 친척들이 질문자를 부러워하게 될 겁니다.

지금은 막 욕하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러니 너무 기죽지 마세요.

남한에 정착을 잘해서 때를 기다리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