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아버지가 향년 53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도 비슷한 연배이신데
사회생활 경험이 없으셔서
제가 가까이에서 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가 한국에 돌아가야
남은 가족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삶의 뿌리를 스위스에 두고 있어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저 자신이 자식으로서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죄책감도 듭니다//
나는 나쁜 딸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울면서 살면 되죠.
본인이 보기에도 내가 나쁜 사람이라면
벌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 아니에요?
지옥에 갈 행동을 하고 나서
하느님께 천당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건 이치에 안 맞잖아요.
본인 스스로
‘나는 부모님께 해야 할 도리를 다 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고 생각한다면
벌을 기꺼이 받아야지요.
반대로 자기 스스로 이기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
자기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이미 규정을 해놓고
왜 이기적이지 않다는 말을 또 듣고 싶어 해요?
모순이잖아요?
질문자가 운다고 어머니에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려면
여기서 울고 있지 말고 한국으로 가든지요.
울면서 여기서 힘들게 생활하는 걸 엄마가 좋아할까요?
엄마가 보기에는 내 딸이 스위스에 살면서
엄마 걱정하고 울면서 사는 게 좋겠어요?
웃으며 잘 사는 게 좋겠어요?
...
한국에 와서 어머니를 보살피지도 않고
매일 울어서 엄마를 슬프게 만들고
이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잖아요.
“엄마, 내가 한국에 가서 엄마를 돌봐드리는 건 어려워요.
대신에 여기서 내가 용돈을 많이 보내드릴게요.
이걸로 제 역할을 대신하겠습니다.”
이렇게 엄마에게 말하든지
아니면 매일 전화를 하든지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에 가든지
질문자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지 않겠어요?
질문자가 웃으면서 사는 게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겁니다.
부모님으로서는 자식이 한국에 오면 제일 좋지만
한국에 못 들어오더라도
자식이 웃으면서 사는 걸 가장 원할 겁니다.
자식이 울면서 사는 걸 원하는 부모는 없어요.
제가 볼 때는 질문자가 뭘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께도 도움이 안 되고,
자기한테도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그냥 어리석은 겁니다.
한국에 가려면 내일 당장 짐을 싸서 가세요.
한국에 못 가는 것이 이기적인 것은 아니에요.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지면 될 뿐입니다.
못 가겠으면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사과해야 할 것 아니에요?
“어머님이 혼자되셨으니, 제가 가서 돌봐드려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대신 제가 여기서 열심히 일해서 매달 생활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최소한 열흘에 한 번은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구체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머니에게 용돈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울고 있는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게 낫다는 겁니다.
울고 슬퍼하는 것은 어머니한테도 도움이 안 되고
나한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걸 두고 ‘어리석다.’ 하고 표현합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괴롭힌다는 뜻이에요.
내가 남을 때렸다고 합시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면 나쁜 짓인데
내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은 짓입니다.
내가 상대를 때릴 때는 주먹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그에 따른 과보는 폭행죄로 감옥에 가는 겁니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에게 손해를 입히고
자기가 자기를 해치고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것을 어리석다고 해요.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타인을 해치거나,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합니다.
나쁜 짓은 자신을 기준으로 보면
손해를 끼치는 일이에요.
그래서 어리석은 짓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나쁜 짓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면
나에게 손해 나는 짓을 하지 않게 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좋은 일을 해라’ 이렇게 말하지 않고
주로 ‘지혜롭게 행동해라’ 이렇게 말합니다.
즉 어리석은 짓을 멈추라는 뜻입니다.
지금 질문자가 하는 행동은 어리석은 짓이에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자꾸 울면 남한테 동정은 받을 수 있겠죠.
그러나 질문자가 정말로 엄마를 생각한다면
울지 말고 용돈을 보내드리거나
정기적으로 연락을 드리거나
실제로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기꺼이 가고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처럼 어리석은 상태에서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 생각대로 일이 잘 안 풀리게 되면
그 원인을 자기한테서 찾지 않고
어머니한테 화살을 돌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때문에
내가 한국에 돌아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만 아니었으면 내 마음대로 스위스에서 살았을 텐데,
엄마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 이렇게 됐다.’ 하고
모든 책임을 엄마한테 전가할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결정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스위스에 있더라도 내가 결정해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무책임한 사고방식이에요.
그래서 지금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이 나오는 겁니다.
어머니는 질문자가 없어도 잘 살고 계세요.
딸이 옆에 있어 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수가 없잖아요.
딸이 옆에 없더라도
보내주는 용돈 받아 가면서 잘 사실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 본인의 문제입니다.
계속 스위스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엄마한테 효녀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이렇게 두 가지를 다 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러니 본인이 하나를 선택하세요.
내가 스위스에 계속 산다고 해서 그게 이기적인 행동은 아니에요.
인간은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지 않는다면
본인 의지대로 살아도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금전적 지원을 해드리거나
정기적으로 연락을 드리는 방식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싶어요.
부모가 되면
자식에게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의 간절한 소원을 못 들어준다고 해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건 부모님의 바람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뭘 그런 걸 나한테 원하십니까?’
이렇게 따져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부모님과 나는 생각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부모님으로서는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죄송합니다.
제가 그렇게는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자식이 살아야 한다면 그
건 자유인이 아니고 노예입니다.
왕의 노예나 부모의 노예나
노예는 노예잖아요.
물론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한국에 가서 살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도
부모가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가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한국으로 가지도 못하고
스위스에 있으면서 계속 울고 있으면
여러분은 ‘부모님 생각을 저렇게 많이 하니 참 효녀구나’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천만에요.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욕심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저는 결혼도 하고 싶고, 출가해서 스님도 되고 싶은데,
어느 것을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여러분은
‘저 사람은 출가를 고민할 만큼 좋은 생각하고 있네’
이렇게 생각하죠?
이 사람은 스님이 되어서 갖게 되는 명예와
결혼을 해서 갖게 되는 세속적 욕망의 충족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해서 번뇌가 생기는 겁니다.
욕심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를 가지려면 하나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려놓은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기꺼이 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서 울고 슬퍼하면 안 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나의 잘못이 아니라
수명이 다해서 돌아가신 거니까요.
나의 선택에 대해서 기꺼이 책임을 지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
근본적으로는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만나는 게 괴로운 일입니까?
헤어지는 게 괴로운 일입니까?
물론 밥을 못 먹거나
남에게 두들겨 맞거나
성폭행을 당한다면,
굉장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겪는 대다수의 경험은
괴로워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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