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독일 사람들 속에 저만 동양인인데, 항상 위축이 됩니다. (2024.08.26.)

Buddhastudy 2024. 9. 4. 20:11

 

 

저는 멘탈이 붕괴될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독일에 산 지는 15년째입니다.

처음에 취업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독일 생활을 식모살이로 시작했어요.

식모살이를 하다가 어떻게 운이 좋아서

지금은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 연령대는 사실 독일에서 인종 차별을 크게 받지 않는 세대인데

이상하게도 저는 1960년대 한국의 <봉순이 언니> 같은 취업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많이 꼬였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독일 사람들을 보면 무서운 마음이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저희 파트의 강사 중에는 동양인이 저밖에 없어요.

항상 위축이 되고 학생을 봐도 무섭습니다.

학생들이 저보다 열 살은 어린데도 그러니

제가 이 일을 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강사로서 권위를 가지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독일에서 기를 좀 펴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에 가시면 됩니다.

 

...

 

그건 질문자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한국에 가서 기를 펴고 그냥 일반 사무직원을 하든지

독일에서 약간 기가 죽더라도 교수를 하든지

둘 중에 하나 선택하세요.

 

...

 

왜 불안한가요?

 

...

 

독일이 질문자를 이민자로 받고 싶지 않은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대학에서는 질문자가 필요하니까

강사 자리를 줬을 거 아니에요?

 

...

 

계약직이면 계약 기간까지 일하고

계약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에요?

 

...

 

한국에는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2백만 명이나 들어와서 살고 있어요.

질문자가 아무리 한국을 모른다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보다는 잘 알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그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한국에 가는데 플랜이 뭐가 필요해요?

질문자는 한국말도 잘하니까 걱정할 게 없잖아요.

 

...

 

정토회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그럼요. 당연히 재워주고, 밥도 주지요.

정토회 안에는 일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다만 정토회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

하나는 주인이 되고 다른 하나는 종업원이 되는 갑을 관계가 되잖아요.

정토회 멤버들은 모두 수행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수평적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업무에 따라 책임자가 있고 담당자가 있고, 일의 성격에 따라 이 파트가 있고 저 파트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려면

밥은 먹어야 되고, 잠은 자야 하고, 옷은 입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은 다 제공을 해줍니다.

그러나 개인 방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다섯 명이든 열 명이든 한 방에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독일에서 사는 데까지 살다가 계약이 해지되면

언제든지 정토회로 오시면 돼요.

 

정토회에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여 정토회 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깨달음의 장이라고 하는 수련을 마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에서 같이 살려면

자기 고집이 강할 경우 같이 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에는 약간의 규율이 있습니다.

 

정토회에는 삼무’(三無)라고 해서 세 가지가 없습니다.

월급이 없고

휴일이 없고

휴가가 없습니다.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인데

수행이란 모든 삶이 그냥 그대로 놀이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노동을 놀이화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삼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토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것 외에는 나이도 상관없고, 신분도 일절 가리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오셔도 됩니다.

 

그러니 독일에서 살더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는 데까지 하다가 안 되면 한국에 들어오고,

한국에 와서 밥벌이할 만한 게 있으면 그걸 하고,

그것도 없으면 정토회에 들어오면 돼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 실업률이 높을수록 기뻐합니다.

실업률이 높으면 자원봉사자를 확보하기 쉽잖아요.

 

실업 상태에서 빈둥빈둥 놀지만 말고,

정토회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면 됩니다.

그러다 직장에 취업이 되면

일을 열심히 하다가

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직장을 그만두면

다시 정토회로 오시면 돼요.

 

질문자는 영어도 할 줄 알고 독일어도 할 줄 아니까

얼마든지 쓰일 데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살면서 기가 죽을 필요가 전혀 없어요.

 

...

 

그런 걸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이제는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져야 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해요.

내가 상대를 더 좋아하는 관계에서

내가 갑이 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상대가 나를 더 좋아하는 관계에서는

즉 나는 싫은데, 상대가 나를 따라다닌다면

내가 갑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는 나도 모르게 갑질을 하게 됩니다.

 

상대는 막 좋다고 아우성인데 나는 싫다하고 반응하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그냥 싫어서 싫다고 한 것이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그게 바로 갑질이에요.

그래서 좋아하는 쪽이 늘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독일이 좋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왔을 겁니다.

독일에서 와달라고 요청해서 왔어요?

그런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걸 자꾸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마치 여자가 남자를 좋아해서 을의 입장이 된 것을

성차별이라고 얘기하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더 좋아하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을이 안 되려면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하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독일을 좋아해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일단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만약 여러분들은 안 오겠다는데

독일에서 자기들이 필요해서

돈을 더 줄 테니 와라’, ‘대우를 잘해줄 테니 와라해서

초청을 받고 왔다면 어떨까요?

여러분들이 갑질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이 독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관계가 갖는 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독일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 때

나 한국에 가겠다이렇게 해버리면 누가 잡을까요?

독일 사람들이 질문자를 잡으려 할 겁니다.

 

한국 사람은 강사를 할 수 없다, 한국 사람은 대학에 못 들어간다,

이런 것처럼 법률을 어기는 차별은

곧바로 고소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에요.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독일에 살면서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불리한 일이 있으면

그것이 법률에 보장된 것인지를 빨리 살펴봐야 해요.

 

법률에 보장된 권리인데

차별받고 있다면 고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법률에 없는 일이라면

예를 들어

독일 학생과 나 둘 중에 독일 교수가

독일 학생한테만 발언 기회를 많이 준다든지 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걸 차별이라고 느끼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습니다.

 

우리도 만약 어떤 일을 할 때

한국 사람이 하나 있고, 베트남 사람이 하나 있어서

둘의 능력이 같다면 누구한테 기회를 많이 줄까요?

고향이 같다든지, 종교가 같다든지, 출신학교가 같다든지 하는 이유로

기회를 더 주는 일은

인간 사회라면 어디에나 있는 일입니다.

 

학연, 지연이란 말 들어보셨죠?

물론 이런 것이 지나쳐서

능력도 없는데 후배라고 중요한 일을 주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정도의 일이 아니고

그냥 같은 나라 사람을 선호하는 정도를 두고

차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해요.

 

지금 한국 사람이 독일에 살면서 받는 차별이 심할까요?

동남아시아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살면서 받는 차별이 심할까요?

지금 베트남 사람, 태국 사람, 필리핀 사람 등

2백만 명 정도가 한국에 와서 노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느끼는 차별이 더 심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이 훨씬 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은

인간 세상 어디에나 있는 현상이라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자처럼 생각하면

외국 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약간의 문화적인 차별과 선호는 감수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차별받는 것이 꼭 나쁜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런 차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게 되어서

능력이 출중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과 능력이 똑같으면

차별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누가 봐도 논란이 없을 만큼

여러분들이 노력을 더 해서 능력이 출중하면

아무도 차별을 못 합니다.

 

이렇게 서로 이질적인 문화가 교류되고 섞일 때

더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지금 문화의 교류와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살고 있어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낙담과 좌절이 되지만

그것을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이면

토인비의 역사관에 나오는 것처럼

도전과 응전이 됩니다.

 

도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새로운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만약 법륜 스님이 영어 통역을 해서 강연하는 내용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강연하는 내용과 수준이 비슷하다면

저에게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겁니다.

 

통역을 거쳐야 하고, 많은 품이 들지만

내용이 월등하게 좋으면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절에 들어갔기 때문에

대학도 안 나왔고, 영어도 할 줄 몰라요.

인맥도 전혀 없어요.

대학도 가고 외국에 유학도 가야 인맥이란 게 있는데

저는 그런 걸 하나도 안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기가 죽으면

이렇게 외국에 강연을 다닐 수 있을까요?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고,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강연을 다니려면

내공이 좀 있어야 됩니다.

 

외국 사람들은 저를 보고

저 사람은 무슨 옷이 저래

말도 못 하는 사람이 뭐 하러 온 거야하고

충분히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에 기가 죽으면

승복을 벗어야 하나하고 고민을 하게 되겠지만

저는 승복 입고, 고무신 신은 채

미국이고 어디고 막 다닙니다.

 

질문자도 스스로 당당해져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 살면서

그런 차별은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해요.

그래, 그 정도는 이해해야지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독일 사람들을 누르고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했는데,

남을 누르긴 왜 눌러요?

본인이 눌림을 당해서 힘들었으면

오히려 남을 존중해야죠.

 

물론 인종적, 문화적으로 경험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하게 된 말일 텐데

그런 트라우마가 꼭 나쁜 작용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질문자가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니까요.

 

질문자가 처한 상황은 괜찮은데

과거의 경험이 상처로 남아서 지금 마음이 불안한 겁니다.

지금 질문자는 정상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는 떨쳐버리고 마음껏 활동하시다가

나중에 갈 곳이 없어지면 정토회로 오세요.

언제든지 대환영입니다.

숨넘어가기 전에 와서 죽으면 어떡하느냐 해도 괜찮습니다.

화장한 유골로 피리를 만들어도 되고,

재 가지고 거름을 해도 됩니다.

그러니 괜찮아요. 너무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사세요.

 

...

 

그럼 질문자가 빨리 계약이 해지되어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박수를 한 번 쳐주세요.

 

 

여러분은 노동자는 을이고 사장이 갑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대학을 나오고 재능도 있어서

대기업에 시험을 쳐서 두세 번 낙방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쩌다 요행히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들은 처음에는 기뻐하지만 결국 을이 됩니다.

월급도 많이 받고, 주위 사람들도

, 대기업에 다닌다하고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재능이 그쪽에서 요구하는 것에 비해

항상 부족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요구에 부응을 못합니다.

그래서 늘 잘릴까 봐 눈치를 보고 살아야 돼요.

 

그런데 질문자처럼 유학까지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업무량도 많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인데 월급은 조금 주는 직장을 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일을 구하기도 아주 쉽습니다.

 

그리고 그런 회사에 들어가면

사장의 눈에는 내가 귀한 인재로 보이겠죠.

이런 직장은 당장 내일이라도 구할 수 있고

모레라도 다른 데로 옮길 수 있어요.

회사에서 내가 별로 눈치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장의 입장은 어떨까요?

오랜만에 괜찮은 사람이 하나 들어왔으니

나간다고 할까 봐 전전긍긍하겠죠.

 

노동자라고 무조건 을이 되는 게 아닙니다.

노동자도 갑이 될 수도 있어요.

오늘 같은 날 이런 강의가 있으면 이 사람은

사장님, 저 오늘 법륜 스님 강의를 들으러 가야 하니 일찍 퇴근하겠습니다하고 회사를 나와버려도

아무 말도 못 해요. 뭐라고 하면 내일부터 회사에 안 나오니까요.

꼭 사장이 갑이고 직원은 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왜 자꾸 을이 되는지 아세요?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은 많이 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사장은 일은 많이 시키고 월급은 조금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장도 을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갑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다들 을이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누구를, 또는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을이 되기를 자처하는 행위입니다.

 

갑을 관계는 사장과 직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나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갑질을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갑질이라는 표현은

나쁜 의미로 쓰이는 갑질이 아니고

당당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사는 동안은

너무 목매달고 살지 마세요.

가볍게 구경삼아 사십시오.

하다가 안 되면 한국으로 가면 되잖아요.

그것도 안 되면 정토회로 오면 돼요.

정토회는 여러분들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독일 사람들이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여러분들이 독일 사회를 휘어잡아서

성공하겠다는 망상을 자꾸 하면 안 됩니다.

물론 어쩌다가 그럴 수는 있어도

항상 남을 존중해야 합니다.

 

기가 죽어서도 안 되지만

너무 허황된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독일 사람들에 비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려면

독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다섯 시간 일하면 나는 여섯 시간 일하고

그들이 다섯 시간 공부하면 나는 열 시간 공부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