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계속되는 남편과의 갈등,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풀 수 있을까요? (2024.10.04.)

Buddhastudy 2024. 10. 9. 19:01

 

 

저는 둘째 아이 출산을 40일 앞둔 워킹맘입니다.

남편은 퇴사해서 사업을 구상하고 있으며,

저는 다음 달부터 육아 휴직을 하게 됩니다.

이제 곧 남편과 집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데,

갈등이 생길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남편과 저의 차이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분별하거나 판단하면서 종종 괴로워합니다.

이를 개선하려고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 보기도 했고

제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남편에게 만족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얘기하면,

서로 감정만 상하고 끝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모든 문제를 성격이 강한 남편에게 돌리며 탓했지만

행복학교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저 또한 고집이 세고 어리석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알아차려 보기도 하고

참회할 때는 관계가 잠시 고요해지기도 하지만

곧 다시 제 습관으로 돌아가며 남편과 갈등합니다.

2년 정도 이런 관계가 반복되고 있는데

저는 언제쯤 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아내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제일 좋은 방법은

남편과 같이 안 사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고민을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부부가 꼭 같이 살아야 한다고 정한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질문자가 남편과 같이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남편과 갈등하며 괴롭게 살 건지,

아니면 갈등하지 않고 괴롭지 않게 살 건지

질문자가 선택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부라도 성격, 생각, 습관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남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편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내가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남편이 나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남편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

그런 남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편이 옳고, 질문자가 틀렸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기독교인이 제게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이렇게 얘기할 때,

제 중심으로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종교의 자유를 간섭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는 그가 가진 신앙의 관점에서

제게 얼마든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신앙에서 보면 어떻게 해서든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상대가 스님이더라도 충분히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하면서

제 턱밑에 십자가를 들이댄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저를 지옥에 가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걸 믿고 싶으면 믿고, 믿고 싶지 않으면 안 믿어도 됩니다.

기분 나쁠 일도 아니고, 그냥

감사합니다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제가 요즘 해외로 다니는 곳이 선진국보다 후진국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후진국에 어려운 사람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런 제 성향으로 보면

저는 천당에 가는 게 맞을까요? 지옥에 가는 게 맞을까요?

모든 게 잘 갖추어진 천당 같은 선진국에 가면

제가 할 일이 별로 없으니

온갖 어려움에 처한 지옥에 해당하는 후진국에 가는 것이 더 맞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아우성이니까요.

 

이렇게 제 성향으로 보면

저는 지옥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교리에서 보면

이렇게 인도적 지원을 하는 사람은 지옥보다 천당에 갈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그분은 저를 지옥에 간다고 하셨으니

제게는 굉장히 좋은 일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결혼해서 한집에 살고 있지만

질문자는 남편과 다르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편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하고 이해하면

우선 내가 편안해집니다.

그러면 둘이서 평화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질문자가 선택하시면 됩니다.

 

지금처럼 싸우며 사는 길도 있고,

남편에게 맞추며 사는 길도 있습니다.

 

부부 같은 어른들 간의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맞추지 않고 서로 헤어지는 길을 선택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있다면 다릅니다.

부모의 스트레스는 자녀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모로서 할 일이 못 됩니다.

서로 싸우며 살겠다면 아이를 가지시면 안 됩니다.

결혼은 성인과 성인의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해약을 해도 됩니다.

그런데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그런 계약 관계가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낳아서 맺은 관계여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엄마가 화내고 짜증을 내고 살면,

첫째, 자라나는 아이에게도 나쁘겠지만

배 속의 아이에게도 안 좋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지금 엄마의 역할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엄마로서 좀 더 책임 의식을 가지셔야 합니다.

 

요즘에는 여성의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지금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산모의 자기 결정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견해와

태아의 생명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견해가

사회적으로 논쟁하고 있습니다.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이 사이의 타협안이 조금씩 다른데 보통

10주에서 20주까지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 관습적으로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인양 여기는데

지금은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점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갓난아이에게 부모의 영향은 매우 큽니다.

누군가 화를 벌컥 내면

성인은 그냥 기분이 나쁘고 말지만

아이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평생을 좌우하는

자아 형성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아이의 엄마는 그 생태적인 특성 때문에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엄마라고 해서 무조건 생모나 여성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를 기른 사람이 엄마입니다.

 

질문자가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태중에 아이를 가진 산모로서

남편이 나를 돕지 않는다하고 불평하는 것은

엄마로서 무책임한 자세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겁니다.

남편이야 어떻게 하든 질문자는

질문자의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화를 안 내려고 하는데, 안 됩니다이런 말씀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린싹에 오줌을 바로 주면 말라죽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라면 오줌은 거름이 됩니다,

사람도 어린아이는 보호해야 합니다.

외부의 어떤 도전에도

어린아이는 쉽게 상처를 입을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고 어느 정도 크면,

너무 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자생력이 떨어집니다.

아이는 크면서 어느 정도 외부에 도전받고,

거기에 스스로 대응하며 적응력을 키웁니다.

 

아이는 어릴수록 외부의 도전에 상처를 입기 쉽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엄마라도 어린아이를 야단치면 안 되고

선생님도 어린아이를 야단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좀 크면 괜찮습니다.

 

아이는 세 살까지 무조건 보호해야 하고요,

초등학교까지는 야단을 치거나 가르치기보다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자기 성질대로 살고 싶다면

저처럼 혼자서 살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엄마로 살면서

그렇게 자기 성질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

 

그건 트라우마예요.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면서 이렇게 종교적 신비주의로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우선 남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꾸 남편을 틀렸다고 보기 때문에 시비하는 겁니다.

 

시비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건데,

옳고 그른 건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이에요.

 

기분이 나빠지면

! 내가 또 옳고 그름에 집착하는구나’,

내 관점을 고집하는구나!’

이렇게 아셔야 합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명은 앞서가고 다른 한 명은 뒤에 올 수 있겠죠?

그럴 때 앞에 가는 사람은

자기 기준에서 왜 그렇게 천천히 오니? 빨리빨리 와!’ 이렇게 얘기하는데,

뒤에 오는 사람은 또 자기 기준으로 뭘 그렇게 서두르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이처럼 우리는 늘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얘기하기 때문에

항상 상대를 문제 삼습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부인은 수건을 한 번 쓰고 세탁하는 습관이 있는데,

남편은 걸어두고 말려서 다시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세수하고 물기만 한번 닦았으니

말려서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좀 지나쳐서

쉰내가 날 때까지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 명은 수건을 쓰고 바로 세탁기에 넣지 않는다며 시비할 수 있고,

다른 한 명은 환경위기 시대에 빨래를 너무 자주 한다며 시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에 간을 맞추는 일부터 모든 부분에

서로의 습관이나 취향, 생각이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가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인정하면 내가 화가 나지 않습니다.

화나 짜증이 난다는 것은

이미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편은 저와 다릅니다라고 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남편의 기준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당신이 옳습니다이렇게 기도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계속 되뇌면서 명심하면 무의식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남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고 있으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걸 놓칠 때 화가 납니다.

 

그래서 늘 자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화가 났으면

! 내가 또 나를 고집했구나!’ 이렇게 자각하고

탁 내려놓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